릴로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온 마지막 핏방울이 현관문 사방의 틈새로 스며들어 단단히 굳어지는 순간, 고요가 폭탄처럼 쏟아집니다. 귀를 찢을 듯 문짝을 긁어대던 기괴한 손톱 소리도, 복도 저편에서 흘러나오던 축축하고 비린 비명도 거짓말처럼 뚝 끊깁니다.

체온이 급격히 내려갑니다. 손끝 발끝부터 얼어붙는 것처럼 시려오고, 심장은 갈증에 허덕이듯 고작 분당 마흔 번 남짓한 속도로 무겁고 느리게 덜컹거립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당신의 가슴 속을 채우는 것은 지독한 평온입니다. 집 전체를 감싼 선혈의 결계가 완벽히 결착되었습니다. 가문 대대로 내려온 '가택 수호의 계율'—바깥의 부정(不淨)이 문틀의 피를 넘지 못하게 하라는 붉은 차벽이, 이 차가운 현대식 고층 아파트에 기적처럼 들어앉은 것입니다.

"형, 얼굴이 왜 그래? 완전 종잇장 같아."

거실 소파 위에서 웅크리고 있던 동생이 담요를 어깨에 두른 채 다가와 당신의 팔을 부축합니다. 동생의 체온이 닿는 순간, 얼어붙었던 온몸의 감각이 비로소 살아나며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옵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조금 피곤해서 그래." "싱크대에 따뜻한 보리차 끓여 놨어. 마실래? 정전이라 가스레인지에 겨우 끓였는데, 이상하지. 보일러도 안 도는데 방바닥이 꼭 구들장처럼 따뜻해."

동생이 건네주는 보리차 컵을 두 손으로 감쥐자, 굳어 가던 손가락이 서서히 녹아내립니다. 아주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의 대화. 도심 전체가 괴식(怪食)하는 어둠에 잠겨 버린 이 순간, 이 사소함이야말로 당신이 목숨과 바꾼 기적입니다.

베란다 이중창 너머를 바라봅니다. 24층 높이에서 내려다보이는 빌딩 숲은 기괴한 죽음의 침묵에 잠겨 있습니다. 가로등도, 네온사인도 모두 꺼진 칠흑의 어둠 속에서, 간간이 거대한 형체들이 고층 빌딩의 외벽을 기어오르며 붉은 눈을 번뜩입니다.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귀신들의 속삭임이 도심의 바람을 타고 흘러갑니다.

그때, 검은 그림자 하나가 당신의 베란다 유리창을 향해 육중한 발을 내딛습니다. 정체불명의 악귀가 이 집의 생기를 느끼고 다가온 것입니다. 하지만 놈의 검은 손끝바닥이 유리틀에 닿기도 전, 붉은빛의 미세한 불꽃이 허공에서 탁, 하고 튀며 강력한 낙뢰처럼 놈의 손을 태워 버립니다. 끔찍한 단말마와 함께 어둠 속으로 추락하는 괴물의 모습을 보며, 당신은 마침내 확신합니다.

이곳은 완벽한 철옹성입니다. 바깥세상이 영원한 지옥으로 전락했을지언정, 당신의 온 힘을 주입해 만든 이 방주 안에서만큼은, 당신과 가족들은 숨을 쉬며 영원히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형, 괜찮으면 저녁은 아까 남은 밀키트 찌개 먹을까? 전기는 나가도 부탄가스가 있으니까." "그래, 그거 좋겠네."

당신은 미소를 지으며 차가운 창문에서 눈을 돌려, 따뜻한 온기가 감도는 거실로 걸음을 옮깁니다. 쇠약해진 육신은 영원히 이 집 벽 안의 결계를 비추는 초가 되어 타들어 가겠지만, 소중한 이들의 일상을 지켜냈다는 깊은 만족감이 영혼을 채웁니다. 고요하고 아늑한 고립, 그 영원한 구원의 방주 안에서 당신의 긴 전쟁은 마침내 그 마침표를 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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