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차가운 금속의 촉감이 손목에 닿기 직전이었다.

수술방 슬라이딩 도어가 열리며 쏟아져 나온 열기 속에서,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사법특별관 두 명이 한해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의 가슴팍에 붙은 공무원증이 수술실 복도의 무영등 불빛을 받아 차갑게 반사되었다.

"한해인 선생. 의료법 위반 및 전과 기록 미등록 기기를 통한 무단 라이브 투사 혐의로 즉각적인 구금을 상신, 집행하겠습니다. 동행해 주시죠."

사법특별관의 손에 들린 은색 수갑이 공중에서 궤적을 그리며 해인의 가슴팍으로 뻗어왔다.

해인의 시선은 그들의 얼굴이 아닌, 그 너머 수술실 내부의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실인증 환자의 검은 눈동자 속에서, 기하학적인 수치들이 기괴한 속도로 무너져 내리는 것이 먼저 포착되었다.

삐이이이이! 삐이이이이!

수술실 내부에서 고막을 찢는 페이징 경보음이 터져 나왔다.

"비, 비피(BP, 혈압) 떨어집니다! 50에 30! 수축기 혈압 계속 무너집니다!"

안에서 환아 서진이의 상태를 모니터링하던 백지훈의 다급한 비명이 복도까지 튀어 나갔다.

해인의 시야가 급격히 붉게 물들었다. 망막 위에 투사된 라이브 서저리 대장 시스템의 경고창이 붉은색 노이즈를 일으키며 점멸하기 시작했다.

[경고: 환아 '민서진'의 활력 징후 급격한 불안정화.] [산소포화도(SpO2): 82% -> 74% (급락 중)] [기도 내압(Airway Pressure): 42 cmH2O (기도 부종으로 인한 폐색 진행)] [시청자 몰입도 급변으로 인한 시스템 동조율 동반 하강 경고!]

"비켜."

해인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동요도 없었다. 오직 기계적인 서늘함만이 서려 있었다.

"방해하지 말고, 비켜라."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지금 구속영장 집행 중……!"

사법특별관이 해인의 어깨를 움켜쥐려 손을 뻗은 찰나였다.

해인은 망설임 없이 어깨를 비틀며 사법특별관의 손목을 강하게 쳐내고, 허점을 파고들어 그의 가슴팍을 강하게 밀쳐냈다. 묵직한 파열음과 함께 성인 남성의 거구가 복도 벽면으로 사정없이 밀려났다.

"어, 어어?! 공무집행방해입니다!"

"의사의 눈앞에서 환자가 죽어가고 있어."

해인은 자신을 가로막는 보안요원의 발등을 그대로 짓밟으며 수술실 안으로 몸을 던졌다.

"내 손목에 쇠고랑을 채우고 싶다면, 저 아이의 숨통이 붙어 있는 다음에 해. 백지훈, 환아 피부 상태!"

수술실로 들이닥친 해인의 눈에 서진이의 전신이 들어왔다. 방금 전까지 깨끗했던 아이의 가슴과 목덜미가 성난 불길처럼 붉은 두드러기로 뒤덮여 가고 있었다. 전형적인 아나필락시스 쇼크(Anaphylactic Shock)의 징후였다.

"피, 피부 전체에 홍반과 팽진이 가득합니다! 기도가 완전히 부어올라서 벤틸레이터(인공호흡기) 압력이 걸리지 않습니다!"

백지훈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복도에서 영장을 집행하려던 사법특별관들과 서은혜가 수술실 안으로 들이닥쳤다. 서은혜는 이 상황을 기다렸다는 듯,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거봐! 내 말이 맞잖아! 한해인 네가 무리하게 수술을 강행하니까 환자가 테이블 데스(Table Death) 직전까지 가는 거야! 감염 관리도 제대로 안 된 불법 장비로 쇼를 하더니 결국 애를 죽이는구나!"

서은혜의 앙칼진 목소리가 수술실 안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해인의 귀에는 서은혜의 소음 따위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의 뇌세포는 이미 수만 가지의 의학적 가능성을 초고속으로 연산하고 있었다.

'단순한 수술 후 저혈압이 아니다. 기도 부종을 동반한 전신성 혈관 이완. 약물 인성 아나필락시스다. 수술 중 투여한 약물은 세파졸린 계열의 항생제와 펜타닐, 그리고 베큐로늄뿐. 이 약물들은 사전 스킨 테스트에서 모두 음성이었다. 그렇다면 원인은 하나다.'

해인의 눈동자가 극도로 팽창했다.

그녀의 머릿속 저장장치 깊숙한 곳에 보관되어 있던 5화의 스캔 데이터가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서은혜가 과거 집도 후 방치했던 환자들의 수지 분석 차트 더미. 그 지저분한 이면지 구석에 먼지처럼 가라앉아 있던 단 한 줄의 기록이 해인의 망막 위에 선명하게 인쇄되었다.

[환아 민서진: 특정 페니실린계(Penicillin-binding proteins) 항생제 유도체에 대한 극심한 아나필락시스 기왕력 존재. 과거 서은혜 부교수 집도 당시 발작 이력 확인됨 -> 미등록 처리 및 차트 누락.]

서은혜가 자신의 의료 과실과 약물 부작용 이력을 숨기기 위해 고의로 전산 차트에서 삭제해 버렸던 치명적인 정보다. 수술 전 처방을 검토할 때 그 어떤 의사도 볼 수 없도록 꽁꽁 숨겨두었던 살인적인 덫이 바로 이 순간 터진 것이었다.

"페니실린 교차 반응……."

해인의 입술이 열렸다.

"서 교수, 당신이 3년 전 서진이의 대동맥 축착 수술 직후 발생했던 아나필락시스 이력을 차트에서 고의로 누락시켰지. 이번 수술 전 예방적 항생제로 들어간 세파 계열 약물이 체내에 잔류해 있던 페니실린 합성 분해 성분과 교차 반응을 일으킨 거야."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거야!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서은혜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가며 비명을 질렀다.

해인은 서은혜를 보지도 않은 채, 백지훈을 향해 칼날 같은 명령을 내렸다.

"백지훈, 에피네프린(Epinephrine) 1:10,000 희석액 0.1mg 즉시 정맥 주사. 그리고 10% 글루콘산 칼슘(Calcium Gluconate) 2.5ml 스타트(즉시 투여) 해."

"에, 에피네프린이요? 하지만 지금 심박수가 160이 넘습니다! 여기서 더 주입하면 심정지가……!"

"심장이 뛰는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혈관이 이완되어 압력이 제로가 되는 게 문제야. 글루콘산 칼슘으로 심근을 보호하면서 알파 수용체를 자극해 미세 혈관을 수축시켜야 해. 3초 준다. 당장 주입해!"

"예, 예!"

백지훈이 앰플을 깨부수고 주사기를 라인에 꽂았다.

[시스템 가동: '미세 혈관 수축률 뷰어(Microvascular Contraction Viewer)' 가동.] [메디컬 포인트 5,000 SP 소모.] [시야 내 미세 혈관의 수축률 실시간 백분율 시각화 시작.]

해인의 시야에 환아의 대동맥과 모세혈관들이 붉은색 그물망처럼 투명하게 조영되었다. 약물이 주입되는 순간, 0%에 가깝게 이완되어 흐물거리던 미세 혈관들이 파르르 떨며 수축하기 시작했다. 수축률 그래프가 12%에서 45%, 다시 78%로 가파르게 상승 곡선을 그렸다.

"글루콘산 칼슘 들어갔습니다!"

삐이이이— 삐, 삐, 삐.

불안정하게 늘어지던 경보음이 규칙적인 바이탈 신호음으로 전환되었다.

[환아 활력 징후 정상화 진행.] [혈압(BP): 90/55 mmHg (안정세)] [산소포화도(SpO2): 98% 회복.]

"후우……."

백지훈이 무릎을 꿇을 듯이 주저앉으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상황은 정리되었지만, 수술실 안의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사법특별관들이 다시 해인의 양옆을 호위하듯 좁혀왔다.

"상황이 해결되었으니 이제 가시죠, 한해인 선생. 더 이상의 공무집행방해는 묵과하지 않습니다."

그때, 수술실 한구석에서 모니터를 조작하던 강민우 PD가 서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에는 아주 작은 칩셋이 들려 있었다.

"사법관님들, 잠깐만요. 지금 가시면 아주 후회할 만한 영상이 전 세계에 송출되고 있거든요."

강민우가 가리킨 메인 모니터에는 유튜브와 글로벌 의료 스트리밍 플랫폼 '메디캐스트'의 실시간 화면이 띄워져 있었다.

시청률은 이미 200만 명을 돌파하며 폭발적인 트래픽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화면 우측에는 붉은색 대비로 강조된 문서 하나가 박제되어 있었다.

"이게…… 뭐지?"

사법특별관 중 한 명이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대한대학병원 전산 서버 구석에 숨겨져 있던, 서은혜 교수가 직접 서명한 3년 전 민서진 환아의 약물 알레르기 누락 처방 기록 원본입니다."

강민우가 조용히 읊조렸다.

"병원 기획처가 우리의 라이브 송출을 막으려고 수술방 와이파이와 원내 전송망을 강제로 차단했던 건 다들 아실 겁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제 주머니에는 전 세계 위성망 통신용 초정밀 비상 무선 라우터 칩셋이 있었거든요."

강민우가 해인의 주머니를 툭 치며 윙크를 해 보였다. 2화에서 강민우가 해인의 주머니에 은밀히 찔러 넣어두었던 바로 그 비상 칩셋이었다. 병원의 야만적인 통신 차단 공작 속에서도, 이 칩셋 하나 덕분에 수술실의 모든 상황은 1080p 초고화질로 전 세계 시청자들의 눈앞에 실시간으로 배달되고 있었다.

"서은혜 교수가 고의로 알레르기 기록을 누락시켜 환자를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고, 그걸 한해인 선생의 과실로 뒤집어씌우려 했던 전 과정이……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백만 명이 넘는 시청자들에게 생중계되었습니다."

강민우의 나직한 음성이 수술실 안을 지배했다.

"이건 단순한 의료 과실이 아닙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미수이자, 사법당국을 기만하여 무고한 의사를 체포하게 만들려 한 사법 방해 죄죠."

"아, 아니야! 이건 음어야! 조작된 문서라고!"

서은혜가 미친 사람처럼 날뛰며 메인 모니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화면 속 실시간 채팅창은 이미 분노한 대중의 반응으로 터져 나가고 있었다.

- [Dr. Smith]: 이건 명백한 살인미수다. 환자의 알레르기 정보를 고의로 누락하다니, 의사 면허가 아니라 교도소로 보내야 한다. - [K-의대생]: 와, 소름 돋는다. 자기가 망쳐놓은 환자 차트 조작해서 동료 의사한테 덤터기 씌우려 한 거네. - [정의구현러]: 복지부 특사경들 뭐 하냐? 진짜 체포해야 할 범죄자가 눈앞에서 발악하고 있는데 수갑 안 채우고? - [Med_Point_User]: 대박이다…… 라이브가 세상을 구하네. 한해인 교수님 진짜 침착함 미쳤다.

[시스템 메시지: 대중의 몰입도가 극대화되었으며, 사회적 정의가 실현되었습니다.] [실시간 메디컬 포인트(SP) 대량 유입!] [+12,000 SP 획득!] [현재 보유 메디컬 포인트: 26,700 SP]

해인의 몸을 감싸고 있던 극도의 긴장감과 피로가 순식간에 씻겨 내려갔다. 시스템의 보상 설계가 그녀의 전신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해인은 차가운 눈빛으로 서은혜를 내려다보았다. 감정적 실인증을 앓고 있는 그녀였기에, 서은혜의 절망과 분노에 일말의 동정심도 일지 않았다. 그저 완벽한 인과응보의 퍼즐이 제 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기하학적 쾌감만이 뇌리를 스쳤다.

"서 교수."

해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당신이 숨겨둔 쓰레기는 차트 누락뿐만이 아니야. 이 기획실 공용 클라우드 일련번호에 저장된 VIP 불법 대리 수술 리스트도 조만간 세상 빛을 보게 되겠지."

해인은 품속에서 백지훈이 몰래 전해주었던 쪽지를 만지작거렸다. 거기에는 대리 수술의 결정적 증거가 담긴 클라우드 경로가 적혀 있었다.

"그, 그건……! 차 이사장님이 시켜서 한 일이야! 난 아무 잘못 없어! 다 병원을 위해서……!"

서은혜의 비명이 수술실을 찢어발겼다.

하지만 상황은 이미 종료되었다.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 수사관들과 사법특별관들의 시선이 서은혜에게 꽂혔다.

"서은혜 교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의료법 위반 및 살인미수 혐의로 긴급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철컥.

차가운 쇳소리가 수술실 안을 울렸다. 마침내 서은혜의 손목에 묵직한 수갑이 채워졌다. 그녀는 머리를 산발한 채, 울부짖으며 수사관들에게 질질 끌려 나갔다. 그 굴욕적인 패배의 모습은 강민우의 카메라를 통해 전 세계로 송출되며 그녀를 사회적으로 완벽하게 즉사시켰다.

수술실을 가득 메웠던 적막 속에서, 해인은 수술대 위에 누워 안정을 되찾은 서진이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가슴팍이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승리의 여운은 길지 않았다.

수술실 입구에 서 있던 검사의 어깨 너머로, 차현태 이사장의 비서실장이 슬그머니 다가와 해인의 앞에 멈춰 섰다. 그의 손에는 붉은색 직인이 찍힌 두꺼운 서류 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다.

비서실장은 기괴할 정도로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서류를 해인에게 내밀었다.

"한해인 선생. 서은혜 교수의 개인적 일탈은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만, 재단 이사회와 차현태 이사장님의 뜻은 변함이 없습니다."

해인은 말없이 서류 봉투를 뜯었다.

그 안에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명의로 발송된 정식 공문이 들어 있었다.

[긴급 통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임시 상임위원회 소집 및 한해인 의사 면허 영구 박탈 선언안 심의 결의 건.]

"이사장님께서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비서실장이 해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일 아침 9시, 국회에서 법정 청문회가 열립니다. 이사장님이 가진 모든 인맥과 자금을 동원해, 당신의 의사 자격을 영구히 박탈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예정입니다. 라이브 방송으로 세상을 바꾼 줄 아셨겠지만…… 법을 만드는 자들 앞에서도 그 장난감이 통할지 지켜보겠습니다."

해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좁혀졌다.

거대 자본과 입법 권력의 추악한 결탁이, 마침내 그녀의 숨통을 끊어놓기 위해 마지막 청문회라는 단두대를 준비한 것이다.

과연 한해인은 이 거대한 권력의 덫을 깨부수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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