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우웅웅!

수술실 천장의 무영등이 불규칙하게 깜빡거리더니, 이내 눈이 시릴 정도의 백색광을 뿜어내며 정상 전원이 복구되었다. 전산실에서 강제로 차단했던 메인 그리드가 다시 맞물린 결과였다.

하지만 안도의 숨결은 채 터져 나오기도 전에 비명으로 바뀌었다. 인위적인 전력 공급 중단과 복구 과정에서 발생한 서지(Surge) 전압이 혈액 가온 유지 장치와 체외순환기를 강타했다. 미세하게 조율되어 있던 기기들의 오작동으로 인한 급격한 대동맥압 변동. 그 치명적인 물리적 충격이 환아 이준우의 신생아 심근으로 그대로 전달되었다.

우심실 동맥벽 깊은 곳, 육안으로는 식별조차 불가능했던 복합 기형 기저 기포가 급격한 압력 변화에 반응해 비정상적인 수축과 팽창을 일으켰다.

퍽!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젖은 종이처럼 얇아진 동맥벽 이음새가 가차 없이 뜯겨 나갔다.

"앗……!"

마취과 의사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터졌다.

붉은 유선형의 혈액이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다. 시뻘건 피가 한해인의 페이스 실드와 수술 가운을 적시고, 천장의 무영등 유리 표면까지 튀어 올랐다. 우심실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혈류가 기공을 찢고 사방으로 분출되는 대참사였다. 수술방 내부의 벽면과 바닥이 순식간에 붉은 점묘화처럼 물들었다.

"네트워크 끊깁니다! 원내 와이파이랑 백업 LAN선까지 전부 다운됐어요!"

수술실 모니터 구석의 송출 신호가 붉은색으로 점멸했다. 차현태 이사장 측의 기획처가 수술실의 외부 통신망을 통째로 차단한 것이 분명했다. 실시간 시청률이 떨어지면 시스템 가동이 중단되고, 한해인의 호흡기마저 멎을 터였다.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과 함께 폐포가 쪼그라드는 인공적인 과호흡의 전조가 해인의 목을 조여왔다.

해인은 주저하지 않았다. 페이스 실드 아래로 흘러내리는 끈적한 피를 무시한 채, 소독포 아래 서브 하드웨어 콘솔로 손을 뻗었다. 그녀의 수술복 주머니 안에는 강민우 PD가 수술 직전 은밀히 찔러 넣어준 물건이 있었다. 병원 통제망을 우회하는 군용 규격의 위성망 통신용 초정밀 비상 무선 라우터 칩셋이었다.

딸깍.

소독된 비닐 포장 너머로 칩셋을 스마트 전송 장치 슬롯에 밀어 넣었다.

[비상 위성 링크(LEO Satellite Link) 활성.] [네트워크 대역폭 500Mbps 복구. 외부 차단 우회 성공.]

죽어가던 라이브 스트리밍 화면이 다시 살아났다. 시청자 수가 폭발적으로 치솟으며 실시간 채팅창이 미친 듯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시스템 알림: 호스트 가용 메디컬 포인트 19,700 SP.] [경고: 환아의 산소 포화도 62% 돌입. 급성 심정지 예측 시간 45초.]

"메디컬 포인트 1,500 소모. '시간 차 지혈 미세 안내선' 가동해."

해인의 음성이 기계적으로 떨어졌다.

[1,500 SP가 차감됩니다. 잔여 포인트 18,200 SP.] [특수 가시화 모듈 구동: 시간 차 지혈 미세 안내선 활성화.]

그녀의 각막 위로 붉은 핏물 속을 뚫고 들어가는 가상의 홀로그램 선들이 조영되었다. 솟구치는 피의 기하학적 궤적을 역산하여, 난류가 시작되는 진짜 출혈 중심점을 나노 단위로 검지하는 시스템의 시뮬레이션이었다.

피가 가득 차올라 시야는 암흑이나 다름없었다. 일반적인 외과의라면 보이지 않는 환부에 블라인드 클램핑을 시도하다가 주변의 정상 관상동맥까지 뭉개버려 환자를 즉사시켰을 상황.

하지만 해인의 손끝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녀의 뇌 속에는 감정이라는 불필요한 노이즈가 존재하지 않았다. 환자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도, 수술 실패 시 자신이 전신 마비가 된다는 압박도 그녀의 정교한 손놀림을 방해하지 못했다.

"석션 더 세게 잡아줘요. 백 선생, 내가 들어가는 순간 시야 0.5초만 확보해."

"예, 예?!"

"지금."

강력한 흡인기가 뿜어져 나오는 피를 빨아들이는 찰나의 순간, 0.1초 동안 핏물 속에 숨겨진 진한 청색의 미세 안내선 끝자락이 해인의 망막에 박혔다.

해인은 주저 없이 앵글드 클램프를 핏물 깊숙이 밀어 넣었다. 손가락 끝의 미세한 감각만으로 심근의 탄성을 감지했다. 동맥벽의 찢어진 틈새, 그 정확한 유출구의 기하학적 중심에 클램프의 끝날이 맞물렸다.

탁!

금속음과 함께 클램프가 잠겼다.

거짓말처럼 분수처럼 솟구치던 시뻘건 혈류가 뚝 끊겼다.

수술실 안의 모두가 숨을 멈췄다. 붉은 피로 흥건했던 우심실 주변이 서서히 석션에 의해 씻겨 내려가며, 정확히 찢어진 동맥벽의 변연부만을 움켜쥔 클램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단 한 번의 타격으로, 단 1밀리미터의 오차도 없이 혈류 동맥을 완벽히 차단한 것이다.

[시스템 메시지: 대혈전 정지 성공. 완벽한 결찰 경로 확보.] [글로벌 시청자 반응: "이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수준이 아니다. 어떻게 피가 솟구치는 와중에 저걸 단번에 집어내지?", "신의 손이다…… 아니, 악마적인 정밀함이다."]

"프롤렌 5-0."

해인이 손을 내밀었다. 얼어붙어 있던 백지훈이 허겁지겁 바늘을 건넸다.

해인의 양손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세 혈관 수축률 뷰어의 안내선에 맞춰, 찢어진 우심실 벽을 테플론 펠트와 함께 촘촘하게 기워 나갔다. 바늘이 심근을 통과할 때마다 결손 부위가 완벽한 기하학적 대칭을 이루며 봉합되었다.

삐-- 삐-- 삐--.

사나운 경고음을 내뱉던 모니터의 심전도 파형이 이내 완만한 동방결절 리듬을 회복했다. 산소 포화도 수치가 70%, 85%, 이내 98%까지 빠르게 치솟았다.

"……살았다."

마취과 의사가 다리가 풀린 듯 수술실 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백지훈은 봉합이 완료된 이준우의 따뜻하게 박동하는 심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눈시울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이내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페이스 실드 안쪽으로 눈물이 흘러내려 시야를 가렸지만, 그는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이사회의 명령에 순응해 이 가냘픈 생명을 포기하려 했던 자신의 비겁함과, 오직 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외압과 음모를 정면으로 뚫어낸 한해인의 압도적인 실력 앞에 완전히 굴복했다. 쓰레기 같은 카르텔의 부속품으로 살아가던 자신의 삶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었는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수술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해인이 마지막 피부 봉합을 끝내자 백지훈이 떨리는 손으로 소독포 아래에서 작은 USB 메모리와 거칠게 적힌 종이쪽지를 꺼내 해인의 손가락 사이에 슬쩍 밀어 넣었다.

"……이게 뭡니까, 백 선생?"

해인이 차가운 어조로 물었다.

백지훈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목소리를 극도로 낮췄다. 그의 음성은 분노와 참회로 젖어 있었다.

"서은혜 교수와 차현태 이사장이 그동안 VIP 환자들을 상대로 저질러 온 불법 대리 수술의 진짜 기록입니다. 병원 지하 비밀 서버에 숨겨진 원본 장부의 접속 경로와 암호화 키를 적어 두었습니다. 이사회가 한 선생을 매장하려던 진짜 이유…… 그 증거가 거기 다 들어 있습니다."

해인은 감정 인지 장애 환자답게 그의 눈물겨운 전향에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수술포 너머로 비치는 백지훈의 충혈된 눈동자를 기계적으로 응시했을 뿐이다. 그러나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제 손에 들어왔다는 사실만큼은 명확히 인지했다.

"접수하죠."

그녀는 쪽지와 USB를 수술복 안쪽 깊숙이 수납했다.

그 시각, 강민우 PD가 연출하는 라이브 스트리밍의 지표는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기록을 경신하고 있었다.

"점유율 25% 돌파! 전 세계 동시 시청자 수 450만 명입니다!"

부조정실에서 강민우가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했다. 화면 하단에는 전 세계 외과의들과 고액 기부자들이 보내오는 도네이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Dr. Hans (Germany): "이것은 현대 의학의 기적이다. 한해인 소아외과 센터 건립 기금으로 50만 달러를 기부하겠다."] [Save the Children Foundation: "아크(ARK) 독립 센터의 건립을 지지하며, 실시간으로 200만 달러의 매칭 펀드를 집행합니다."]

실시간 기부액은 어느새 600만 달러를 돌파하여, 한해인이 지정한 '아크 센터 건립 기금' 신설 계좌로 직접 안착하기 시작했다. 병원 재단이 개입할 수 없는 완전무결한 독립적 자본의 형성이었다.

같은 시간, 이사장실.

차현태는 집무실 모니터에 떠오른 기부금 액수와 백지훈의 밀고 징후를 보고받고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백지훈 그 애송이 녀석이……! 감히 이사회를 배신하고 장부를 넘겨?"

비서실장이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보고했다.

"이대로 두면 지하 서버의 이면 비자금 장부와 대리 수술 기록까지 라이브 방송에 노출될 위험이 있습니다. 한해인이 완전히 주도권을 쥐기 전에 손을 써야 합니다."

차현태는 책상을 내려쳤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명패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의사협회고 법원 가처분이고 다 필요 없어! 즉시 비상 이사회를 소집해라. 무단 집도 및 병원 자산 점거, 의료법 위반 혐의로 한해인을 그 자리에서 즉각 해고하고 구금 조치하도록 행정력을 총동원해!"

수술실의 자동문이 좌우로 열렸다.

수술을 마친 한해인이 페이스 실드를 벗으며 복도로 걸어 나왔다. 장시간의 수술로 가운은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그녀의 눈빛만큼은 시베리아의 칼바람처럼 서늘했다.

하지만 그녀가 맞이한 것은 환호하는 대중이나 기자들이 아니었다.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사내 서댓 명이 그녀의 앞길을 거칠게 가로막았다. 그들 뒤로는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사법특별관들과 병원 보안요원들이 겹겹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었다.

"한해인 의사."

가장 앞에 선 사법특별관이 차가운 공무원증을 내밀며 호주머니에서 철제 수갑을 꺼내 들었다. 금속 특유의 서늘한 마찰음이 고요한 복도에 울려 퍼졌다.

"무단 수술 강행 및 보건복지부에 등록되지 않은 비인가 스마트 의료 기기 라이브 투사 혐의, 그리고 병원 자산 무단 점거 혐의로 즉각적인 현행범 체포 및 구금을 집행합니다. 순순히 따르십시오."

체포용 수갑이 해인의 양 손목을 향해 뻗어왔다.

금속 고리가 살갗에 닿기 직전, 해인은 피가 묻은 수술 장갑을 낀 손을 그대로 멈춰 세웠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두려움도, 억울함도 없었다. 오직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는 외과의의 기하학적 이성만이 번뜩이고 있었다.

"이유는?"

해인의 나직하고 건조한 음성이 텅 빈 복도에 깔렸다.

"이미 고지한 대로 의료법 제27조 무면허 의료행위 방조 및 비인가 의료기기 불법 투사, 그리고 대학병원의 업무방해 혐의입니다. 현행범 체포이니 순순히 따르십시오."

특별관의 손이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을 움켜쥐려 했다.

"틀렸어."

해인이 그의 손을 가볍게 비틀어 피하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5조의2.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제공한 응급의료로 인하여 발생한 재산적 피해 및 사상에 대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형사책임을 감경하거나 면제한다. 환아 이준우는 전력 차단으로 인한 급성 우심실 파열 상태였습니다. 내가 메스를 놓았다면, 그 아이는 30초 이내에 사망했을 겁니다. 이 상황에서 수술을 중단하는 것이야말로 의료법 제15조 진료거부 금지 위반이자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입니다."

"그, 그건 법정에서 따질 일이고! 우리는 지시받은 대로 영장을 집행할 뿐이오!"

특별관이 소리쳤지만, 그의 눈동자는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때, 복도 모퉁이 너머에서 또각거리는 날카로운 구두 굽 소리가 들려왔다. 하얀 의사 가운을 걸친 서은혜였다. 그녀의 입가에는 감출 수 없는 희여이 번져 있었다.

"한해인 선생. 결국 제멋대로 날뛰더니 쇠고랑을 차는구나."

서은혜가 팔짱을 끼며 비아냥거렸다.

"아무리 수술을 잘하면 뭐 해? 법을 어긴 범죄자일 뿐인데. 당신이 쓴 그 정체불명의 장비들, 전부 불법 의료기기 유통 및 부정 사용으로 압수될 거야. 당신의 그 오만한 라이브 방송도 오늘로 끝이라는 소리지."

서은혜의 도발에도 해인의 표정은 미동조차 없었다. 오히려 해인은 제 가슴팍에 고정된 초소형 라이브 카메라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착각하고 있군, 서 교수."

해인의 시선이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응시했다.

"이 방송은 꺼진 적이 없어. 강민우 PD가 연결한 위성망을 통해, 지금 당신이 한 말과 저들이 나를 체포하려는 이 모든 과정이 전 세계 450만 명에게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지."

"뭐, 뭐라고?!"

서은혜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특별관들 역시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으로 카메라를 가리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스트리밍 화면의 채팅창은 분노한 시청자들의 맹렬한 포화로 마비되기 시작했다.

[시청자_A: "아이가 죽어가는데 수술했다고 의사를 체포한다고? 이게 한국 의료의 현실이냐?"] [Save_Life: "The hospital tried to kill the baby by cutting the power! Arrest the hospital board, not the doctor!"] [정의구현러: "서은혜 얼굴 똑똑히 기억해 둔다. 저 여자가 아까 전원 명령 내렸던 그 사람 맞지?"]

[시스템 알림: 대중의 분노와 정의 구현 열망으로 인해 메디컬 포인트 급증!] [+12,000 SP 획득. 현재 보유 포인트: 30,200 SP.]

뇌리를 가득 채운 시스템 메시지가 해인의 활력을 완벽하게 복구시켰다.

"카메라 꺼! 당장 저 장비 압수해!"

특별관이 소리치며 해인의 팔을 거칠게 낚아채려 했다.

바로 그 순간, 해인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던 백지훈의 USB 메모리가 차가운 빛을 발했다. 해인은 그것을 카메라 렌즈 바로 앞까지 들어 올렸다. 아주 느리고, 명확하게.

"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하겠지, 서 교수."

해인의 나직한 목소리가 복도의 공기를 단숨에 얼려버렸다.

"당신과 차현태 이사장이 지난 3년간 숨겨온 VIP 불법 대리 수술 리스트. 그리고 환자 동의 없이 집도 의사를 바꿔치기한 수술방 CCTV 원본 파일들이야."

서은혜의 눈동자가 대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 그게 무슨……! 당신이 그걸 어떻게……!"

"지금 이 순간부터, 이 데이터의 암호화 키를 라이브 스트리밍 서버와 연동하겠다."

해인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감정이 배제된 기계적인 호선이었기에, 그것은 오히려 보는 이로 하여금 등골이 오싹해지는 공포를 자아냈다.

"내가 이 수갑을 차고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이 파일들은 전 세계 의학 학회와 언론사, 그리고 유튜브 메인 스트림에 무삭제 실시간 업로드될 거야."

"미쳤어?! 당장 그 USB 뺏어!"

서은혜가 비명을 지르며 경비원들에게 소리쳤다.

사법특별관들의 손이 해인의 손목을 향해 뻗어오는 찰나.

철컥, 하는 불길한 쇠붙이 소리가 복도의 공기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수갑이 채워진 것은 한해인의 손목이 아니었다.

"동작 그만."

복도 끝,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짙은 청색 정장을 입은 중년의 사내가 수십 명의 수사관을 대동하고 걸어 나왔다. 그의 가슴팍에는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의 표식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법특별관들의 손이 허공에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보건복지부 특사경 여러분, 집행을 멈추십시오. 방금 청와대와 법원으로부터 긴급 명령이 하달되었습니다."

검사의 단호한 목소리가 복도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우리가 체포할 대상은 한해인 의사가 아닙니다."

검사의 시선이 해인의 가슴팍에 달린 USB, 그리고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 서은혜에게로 향했다.

"대학병원 재단 이사장 차현태, 그리고 소아외과 부교수 서은혜. 두 사람에 대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의료법 위반 혐의 구속영장이 방금 발부되었습니다."

전세가 완벽하게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해인은 승리의 기쁨 대신, 검사의 어깨 너머로 걸어오는 누군가의 실루엣을 발견하고 눈을 가늘게 떴다. 차현태 이사장의 비서실장이 검사에게 다가가 무언가 밀서를 건네고 있었다. 그 순간 검사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과연 차현태가 이대로 순순히 무너질 것인가. 해인의 뇌리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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