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하지만 수술이 한창 폐심장 복잡 절개부에 다다른 순간, 서은혜의 청탁을 받은 대음모 기획실의 조작으로 병원 전력실의 대규모 긴급 휴전 차단 레버가 강제로 내려가며 수술실 안의 모든 조명과 메인 무선 공유기 전원이 전격 꺼져버렸다.

칠흑 같은 어둠이 수술실을 집어삼켰다.

1초 전까지 규칙적으로 박동을 그리던 심전도 모니터의 푸른 궤적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체외순환기(CPB)의 롤러 펌프가 삐걱거리는 금속음을 내며 회전을 멈췄다. 환아의 체온을 28도로 유지하며 심폐 기능을 대신하던 기계의 정지는 곧 죽음을 의미했다.

“정전……? 말도 안 돼, 무정전 전원 공급 장치(UPS)는 왜 안 돌아가는 거야!”

백지훈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사정없이 흔들렸다. 본능적인 공포에 질린 그의 손끝이 메탈 포셉을 놓쳐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쨍그랑하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정적을 찢었다.

해인의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던 라이브 서저리 시스템의 반투명 푸른 창들이 동시에 붉은빛으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경고: 스트리밍 신호가 감지되지 않습니다.] [시청자 몰입도 급감 연산 개시.] [호스트 신체 제약 패널티 1단계 작동: 심박수 성상 구간 이탈(140bpm 돌입), 과호흡 증세 유도.] [영구 전신 운동 신경 마비 패널티까지 남은 시간: 02분 00초]

“윽……!”

허파 꽈리 깊숙한 곳에서부터 산소가 일시에 빠져나가는 듯한 극심한 질식감이 해인의 가슴을 짓눌렀다. 기도가 콘크리트를 부어 넣은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 들어갔다. 폐포가 쪼그라들며 들이쉬는 숨보다 내쉬는 숨이 가빠졌다.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려 수술용 고글 안쪽을 적셨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스트리밍이 완전히 끊기면, 환아의 사망 이전에 해인 자신의 신경계가 먼저 파괴될 터였다.

‘서은혜. 결국 이 선까지 넘는군.’

감정을 인지하지 못하는 해인의 뇌세포는 분노 대신 차가운 인과 관계를 계산해 냈다. 병원 전력망과 백업 UPS 라인까지 동시에 차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 그리고 이 수술을 실패로 몰아가 자신을 매장하려는 자. 답은 하나뿐이었다.

해인은 가쁜 호흡을 억누르며, 수술 가운 안쪽 주머니에 들어 있는 단단한 금속성 물체를 떠올렸다. 지난 수술 직전, 강민우 PD가 손안에 억지로 쥐여 주었던 초정밀 비상 무선 라우터 칩셋이었다. 병원의 외부 통제망을 완전히 우회하는 우주 위성 통신용 하드웨어.

“순환 간호사.”

해인의 목소리는 산소 부족으로 갈라져 있었지만, 기이할 정도로 평온하고 단호했다.

“예, 예? 한 선생님!”

“내 수술 가운 오른쪽 속주머니에 손을 넣으세요. 파란색 실리콘 케이스로 감싸인 칩셋이 있을 겁니다. 그걸 꺼내서 내 수술용 태블릿 측면 USB 포트에 장착해요. 지금 당장.”

“하지만 선생님, 멸균 구역이……!”

“환자가 3분 뒤면 뇌사 상태에 빠집니다. 격식 차릴 시간 없으니 움직여요.”

수술실 구석에서 떨고 있던 순환 간호사가 해인의 서슬 퍼런 다그침에 정신을 차렸다.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해인의 가운 안쪽으로 손을 뻗었다. 바스락거리는 마찰음 끝에 소형 칩셋이 추출되었고, 이내 둔탁한 플라스틱 결합음이 들려왔다.

딸칵.

[시스템 감지: 비상 외부 위성 통신 모듈 장입 완료.] [전파 하이재킹 우회 경로 탐색 중…….] [밀리터리 등급 위성 네트워크 연동 성공.] [라이브 스트리밍 채널 재가동. 뷰어십 회복 중.]

“후우…….”

가슴을 죄어오던 무형의 쇠사슬이 풀려나가듯, 해인의 폐부로 차가운 공기가 다시 흘러 들어왔다. 심박수가 빠르게 안정세로 돌아섰다. 꺼졌던 시야의 3D AR 가이드라인이 한층 더 붉고 선명한 빛을 뿜으며 이준우 환아의 심장 환부 위로 정밀하게 내려앉았다.

정전이 발생한 지 정확히 15초 만에 이뤄진, 초차원적인 복구였다.

* * *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 ‘메디캐스트’의 실시간 중계 화면이 암전되었다가 다시 켜지는 순간, 전 세계의 시청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 화면이 왜 이래? 정전인가? - 대형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정전이 일어났다고? 백업 전원도 안 들어오는 거야? - 미친, 환아 심장 절개 직전이었잖아! 이거 살인 미수 아니야?

메디컬 포인트(SP)가 분당 수천 단위로 폭증하며 해인의 뇌내 시스템으로 흘러들었다. 대중의 분노와 몰입이 연산 자원으로 변환되는 속도는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빨랐다.

[보유 메디컬 포인트: 24,700 SP] [특수 시각 모듈 '미세 혈관 수축률 뷰어' 출력 최대치 유지.]

해인은 이마에 장착된 소형 LED 헤드램프의 스위치를 켰다. 가느다란 백색광 줄기가 어둠을 뚫고 준우의 벌려진 흉강 내부를 비추었다.

“백지훈 선생, 정신 차려요. 지금부터 수동으로 바이패스 유지합니다. 핸드 펌프 잡으세요.”

“예? 수, 수동으로요? 이 압력을 손으로 맞추는 건 불가능합니다!”

“내가 지시하는 박자에 맞춰서 누르기만 해. 1초에 한 번, 균일한 압력으로. 시작해요.”

해인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백지훈은 침을 집어삼키며 체외순환기 측면에 달린 수동 레버를 움켜잡았다. 그의 손이 덜덜 떨렸다.

“하나, 둘, 셋, 넷. 압력 낮아요. 더 깊게 눌러요. 그렇지. 그 템포 유지해.”

해인은 헤드램프의 좁은 광원 아래에서 메스를 다시 고쳐 잡았다. 어둠 속에서 오직 메스의 날카로운 끝부분만이 차갑게 빛났다. 폐동맥과 대동맥의 경계면, 0.5밀리미터 두께의 얇은 막을 절개하는 손길에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때, 수술실 외부 참관실의 유리창 너머에서 번쩍이는 불빛들이 일제히 켜지기 시작했다.

하나, 둘, 다섯, 열…….

강민우 PD가 참관실 구석에서 스태프들과 의과대학 학생들의 스마트폰을 전부 수거해 유리창에 밀착시킨 것이었다. 수십 개의 스마트폰 플래시 라이트가 특수 제작된 유리창의 굴절률을 타고 수술실 내부로 쏟아져 들어왔다.

마치 수천 개의 별빛이 쏟아지는 듯한 고밀도의 조명이 수술대를 환하게 밝히기 시작했다.

“이…… 이건…….”

백지훈이 넋을 잃고 참관실을 바라보았다.

유리창 너머, 강민우 PD가 카메라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었다. 그의 스마트폰 화면에는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는 메디캐스트의 댓글창이 폭발하듯 굴러가고 있었다.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최고 대학병원의 민낯입니다. 수술실 전원을 고의로 차단해 환자의 목숨을 볼모로 잡는 쓰레기 기득권 카르텔을 똑똑히 보십시오!]

강민우가 송출 화면 하단에 붉은색 자막으로 박아 넣은 문구였다. 네티즌들의 분노는 횃불처럼 타올랐다. 대학병원 자유게시판은 이미 서버가 마비되었고, 청와대 국민청원과 복지부 민원실로 비난이 쏟아져 들어가고 있었다.

정전이라는 비열한 무기로 해인을 묻어버리려 했던 서은혜의 설계가, 오히려 그들의 목을 죄는 가장 잔혹한 올가미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잡음이 걷혔군.”

해인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플래시 불빛 아래, 준우의 대동맥궁이 완벽한 기하학적 곡선을 그리며 드러나 있었다.

“대동맥 문합 개시합니다. 6-0 프롤린(Prolene) 주세요.”

해인의 손끝이 허공을 갈랐다. 바늘코가 실을 물고 어둠과 빛의 경계를 정밀하게 수놓아 갔다. 미세 혈관 수축률 뷰어가 실시간으로 혈관벽의 탄성 저항값을 백분율로 계산해 해인의 시야에 투사했다.

[좌측 문합부 압력 분포 92% 안정.] [우측 문합부 전단 응력 98% 최적.]

정교하기 짝이 없는 바느질이었다. 마치 정밀 기계가 실을 뽑아내듯, 해인의 양손은 어둠 속에서도 한 치의 오차 없이 움직였다. 수술실의 습도, 차가운 공기, 그리고 환아의 미세한 심장 진동마저 그녀의 손바닥 안에서 제어되고 있었다.

* * *

정전이 발생한 지 10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덜컥! 쾅!

수술실 벽면의 메인 전원 차단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시 작동했다. 꺼졌던 무영등이 눈이 시릴 정도로 백색광을 뿜어냈고, 인공호흡기와 체외순환기의 모니터들이 요란한 경고음을 울리며 재부팅되었다.

원내 전력 통제실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윗선이 허겁지겁 전력을 재공급한 것이 분명했다.

“전, 전원 들어왔습니다!”

백지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수동 레버에서 손을 떼려 했다.

“손 떼지 마!”

해인이 날카롭게 외쳤다.

“예? 하지만 전원이 돌아왔는데…….”

“갑작스러운 전력 복구는 기계의 서지(Surge) 현상을 유발해. 유량이 급격하게 변동하면 혈관벽이 견디지 못합니다. 수동 유지하면서 기계 유량 천천히 동기화시켜요!”

해인의 경고가 떨어짐과 동시에, 체외순환기의 모니터에 붉은색 경고등이 들어왔다. 인위적인 전력 차단과 급격한 복구 과정에서 발생한 미세한 압력 파동이 서서히 정상화되던 체외순환 라인을 타고 준우의 심장 내부로 흘러 들어간 것이었다.

해인의 시야 속, 3D AR 모델의 우심실 동맥벽 깊은 곳에서 이상 징후가 감지되었다.

[경고: 우심실 후벽 하부 미세 혈관벽 내 기저 기포(Micro-bubble) 발생.] [압력 쇼크로 인한 기포 수축 및 팽창 가속화.] [혈관벽 내막 균열율 급상승: 85%…… 92%……]

“안 돼…….”

해인의 무감각한 눈동자가 처음으로 가늘게 떨렸다.

선천적 복합 기형으로 인해 극도로 얇아져 있던 우심실 후벽의 기저 부위가, 전원 복구 시 발생한 미세한 유량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동맥벽 내부의 시한폭탄이었다.

파지직.

마치 아주 얇은 비닐이 찢어지는 듯한 불길한 소리가 해인의 고막을 스쳤다.

푸슛-!

다음 순간, 굳게 닫혀 있던 우심실 동맥벽의 아주 미세한 기공을 찢고, 붉은 혈액이 분수처럼 허공을 향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해인의 고글 전면에 붉은 핏방울이 점을 찍으며 흘러내렸다.

“활동성 출혈(Active bleeding)! 흡인기(Suction) 대요, 빨리!”

백지훈의 비명이 수술실을 가득 채웠다.

붉은 선혈이 무영등의 강렬한 백색광 아래에서 기괴할 정도로 선명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암흑을 뚫고 마침내 찾아온 빛의 세계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환아의 파멸을 예고하는 붉은 피의 장막이었다.

“석션! 더 깊게 밀어 넣어!”

어둠을 뚫고 터져 나온 무영등의 백색광 아래로 해인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떨어졌다.

시야를 가로막는 붉은 선혈을 걷어내기 위해 흡인기 팁이 준우의 흉강 깊숙한 곳으로 처박혔다. 끄르륵거리는 탁한 흡입음과 함께 붉은 액체가 관을 타고 빠르게 빨려 들어갔지만, 출혈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우심실 후벽의 찢어진 기공은 마치 압력솥의 밸브가 터진 것처럼 끊임없이 피를 뿜어냈다.

비장막처럼 얇아진 영아의 심근 조직은 압력 변화에 극도로 취약했다. 정전과 복구 과정에서 발생한 체외순환기의 미세한 서지(Surge) 현상이 결국 가장 약한 고리를 터뜨린 것이다.

“혈압 계속 떨어집니다! 평균 동맥압(MAP) 35 이하로 붕괴 중!”

마취과 의사의 다급한 외침에 백지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의 손끝이 핀셋을 쥔 채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 이 정도로 약해진 조직은 바늘을 대는 순간 그대로 찢어집니다. 타이(Tie)를 할 수가 없어요……!”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현재 준우의 우심실 벽은 물에 젖은 페이퍼 타월이나 다름없었다. 여기에 일반적인 봉합침을 밀어 넣었다가는 조직이 과도한 인장력을 견디지 못하고 도려내지듯 뜯겨 나가며 출혈공만 더 넓힐 터였다.

하지만 해인의 눈동자는 정밀 기계의 렌즈처럼 고요했다. 그녀의 시야 속에서 메디컬 포인트를 흡수한 시스템이 무서운 속도로 최적의 봉합 경로를 연산해 내고 있었다.

[특수 모듈 '미세 혈관 수축률 뷰어' 가동.] [파열부 주변 심근 조직의 국소 탄성도 분석 완료.] [추천 봉합 방식: 테플론 펠트(Teflon felt)를 덧댄 수평 매트리스 봉합(Horizontal Mattress Suture with Pledget).] [오차 허용 범위: 0.2mm.]

“테플론 펠트 가져와요. 프롤린 5-0(Prolene 5-0) 더블 암(Double-armed) 바늘로.”

해인의 손이 허공을 향해 뻗었다.

“선생님, 펠트를 대도 조직이 버틸 수 있을까요?”

“질문할 시간에 펠트 자르세요. 가로 3밀리미터, 세로 2밀리미터로 두 개.”

해인의 단호한 지시에 간호사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백색의 인공 합성 물질인 테플론 펠트 조각이 해인의 핀셋 끝에 물렸다. 이것은 연약한 혈관이나 심장 조직을 봉합할 때, 실이 조직을 파고들어 찢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어주는 일종의 와셔(Washer) 역할을 한다.

해인은 펠트 조각을 파열부 양옆에 밀착시켰다.

두 갈래로 갈라진 굽은 바늘이 붉은 심장 근육을 파고들었다. 미세 혈관 수축률 뷰어가 제시하는 푸른색 안전 경로를 따라, 해인의 손가락이 0.1밀리미터 단위로 미끄러졌다. 바늘이 펠트를 통과하고, 연약한 심근의 외막을 스치듯 지나 반대편 펠트로 빠져나왔다.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수술실 안의 누구도 숨을 쉬지 못했다. 오직 흡인기가 피를 빨아들이는 기계음만이 정적을 메웠다.

해인이 실끝을 잡아당겼다.

완만하게 조여드는 실을 따라 테플론 펠트가 준우의 심장 벽을 부드럽게 압박했다. 뿜어져 나오던 선혈의 기세가 눈에 띄게 줄어들더니, 이내 정지했다.

“타이(Tie).”

해인이 매듭을 짓고 실을 잘라내자, 마침내 붉은 분수가 완전히 멎었다.

“출혈 잡혔습니다! 혈압 반등합니다, MAP 55 돌입!”

백지훈이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참관실 유리창 너머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강민우 PD 역시 꽉 쥐었던 주먹을 스르륵 풀었다. 메디캐스트의 실시간 채팅창은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였다.

- 와, 저 상황에서 펠트 봉합을 저 속도로 해낸다고? - 손놀림이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진짜 신의 손이네. - 정전으로 죽이려 해도 살려내는 한해인 의사 클래스 보소 ㄷㄷㄷ

그러나 해인의 표정은 전혀 밝아지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준우의 흉강 깊숙한 곳, 그리고 모니터의 수치들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상하군.’

출혈은 완벽히 제어되었고 체외순환기의 흐름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환아의 전신 관류압과 산소 포화도가 비정상적인 곡선을 그리며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기하학적 대칭을 이루어야 할 생체 신호의 균형이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삐비비비빅-! 삐비비비빅-!

체외순환기 옆에 위치한 마취기 모니터에서 날카로운 고주파 경고음이 터져 나왔다.

“어? 이, 이게 뭐야? 기도 내압(Airway Pressure)이 급격히 치솟습니다! 15에서 순식간에 40 돌입!”

마취과 의사의 목소리에 서린 공포는 이전의 정전 때보다 훨씬 짙었다.

“기관지 경련(Bronchospasm)입니다! 산소 포화도(SpO2) 떨어집니다, 88%…… 82%……!”

“뭐라고요? 기도 삽관 튜브가 꺾인 거 아닙니까?”

백지훈이 다급하게 환아의 머리맡을 보았으나, 튜브는 완벽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환아의 입술과 전신 피부가 순식간에 푸르스름한 빛을 띠며 변해갔다. 심각한 청색증이었다. 게다가 흉강 내부의 폐 조직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르며 수술 시야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전신 두드러기 발생! 혈관부종(Angioedema)입니다! 아나필락시스 쇼크(Anaphylactic Shock)예요!”

마취과 의사의 비명에 해인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경종이 울렸다.

아나필락시스. 특정 물질에 대한 극렬한 알레르기 면역 반응으로, 기도가 폐쇄되고 혈관이 일시에 확장되어 심정지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급성 쇼크였다.

‘아직 아무런 약물도 투여하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생각이 거기에 미친 순간, 해인의 뇌리에 박혀 있던 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가 번쩍이며 수천 페이지의 차트를 초고속으로 훑어 내렸다.

과거 서은혜 부교수가 집도한 환아들의 미공개 차트 파일. 그 서류더미 깊숙한 곳에서 해인이 일회성 스캔으로 적재해 두었던 이서진의 과거 수지 분석 데이터가 붉은색 활자로 떠올랐다.

[환아 이서진: 특정 페니실린계(Piperacillin/Tazobactam) 항생제에 대한 치명적인 Type I 과민반응 이력 존재.] [특이사항: 서은혜 부교수의 과거 차트 작성 시 해당 알레르기 이력 고의 누락 및 은폐 정황 확인.]

머릿속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해인은 고개를 번쩍 들어 마취과 의사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마취과. 방금 무슨 약 투여했습니까.”

“정, 정전 중에 수술방 오염 가능성이 있어서…… 예방적 항생제로 2세대 세팔로스포린계나 페니실린계 쓰라고 지침에 되어 있어서…… 피페라실린을 방금 라인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누구 마음대로!”

해인의 음성이 수술실을 진동시켰다. 감정이 거세된 그녀의 목소리에 난생처음으로 극도의 서늘함이 실려 있었다.

“환아는 페니실린계 항생제에 극도의 아나필락시스 병력이 있습니다! 차트에 누락되어 있던 은폐 기록이라고!”

“예, 예?! 그, 그럴 리가…… 공식 EMR 차트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마취과 의사의 손이 사정없이 떨렸다. 이미 약물은 준우의 미세한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나간 상태였다.

준우의 심장 박동이 불규칙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모니터의 심전도 곡선이 가파른 침상파를 그리며 무너져 내렸다. 이대로 두면 60초 이내에 후두 부종으로 인한 완전 질식과 심정지가 올 터였다.

“에, 에피네프린 투여하겠습니다! 0.1밀리그램 아이브이(IV)로……!”

마취과 의사가 에피네프린 앰플을 꺾으려 하자, 해인이 그의 손을 가로막았다.

“멈춰요!”

“선생님! 아나필락시스 쇼크에는 에피네프린이 국룰입니다! 안 쓰면 애 죽어요!”

“안 돼.”

해인의 시선이 방금 자신이 테플론 펠트로 겨우 기워놓은 우심실 후벽의 봉합부로 향했다.

에피네프린은 강력한 심근 수축제이자 혈관 수축제다. 이 약물이 들어가는 순간, 준우의 심장은 미친 듯이 박동하며 내부 압력을 터무니없이 높일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방금 젖은 휴지 같은 심근에 겨우 매달아 놓은 테플론 펠트 봉합선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통째로 뜯겨 나가게 된다. 우심실 벽이 완전히 파열되는 순간, 그것은 즉사였다.

“에피네프린을 쓰면 환자의 심장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터집니다.”

해인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에피네프린을 쓰지 않으면…… 기도가 막혀서 질식사합니다!”

백지훈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절대적인 모순. 에피네프린을 투여해 폐를 살리면 심장이 터져 죽고,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 투여를 보류하면 폐가 막혀 죽는다.

서은혜가 과거에 저지른 추악한 의료 과실의 은폐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부메랑이 되어 준우의 목숨을 단두대 위에 올려놓은 것이었다.

[경고: 환아의 산소 포화도 70% 돌입.] [심박수 급락 중(Bradycardia). 심정지 임박.] [시스템 경고: 수술 실패 시 징벌적 패널티 '영구 전신 운동 신경 마비'가 즉시 집행됩니다.]

해인의 시야가 붉은색 경고등으로 완벽하게 물들었다.

호흡이 다시 가빠져 오기 시작했다. 심장을 살릴 것인가, 폐를 살릴 것인가. 전 세계 수십만 명의 시청자들이 숨을 죽인 채, 붉은 피와 경고음으로 가득 찬 수술실의 한해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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