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백지훈의 파르르 떨리는 손끝이 마침내 녹색 소독포의 끝자락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어시스트 자리, 비워두지 마십시오. 끝까지 가겠습니다.”

비장함마저 감도는 백지훈의 목소리가 밀폐된 수술실의 공기를 미세하게 흔들었다. 한해인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저 메스를 쥔 손가락 끝에 가벼운 압력을 더했을 뿐이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어시스턴트의 감상적인 결의가 아니라, 칼날이 닿을 환부의 기하학적 정확도뿐이었다.

같은 시각, 소아외과 제3수술실의 붉은색 ‘수술 중(ON AIR)’ 표시등이 켜짐과 동시에, 병원 지하 2층의 어두운 전산실 구석에서는 차가운 기계음이 울리고 있었다.

“‘제우스-9’ 이식률 85% 돌파. 대상 IP, 제3수술실 제어 허브로 특정 완료.”

검은 방전복을 입은 이사장 직속 특무 기술팀의 사내가 모니터의 푸른 빛을 받으며 건조하게 중얼거렸다. 자판을 두드리는 그의 손등 위로 퍼런 힘줄이 돋아났다. 병원의 심장부를 해킹해 특정 수술실의 숨통을 끊어놓으려는 음모가 소리 없이 기동하고 있었다. 제3수술실 내부의 네트워크와 전력 제어권을 완전히 장악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5분이었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메디캐스트의 중계 화면 위로 전 세계의 시청자들이 파도처럼 밀려들기 시작했다.

[실시간 접속자 수: 180,000명 돌파] [대기열 발생 중……]

“메스.”

해인의 나직한 명령과 함께, 서진이의 가슴팍 위로 날카로운 메스 끝이 닿았다.

서진이의 흉부는 이미 과거 서은혜가 집도했던 1차 수술의 실패 흔적으로 엉망이었다. 붉게 융기된 켈로이드 흉터 아래의 조직들은 제멋대로 엉겨 붙어 정상적인 해부학적 구조를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

사각사각.

피부와 피하 조직이 갈라지며 굳어버린 유착 조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껍고 딱딱하게 변성된 흉막이 시야를 가로막은 순간, 해인의 망막 위로 파란색 시스템 인터페이스가 격렬하게 요동치며 확장되었다.

[알림: 실시간 몰입도 급증으로 인해 ‘라이브 서저리 대장 시스템’의 정밀도가 2단계 격상됩니다.] [신규 기능 활성화: ‘마이크론 단위 조직 괴사 깊이 가이드(Micron Necrosis Depth Gauge)’ 가동.]

해인의 시야를 덮은 3D 가상 조영 화면 위로, 서진이의 가슴속 유착된 조직들이 미세한 격자무늬로 쪼개지며 실시간 게이지가 표시되기 시작했다.

‘940㎛…… 1,200㎛…… 1,500㎛…….’

붉은색으로 갈수록 완전히 괴사해 쓸모없어진 조직이었고, 푸른색으로 갈수록 살려야 할 미세 혈관이 살아 숨 쉬는 경계선이었다. 일반적인 외과의의 육안으로는 도저히 구별할 수 없는, 분홍빛과 회색빛의 모호한 경계가 해인의 눈앞에는 마이크론 단위의 숫자로 명확하게 분리되어 가이드라인을 그렸다.

“보비(Bovie).”

해인이 손을 내밀자 기계적인 속도로 고주파 전류 소작기가 쥐어졌다.

해인은 망막에 떠오른 푸른색 경계선을 따라 보비의 끝을 밀어 넣었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유착된 흉막이 지퍼를 열듯 갈라졌다. 단 한 방울의 출혈도 없었다. 괴사한 흉막 조직만을 정확하게 타격해 도려내고, 그 바로 아래 숨어 있던 미세한 동맥들을 보존해 나가는 신기에 가까운 손놀림이었다.

“……말도 안 돼.”

소독포를 잡고 있던 백지훈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터져 나왔다.

보통 재수술의 유착 박리는 칼을 대는 족족 시야를 가리는 피바다가 되기 마련이다. 지혈하고, 닦아내고, 다시 박리하는 지루한 과정이 반복되어야 했다. 하지만 한해인의 수술대 위에는 피를 닦아낼 거즈조차 필요 없었다. 그녀의 손끝이 지나간 자리에는 오직 깨끗하게 분리된 해부학적 구조물만이 남을 뿐이었다.

“지훈 선생, 멍하니 서 있으라고 그 자리에 세워둔 거 아닙니다. 3시 방향 흉막 고정해요. 수술 시야 확보가 최우선입니다.”

해인의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지훈의 정신을 번쩍 깨웠다.

“예, 예! 3시 방향, 리트랙터 고정합니다!”

지훈은 급히 기구를 잡아채며 유착된 갈비뼈 사이를 벌렸다. 하지만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혹시라도 자신이 무리한 힘을 주어 환아의 얇은 뼈를 부러뜨리거나 내부 장기를 찌르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방울져 흘러내려 수술용 마스크를 적셨다.

바로 그때, 수술실 한구석에 설치된 마이크를 통해 강민우 PD의 여유롭고도 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 시청자 여러분. 지금 우리 백지훈 선생님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보이십니까? 거의 올림픽 결승전을 앞둔 투수 수준의 긴장감입니다.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백 선생님의 손끝은 지금 아주 훌륭하게 고정되어 있습니다. 어제 마신 카페인의 힘인지, 아니면 의사로서의 마지막 양심의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긴장감이 팽팽하던 수술실에 아주 미소한 숨구멍이 뚫리는 순간이었다.

실시간 중계창에는 강민우의 위트 있는 내레이션에 호응하는 댓글들이 폭발적으로 올라왔다.

[ㅋㅋㅋ PD님 팩폭 지렸다] [백지훈 펠로우 화이팅! 쫄지 마라!] [한해인 교수 손놀림 보느라 숨도 못 쉬겠음. 저게 인간의 손가락인가?]

강민우는 실시간으로 중계 화면의 앵글을 조율하며, 백지훈의 헌신적인 보조 모습을 클로즈업했다. 이는 단순한 예능적 연출이 아니었다. 병원 이사회의 압박 속에서도 용기를 낸 젊은 의사를 대중의 여론이라는 거대한 방패로 보호하려는 치밀한 계산이었다.

대중의 열띤 응원과 긍정적인 에너지가 화면을 타고 수술실로 전달되는 듯했다. 백지훈은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심호흡을 했다. 신기하게도 손끝의 떨림이 멈추기 시작했다.

“시야, 확보되었습니다. 다음 진행하십시오.”

지훈의 목소리에 더 이상 망설임은 없었다. 해인은 그의 변화를 눈치챘지만, 아무런 칭찬도 하지 않았다. 그저 더 빠른 속도로 가위를 움직여 엉망으로 뒤엉킨 흉벽 내부의 박리를 이어 나갔다.

“가위(Scissors).”

서각, 서각.

해인의 고속 처치 속도에 맞추어 지훈은 기계적으로 석션 팁을 움직여 시야를 깨끗하게 유지했다. 두 사람의 호흡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하자, 수술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라졌다.

그와 동시에, 전 세계의 수많은 의료진이 접속해 있는 메디캐스트의 전문의 전용 채팅창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 저 흉막 유착 상태를 보십시오. 저건 1차 수술 때 대동맥 주변부를 제대로 박리하지 않고 대충 봉합해서 생긴 전형적인 섬유화 현상입니다. - 그렇군요. 흉벽 안쪽에 실크 봉합사 잔해물들이 그대로 뒹굴고 있네요? 어떤 얼간이가 4살짜리 아이 심장 수술을 이따위로 마무리한 겁니까? - 이 병원 소아외과 부교수 서은혜가 과거에 집도한 케이스라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 세상에, 저건 의료 과실을 넘어 방치에 가깝습니다. 한해인 교수가 지금 그 똥을 다 치우고 있는 거네요.

인터넷을 통해 서진이의 과거 진료 기록과 1차 수술의 문제점들이 실시간으로 교차 검증되기 시작했다.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서은혜의 과거 실책이, 한해인의 완벽한 칼놀림과 대비되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었다.

[알림: 대중의 몰입도가 임계치를 돌파하였습니다. 사회적 정의 구현 연산 보너스 작동.] [후원 메디컬 포인트 2,000 SP 획득! (보유 포인트: 21,700 SP)] [시스템 특수 시각 모듈 가동: ‘다혈관 기형 실시간 지혈 가스 시뮬레이션(Multi-vessel Hemostasis Gas Simulation)’이 활성화됩니다.]

시야 전반에 노란색 가스 형태의 가상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서진이의 심장 주변에 기형적으로 얽혀 있는 수십 개의 미세 측부 순환 혈관(Collateral Vessel)들이 어느 경로로 피를 뿜어내고 있는지, 압력과 방향이 화살표와 유체의 흐름으로 완벽하게 예측되어 나타났다.

이 보조 시스템이 없다면, 대동맥을 절개하는 순간 예상치 못한 부수 혈관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로 인해 수술 시야는 순식간에 붉은 지옥으로 변했을 터였다.

“지훈 선생, 5시 방향의 저 미세 혈관 보여요?”

“……예? 아, 예. 아주 가늘어서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만.”

“저 혈관의 내압이 정상의 3배입니다. 건드리는 순간 터져서 상행 대동맥 후방을 적실 겁니다. 6-0 프롤렌(Prolene) 준비하세요. 내가 클램프(Clamp)를 잡는 동시에 결찰합니다.”

“예!”

해인이 번개처럼 포셉(Forceps)으로 가상 가스 시뮬레이션이 가리킨 핵심 혈관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지훈의 손에 쥐어진 실이 눈이 따라가지 못할 속도로 움직였다. 해인의 지시에 따라 정확하게 혈관의 기저부를 묶어내는 지훈의 손길 또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해져 있었다.

싹둑.

실 끝이 잘려 나가는 순간, 지켜보던 국내 유수의 유명 대학 흉부외과 교수들이 채팅창에 경악과 찬탄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 서울대병원 소아외과 김 교수: 믿을 수 없군. 저 깊숙하고 좁은 시야에서 단 한 번의 시도도 없이 정확한 부수 혈관을 찾아내 묶는다고? 저건 해부학적 구조를 통째로 외우고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 박 교수: 바느질 속도와 인장 강도가 예술의 경지입니다. 미세 혈관의 내막을 전혀 손상하지 않고 완벽하게 문합했어요. 저 한해인이라는 젊은 의사, 대체 정체가 뭡니까? - 한국외대 메디컬 센터 최 교수: 저 유착을 저렇게 깨끗하게 박리하고 들어간다면 수술 후 합병증 유발률은 제로에 가까워집니다. 이건 라이브가 아니라 하나의 완벽한 마스터 클래스 강좌군요.

자신을 매장하기 위해 서은혜와 차현태가 파놓았던 고위험군 환아라는 덫이, 오히려 한해인의 천재성을 전 세계에 입증하는 가장 화려한 무대로 변모한 순간이었다.

해인은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없이, 오직 기계적인 냉정함만을 유지한 채 수술의 가장 핵심적인 단계로 진입했다.

“이제 폐동맥과 대동맥의 복잡 절개부에 들어갑니다. 체외순환기 온도를 28도로 낮추고, 유량 조절하세요.”

“체외순환기, 하이포서미아(Hypothermia) 유도합니다.”

백지훈이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이제부터는 1밀리미터의 오차로도 환아의 심장을 영원히 멈추게 만들 수 있는 극도의 고난도 구간이었다. 해인의 시야 속에서 3D 시뮬레이션 가이드가 더욱 정밀하게 붉은색 절개 예정선을 그렸다.

해인의 오른손에 쥐어진 메스가 서진이의 고동치는 심장 박동 사이로 천천히, 그리고 흔들림 없이 내려앉았다.

바로 그 찰나였다.

탁!

수술실 내부를 환하게 비추고 있던 무영등과 수많은 모니터의 푸른 불빛들이, 마치 누군가 강제로 숨통을 끊어버린 것처럼 일제히 꺼져버렸다.

이어서 들려온 것은 기계들의 전원이 꺼지며 발생하는 낮고 불길한 전자음이었다.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

환아의 생명을 유지하던 체외순환기와 인공호흡기의 메인 전원이 차단되며 수술실은 순식간에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수술실 구석에 설치되어 메디캐스트로 라이브 송출을 담당하던 메인 무선 공유기의 전원 램프 역시 차갑게 죽어버렸다.

“……!”

지독한 어둠과 정적 속에서, 백지훈의 거친 숨소리만이 허공을 맴돌았다.

병원 중앙 전산실의 전력 제어반 앞에서, 검은 방전복을 입은 사내가 대형 긴급 휴전 차단 레버를 밑바닥까지 내린 채 수화기를 귀에 대고 잔인하게 웃고 있었다.

“제3수술실의 전원 및 백업 네트워크 송출망 차단 완료했습니다, 서 교수님.”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