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이튿날 아침, 이사장실의 어두운 독기가 병원 전체의 미세한 공기 흐름을 타고 소아외과 외래 진료실까지 스며드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차현태 이사장의 밀명을 받은 서은혜는 전날 밤의 패배를 설욕하려는 듯, 이른 아침부터 한해인의 연구실 문을 거칠게 밀어젖혔다.

탁.

두꺼운 청색 임상 서류철이 책상 위로 떨어지며 둔탁한 마찰음을 냈다. 서류철 표지에는 ‘강서진(남/4세)’이라는 이름과 함께 ‘집도 불가능(Inoperable)’을 뜻하는 붉은색 낙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한 교수, 아니 이제는 글로벌 스타라고 불러 드려야 하나?”

서은혜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그녀의 눈빛은 뱀이 먹이를 노릴 때처럼 차갑고 끈적였다.

“어제 그 대단한 쇼로 전 세계 시청자들의 눈을 멀게 했으니, 이제 진짜 의사로서 실력을 증명해 봐야지 않겠어? 여기 소아 심장 이식 대기자 중에서 가장 ‘특별한’ 환자가 하나 있어. 흉부외과와 소아외과를 막론하고 국내 모든 대학병원에서 수술방 문조차 열어주지 않은 케이스야.”

해인은 책상 위에 놓인 서류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감정이 거세된 그녀의 시선은 서은혜의 조롱 섞인 표정이 아니라, 종이 위로 삐져나온 거친 글씨들의 조합으로 향했다.

“강서진. 단일 심실증(Single Ventricle) 및 삼첨판 폐쇄증(Tricuspid Atresia). 1차 단락술 이후 대동맥 혈류 부전으로 인한 장간막 허혈(Mesenteric Ischemia) 발생. 현재 횡격막 하부 장기 전체에 만성 조직 괴사 진행 중.”

해인의 무감각한 목소리가 건조하게 수술실 명세를 읽어 내려갔다.

“조직 괴사가 이 정도로 진행됐다면 혈관들이 이미 썩은 낙엽처럼 바스러질 텐데. 수술대 위에 올리는 순간 대량 출혈로 테이블 데스(Table Death)가 확실한 환자군요.”

“어머, 잘 아네.”

서은혜가 한 걸음 더 다가와 책상을 두 손으로 짚었다. 그녀의 숨결에서 가식적인 웃음 냄새가 났다.

“수술하는 순간 의사가 환자를 죽였다는 오명을 쓰기 딱 좋은 상태지. 하지만 한 교수는 ‘신의 손’이잖아? 라이브 방송으로 기적을 행하는 분이시니, 이 정도 고난도 복합 기형 소아쯤은 가볍게 살려낼 수 있겠지? 만약 거절한다면…… 그동안 쌓아 올린 그 거창한 ‘투명성’이니 ‘아크 센터’니 하는 비전들이 전부 값싼 위선이었다는 걸 대중이 알게 되겠지만 말이야.”

서은혜의 비아냥은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공간을 찔렀다. 그녀는 해인이 이 무리한 제안을 거절하면 ‘겁쟁이 위선자’로 몰아세우고, 수락하면 수술실에서 합법적으로 환자를 죽이게 만들 심산이었다. 차현태 이사장이 설계한 잔인한 덫의 톱니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해인의 눈동자에는 그 어떤 두려움이나 분노의 동요도 일지 않았다. 그녀에게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오직 망가진 인체의 기하학적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강박적인 퍼즐 해결 본능만이 뇌리를 지배할 뿐이었다.

[시스템 가동: 대상 ‘강서진’의 임상 데이터 분석을 시작합니다.] [보유 메디컬 포인트: 19,700 SP] [특수 시각 모듈 ‘미세 혈관 수축률 뷰어’ 활성화 가능 상태]

시야 안에서 푸른색 시스템 인터페이스가 반짝이며 강서진의 전신 혈관망을 3차원으로 구축하기 시작했다. 괴사된 장간막 주변의 모세혈관들이 붉은색 노이즈로 깜빡였다.

해인은 서은혜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서류철을 정갈하게 덮었다.

“수락하겠습니다.”

“……뭐?”

서은혜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이렇게 쉽게, 아무런 조건도 없이 덫으로 뛰어들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즉석에서 접수하겠다는 뜻입니다. 수술 일정은 내일 오전 8시로 잡죠. 당연히 전 과정은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전 세계에 송출됩니다.”

해인의 목소리는 평온하다 못해 서늘하기까지 했다.

“준비나 잘해 두세요, 서 박사님. 수술방에서 도망치지 않도록.”

“건방진 년…… 어디 끝까지 그 잘난 주둥이를 놀려봐라.”

서은혜는 쏘아붙이듯 말을 내뱉고는 신경질적으로 구두 굽 소리를 내며 연구실을 빠져나갔다.

문이 닫히는 순간, 해인은 책상 구석에 놓여 있던 병원 재정 및 수지 타산 보고서 파일 뭉치로 시선을 돌렸다. 서은혜가 서류철을 내려놓을 때 그 틈새에 끼어들어 간 낡은 인쇄물 한 장이 해인의 시야에 포착되었다.

스스슥.

해인의 손끝이 움직였다. 병원 기획처의 예산 삭감 기획서와 수지 분석 차트 더미를 들추자, 그 아래에 꼬깃꼬깃 접힌 노란색 주의 전단지가 숨겨져 있었다.

[시스템 정밀 스캔 가동] [문서 분류: 임상 안전 누락 처방 기록] [환자명: 강서진 (4세)] [내용: 특정 페니실린계 항생제 투여 시 급성 아나필락시스 쇼크 반응 이력 존재. 1차 수술 당시 서은혜 집도의의 과오로 인한 쇼크 발생 사실을 덮기 위해 해당 알레르기 판독 처방 정보 및 EMR 차트를 고의로 삭제 및 누락 처리함.]

눈앞의 AR 스크린에 붉은 경고등이 점멸했다.

서은혜 이 여자는 과거 자신의 수술 실패와 괴사 진행 방치 과오를 숨기기 위해, 환자의 목숨줄과도 같은 심각한 약물 알레르기 정보마저 차트에서 지워버린 것이었다. 만약 이 사실을 모른 채 수술 중 일반적인 페니실린계 항생제를 투입했다면, 환아는 수술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즉사했을 터였다.

‘과거의 과실을 숨기기 위해 환자의 안전장치를 해체했다.’

해인의 무감각한 눈빛이 더욱 깊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이 스캔 데이터를 자신의 시스템 데이터베이스 깊숙한 곳에 미세 적재(Data Loading)했다. 이 더러운 카르텔의 비밀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서은혜의 목을 칠 단도가 될 것이었다.

***

같은 시각, 소아외과 준비실.

“교수님! 정말 정신이 나가신 겁니까? 이 수술은 무덤입니다! 서은혜 박사가 파놓은 구덩이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시겠다뇨!”

펠로우 백지훈이 사색이 된 얼굴로 해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손은 눈에 띄게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서진이 상태는 저도 압니다. 1차 수술 실패 이후에 이미 장기가 다 썩어 들어가서 안쪽은 그야말로 초토화 상태라고요. 여기서 수술 중에 애가 죽기라도 하면, 이사장 측에서 의료 과실과 살인 혐의를 씌워 교수님 의사 면허를 박탈할 겁니다! 저도…… 저도 이 수술에 어시스트로 들어가면 이 병원에서 완전히 매수당해 매장당하고 끝장납니다!”

백지훈의 목소리에는 극도의 공포와 자기방어 기제가 가득 차 있었다. 병원 기득권 카르텔의 무시무시한 보복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기에, 이번 수술만큼은 피하고 싶어 온몸으로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해인은 자리를 잡고 앉아 수술 장비들의 멸균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동작에는 단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백 선생님.”

해인의 나직하고 건조한 목소리가 준비실의 무거운 공기를 갈랐다.

“의사 면허가 그렇게 무겁습니까?”

“예? 그, 그야 당연히 제 평생의 노력이고……”

“당신의 면허증 뒤편에 숨겨진, 자식을 잃고 피눈물을 흘리는 부모들의 얼굴을 본 적이 있습니까?”

해인이 고개를 돌려 지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동정이나 슬픔 따위의 인간적인 감정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맹렬하고 잔혹한 진실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서진이의 장기가 썩어 들어간 건 자연적인 재해가 아닙니다. 서 박사를 비롯한 기득권들이 자신들의 수술 실패 기록을 감추기 위해 치료를 지연시키고 방치한 결과물이죠. 의사라는 인간들이 자신들의 밥그릇과 면허를 지키기 위해 네 살짜리 아이를 산 채로 썩어가게 둔 겁니다.”

해인이 한 걸음 다가서자, 지훈은 그녀의 압도적인 기세에 눌려 숨을 들이켰다.

“나는 감정을 느끼지 못합니다. 당신이 얼마나 무서운지, 병원 이사회가 얼마나 대단한 권력을 쥐고 있는지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내 눈에는 오직 망가진 채 비명을 지르고 있는 퍼즐 조각만 보일 뿐입니다.”

해인의 손가락이 지훈의 의사 가운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툭툭 쳤다.

“의사 면허라는 얄팍한 방패 뒤에 숨어서 아이의 죽음을 외면하는 비겁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내 뒤에서 칼을 쥐고 진짜 의사가 될 것인지 선택하세요. 도망치고 싶다면 지금 나가도 좋습니다. 어시스트 없이 혼자 집도하는 건 내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요.”

정적.

준비실 안의 공기가 얼어붙은 듯 무겁게 가라앉았다. 백지훈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그의 뇌리 속에서 과거 권력의 압박에 굴복해 환자를 포기하려 했던 자신의 유약한 모습과, 이준우 환아의 수술을 기적처럼 성공시키며 당당하게 서 있던 한해인의 뒷모습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더 이상…… 도망치며 살고 싶지 않아.’

지훈의 떨리던 주먹이 서서히 꽉 쥐어졌다. 그의 눈에 서려 있던 공포가 점차 단단한 결의로 변해갔다.

“……소독포 잡겠습니다.”

지훈이 갈라진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어시스트 자리, 비워두지 마십시오. 끝까지 가겠습니다.”

해인은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입가에 아주 미세한, 기계적인 만족의 곡선이 그려졌다.

***

다음 날 오전 8시.

소아외과 제3수술실의 붉은색 ‘수술 중(ON AIR)’ 표시등과 함께, 글로벌 플랫폼 ‘메디캐스트’의 생중계 스트리밍 채널이 동시에 활성화되었다.

[실시간 접속자 수: 120,000명 돌파] [실시간 후원 메디컬 포인트 유입 중……]

“라이브 시작합니다.”

강민우 PD의 긴장된 목소리가 인터컴을 통해 해인의 귀에 꽂혔다.

해인은 수술대 위에 누운 네 살 서진이의 가슴팍을 내려다보았다. 이미 한 차례 잘못된 수술로 인해 흉터가 붉게 융기된 상태였고, 청진기로 들려오는 심음은 불규칙하고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시스템 경고: 환아의 심장 및 장간막 주변 미세 혈관 수축률 94% 감소. 조직 괴사율 42% 돌파.] [경고: 집도 중 혈관 파열 시 생존율 0.6% 미만.]

시야에 붉은색 경고 박스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해인의 손끝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정확하게 메스를 쥐고 있었다.

“메스.”

해인의 첫 마디와 함께, 천재 외과의의 불꽃 같은 정공법 돌파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바로 그 시각.

대학병원 지하 2층에 위치한 중앙 전산실의 어두운 복도 끝.

검은색 방전복을 입은 사내 세 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메인 서버 랙 앞에 멈춰 섰다. 그들의 가슴팍에는 이사장 직속 특무 기술팀의 표식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팀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무전기에 대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수술방 내부 망 제어를 위한 인공지능 해킹 프로그램 ‘제우스-9’의 전송을 시작합니다. 신호 발송과 동시에 소아외과 제3수술실의 전력 및 네트워크 컨트롤망을 100% 장악하겠습니다.”

수술실 내부의 사투가 시작되는 그 찰나, 어둠 속에서 병원의 숨통을 끊어놓을 거대한 음모의 촉수가 수술실 전원 장치를 향해 소리 없이 뻗어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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