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이사장 차현태 회장님의 직속 명령입니다. 무단 수술방 점거 및 재단 자산 침해, 그리고 불법 라이브 방송 송출로 인한 병원 명예훼손 혐의로 이 시간부로 한해인 선생의 의사 자격을 잠정 정지하며, 소아외과 전문의 직위 해제를 처분합니다. 이 처분서는 즉시 효력이 발생합니다.”
붉은 인장이 찍힌 종이가 해인의 무감정한 눈동자에 차갑게 반사되었다.
법무팀장 성낙훈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날카롭고 단호했다. 그의 뒤를 지키고 선 두 명의 법무팀 대리들은 한 손을 양복 안주머니에 넣은 채, 해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듯 노려보고 있었다. 수술실 입구의 차가운 백색 형광등이 그들의 잘 닦인 구두 끝에서 번뜩였다.
해인은 걸음을 멈추었다. 피가 묻은 녹색 수술복 소매 끝에서 땀방울 하나가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생후 3개월 환아의 쪼그라든 상행 대동맥을 0.5밀리미터 단위로 문합하느라 극도로 긴장했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에는 동요가 없었다. 슬픔도, 분노도, 억울함도 존재하지 않는 감정적 실인증 환자의 검은 눈동자는 그저 성낙훈의 얼굴을 기계적으로 스캔할 뿐이었다.
“의사 자격 정지라.”
해인의 건조한 입술이 열렸다. 목소리에는 고저가 없었다. 마치 남의 나라 날씨를 읊는 듯한 어조였다.
“재단 이사회가 보건복지부의 권한을 대행하기로 법이라도 개정했습니까? 대학병원 면직 처분은 이사회 의결을 거쳐 총장이 집행하는 것이 사립학교법과 정관의 원칙일 텐데요. 직무 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서도 없이 이사장 직속 명령서 한 장으로 의사를 끌어내리겠다는 건, 법무팀장으로서 직무유기 아닙니까?”
성낙훈의 짙은 눈썹이 일그러졌다. 그는 서류 봉투를 해인의 가슴팍에 거의 밀어붙이듯 들이밀었다.
“말장난할 시간 없습니다, 한해인 선생. 당신이 방금 저지른 짓은 명백한 무단 의료행위이자 환자 무단 납치 및 감금입니다. 소아외과 과장 대행인 서은혜 교수의 전원 명령을 무시하고, 보호자의 전원 동의서가 작성된 환자를 수술실에 감금한 채 집도했으니까요. 형사 고소장과 의사 자격 가압류 신청서는 이미 중앙지검과 의협 법무실에 접수되었습니다. 순순히 보안요원들의 안내를 따르시죠.”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복도 뒤쪽에서 서은혜가 붉어진 얼굴을 하고 절뚝거리며 걸어왔다. 그녀의 눈에는 한해인을 향한 지독한 증오와 승리감이 뒤섞여 있었다.
“한해인, 네가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이 병원의 주인은 이사장님이야.” 서은혜가 숨을 헐떡이며 쏘아붙였다. “감히 내 수술실을 뺏고 날 모욕해? 넌 이제 의사 면허 취소는 물론이고, 평생 감옥에서 썩게 될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해인은 서은혜의 표정 변화를 관찰했다. 안면 근육의 비대칭적 수축, 과도한 호흡, 이완되지 않는 턱관절. 인간들이 ‘분노’와 ‘승리감’이라고 부르는 화학적 반응의 총합이었다. 해인에게는 그저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로 보일 뿐이었다.
해인은 천천히 손을 뻗어 성낙훈이 들고 있던 서류 봉투를 받아 쥐었다. 그리고 그것을 펼치지 않은 채, 자신의 수술복 주머니에서 얇은 태블릿 PC 한 대를 꺼냈다.
“내가 환자를 납치했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해인이 화면을 켜며 조용히 말했다. “수술 전, 환아 이준우의 모친인 김민아 씨로부터 직접 받은 ‘초응급 상황 시 한해인 교수에게 전권을 위임한다’는 수술 동의서 및 위임장 법적 공증본입니다. 수술실 진입 10분 전에 이미 병원 전산망에 등록해 두었죠. 확인 안 해보셨습니까?”
성낙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그건 서 교수님의 전원 명령이 떨어지기 전의 일이고……!”
“더 흥미로운 서류가 여기 있습니다.” 해인이 화면을 쓸어 넘겼다. 화면에는 거친 스캔본 문서 한 장이 떠올랐다. 문서 상단에는 ‘대한대학병원 소아과 병동 폐쇄 및 영리 메디컬 뷰티 센터 유치 기획안’이라는 제목과 함께, 우측 하단에 붉은색으로 ‘보안(CONFIDENTIAL)’이라는 직인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사장 차현태의 친필 서명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성낙훈의 얼굴에서 핏기가 순식간에 가셨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이…… 이게 어떻게 당신 손에…….”
“수술 대기 연기 서류더미 구석에 있더군요. 차현태 이사장님이 이면으로 승인한 비밀 약정서 실물입니다.” 해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차분했다. 마치 의학 논문의 통계 수치를 읽어 내려가는 것 같았다. “내용이 아주 구체적입니다. 소아과 병동과 소아 ICU를 폐쇄하는 대가로, 해외 자본이 합작 투자하는 뷰티 성형 센터를 설립한다. 그리고 그 배당금의 32%는 이사장님이 소유한 페이퍼 컴퍼니인 ‘HT 파트너스’의 계좌로 매월 송금된다. 이 약정서가 세상에 공개되면, 검찰이 무단 납치 혐의와 비자금 조성 및 업무상 배임 혐의 중 어느 쪽에 더 관심을 가질 것 같습니까, 법무팀장님?”
“너…… 너 미쳤어?! 그걸 어디서 훔친 거야!” 서은혜가 비명을 지르며 해인의 태블릿을 뺏으려 손을 뻗었다.
탁.
해인은 가볍게 몸을 돌려 서은혜의 손길을 피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오직 성낙훈만을 향하고 있었다. “훔친 게 아니라, 병원 원무과 공용 네트워크 드라이브에 임시 보관되어 있던 파일을 적법한 권한을 가진 스태프 의사로서 열람하고 백업한 것뿐입니다. 보안 등급 설정 오류더군요. 이사장님의 개인 비자금 통로를 지키기 위해, 생후 3개월짜리 심장 기형 환아를 억지로 퇴원시켜 죽이려 했다는 스토리는…… 언론과 대중이 아주 좋아할 만한 소재 아닙니까?”
성낙훈은 마른침을 삼켰다.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그의 실크 셔츠 깃을 적셨다. 이 문서가 밖으로 나가는 순간, 이사장 차현태뿐만 아니라 재단 전체가 공중분해 될 수 있었다. 법무팀의 유능한 변호사들이 10년을 달라붙어도 막을 수 없는 대형 게이트의 서막이었다.
그때, 복도 모퉁이 뒤에서 거친 발소리와 함께 강민우 PD가 나타났다. 그의 어깨에는 여전히 고성능 중계 카메라가 얹혀 있었고, 가슴팍에는 위성 송출용 비상 무선 라우터가 파란 불빛을 깜빡이며 작동하고 있었다.
“해인 쌤! 마이크 켜져 있습니다!” 강민우가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방금 하신 말씀, 아주 깨끗하게 송출됐습니다. 오디오 싱크 아주 완벽해요!”
“뭐…… 뭐라고?” 서은혜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다 못해 푸르스름하게 변했다.
“아, 소개가 늦었네요. 대한대학병원 법무팀장님.” 강민우가 카메라 렌즈를 성낙훈의 면전에 들이밀며 쾌활하게 말했다. “저희 비상 채널, 아직 안 죽었습니다. 병원 홍보실에서 원내 와이파이랑 LTE 기지국 차단하느라 고생 많으셨는데, 죄송하게도 전 세계 위성망 통신용 초정밀 비상 무선 라우터 칩셋을 쓰고 있어서요. 지금 실시간 시청자 수가 막 2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강민우는 태블릿 화면을 성낙훈과 서은혜에게 보여주었다. 방송 화면 상단에는 굵고 붉은 글씨의 배너가 실시간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실시간 생중계: 대한대학병원의 살인적 불법 고발 실황 — 아이를 살려낸 천재 외과의를 현행범으로 체포하려는 이사회의 음모와 비자금 비밀 약정서 폭로]
채팅창은 그야말로 폭발 직전이었다.
- 저 쓰레기 병원 어디냐? 대한대학병원 맞지? - 와, 진짜 사람 살린 의사를 감옥에 보내겠다고 저러고 있네. - 이사장 비자금? 소아과 없애고 성형외과 차려서 돈 벌려고 애를 죽이려 했다고? - 당장 불매운동 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뭐 하냐? 저 병원 허가 취소해라! - 다들 병원 콜센터로 전화 돌립시다! 저것들 일 못 하게 만들어야 함!
“자, 여러분!” 강민우가 카메라 너머의 시청자들을 향해 선동하듯 소리쳤다. “대한대학병원 대표 번호는 1588-XXXX입니다. 소아외과를 없애고 아이들의 목숨을 돈과 바꾼 이 불법적인 카르텔에 우리의 분노를 보여줍시다! 전화를 걸어 항의해 주십시오!”
그 선언이 도화선이 되었다.
에에엥—! 에에엥—!
성낙훈의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복도 벽면에 설치된 행정 안내용 전화기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울부짖기 시작했다.
비명 같은 벨 소리가 차가운 복도 정적을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팀장님! 제 폰도 그렇고 병원 메인 콜센터가 지금……!” 뒤에 서 있던 법무팀 대리가 사색이 되어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을 성낙훈에게 보여주었다. 수십, 수백 개의 발신 번호가 1초 간격으로 갱신되며 화면을 도배하고 있었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저 멀리 원무과 접수처와 홍보실 방향에서도 수십 대의 전화기가 동시에 울려 대는 소리가 메아리쳐 왔다. 20만 명의 시청자 중 단 5%만 전화를 걸었어도 1만 통의 동시 인입이다. 일반적인 대학병원 교환 설비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초과 부하(DDoS) 상태였다.
“여보세요? 어, 어, 홍보실장님? 예? 뭐라고요? 대표 전화망이 마비돼서 예약실이랑 응급실 접수 전화까지 다 끊겼다고요?!” 성낙훈은 비명을 지르듯 전화를 받았다가 이내 귀에서 멀어졌다. 스마트폰 스피커 너머로 상대방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복도 전체에 울려 퍼졌다.
[“지금 청와대 청원 올라가고 서버 터졌어! 언론사 사회부 기자들이 병원 로비로 들이닥치고 있다고! 성 팀장, 당장 그 한해인인가 하는 의사 손끝 하나 대지 말고 대기해! 이사장님 지시야!”]
뚝.
전화가 끊겼다. 성낙훈의 손등에 굵은 힘줄이 돋았다. 그는 들고 있던 붉은 인장의 서류 봉투를 쥔 채, 부르르 떨리는 다리로 한해인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세상을 다 가진 듯 고압적이던 법무팀장의 기세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해인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시야 우측 하단에서 깜빡이는 ‘라이브 서저리 대장 시스템’의 알림창을 응시했다.
[시청자 몰입도: 극대 (Max)] [실시간 후원 메디컬 포인트 유입: +8,500 SP] [현재 보유 메디컬 포인트: 19,700 SP] [특수 시각 모듈 '미세 혈관 수축률 뷰어'가 안정적으로 가동 중입니다.]
가슴을 짓누르던 미세한 압박감이 완전히 사라지고, 전신에 새로운 활력이 도는 것이 느껴졌다. 시스템은 대중의 몰입과 정의의 실현을 양분 삼아 완벽하게 구동되고 있었다.
그때, 성낙훈의 스마트폰이 다시 한번 울렸다. 이번에는 발신자 명에 ‘비서실장’이라는 네 글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성낙훈은 허겁지겁 전화를 받아 귀에 댔다.
“예, 예! 이사장님! 예, 지금 바로 앞에 있습니다. 예? 아…… 예. 알겠습니다.”
성낙훈의 눈동자가 해인에게로 향했다. 그의 얼굴에는 낭패감과 굴욕감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그는 전화를 끊지 않은 채, 스피커폰 버튼을 누르고 해인에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한해인 선생.”]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지만,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대한대학병원 재단의 절대 권력자, 차현태 이사장이었다.
[“의사 자격 정지 처분은 행정 착오였던 것으로 파악되어 보류 조치하겠네. 우리 병원의 촉망받는 소아외과 인재를 이렇게 홀대해서야 되겠나. 서로 오해가 있었던 것 같으니, 일단 그 라이브 방송을 종료하고 이사장실로 올라오게. 고소 건도 모두 취하하고, 원하는 연구비와 수술 장비는 얼마든지 지원해 주겠네.”]
귀를 기울이고 있던 서은혜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이사장이 한해인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단, 조건이 있네. 향후 한 선생이 집도하는 모든 수술 일정과 라이브 방송의 주도권은 재단 이사회의 관할과 사전 승인 하에 둔다. 병원의 대외 이미지 제고를 위해 홍보실과 협조하는 선에서, 합의를 보세 어떤가?”]
조건을 제시하는 차현태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기득권 특유의 거만함이 묻어 있었다. 그는 돈과 권력으로 한해인을 통제 가능한 ‘스타 의사’로 만들어 제국 아래에 두려 하고 있었다.
해인은 차가운 눈으로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거절합니다.”
[“……뭐라고?”]
“제 수술은 그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습니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아이들의 목숨을 저울질하는 당신들의 이사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해인의 목소리는 수술실의 메스처럼 날카롭게 허공을 갈랐다. “앞으로 이 병동에서 이루어지는 소아 흉부외과의 모든 치료와 수술 과정은, 100% 실시간 라이브로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될 겁니다. 그것이 제가 이 병원에 남아 수술을 계속할 유일한 조건입니다.”
[“한해인! 자네 지금 감당할 수 없는 선을 넘고 있어! 내 제안을 거절하면 이 바닥에서 의사 생활을 완전히 끝내 버릴 수도……!”]
“끝낼 수 없습니다.” 해인이 차현태의 말을 단호하게 자르고 들어갔다. “방금 전 세계 최대의 의료 스트리밍 플랫폼인 ‘메디캐스트(MediCast)’와 글로벌 아동 구호 재단으로부터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이번 이준우 환아의 수술 라이브를 보고, 제가 집도하는 모든 수술의 송출권을 독점 계약하고 싶다는 제안과 함께 연간 500만 달러 규모의 소아 심장 수술 후원금 유치를 약속하더군요.”
그녀는 태블릿을 들어 성낙훈과 서은혜, 그리고 카메라 렌즈를 향해 동시에 보여주었다. 실제로 메일함에는 글로벌 의료 재단들의 공식 서명이 담긴 제안서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이 후원금은 대학병원 재단을 거치지 않고, 오직 환아들의 수술비와 전용 장비 구입에만 사용되는 독립 계좌로 관리될 겁니다.” 해인의 시선이 카메라 렌즈를 통해 전 세계의 시청자들을 꿰뚫었다. “자본의 압박도, 이사회의 정치질도 침투할 수 없는 완전무결한 독립 소아외과 센터. 저는 그것을 ‘아크(ARK)’라 부를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서 그 첫걸음을 선포합니다.”
성낙훈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뒤걸음질 쳤다. 법무팀 대리들은 이미 울려 대는 전화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복도 한구석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해인은 더 이상 그들을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듯, 차갑게 몸을 돌려 소아 중환자실(PICU) 방향으로 걸어 나갔다. 그녀의 당당한 뒷모습을 비추던 강민우의 카메라는 마침내 최고의 시청률과 몰입도를 기록하며 라이브 방송을 종료했다.
***
그 시각, 대한대학병원 본관 최고층에 위치한 이사장실.
넓은 통유리창 너머로 서울 도심의 화려한 야경이 내려다보이고 있었지만, 사무실 안의 공기는 얼어붙은 것처럼 차갑고 무거웠다.
적막 속에서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차현태 이사장은 손에 쥐고 있던 고가의 크리스탈 양주잔을 대리석 데스크 위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잔에 금이 가며 붉은 액체가 테이블 위로 천천히 번져 나갔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의 깊게 파인 주름 사이로 살기 어린 안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 서은혜가 서 있었다.
“……죄송합니다, 이사장님. 그 계집이 그런 상상도 못한 서류를 쥐고 있을 줄은…….” 서은혜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변명했다.
“입 다물어.” 차현태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뼛속까지 시리게 만드는 위압감이 있었다. “홍보실과 원무과가 마비되고, 보건복지부 사무관들이 내 개인 계좌를 들여다보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다. 단 한 명의 계집 의사 때문에, 내가 10년을 준비해 온 영리 병원화 사업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어.”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유리창 앞으로 걸어갔다. 유리창에 비친 그의 얼굴은 분노로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한해인…… 그 건방진 년이 감히 대중의 힘을 업고 내 목을 겨눠?” 차현태가 이빨을 갈며 중얼거렸다. “여론이라는 건 바람과 같아서, 한순간에 타올랐다가도 아주 작은 꼬투리 하나에 차갑게 식어버리는 법이지. 그 잘난 라이브 방송이 그년의 무기라면, 역으로 그 라이브 방송이 그년의 단두대가 되게 만들어야겠다.”
그가 천천히 몸을 돌려 서은혜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잔인한 미소가 떠올랐다.
“서 박사.”
“예, 예! 이사장님. 말씀만 하십시오.”
“의학계에서 절대 살릴 수 없다고 판정 내려진 환자, 칼을 대는 순간 사망 진단서에 서명해야 하는 그런 환자가 있지 않나?”
서은혜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녀는 이사장의 의도를 즉각 알아차렸다. “……아, 예. 있습니다. 소아 심장 이식 대기자 중, 복합 기형과 심각한 폐동맥 고혈압으로 인해 국내의 어떤 병원에서도 집도를 거부하고 연명 치료만 하고 있는…… 사실상 시한부 환아가 하나 있습니다. 수술대 위에 눕히는 것 자체가 의료 살인이나 다름없는 케이스입니다.”
차현태가 서은혜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의 손길은 뱀의 똬리처럼 차갑고 끈적였다.
“어떤 방식을 써서든, 저 계집이 그 환자를 제 발로 들어 올리게 유도해라. 대중 앞에서 자신이 신이라도 된 양 오만을 떨게 만들어. 그리고 전 세계가 지켜보는 그 라이브 수술방 안에서 환자를 죽이게 해.”
그의 목소리에 독기가 서렸다.
“수술 도중 공식 살인자가 되어, 그 잘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영원히 매장당하게 만드는 거다. 준비해라, 서 박사. 이번에는 단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서은혜의 입꼬리가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그녀의 눈에 비열한 탐욕과 독기가 가득 찼다. “예, 이사장님. 가장 완벽한 덫을 놓겠습니다.”
어두운 이사장실 안, 두 사람의 음모가 차가운 야경 속으로 녹아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