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하늘 아래 새로운 영토를 넓히는 자는 필연적으로 창칼의 녹과 백성의 피를 제단에 바쳐야 하나, 당신은 전혀 다른 길을 택한다. 서북도(西北道)의 거친 산맥 아래 건설된 강계(江界)의 대규모 제철소와 기계창은 이제 더는 변방의 군영이 아니다. 그것은 천하 만국의 군대가 무릎을 꿇고 기술 허가증을 구걸하는 만방의 주재소(主宰所)이자, 세계 무공학의 정점으로 우뚝 솟아오른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조선의 영해를 유린하려 들던 열강의 이양선들은 이제 한 발짝도 함부로 접근하지 못한다. 대영제국의 무적함대도, 유라시아를 남하하려는 루시아(俄羅斯)의 대포도, 결국 당신의 머리에서 나온 ‘강선(腔線)의 각도’와 ‘무연화약의 배합비’ 없이는 단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서구의 사절들은 이제 위압적인 함포 외교 대신, 당신의 집무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특허 사용권을 구걸하는 양질의 조공국처럼 처신한다. 양인들이 바치는 막대한 양의 금화와 차관 증서가 호조(戶曹)의 서고에 귀를 찢는 소리를 내며 쌓일 때마다, 완고하던 조정의 사대부들은 마침내 입을 다물고 당신의 권능을 경외 어린 눈으로 우러러본다.

깊어 가는 밤, 경복궁의 서늘한 기운이 내려앉은 선원전 너머, 당신의 집무실에는 거대한 세계의 지도가 걸려 있다. 지도 위에는 붉고 푸른 선이 어지럽게 얽혀 있으나, 그 모든 전쟁과 동맹의 도화선은 오직 한 곳, 당신의 영지에서 뻗어 나간다. 대서양의 포연도, 아시아의 이권 다툼도 이제 당신이 낙인(烙印)한 한 장의 군사 기술 허가증에 의해 개시되거나 소멸한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온 천하의 목줄을 죄는 방책, 이것이야말로 사대부들이 경전에서 찾지 못한 진정한 經世(경세)의 대도(大道)이자 실리의 극치다.

조선은 영토를 단 한 뼘도 넓히지 않았으되, 세계 모든 제국의 전쟁을 지배하는 ‘특허 제국’으로 화려하게 도약한다. 장막 뒤에 들어앉은 당신은 이제 일개 서북의 대공도, 무기 공학자도 아니다. 세계사의 막후에서 만국의 명운을 펜 끝으로 주무르는 실질의 선제(仙帝)이자 지배자다. 깊어 가는 침묵 속에서 당신은 서서히 세계 지도를 향해 손을 뻗는다. 다음 세기의 판도를 뒤흔들 거대한 지각변동이, 바로 이 어두운 집무실 안에서 시작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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