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를 진동시키던 무연화약의 포성이 마침내 요동의 광활한 대지 위에서 잦아든다. 철갑을 두른 마포(魔砲)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포신 위에서 아지랑이로 피어오르고, 전장에는 적들의 찢어진 깃발만이 칼바람에 흩날릴 뿐이다. 대륙을 호령하던 청국의 정예 기병들은 당신이 설계한 근대식 연발총과 화포의 화력망 앞에서 추풍낙엽처럼 스러졌다. 실로 아조(我朝) 개국 이래 전례가 없는 미증유의 대첩이었다.
철갑마차와 신식 보병대를 거느린 조선의 장수들은 요동벌 한가운데에 서서 승리에 도취해 있다. 그들의 눈빛에는 이제껏 사대부들의 가슴을 짓눌렀던 사대의 굴레를 완전히 벗어던진 해방감과, 그 너머의 거대한 야욕이 이글거리고 있다. 도독과 제장들이 당신의 군막 앞으로 나아와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격앙된 목소리로 주청한다.
"전하, 천명(天命)이 이미 아조로 귀순하였나이다. 적의 주력은 완파되었고 산해관 너머 자금성의 황제는 공포에 떨고 있사오니, 이 기세를 몰아 북경으로 직진하시어 대제국을 선포하소서! 중원의 사직을 접수하는 길만이 후환을 없애는 요체이옵니다."
장수들의 주장이 군막을 울리는 사이, 한양의 조정에서 급파된 사학과 예법에 밝은 대신의 서찰이 당신의 손에 쥐어진다. 의정부의 영수들은 화력의 가공할 위력에 경악하면서도, 동시에 백성들의 불안과 급작스러운 영토 확장이 가져올 파멸적 역풍을 우려하고 있었다. 사대부들은 기력이 쇠한 중원을 억지로 합병했다가 도리어 그 거대한 인구와 문화에 조선의 정체성이 잠식당할 것을 경계했다. 무리한 영토 확장은 사직의 국력을 소진하고 미증유의 내부 반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실록의 경고를 상기시킨 것이다.
당신은 천리경을 들어 서쪽 하늘을 바라본다. 저 멀리 장막 너머에는 한때 천하의 중심이라 자부하던 자금성이 존재한다. 군부의 열망대로 만리장성을 넘어 자금성에 불을 지르고 새로운 천하의 패업을 달성할 것인가. 아니면 무리한 북진을 멈추고 베이징을 아군의 포구 사정거리 안에 둔 채, 실리적인 경계를 획정하여 조선을 외교적 총도독의 위치로 군림하게 할 것인가.
사관의 붓끝이 역사의 분수령을 기록하듯 무겁게 떨리는 가운데, 대공인 당신의 입술이 천천히 열리려 하고 있다. 천하의 향방을 가를 결단의 순간이 눈앞에 지체 없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