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한양의 대궐, 근정전의 조참(朝參)은 유난히 무겁고 매서운 기류로 침잠해 있습니다. 서경(西京) 평안도 감영에서 피어오르는 검붉은 석탄 연기와 기괴한 쇠붙이의 마찰음은 기어이 대간(臺諫)들의 필봉을 자극하고야 말았습니다. 사헌부와 사간원의 대관들이 일제히 엎드려 아뢰는 서슬 퍼런 탄핵의 문장들이 어전의 바닥을 짓누릅니다.

“평안도 관찰사는 조정의 허락도 없이 사사로이 대포와 신식 조총을 주조하고, 서양의 이교도 기술을 들여와 군사를 사사로이 길렀으니, 이는 법전에 없는 사병(私兵)이요 선왕의 계도를 저버린 불궤(不軌)의 징조이옵니다! 속히 서경의 병권을 회수하시고 역당들을 국문하소서!”

척화파 대신들의 성토는 단순한 의심을 넘어, 이미 확정된 역모의 굴레를 당신에게 씌우고 있었습니다. 외적의 침탈을 막기 위해 평안도를 근대적 방어 기지로 육성하려던 당신의 대업이, 도리어 조정 내부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역린으로 작용하리라는 것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유교적 명분과 왕권의 공고함을 최우선으로 삼는 삼사(三司)의 사대부들에게, 규격화된 화포와 공창(工廠)의 압도적인 생산력은 국가의 안위보다 서경 관찰사의 찬탈 음모로 비칠 뿐이었습니다.

선화당(宣化堂) 집무실에 가만히 앉아 한양에서 날아온 밀지를 읽어 내려가는 당신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습니다. 창밖으로는 근대식 선반 기계가 굉음을 울리며 강선 총열을 깎아내고 있고, 강철로 주조된 신식 야포들이 대열을 갖추어 검은 광택을 발하고 있습니다. 평안도의 백성들은 이제 이 거대한 화력 공정과 기계 문명이 가져다준 풍요와 생존의 기회를 몸소 목격한 터였습니다. 관아의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는 저들에게 역모의 연기가 아닌, 굶주림과 죽음으로부터 자신들을 구해줄 구원의 열기였습니다.

그러나 조정이 보낸 황해도 체찰사(體察使)의 토벌군이 이미 임진강을 건널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는 첩보가 당도합니다. 그들이 이끄는 군사는 구식 화승총과 삼안총으로 무장한 경기·황해의 관군들입니다. 당신이 육성한 일개 대대의 신식 보병과 기관포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그들은 단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한 채 붉은 피의 제물이 될 것이 자명합니다. 동포의 피로 관창을 적시는 무자비한 내전은 당신이 바라던 대조선의 부강책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한양의 유림들은 탕평의 도를 망각한 채, 당신을 역적의 수괴로 몰아 삼대를 멸하려 혈안이 되어 기세를 올리고 있습니다. 문무 관료들의 관점과 왕권의 위태로운 처지, 그리고 외세의 도발이 한데 엉켜 조선의 목을 죄어오는 형국입니다.

바람을 등진 서경의 들판 너머로 깃발을 나부끼며 다가오는 전운이 느껴집니다. 화력의 총구를 같은 조정을 향해 돌려 썩은 뿌리를 도려낼 것인가, 아니면 군사적 충돌을 피하기 위해 막후의 외교적 계책을 가동해 판세를 뒤흔들 것인가.

서경의 모든 신식 군대와 기계들이 숨을 죽인 채, 오직 당신의 단 한마디 영을 기다리며 차갑게 굳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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