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영변 감영의 동헌에 앉아, 북쪽에서 날아온 비보를 묵묵히 응시한다.
압록강 너머로 도망치듯 회항한 청국의 칙사가 북경에 당도하여 황제에게 올린 소상(疏狀)의 내용은, 조선 평안도에서 목도한 독자적 화력을 결코 좌시할 수 없는 ‘반역의 징조’라 규정짓고 있었다. 청국의 병부(兵部)가 팔기군을 동원하여 국경지대인 의주와 창성을 압박할 징후가 포착되자, 한양의 조정은 종묘사직의 사활을 두고 사분오열한다. "상국(上國)의 의리를 저버리고 대국의 노여움을 샀으니, 관찰사의 직을 박탈하고 무구를 봉인해야 한다"는 삼사(三司)의 격렬한 상소가 비 내리듯 조정에 쏟아지는 중이다. 문무 관료들의 사대주의적 공포와 왕권의 미약한 저울추는 극심한 혼란 속에서 요동치고 있다.
하지만 이 미증유의 위기 속에서, 서해 바다를 건너온 또 다른 이질적인 그림자가 당신의 서무실 안으로 조용히 스며든다.
조정의 삼남 지방을 우회하여 은밀히 관영 포구에 닻을 내린 이양선의 지휘관이자, 대영제국(大英帝國)의 관리를 자처하는 상인 에드워드가 당신 앞에 마주 앉는다. 그는 서구 열강의 오만한 격식을 갖추면서도, 현 조선에서 실질적인 군사력을 쥐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젖은 해풍 냄새가 묻어나는 그의 제안은 매혹적이면서도 극히 기만적이다.
“대청제국의 거대한 껍데기는 이미 안으로부터 썩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아국(我國)의 동양함대는 발해만을 봉쇄하고 청 유인(幽燕)의 목줄을 죌 준비가 되어 있지요. 대공께서 평안도 연안의 포구 중 한 곳을 우리에게 조차(租借)해 주신다면, 청의 군세가 압록강을 넘기 전에 서해에서 그들의 배후를 산산조각 내 드리겠습니다.”
오랑캐를 빌려 오랑캐를 제압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묘책인가, 아니면 범을 끌어들여 늑대를 막는 양호위환(養虎爲患)의 우를 범하는 것인가. 에드워드의 푸른 눈동자 너머에는 서구 제국주의의 차가운 영토적 야욕이 도사리고 있다. 외세에 땅을 내어주는 조약은 종국에 조선의 목을 조르는 칼날이 될 터였다.
반면, 이 달콤한 제안을 거절하고 홀로 천하의 대국인 청나라와 맞선다면, 당신은 영지에서 비밀리에 주조해 온 무기 공창의 새로운 화포와 근대식 소총만으로 청국의 대군을 물리쳐야 한다. 그것은 조정의 사대부들에게 역적으로 몰릴 위험과 대륙의 철기 격랑을 홀로 온몸으로 받아내야 함을 뜻한다.
동헌의 촛불이 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리고, 강대국들의 탐욕과 전란의 먹구름이 서북방의 하늘을 검게 물들이기 시작한다. 오직 당신의 손끝에 조선의 국운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