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최강식 감독의 질문이 방 안의 공기를 단숨에 얼려버렸다.

“묻겠다. 네가 가진 그 ‘눈’은, 세계 최강 아르헨티나의 수비진 앞에서도 통할 수 있나?”

침묵이 방 안을 무겁게 짓눌렀다. 두 대의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빛이 태성의 얼굴에 비쳤다. 태성은 피하지 않았다. 최강식의 칼날 같은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천천히 숨을 고를 뿐이었다.

최강식의 손가락이 책상 위를 규칙적으로 두드렸다. 탁, 탁, 탁. 건조한 마찰음이 정적을 깨뜨렸다. 그의 손끝은 여전히 태성의 발목 의료 진단서를 가리키고 있었다.

“대답이 없군.”

최강식이 상체를 뒤로 기댔다.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네 재능은 인정한다. 방금 청백전에서 보여준 그 차원 다른 패스 길은 내 축구 인생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경이로웠으니까. 하지만 여긴 국가대표팀이다. 단 한 번의 실수로 5천만 국민의 염원이 박살 나는 곳이지. 네 오른발 발목은 90분 내내 이어지는 세계 초일류 수비수들의 거친 압박을 버텨내지 못해.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강태성.”

최강식의 말은 지극히 합리적이었다. 그는 무능한 독재자가 아니었다. 철저히 수치와 확률을 바탕으로 팀을 구성하는 냉혹한 전술가였다. 그렇기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태성의 발목은 그에게 가장 큰 불안 요소였다.

태성은 천천히 손을 뻗었다. 최강식의 책상 한가운데에 놓여 있던 태블릿 PC로 향하는 손길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최강식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태성은 화면을 켜고 전술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화면 위로 붉은색과 푸른색의 원형 칩들이 나타났다. 태성은 푸른색 칩 하나를 전방에 배치했다. 스트라이커, 즉 자신의 위치였다.

“아르헨티나의 수비 라인은 세계 최고입니다.”

태성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특히 그들의 중심인 안드레아 실바는 상대 공격수의 회전 반경과 무게 중심을 무너뜨리는 데 특화되어 있죠. 제가 전생…… 아니, 평범한 공격수처럼 그와 몸을 부딪치며 포스트 플레이를 시도한다면, 제 발목은 15분도 버티지 못하고 부러질 겁니다. 감독님 말씀대로 말입니다.”

태성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볍게 쓸었다. 푸른색 칩이 아르헨티나의 포백 라인 사이가 아닌, 그보다 한참 아래인 미드필더 라인까지 내려왔다.

“하지만 제가 이 위치까지 내려온다면 어떨까요?”

최강식의 시선이 태성의 손가락 끝에 닿았다.

“제 오른쪽 발목은 급격한 턴과 스프린트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달리며 싸우는 게 아니라, 멈춰 서서 지배하면 됩니다. 제가 이 하프 스페이스로 내려오는 순간, 아르헨티나의 센터백 안드레아 실바는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나를 따라 라인을 깨고 올라올 것인가, 아니면 자리를 지킬 것인가.”

태성은 붉은색 센터백 칩 하나를 위로 끌어올렸다. 수비 라인에 미세한 균열이 발생했다.

“실바가 올라오면 그 뒷공간을 창민이 형이 찢어발길 겁니다. 실바가 올라오지 않는다면, 저는 이 빈 공간에서 완벽한 자유를 누리며 볼을 배급하겠죠. 제 발목은 단 1cm의 불필요한 가속도 하지 않을 겁니다.”

최강식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것은 단순한 도발이 아니었다. 현대 축구의 가장 정교한 전술 중 하나인 ‘가짜 9번(False-Nine)’의 메커니즘을 19세의 신예가 완벽하게 이해하고,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할 도구로 제시하고 있었다.

최강식은 팔짱을 끼며 비스듬히 태성을 바라보았다.

“말은 쉽지. 가짜 9번 전술이 성립하려면 미드필더진과의 완벽한 유기적 호흡이 필수적이다. 우리 미드필더들이 네 템포에 맞춰 볼을 공급해줄 수 있을 것 같나?”

그 질문에 태성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미래 전술 장부’가 이미 대표팀 동료들의 모든 습관과 신체 데이터를 시각화하여 띄우고 있었다.

“백승우 선수를 예로 들겠습니다.”

태성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이름이 나오자 최강식의 안경 뒤 눈동자가 좁아졌다.

“승우는 천재적인 패서입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버릇이 하나 있죠. 상대의 강한 압박을 받는 순간, 승우는 골반 축의 미세한 불균형 때문에 전방 롱패스의 궤적을 평소보다 항상 1m 정도 짧게 떨어뜨립니다.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습관입니다.”

최강식은 자신도 모르게 마우스를 쥐었다. 태성의 지적은 정확했다. 대표팀 전술 분석관들도 최근에야 겨우 잡아낸 백승우의 미세한 데이터를, 이 녀석은 그라운드 위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알아챘단 말인가.

태성은 흔들림 없이 말을 이어갔다.

“다른 공격수들이라면 승우의 패스가 짧았다고 화를 내거나, 볼을 받기 위해 무리하게 발목을 꺾으며 제동을 걸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승우의 골반 각도가 꺾이는 0.5초의 찰나에, 이미 그 패스가 1m 짧게 떨어질 것을 알고 몸을 움직입니다. 제 발목에 가해지는 하중을 최소화하는 최적의 궤적으로 말입니다.”

태성은 태블릿 화면 위의 칩들을 거침없이 움직였다.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11명의 움직임이 최강식의 눈앞에 그려졌다.

“제가 혼자 뛰면 30분도 못 가 부러지겠지만, 제가 90분 내내 동료들의 위치를 제어하면 모두의 체력이 아껴집니다. 감독님, 제 발목은 약점이 아닙니다. 우리 대표팀이 세계 최강의 수비진을 무너뜨릴 가장 치명적인 미끼이자, 그라운드의 컨트롤러입니다.”

방 안은 다시 정적에 휩싸였다.

최강식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가슴팍이 미세하게 들썩이고 있었다. 데이터 만능주의자인 그에게 태성이 제시한 전술적 역합리는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국 선수들의 기술적 한계로는 결코 구현할 수 없으리라 판단해 패드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가짜 9번 시뮬레이션’.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이 눈앞의 19세 괴물이었다.

최강식은 천천히 볼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백지 상태였던 러시아 월드컵 최종 엔트리 명단을 서랍 속에 다시 넣었다.

“……나가 봐라.”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이전의 날카로운 불신 대신 묵직한 고뇌와 묘한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감사합니다.”

태성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독실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복도의 차가운 공기가 뺨을 때렸다. 긴장이 풀리는 순간, 오른쪽 발목에서 찌릿한 통증이 척추를 타고 뇌수까지 치밀어 올랐다.

“으윽…….”

태성은 벽을 짚으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파앗!

태성의 시야에 붉은색 홀로그램 경고 창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미래 전술 장부 경고] - 상태: 일시적 발목 과부하 75% 도달. - 원인: 청백전 중 급격한 제동 및 단독 탈압박 회피 동작으로 인한 생체 전기적 과부하 누적. - 경고: 과부하 게이지 100% 도달 시 우측 발목 분쇄 골절 재발. 즉시 동료와의 유기적인 어시스트 및 연계 플레이를 통해 부하를 분산하십시오.

숨이 턱 막혔다.

청백전 마지막 순간에 김태영의 거친 보복성 태클을 피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발목에 힘을 주어 방향을 꺾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미래 전술 장부의 예측 경로 덕분에 부상은 피했지만, 그 초인적인 신체 반응의 대가는 고스란히 발목의 과부하로 누적되어 있었다.

75%.

위험 수위였다. 한 번만 더 무리하게 독단적인 돌파를 시도하거나 급제동을 걸면, 회귀 전의 그 끔찍한 비극이 다시 눈앞에 펼쳐질 터였다.

태성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혼자서는 안 돼. 절대로 혼자서 해결하려 해선 안 된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머릿속을 스쳤다. 동료들을 믿지 못하고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려다 발목이 꺾여 눈물로 은퇴해야 했던 스물네 살의 자신. 그 비참한 결말을 반복할 수는 없었다.

살기 위해서라도 동료들을 이용해야 한다. 그들을 완벽한 장기말로 부려 먹어 내 발목에 가해지는 압박을 분산시켜야만 했다.

태성은 절뚝이는 발걸음을 옮겨 훈련장으로 향했다.

다음 주에 예정된 평가전은 숙적 일본과의 경기였다. 일본 대표팀은 특유의 촘촘한 패스 네트워크와 조직적인 압박, 그리고 철저한 대인 마크 전술을 구사하는 까다로운 상대였다.

최강식 감독의 성향상, 발목 상태가 불안정하고 전술적 검증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자신을 선발로 내세우지는 않을 것이다.

‘조커.’

후반전, 흐름이 정체되거나 상대의 압박에 아군이 고립되었을 때 판을 흔들 전술적 제어 카드로 자신을 기용할 것이 분명했다.

태성은 라커룸으로 들어가 일본 대표팀의 최근 경기 영상을 재생했다. 전술 장부가 실시간으로 일본의 수비 메커니즘을 분석해 최적의 패스 루트를 시각화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한일전 당일이 되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이른 아침부터 붉은 물결로 가득 찼다. 한일전이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경기장 주변의 공기는 여느 평가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뜨겁고 무거웠다.

하지만 경기 시작 세 시간 전, 스포츠 언론과 인터넷 커뮤니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속보] ‘천재 스트라이커’ 강태성, 우측 발목 부상 재발 의혹? [분석] 청백전 맹활약 뒤에 숨겨진 진실…… 훈련 중 포착된 태성의 절뚝임. [여론] “월드컵 가기도 전에 또 유리몸 발동인가?” 팬들 불안감 증폭.

매스컴은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쏟아냈다. 태성이 감독실을 나오며 발목을 붙잡았던 모습이 누군가의 카메라에 포착된 모양이었다. 여론은 순식간에 의심과 우려로 뒤덮였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라도 경기장에 나서지 못하는 유리몸이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비판이 꼬리를 물었다.

국가대표팀 라커룸 안.

선수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유니폼을 갈아입고 있었다. 홍창민은 스트레칭을 하며 힐끗 태성을 바라보았고, 백승우는 조용히 축구화 끈을 묶으며 태성의 눈치를 살폈다.

태성은 묵묵히 제자리에 앉아 무릎을 만지고 있었다. 외관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라커룸 내부의 공기는 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때, 최강식 감독이 라커룸 중앙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오늘 경기 선발 라인업이 적힌 보드가 들려 있었다.

최강식이 라인업 보드를 화이트보드에 붙였다.

선수들의 시선이 일제히 보드로 향했다. 최전방 스트라이커 자리에 적힌 이름은 강태성이 아니었다.

베테랑 공격수 김신우의 이름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그리고 보드의 가장 아래쪽, 교체 명단인 ‘벤치’ 칸에 강태성의 이름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선수들 사이에서 미세한 웅성거림이 일었다. 언론의 부상 설이 사실이었냐는 의구심 가득한 눈빛들이 태성에게 쏟아졌다.

태성은 개의치 않고 벤치 워머 조끼를 집어 들었다. 그의 시선은 라인업 보드가 아닌, 머릿속에서 돌고 있는 일본의 수비 대형을 향해 있었다.

지옥 같은 한일전의 막이 오르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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