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발 끝이 공에 닿는 순간, 태성은 이미 확신했다.
밀집된 수비진의 가랑이 사이를 칼날처럼 파고든 공은 잔디를 스치며 미끄러졌다. 수비수들이 급히 몸을 돌렸지만, 그들의 역동작에 걸린 발목은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찬 듯 둔탁했다.
공이 굴러가는 궤적의 끝에는 홍창민이 있었다.
"……!"
홍창민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사정없이 흔들렸다.
스프린트를 시작하며 속도가 최고조에 달한 순간이었다. 보통의 패스라면 그의 뒤편으로 흐르거나, 골키퍼가 튀어나와 걷어낼 만큼 길게 뻗었을 터였다. 하지만 태성이 보낸 공은 그의 질주 속도를 완벽히 계산한 것처럼 정확히 디딤발 앞에 안착했다.
달리던 탄력을 죽일 필요조차 없었다.
홍창민은 본능적으로 오른발을 내밀었다. 발끝에 닿는 감각이 소름 끼치도록 가벼웠다. 툭. 가볍게 밀어 찬 공이 골키퍼의 손끝을 지나쳐 반대편 골망 구석에 그대로 꽂혔다.
*철썩!*
청량한 그물 소리가 파주 트레이닝 센터의 고요한 공기를 찢었다.
"골……!"
누군가의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터져 나왔다.
골을 넣은 홍창민조차 세레머니를 잊은 채 멍하니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자신의 발끝을 보고, 한참 뒤에 흔들리는 골망을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하프라인 부근에 서 있는 강태성을 바라보았다.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려 태성의 턱끝에서 툭 떨어졌다.
태성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오른쪽 발목을 내려다보았다. 찌릿하던 기분 나쁜 생체 전기적 자극이 순식간에 흩어지고 있었다.
눈앞에 홀로그램처럼 투명한 푸른빛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완벽한 공간 어시스트 성공!]** **[발목 과부하 게이지 15% 감소]** **[현재 발목 과부하 게이지: 15% (안전 단계)]**
'살았다.'
태성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생의 비참한 부상을 상기시키던 붉은 경고등이 사라지고, 편안한 녹색 불빛이 시야 구석에 자리 잡았다. 동료를 장기판의 말처럼 부려 먹어 얻어낸 결과물이었다.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플레이로 일관했다면 벌써 발목뼈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을 터였다. 하지만 전술 장부의 지시대로 이타적인 연계를 성공시킨 덕분에 신체는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너…… 너 진짜 뭐냐?"
홍창민이 터벅터벅 걸어와 태성의 앞에 섰다.
평소라면 골을 넣고 기고만장해 날뛰었을 녀석의 얼굴이 흙빛으로 질려 있었다. 자존심 강한 홍창민에게 방금의 어시스트는 단순한 패스가 아니었다. '받아먹기만 해라' 하고 밥상을 차려주다 못해 입안에 직접 밀어 넣어 준 수준이었으니까.
"패스가 좋았을 뿐이다."
태성이 무덤덤하게 답했다.
"좋았을 뿐이라고? 야, 장난해? 수비수 가랑이 사이로 굴러 들어온 그 공이 우연이라는 거야? 내가 뛰는 타이밍을 어떻게 알고……!"
"창민아, 쉿."
등 뒤에서 차분하지만 뼈가 있는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백승우였다.
백승우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와 태성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그의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체온이 제법 뜨거웠다.
"해티 태성. 드디어 사람 됐냐?"
"무슨 소리야."
"맨날 혼자 공 잡고 수비수 셋씩 달고 흔들다가 자멸하던 새끼가, 이런 패스를 다 찔러주고.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백승우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그는 태성의 발밑을 힐끗 보았다. 자신이 찌른 패스가 평소처럼 짧게 떨어졌음에도, 그것을 완벽한 가속으로 낚아채 어시스트로 연결한 태성의 오프 더 볼 움직임을 복기하는 눈치였다.
"내 패스, 짧았던 거 알고 있었지?"
백승우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태성은 대답 대신 묵묵히 백승우의 시선을 받아냈다. 백승우의 미세한 골반 축 불균형으로 인한 1m의 오차. 전술 장부가 기록해둔 백승우의 치명적인 버릇을 태성은 이미 지배하고 있었다.
"글쎄. 감이 좋았어."
태성이 짧게 답하며 백승우가 내민 손에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건넸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손바닥이 맞부딪쳤다.
홍창민은 두 사람의 묘한 기류를 이해하지 못한 채, 여전히 씩씩거리며 태성을 노려보았다. 분한 감정과 동시에, 방금 느꼈던 소름 끼치도록 완벽한 득점 감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 듯했다. 공격수로서 그런 패스를 받아본 적은 생전 처음이었을 테니까.
그 시각, 터치라인 밖의 벤치 분위기는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방금 그 움직임……."
수석 코치가 들고 있던 태블릿을 떨어뜨릴 뻔하며 중얼거렸다.
최강식 감독은 아무런 말도 없이 팔짱을 낀 채 그라운드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날카로운 외꺼풀 눈매가 가늘게 떨렸다. 철저한 데이터 만능주의자이자 시스템 축구의 맹신도인 최강식에게, 방금 전 강태성이 보여준 플레이는 기존의 데이터 분석을 정면으로 역행하는 기적에 가까웠다.
"강태성이 백승우의 패스가 출발하기도 전에 스프린트를 시작했습니다."
수석 코치가 태블릿의 리플레이 화면을 다급히 손가락으로 확대하며 설명했다.
"보십시오, 감독님. 승우의 킥은 평소보다 약간 짧았습니다. 압박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승우의 킥 궤적이 짧아지는 건 우리가 이미 데이터로 파악하고 있던 약점입니다. 그런데 강태성은 승우의 발끝에 공이 닿기 도전에 이미 그 '짧아지는 공간'을 향해 뛰고 있었습니다. 마치 공이 그리로 올 걸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요."
최강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화면 속 강태성의 동선과, 패스를 찌르기 직전의 시선 처리를 초 단위로 쪼개어 살폈다.
보통의 스트라이커라면 패스의 낙하지점을 보고 움직인다. 그러나 강태성은 수비수들이 뒤로 물러나는 찰나의 역동작을 이용해, 일부러 수비수들의 시야 바깥으로 돌아 들어갔다. 그리고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공을 받아내자마자, 측면에서 쇄도하는 홍창민의 속도에 맞추어 스루패스를 찔렀다.
이것은 단순한 공격수의 이타성이 아니었다.
그라운드 위의 모든 인원의 동선과 물리적 속도, 심지어 동료의 패스 습관까지 완벽히 지배하고 있는 '사령관'의 플레이였다.
"괴물 같던 돌파력에 이런 시야까지 갖췄다고?"
최강식의 입술 사이로 나지막한 침음이 흘러나왔다.
그가 기억하던 강태성은 뛰어난 탄력과 폭발적인 슈팅력을 가졌지만, 지나치게 독단적이고 고집스러워 전술의 유기성을 해치는 '양날의 검'이었다. 그래서 이번 대표팀 최종 선발에서도 그의 부상 경력과 거친 플레이 스타일을 이유로 탈락시키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19세의 강태성은 전혀 다른 선수였다.
"감독님, 어떻게 할까요? 다음 세션으로 넘어갈까요?"
수석 코치의 질문에 최강식은 천천히 태블릿을 받아 들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한 가지 전술 시나리오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자신이 태블릿 구석 폴더에 깊숙이 묻어두었던, 한국 선수들의 전술적 이해도와 기술적 한계로는 절대 구현 불가능하다고 낙인찍었던 그 전술.
'제로톱 가짜 9번(False-Nine).'
최전방 스트라이커가 미드필더 라인까지 내려와 빌드업을 주도하고, 좌우 윙어들이 그 공간을 파고들어 파괴하는 현대 축구의 정수.
최강식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심장이 기묘한 흥분으로 고동치기 시작했다.
"훈련 중단해."
최강식이 그라운드를 향해 걸어가며 묵직한 목소리로 외쳤다.
*삐이이익-!*
주심을 보던 코치의 호각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그라운드 위에서 숨을 고르던 선수들의 시선이 일제히 최강식 감독에게로 쏠렸다. 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훨씬 더 굳어 있었다.
최강식은 강태성의 앞에 멈춰 섰다.
감독의 안경 너머로 번뜩이는 안광이 태성의 얼굴을 샅샅이 훑었다. 태성은 피하지 않고 감독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땀을 훔쳤다.
"강태성."
최강식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예, 감독님."
"방금 플레이는 훌륭했다. 하지만 비주전 조를 상대로 한 청백전에서의 한 번의 플레이일 뿐이야. 진짜 무대에서도 그게 통할 거라고 생각하나?"
태성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비틀렸다.
"상대가 누구든, 공간은 존재합니다. 제 눈에는 보입니다."
거만하게 들릴 수 있는 답변이었다.
주변의 몇몇 선수가 숨을 죽였다. 하지만 최강식은 화를 내는 대신, 오히려 차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좋다. 네 그 오만한 확신이 진짜인지 검증해 보지."
최강식이 고개를 돌려 반대편 훈련장에서 전술 훈련을 하고 있던 무리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국가대표팀의 주전 멤버들, 즉 아시아 최강이라 불리는 1진 수비진이 버티고 있었다. 피지컬과 경험, 그리고 영리한 반칙 기술까지 겸비한 베테랑 센터백들이 포진한 진짜 '대표팀'의 벽이었다.
"A팀 주전 수비 라인 불러와."
최강식의 단호한 명령에 수석 코치가 황급히 움직였다.
그라운드 위로 묵직한 위압감을 풍기는 사내들이 걸어 들어왔다. K리그를 호령하고 유럽 무대를 경험한, 그야말로 국내 최고의 방패들이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갓 회복해 합류한 19세 유망주 태성을 향한 은근한 무시와 경계가 섞여 있었다.
최강식이 태성을 똑바로 응시하며 손가락으로 그들을 가리켰다.
"다음 세션은 1진 수비진을 상대로 한 하프코트 미니 게임이다. 강태성, 네가 공격의 중심에 선다. 만약 방금 같은 유기적인 기회를 단 한 번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감독의 목소리에 서리가 내렸다.
"네 자리는 이 대표팀에 없다. 알겠나?"
숨 막히는 침묵이 그라운드를 지배했다.
홍창민은 마른침을 삼켰고, 백승우는 조용히 태성의 옆으로 다가와 서서 축구화 끈을 다시 조였다.
태성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거구의 주전 수비수들을 바라보았다. 전생에서 자신을 압박했던, 그러나 이제는 자신이 완벽히 무너뜨려야 할 장벽들.
오른쪽 발목은 부드럽고 가벼웠다.
태성의 눈앞에 다시 한번 푸른빛의 전술 장부가 펼쳐지며, 다가오는 주전 수비수들의 수비 메커니즘과 그들의 약점이 붉은 선으로 실시간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태성이 나지막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준비되시면, 바로 시작하시죠."
"싱겁기는."
A팀의 핵심이자 국가대표 주전 센터백인 김태영이 붉은 조끼를 받아 들며 코웃음을 쳤다.
190센티미터에 육박하는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박감이 그라운드를 무겁게 짓눌렀다. 수년 동안 K리그 베스트 11을 놓치지 않았고, 거친 거구의 외국인 스트라이커들을 엉덩이로 밀어내며 대표팀의 뒷문을 지켜온 베테랑이었다.
김태영이 태성의 곁을 스쳐 지나가며 어깨를 툭 부딪쳤다.
*퍽.*
일부러 체중을 실은 둔탁한 충격이었다. 태성의 몸이 미세하게 흔들렸으나, 이내 중심을 잡고 버텨냈다. 김태영이 이빨을 드러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꼬맹아. 아까 보니까 패스 좀 이쁘게 차던데, 우리 앞에서도 그 발목이 부드럽게 돌아갈지 한번 보자고."
명백한 도발이었다.
대표팀의 텃세이자, 풋내기의 기를 죽이려는 베테랑의 기선 제압. 전생의 태성이었다면 불같이 화를 내며 들이받았거나, 오기로 단독 돌파를 시도하다가 발목이 박살 났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의 태성은 그저 담담하게 김태영의 눈을 응시할 뿐이었다.
'김태영. 피지컬과 공중볼 장악력은 아시아 최고 수준. 하지만 오른발잡이치고는 왼쪽 측면으로 전환할 때 디딤발의 반응 속도가 0.2초 느리다.'
전술 장부가 태성의 머릿속에 김태영의 모든 축구 인생을 요약한 데이터를 쏟아냈다.
이미 상대의 패를 전부 읽고 있는 도박사에게, 날것의 도발은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태성의 눈빛이 고요해질수록, 김태영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공 잡는다! 준비해!"
수석 코치의 외침과 함께 미니 게임의 막이 올랐다.
하프코트에서 진행되는 8 대 8 게임. 공간이 좁은 만큼 압박의 강도는 정식 규격 경기보다 배 이상 강했다. 공을 잡고 1초만 지체해도 사방에서 세 명의 수비수가 에워싸는 지옥 같은 좁은 공간이었다.
*툭.*
백승우가 가볍게 공을 밀어 태성에게 보냈다.
그와 동시에 김태영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태성의 등 뒤를 덮쳤다. 거대한 바위가 뒤에서 덮쳐오는 듯한 물리적 압박감. 김태영은 영리하게 손으로 태성의 허리를 밀어내며 중심을 무너뜨리려 했다. 심판의 눈에 띄지 않는 미세하고 거친 반칙성 플레이였다.
"흡!"
태성은 이를 악물었다.
오른발로 공을 지키며 왼팔을 뻗어 김태영의 단단한 가슴팍을 밀어냈다. 갈비뼈가 으스러질 듯한 압박이 밀려왔다. 전신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산소가 부족한 허파가 비명을 질렀다.
'여기서 돌아서면…….'
순간적인 단독 돌파의 유혹이 뇌리를 스쳤다.
수비수의 체중이 뒤쪽으로 쏠린 지금, 상체를 오른쪽으로 꺾으며 턴을 돌면 한 명을 완벽히 제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머릿속에 붉은 경고등이 요란하게 울렸다.
**[경고: 단독 돌파 시도 시 우측 발목 과부하 40% 급상승 예상]**
과거의 트라우마가 발목을 타고 올라와 척추를 서늘하게 적셨다.
혼자 하려 하면 죽는다. 살기 위해서는 철저히 동료를 이용해야 한다.
태성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전술 장부가 시야에 직접 그어주는 3차원의 선들을 보았다.
홍창민이 오른쪽 측면에서 빈 공간을 찾아 스프린트를 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태영의 짝인 또 다른 주전 센터백이 이미 홍창민의 침투 경로를 예측하고 길목을 차단한 상태였다. 백승우 역시 중앙 미드필더의 강한 압박에 묶여 패스 길을 찾기 어려웠다.
완벽히 고립된 상황.
"거기서 갈 데가 있냐!"
김태영이 씩 웃으며 태성의 디딤발 쪽으로 거칠게 무릎을 들이밀었다.
공을 빼앗기기 직전의 찰나, 태성의 눈에 한 줄기 푸른 빛의 궤적이 스쳤다. 그것은 일반적인 패스 루트가 아니었다. 동료의 '움직임'이 아니라, 동료가 '움직여야 할 공간'으로 미리 찔러 넣는 창조적인 길이었다.
'승우가 내 골반 움직임을 읽는다면.'
태성은 백승우의 천재적인 축구 지능을 믿기로 했다.
동료를 불신하던 전생의 껍질을 깨부수는, 태성에게는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태성은 디딤발인 오른쪽 발목에 강한 토크를 걸었다.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묵직한 과부하가 밀려왔지만, 강인한 정신력으로 고통을 억눌렀다.
**[발목 과부하 게이지: 35% 상승 중!]**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열망이 전신을 지배했다.
태성은 몸을 오른쪽으로 돌리는 척하며 김태영의 무게 중심을 한쪽으로 완벽히 쏠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디딤발을 축으로 삼아, 공을 가볍게 뒤로 긁어내며 반대편으로 몸을 뉘었다.
"뭐야?!"
김태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완벽한 몸싸움으로 가뒀다고 생각한 순간, 태성이 마술처럼 수비수의 힘을 역이용해 틈새를 만들어낸 것이다.
태성은 공을 보지도 않은 채, 오른발 뒤꿈치로 공을 툭 찍어 올렸다.
*툭.*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김태영의 머리 위를 가볍게 넘어갔다. 수비수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밀집 지역 한복판을 관통하는 백힐 칩패스였다.
그 공간은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태성이 공을 띄운 그 0.5초의 순간, 중앙에서 대기하던 백승우의 눈빛이 번뜩였다. 백승우는 태성이 몸을 비트는 각도를 보고 이미 그 공간을 직감하고 있었다.
"미친……!"
백승우의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나갔다.
상대 수비수가 뒤늦게 백승우를 쫓아 발을 뻗었지만, 공은 이미 백승우의 가슴팍에 정확하게 안착한 뒤였다. 완벽한 노마크 찬스.
**[완벽한 공간 연계 성공!]** **[발목 과부하 게이지 20% 감소]** **[현재 발목 과부하 게이지: 15%]**
터질 것처럼 터져 나가던 발목의 열감이 한순간에 씻겨 내려갔다.
"승우야! 때려!"
태성의 호통과 동시에, 백승우가 가슴으로 받아낸 공을 그대로 오른발 발리슛으로 연결했다.
*콰앙-!*
골키퍼가 몸을 날렸지만, 강력하게 회전하며 빨려 들어가는 공을 건드릴 수조차 없었다. 공은 골대 상단 구석 십자 구석에 사정없이 꽂혔다.
골망이 찢어질 듯 출렁였다.
"와……."
필드 위에 있던 모든 선수가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K리그 최강이라 자부하던 1진 수비진이, 단 두 번의 터치와 유기적인 패스 플레이만으로 완벽하게 해체당했다. 김태영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머리 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골을 넣은 백승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태성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게…… 되는구나."
백승우의 목소리에는 경외심마저 서려 있었다.
벤치 앞의 최강식 감독은 자리에 멈춰 서서 손에 쥔 태블릿을 으스러지도록 꽉 쥐었다.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단 한 번의 터치로 수비수의 무게 중심을 무너뜨리고, 보지도 않은 채 동료가 들어올 공간으로 칩패스를 찔러 넣는 플레이. 그것은 최강식이 평생을 연구하고 구현하려 애썼던, 그러나 한국 축구의 척박한 토양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가짜 9번'의 완벽한 실현이었다.
강태성은 단순한 공격수가 아니었다.
그라운드 위의 모든 전술적 움직임을 한 손에 쥐고 흔드는, 신의 시야를 가진 사령관이었다.
최강식의 입술이 가볍게 떨렸다. 마침내 찾았다. 자신의 전술을 완성해 줄 마지막 퍼즐 조각을.
하지만 그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어이, 거기 꼬맹이."
뒤쪽에서 둔탁하고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골을 먹혀 자존심이 완전히 구겨진 김태영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태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베테랑의 자존심을 짓밟힌 분노와 독기가 가득 차 있었다.
"제법인데…… 다음에도 그 발목이 버텨줄지 보자고."
김태영이 거칠게 침을 뱉으며 다시 태성의 곁으로 다가왔다.
동시에 수석 코치가 공을 중앙으로 다시 던져 넣었다. 두 번째 세션의 시작이었다.
태성이 다시 공을 받기 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
김태영이 처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살기 어린 기세로 태성을 향해 쇄도했다. 그의 눈은 공이 아닌, 태성의 오른쪽 발목을 정확히 조준하고 있었다.
거친 슬라이딩 태클이 잔디를 찢으며 태성의 디딤발을 향해 깊숙이 들어왔다.
"태성아! 피해!"
홍창민의 다급한 비명이 그라운드를 찢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