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뚝.

오른쪽 발목 안쪽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동시에 들이닥친 것은 지옥의 불구덩이에 발을 밀어 넣은 듯한 극렬한 작열통이었다. 비명이 목구멍을 찢고 터져 나왔다. 강태성은 그대로 잔디 위로 굴렀다.

허공을 휘젓는 손끝이 파들파들 떨렸다.

"공격수 강태성! 페이스 떨어집니다! 페이스 유지하세요!"

확성기를 타고 흐르는 코치의 칼날 같은 목소리.

태성은 번쩍 눈을 떴다. 시야 가득 쏟아지는 것은 카타르의 뙤약볕이 아니었다. 흐릿하고 탁한 회색빛 하늘, 그리고 코끝을 찌르는 서늘하고 습한 풀비린내.

파주 정가운데에 위치한 국가대표 트레이닝 센터(NFC)의 천연잔디 구장이었다.

"하악, 하아, 헉……!"

가슴이 터질 것처럼 요동쳤다. 태성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오른쪽 발목을 움켜쥐었다.

부러지지 않았다. 핀이 박혀 흉측하게 굳어버린 수술 자국도 없었다. 매끈하고 단단한, 터질 듯이 성난 근육이 박힌 19세 시절의 그 발목이었다.

"어이, 강태성. 엄살 부리지 말고 뛰어. 최 감독님이 두 눈 부릅뜨고 보고 계신다."

옆을 스쳐 지나가던 동료가 툭 던지듯 말했다.

태성은 멍하니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셔틀런(Shuttle Run) 테스트 - 72회차 진행 중]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최종 엔트리 발탁을 앞두고 치러진 지옥의 자체 소집 훈련 날이었다.

전생의 태성은 이곳에서 자신의 압도적인 신체 탄력과 스피드를 증명하려 무리하게 몸을 던졌었다. 동료들의 패스 길을 무시하고 오직 자신만의 돌파력으로 골망을 흔들던 독선적인 괴물 스트라이커. 결국 그 과도한 부하가 누적되어 스물네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발목이 꺾이고 은퇴의 구렁텅이로 떨어졌던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단순한 환각이 아니었다. 심장의 박동, 코를 찌르는 땀 냄새, 그리고 발목을 감싸는 팽팽한 테이핑의 압박감까지 모든 감각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회귀했다. 비극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의 그 시간으로.

웅―

그 순간, 태성의 시야가 푸른빛으로 뒤덮였다.

눈앞의 공간이 잘게 쪼개지더니, 홀로그램 형상의 정교한 3차원 축구장 궤적이 공중에 떠올랐다. 마치 전술 보드판을 뇌 속에 그대로 이식한 듯한 이질적인 감각이었다.

**[시스템 동기화 완료: '미래 전술 장부'를 각성합니다.]**

머릿속을 울리는 기계적인 음성과 함께 푸른색 텍스트가 안구 안쪽에 선명하게 박혔다.

**[플레이어: 강태성]** **[신체 상태: 정상 (우측 발목 누적 피로도 최소)]** **[특수 능력: 미래 전술 장부 (상대 수비 메커니즘 예측 및 우리 팀 패스 루트 시각화)]**

태성은 마른 침을 삼켰다. 전술 장부? 상대의 수비 패턴을 미리 읽어낸다는 뜻인가?

그러나 이어진 메시지는 가혹하기 짝이 없는 경고였다.

**[※ 인과율의 제약 (발목 과부하 게이지)]** - **현재 게이지: 0%** - **설명: 전술 장부의 예측 경로를 활용하여 극적인 신체 반응을 이끌어낼 때마다 우측 발목에 생체 전기적 과부하가 누적됩니다.** - **페널티: 게이지가 100%에 도달할 경우, 전생의 '우측 발목 분쇄 골절' 인과율이 강제로 발현됩니다.** - **경감 조건: 독단적인 돌파가 아닌, 예측된 루트를 활용한 '어시스트 및 유기적 연계 플레이'를 성공시킬 때마다 게이지가 대폭 감소합니다.**

"……미치겠군."

태성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혼자서 다 해 먹으려다가는 다시 한번 발목이 박살 나서 은퇴하라는 소리였다. 살아남고 싶다면, 그리고 기어코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싶다면 철저하게 아군을 이용하는 '사령관'이 되어야만 했다.

"강태성! 넋 놓고 안 뛰어? 벌써 다리가 풀린 거냐?"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판을 갈랐다.

대표팀 수석코치였다. 저 멀리 테크니컬 영역에서는 노트북과 태블릿을 든 분석관들이 바쁘게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차가운 안경테를 만지며 매서운 눈빛을 빛내는 최강식 감독이 서 있었다.

데이터 만능주의자이자, 아무리 이름값 높은 스타라도 전술적 가치가 없으면 가차 없이 쳐내기로 유명한 명장.

최강식의 시선이 태성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해부하듯 쫓고 있었다.

"쯧, 초장부터 밑천 드러나는구만."

삐딱한 목소리와 함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는 사내.

홍창민이었다. 이번 소집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자, 유럽 리그 진출을 노리는 다혈질의 윙어. 전생에서도 태성의 독선적인 플레이 스타일에 사사건건 태클을 걸며 으르렁거렸던 인물이었다.

홍창민은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비아냥거렸다.

"야, 태성아. 너 고교 무대에서 좀 날아다녔다고 여기가 네 개인 놀이터인 줄 아나 본데. 그렇게 혼자 볼 질질 끌다가 템포 다 잡아먹을 거면 그냥 일찌감치 짐 싸서 나가라. 여긴 국가대표팀이야."

태성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홍창민의 붉게 상기된 얼굴과 그의 팽팽하게 긴장된 허벅지 근육을 가만히 응시했다.

장부의 시각적 피드백이 홍창민의 머리 위에 둥실 떠올랐다.

**[대상: 홍창민 (LWF)]** - **현재 컨디션: 상 (스프린트 속도 극대화 상태)** - **전술적 성향: 직선적이고 빠른 침투 선호. 패스를 받기 전 몸의 중심이 이미 앞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음.**

확실히 몸 상태는 최고조였다. 날이 바짝 서 있는 맹수처럼 당장이라도 측면을 찢어발길 기세였다.

태성은 짧게 숨을 내쉬며 차분하게 말했다.

"이따가 청백전 시작하면 뛰어라."

"뭐?"

"네가 좋아하는 그 빈 공간으로 공 보낼 테니까, 제발 패스 놓치고 징징대지나 마."

"이 새끼가 진짜……!"

홍창민의 미간이 좁혀졌지만, 태성은 이미 등을 돌려 청백전 조끼가 놓인 벤치로 걸어가고 있었다.

과거의 강태성이었다면 저 도발에 흥분해 더 거칠게 몸싸움을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태성은 달랐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안광 속에서 오직 승리와 생존을 위한 계산기만이 빠르게 두드려지고 있었다.

"자, 주목! 조끼 착용한 선수들 운동장으로 입장한다!"

코치의 지시와 함께 11 대 11 자체 청백전의 막이 올랐다.

태성은 노란색 조끼를 걸친 채 전방 스트라이커 자리에 섰다. 상대 수비진은 대표팀의 베테랑 센터백들이 포진한 주전 조였다. 그들의 눈빛에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올라온 애송이 공격수를 단숨에 뭉개버리겠다는 이글거리는 적개심이 가득했다.

*삑―!*

주심의 휘슬 소리와 함께 공이 굴렀다.

순간, 태성의 시야가 완전히 변했다.

그라운드 위의 모든 선수의 발밑에서부터 가느다란 빛의 선들이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상대 수비수들이 움직이는 반경, 그들이 압박을 가해올 때 발생하는 수비 블록 사이의 미세한 균열들이 붉은색 그리드(Grid) 선으로 시각화되어 태성의 눈앞에 펼쳐졌다.

이것이 '미래 전술 장부'의 위력이었다.

상대 센터백이 몸을 돌려 전방 압박을 준비하는 궤적이 점선으로 그려졌다.

'오른쪽 수비수가 1.5m 전진해 있다. 그 배후 공간이 비어.'

태성은 본능적으로 그 공간을 향해 몸을 틀려 했다. 순간, 오른쪽 발목에서 미세한 열감이 피어오르며 시야 한구석의 게이지가 요동쳤다.

**[주의: 급격한 단독 돌파 시도 시 발목 과부하 게이지 15% 상승 예측]**

태성은 이를 악물고 디딤발의 힘을 뺐다.

지금은 내가 직접 해결할 타이밍이 아니다. 철저하게 아군을 지휘해야 한다.

센터 서클 부근에서 공을 잡은 것은 중앙 미드필더 백승우였다. 대표팀 내에서 가장 뛰어난 축구 지능을 가졌지만, 내성적인 성격 탓에 주도적으로 경기를 풀어나가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천재 미드필더.

백승우가 상대의 강한 압박에 밀려 몸을 돌리며 패스 길을 찾고 있었다. 수비수들이 그의 패스 루트를 차단하기 위해 촘촘하게 좁혀 들었다.

그때, 태성의 뇌리에 전술 장부의 경고등이 선명하게 깜빡였다.

**[인물 프로필 분석: 백승우 (CMF)]** - **특이 사항: 패스 릴리즈(Release) 시 우측 골반 축의 미세한 불균형 존재.** - **예측 결함: 압박 상태에서 전방 롱패스를 찌를 때, 볼의 궤적이 계산보다 항상 '1m 짧게' 떨어짐.**

이것은 백승우 본인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신체적 버릇이었다. 평소라면 패스 미스로 이어져 상대 수비수에게 차단당했을 치명적인 약점.

하지만 태성의 눈에는 그것이 완벽한 기회의 열쇠로 보였다.

'1m 짧게 떨어진다.'

그렇다면 남들이 출발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그 1m 앞의 공간으로 움직이면 된다.

백승우의 발끝이 공을 떠나기 직전, 태성은 이미 폭발적인 스프린트를 시작했다.

"야! 강태성 어디 가!"

상대 수비수의 당황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태성이 뛰어 들어가는 방향은 백승우의 시선이 닿는 낙하지점보다 확연히 앞쪽이었기 때문이다. 수비수들은 태성이 낙하지점을 잘못 판단했다고 확신했다. 그들은 태성이 아닌, 그 뒤쪽의 공간을 커버하기 위해 몸을 뺐다.

*툭.*

백승우의 발끝을 떠난 공이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왔다.

수비수들이 예상한 낙하지점보다 정확히 1m 짧은 위치.

그 허무맹랑해 보이던 공간에, 강태성이 귀신같이 도달해 있었다.

"뭐야?!"

수비수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치 공이 강태성의 발밑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는 완벽한 오프 더 볼(Off-the-ball) 움직임이었다.

수비 블록이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태성은 공을 가슴으로 부드럽게 받아내며 바닥에 떨어뜨렸다. 수비진이 그를 저지하기 위해 사방에서 숨 막히게 좁혀들었다. 거친 몸싸움이 들어오기 직전의 찰나.

태성의 시야에 붉게 빛나는 최적의 패스 루트가 그어졌다.

측면에서 미친 듯이 질주해 들어오는 홍창민의 동선이었다. 수비수들이 태성에게 쏠린 탓에, 홍창민의 앞길은 완전히 열려 있었다.

태성은 디딤발을 깊게 디뎠다. 오른쪽 발목에 묵직한 힘이 실렸지만, 이번에는 통증이 아닌 완벽한 해방감이 전신을 감쌌다.

**[어시스트 연계 플레이 활성화: 발목 과부하 게이지 0% 유지]**

"창민아! 뛰어라!"

태성의 입에서 벼락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의 발끝에서 뿜어져 나온 공간 패스가, 밀집된 수비진의 좁은 틈새를 종으로 완전히 갈라버렸다. 자로 잰 듯이 정교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뻗어 나가는 패스였다.

수비수들의 시선이 허망하게 찢겨 나갔다.

공은 굴러가는 소리마저 날카롭게 울리며 수비수들의 가랑이 사이를 통과해, 쇄도하는 홍창민의 발밑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가닿았다.

"……!"

홍창민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자신이 가장 원했던 속도, 가장 완벽한 궤적의 공이 눈앞에 배달되어 있었다. 단 한 번의 터치로 골키퍼와 1 대 1 찬스를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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