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오만한 이단자놈들! 질서의 이름 아래, 이 더러운 구역과 함께 한 줌의 재로 돌아가라!"

백색의 광염을 두른 마르쿠스가 광소하며 양손을 치켜올렸다.

그의 머리 위로 아카데미가 자랑하는 광범위 섬멸 소멸 마법, '성황의 심판' 마법 진이 거대하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직경만 수백 미터에 달하는 마법 진이 그레이 가든의 안개 낀 하늘을 온통 순백의 빛으로 물들였다.

그 빛은 따스한 구원의 빛이 아니었다.

닿는 모든 유기물을 분자 단위로 해체해 버리는 무자비한 청소부의 살의였다.

"현우야! 정신 차려! 이대로 가다간 진짜 다 날아간다고!"

엘리제가 내 멱살을 잡고 사정없이 흔들어댔다.

시야가 온통 검은색과 붉은색의 노이즈로 뒤덮여 그녀의 얼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귀를 찌르는 이명과 함께 뇌수가 끓어오르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다.

심연의 침식도 72%.

시스템의 근간을 건드린 대가는 언제나 지독하게 달콤하고, 지독하게 치명적이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품속을 뒤적였다.

마지막 남은 최고급 아르케 엘릭서 실린더.

반투명한 푸른빛을 띠는 액체가 유리관 속에서 차갑게 일렁이고 있었다.

"어이, 연금술사. 멱살 좀 놓고 말하지?"

나는 이빨로 실린더의 마개를 뽑아내고는 그대로 입안에 털어 넣었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극저온의 액체가 온몸의 신경망을 얼려버리는 것 같았다.

동시에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붉은 경고등이 서서히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다.

[시스템 안내: '아르케 엘릭서'의 마력 안정화 성분이 주입되었습니다.]

[심연의 침식도가 일시적으로 억제됩니다. (72% -> 45%)]

[시각 동기화가 재개됩니다. 인과 왜곡 연산 장치가 정상 작동합니다.]

눈앞을 가리던 검은 피가 걷히고, 선명해진 전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를 향해 미친개처럼 돌진해 오는 마르쿠스와 그 뒤를 따르는 광휘 기사단.

그들의 몸에는 성궤의 파편이 뿜어내는 순백의 역장이 덧씌워져 있었다.

그 어떤 마법도, 그 어떤 저주도 통하지 않는 절대적인 면역 상태.

말 그대로 시스템이 허용한 공식 치트 키를 치고 들어오는 모양새였다.

"와, 진짜 양심 어디 갔냐? 영자한테 신고하고 싶은 비주얼이네."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허공에 손가락을 튕겼다.

"근데 어쩌냐. 이 구역 서버장은 나인데."

징이이잉─!

내 눈앞에 오직 나에게만 보이는 이중 상태창이 붉은색 광채를 뿜으며 떠올랐다.

[특수 권능: '심연의 이중 상태창'을 활성화합니다.]

[영지 '그레이 가든' 내의 가용 영역을 지정합니다. (반경 1km)]

[지정 영역 내의 세계 물리 법칙을 탐색합니다…….]

[탐색 완료: 마력 전도율(Mana Conductivity), 마력 보존 상수(Mana Conservation Constant)]

마르쿠스는 이미 승리를 확신한 듯, 얼굴에 잔혹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무릎 꿇고 빌어도 늦었다, 강현우! 네놈의 그 사악한 주술은 성궤의 광휘 앞에 흔적도 없이 정화될 테니!"

"응, 아니야. 반사."

나는 상태창의 가상 키보드를 가볍게 두드렸다.

[에러 강제 주입: '역상수 공정(Inverse Constant Process)'을 실행합니다.]

[경고! 인과의 에러를 강제 적용합니다. 영역 내의 마력 법칙을 다음과 같이 왜곡합니다.]

[마력 전도율: (기존) 양수(+) -> (왜곡) 음수(-)]

[마력 보존 법칙: (기존) 정상 흐름 -> (왜곡) 역방향 과부하 축적]

그 순간, 대기를 흐르던 마력의 공식이 통째로 뒤틀렸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당연하듯, 마력은 시전자의 몸에서 밖으로 방출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레이 가든 내에서 그 상식은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어?"

가장 먼저 이상을 감지한 것은 마법 진을 완성하려던 마르쿠스였다.

그의 머리 위에서 찬란하게 빛나던 거대한 마법 진이 갑자기 기괴한 검은색으로 변색되기 시작했다.

마치 잉크가 물에 번지듯, 순백의 빛이 시커멓게 썩어 들어갔다.

"이, 이게 무슨……! 마력이 왜 밖으로 나가지 않는 거지?!"

마르쿠스가 비명을 질렀다.

방출되어 마법으로 화해야 할 마력이, 오히려 그의 손끝을 타고 몸 안으로 역류하기 시작했다.

마치 댐의 수문이 반대로 열려 강물이 역류하는 것과 같았다.

"어어? 단장님! 몸이, 제 몸이 이상합니다!"

"마력 회로가…… 으아아악!"

뒤따르던 광휘 기사단의 기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들의 갑옷 틈새로 시커멓게 변한 마력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마력 전도율이 음수로 반전되면서, 마력을 쓰면 쓸수록 그 힘이 시전자의 내부 장기와 세포를 파괴하는 독소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준비한 대반격, '역상수 공정'이었다.

"원탁의 엘리트 기사님들이라 마력 주입량이 엄청나네. 아주 그냥 뽈뽈뽈 잘도 터지겠다."

나는 팔짱을 낀 채 그들의 자멸을 감상했다.

"커, 헉……! 끄으으윽!"

마르쿠스는 전신을 부르르 떨며 피를 토해냈다.

그의 몸 주변에서 빛나던 성궤의 파편 역시 역류하는 마력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절대적인 면역을 자랑하는 성궤의 역장이라 한들, 그 힘을 유지하는 기사들의 마력 회로 자체가 내부에서 폭발하는 것까지 막아줄 수는 없었다.

오히려 마르쿠스의 몸 안에서 폭주하는 마력은 그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정확하게 찌르고 들어갔다.

6화에서 내가 샅샅이 파악해 두었던 그의 마력 순환 경로 상의 고정 결함.

심장 부근의 세 번째 마력 절개선이, 역류하는 마력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여윽시 고인물 지식은 배신을 안 해요. 마르쿠스, 너 회로 설계할 때 야매로 했지?"

나는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마르쿠스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심장 부근이 기괴하게 요동치며 푸른빛과 붉은빛이 번갈아 깜빡이고 있었다.

터지기 직전의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이, 이 괴물 같은 놈이…… 무슨 짓을 한 거냐!"

마르쿠스가 눈이 멀어버린 채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미 그의 검에는 단 한 줌의 마력도 깃들지 않았다.

검을 쥐는 힘조차 들어가지 않아, 검은 허무하게 바닥으로 떨어져 뎅그렁 소리를 냈다.

"설아야. 사냥 시간이다."

내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내 뒤편의 숲속에서 침묵하던 그림자들이 일제히 튀어나왔다.

백설아를 필두로 한 영지의 방어 병력과 피난민들이었다.

그들의 무기에는 내 상태창의 면역 가호가 부여되어 있었다.

[시스템 안내: 아군 대상 지정 완료.]

[영지 가호 '심연의 장막'이 아군의 마력 왜곡을 면역 처리합니다.]

"낙원을 침범한 사냥개들에게 죽음을."

백설아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그녀가 허공을 가르며 도약하자, 그녀의 단검이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궤적을 그렸다.

스윽─!

마력 역류로 몸을 가누지 못하던 기사단의 목이 허무하게 잘려 나갔다.

보통 때라면 제국의 최정예라 불리며 철벽같은 방어력을 자랑했을 기사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들은 그저 깡통 갑옷을 입은 무력한 샌드백에 불과했다.

"크아악! 살려줘! 마력이, 마력이 조절이 안 돼!"

"도망쳐! 이 구역은 저주받았다!"

기사단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지려 했으나, 피난민들의 화살과 마법이 그들의 등 뒤를 자비 없이 꿰뚫었다.

피난민들의 공격은 정상적인 물리 법칙을 따르며 백발백중으로 꽂힌 반면, 기사단이 방어를 위해 마력을 끌어올릴 때마다 그들의 몸은 내부에서부터 폭발하며 자멸했다.

퍼엉! 퍼어억!

여기저기서 마력 회로가 터져 나가는 기괴한 폭음이 그레이 가든의 숲을 가득 채웠다.

일방적인 도살극이었다.

기득권의 잘난 규율과 질서를 부르짖던 자들이, 자신들이 자랑하던 마력에 의해 짓겨 나가는 꼴은 실로 장관이었다.

"아아…… 아아아……."

마르쿠스는 무릎을 꿇은 채, 피눈물을 흘리며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이끄는 무적의 토벌군이, 고작 이름 없는 검은 머리 신입생의 손짓 한 번에 완벽하게 와해당했다.

그것도 어떠한 거창한 마법이나 무력의 충돌도 없이, 세계의 상식을 비틀어버린 기괴한 연산 하나 때문에.

"너, 너는 대체…… 정체가 뭐냐……?"

마르쿠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이제 분노나 오만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향한 극도의 공포만이 서려 있었다.

"나? 그냥 조용히 누워서 넷플릭스나 보고 싶어 하는 평범한 아카데미 신입생인데."

나는 그에게 다가가 가볍게 어깨를 툭 쳤다.

그 가벼운 충격이 도화선이 되었다.

"아, 사요나라."

쿠우우웅─!

마르쿠스의 심장 부근에 모여 있던 역류 마력이 마침내 임계점을 넘었다.

그의 전신에서 시커먼 마력의 폭풍이 휘몰아치며, 그의 육체를 안에서부터 완전히 분해해 버렸다.

단 한 마디의 단말마도 남기지 못한 채, 제국 아카데미의 철혈 집행관 마르쿠스 크롤은 그렇게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바닥에는 그가 가지고 있던 성궤의 복제품 파편만이 빛을 잃은 채 툭 떨어졌다.

"휴, 드디어 시끄러운 모기가 정리됐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성궤 파편을 발로 툭툭 찼다.

[시스템 안내: 적대 세력 '질서 원탁 토벌군'의 선봉대를 완전히 격퇴했습니다.]

[영지 방어 성공! 기여도 100% 반영.]

[대량의 경험치와 전리품이 획득 가능합니다…….]

상태창의 알림이 요란하게 울렸지만, 나는 기쁘지 않았다.

아직 진짜 보스는 등장하지도 않았으니까.

"엘리제, 설아. 다들 몸 사려."

나는 시선을 저 멀리, 그레이 가든의 경계선 너머로 돌렸다.

그곳에는 아직 움직이지 않은 거대한 마력의 파동이 도사리고 있었다.

마르쿠스의 자멸을, 그리고 기사단의 붕괴를 처음부터 끝까지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을 그 존재.

스으으으─.

갑자기 그레이 가든 전체를 감싸고 있던 안개가 양옆으로 갈라졌다.

공기가 얼어붙는 듯한 살인적인 압박감이 사방을 짓눌렀다.

백설아마저도 본능적인 위협을 느꼈는지 검을 꽉 쥐며 내 앞으로 나섰다.

갈라진 안개 사이로,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백금색의 화려한 갑옷, 그리고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완벽한 금발.

아카데미의 총장이자, 질서 원탁의 수장.

아드리안 폰 발렌시아였다.

그의 얼굴은 평소의 자애롭고 이성적인 미소 대신, 차갑게 굳어 있었다.

"하찮은 버러지들이 감히…… 질서의 섭리를 거스르는구나."

아드리안의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그의 손에는 마르쿠스의 복제품과는 차원이 다른, 진정한 '질서의 성궤'가 들려 있었다.

징이이잉─!

성궤가 열리며 뿜어져 나온 광채는 왕국 전체의 신성 전력망과 실시간으로 연동되어, 그레이 가든의 물리 법칙 왜곡 장막을 뿌리째 흔들기 시작했다.

그의 분노와 함께, 진정한 결전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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