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조명 아래, 홈플레이트 뒤편을 메운 4만 관중의 함성이 고막을 찢을 듯한 진동으로 변해 더그아웃 바닥을 울린다. 1점 차로 뒤진 9회초 2사 만루. 전광판의 숫자는 3대 4. 타석에는 극적인 슬럼프 탈출 이후 팀의 심장으로 우뚝 선 4번 타자 마크 올슨이 서 있고, 마운드에는 상대의 수호신이자 리그 구원왕인 잭슨 밀러가 버티고 서 있다.
밀러의 올 시즌 세이브 성공률은 무려 94.7%. 평균 구속 101.2마일의 싱커와 분당 회전수(RPM) 2,800을 상회하는 파워 슬라이더가 주무기다. 타자들의 배트를 허공에서 부러뜨리는 그 마구 앞에, 이미 우리 팀의 앞선 두 타자는 허탈한 삼진으로 물러났다.
*쉬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밀러의 초구 싱커가 안쪽 꽉 찬 보더라인을 통과한다. 시속 162킬로미터. 올슨이 반응조차 하지 못한 채 스트라이크를 허용한다.
*퍽!*
포수 미트가 터질 듯한 파열음이 둔탁하게 울려 퍼진다. 투스트라이크 원볼. 단 한 구로 시즌이 끝날 수 있는 벼랑 끝의 시점.
더그아웃 난간을 맞잡고 있는 당신의 손바닥에 축축한 땀이 배어 나온다. 당신의 뇌 뇌리에는 밀러의 3년간 투구 데이터와 2스트라이크 이후 볼 배합 메커니즘이 실시간으로 스캔되고 있다. 밀러는 만루 상황에서 풀카운트에 몰리기 전, 종방향 무브먼트가 18인치에 달하는 슬라이더로 승부를 보는 비율이 72%에 육합한다. 타자들이 100마일이 넘는 싱커를 의식해 배트 스피드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타이밍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이미 주자들은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리드 폭을 넓히고 있다. 3루 주자이자 대주자로 투입된 리드오프 잭슨의 스타트 능력은 리그 최상급. 상대 포수의 2루 송구 팝타임(Pop time)은 1.92초로 리그 평균 이하다.
베테랑의 반발을 무마하고, 4번 타자의 눈물을 닦아주며 여기까지 팀을 이끌고 온 당신이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승부욕이 요동친다. 지금 이 순간, 감독 전술의 극한을 시험할 때다.
허를 찌르는 변칙으로 상대를 마비시킬 것인가, 아니면 이 혹독한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오직 타자의 순수한 힘과 본능만을 믿고 정면 승부를 방임할 것인가.
당신은 깊은 숨을 들이쉬며 모자챙을 만진다. 주자들과 타자의 시선이 일제히 당신의 손끝으로 쏠린다. 사인을 보낼 찰나의 순간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