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째깍, 째깍, 째깍.

어둠 속에서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금속성의 마찰음이 고막을 찔렀다. 끈적하고 습한 공기가 피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바닥에 고인 검은 피가 구두굽에 밟힐 때마다 찌적거리는 불쾌한 소음이 귓가를 어지럽혔다.

"과연."

사내의 목소리는 기름을 바른 듯 매끄러웠고, 동시에 서늘했다.

"괴담의 규칙을 세금으로 치환해서 압류한다라……. 아주 흥미로운 회계 방식이군, 한강우 씨."

윤세준이 어둠을 가르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왼쪽 손목에 찬 명품 태엽 시계를 엄지손가락으로 천천히 문지르고 있었다. 금빛 초침이 돌아가는 궤적을 쫓는 그의 눈동자에는 탐욕과 가벼운 흥미가 기괴하게 뒤섞여 있었다. 마치 먹이 상자 앞의 굶주린 짐승처럼, 그의 시선은 강우의 품속에 꽂혀 있는 낡은 가죽 장부로 향했다.

강우는 흘러내리는 안경을 검지로 밀어 올렸다.

왼쪽 눈의 시야는 이미 반쯤 짓무른 것처럼 흐릿했다. 숨을 내쉴 때마다 허파 깊은 곳에서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장부를 조작해 1동 관리인의 권능을 가압류한 대가였다. 하지만 흐릿해진 왼쪽 눈의 시야 너머로, 전에는 보이지 않던 핏빛의 실타래들이 허공을 부유하고 있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적색 채무 시각.'

귀신들의 영적 비즈니스 흐름을 꿰뚫어 보는 붉은 사슬들이 윤세준의 온몸을 칭칭 감싸고 있었다. 사슬 끝자락에 매달린 숫자들이 강우의 시야에서 붉게 깜빡였다.

[피채무자: 윤세준] [보유 영적 자산: 1,200,000 포인트] [누적 미납 세액: 없음 (면탈 혐의 추적 중)]

강우의 입꼬리가 건조하게 올라갔다. 윤세준은 살기를 뿜어내며 기선 제압을 시도하고 있었지만, 강우의 눈에는 그저 걸어 다니는 고액 납세 대상자로 보일 뿐이었다.

"남의 영업장에서 노크도 없이 들어오는 건 무례한 짓인데, 윤세준 씨."

"영업장?"

윤세준이 어깨를 으쓱하며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의 발걸음이 옮겨질 때마다 복도 바닥의 핏물이 스르륵 양옆으로 갈라졌다. 그것은 단순한 걸음걸이가 아니었다. 그의 몸 주변을 감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압도적인 영력이 공간을 강제로 비틀고 있었다. 1동의 무력 1위라는 호칭은 허명이 아니었다.

"이 아파트 전체가 지옥의 사냥터야. 여기서 영업장이라니, 농담이 지나치군. 그 종이 쪼가리 하나로 관리인을 쫓아냈다고 해서 네가 이 구역의 주인이 된 줄 아는 모양인데……."

윤세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의 손가락이 태엽 시계의 초침을 꾹 눌렀다.

"그 힘, 계속 쓸 수 있는 게 아니지? 대가 없는 권능은 없으니까. 지금 네 왼쪽 눈, 제대로 보이지도 않잖아?"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윤세준은 강우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기 위해 태엽 시계의 초침을 보며 시간적 공백을 계산하고 있었다. 자정 직후, 강우가 장부를 가동한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초 단위로 복기하는 저 치밀함.

하지만 강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품속에서 붉은 가죽 장부를 천천히 꺼내 들었다.

스스스스.

장부를 펼치자, 종이 쪼가리들이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스스로 한 페이지를 넘겼다. 강우는 펜을 들어 빈 지면에 거침없이 글자를 써 내려갔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려 퍼졌다.

"뭐 하는 거지?"

윤세준이 눈썹을 찌푸렸다.

강우는 다 쓴 페이지를 찌익 찢어냈다. 그리고 윤세준을 향해 내밀었다. 검붉은 잉크로 쓰인 영수증 위로 끈적한 점액질의 영력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영역 진입에 따른 시설 이용 선불금 납부 지연장이다."

"……뭐?"

윤세준의 안색이 처음으로 굳어졌다.

"방금 전 가압류 집행을 통해 1동 4층 구역의 임시 점유권 및 관리권은 나 한강우에게 귀속되었다. 따라서 현 시간부로 이 구역은 사유지다. 무단 침입 및 시설 이용에 대한 이용료 50,000 포인트를 청구한다. 납부 기한은 지금 즉시."

강우의 목소리는 지독하리만치 차분했다.

"장난질이 선을 넘는군."

윤세준이 코웃음을 치며 영수증을 낚아채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이 종이에 닿기 직전, 허공에서 붉은색 사슬이 날카로운 금속음을 내며 튀어나왔다.

깡!

강력한 영적 반동이 윤세준의 손끝을 때렸다. 사슬은 윤세준의 손목을 단단히 옭아매며 그의 발목까지 파고들었다. 윤세준의 명품 시계 초침이 일순간 멈칫하며 뒤로 밀렸다.

"끄윽……!"

윤세준의 신음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그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돋아났다. 힘으로 사슬을 끊으려 할 때마다, 사슬은 그의 영적 자산을 실시간으로 갉아먹으며 더욱 조여들었다.

[시스템 경고: 무단 점유지에 대한 강제 징수 절차가 개시됩니다.] [체납자 윤세준의 자산 보유액에서 50,000 포인트가 일시 동결됩니다.]

"이게…… 무슨……."

윤세준이 이를 악물었다. 그의 오만한 얼굴이 당혹감으로 일그러졌다. 힘으로 아파트를 지배하던 그조차도, 인과의 법칙을 직접 비틀어 버리는 장부의 강제력 앞에서는 한낱 납세자에 불과했다.

"계산은 확실하게 해야지."

강우는 안경 너머로 지독하게 건조한 미소를 지었다.

"내 구역에서 공짜는 없다, 윤세준 씨."

사방을 채운 서늘한 정적 속에서, 승패의 저울추가 급격히 기울었다.

***

"아…… 으으……."

바닥에 쓰러져 있던 백설아가 마른침을 삼키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하얀 뺨에는 튀어 오른 검은 피가 묻어 있었고, 얇은 어깨는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이 지옥 같은 공간에서, 그녀가 목격한 것은 상식을 아득히 초월한 현장이었다.

강우는 고개를 돌려 백설아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왼쪽 눈은 핏발이 서서 완전히 붉게 물들어 있었지만, 오른쪽 눈동자만큼은 얼음처럼 차갑고 투명했다.

"시간이 없다, 백설아 씨."

강우가 차갑게 말했다.

"당신의 영혼 소멸 기한인 오전 3시까지 남은 시간은 단 두 시간 반. 내 심장 지분 50%가 연대 보증으로 묶여 있는 이상, 난 당신을 살려야만 해. 하지만 공짜로 자선사업을 할 생각은 없어."

백설아는 마른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나를…… 어떻게…… 살릴 건가요? 저 괴물들이…… 언제 다시…… 올지 몰라요. 나…… 무서워……."

그녀의 말투는 극도의 공포로 인해 뚝뚝 끊겼다. 거칠게 몰아쉬는 숨결에서 비린내가 섞여 나왔다.

강우는 품에서 새로운 계약서 한 장을 꺼내 백설아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계약서 표지에는 검은 고딕체로 명확하게 적혀 있었다.

[주식회사 은하 — 신주 인수 및 임대차 계약서]

"감상에 젖어 서로 손을 잡고 살아남자는 유치한 연대 같은 건 사절이다. 그런 건 결국 누구 하나가 배신하면 무너지는 모래성이지. 내가 제안하는 건 완벽한 비즈니스다."

강우는 펜을 백설아의 손에 쥐여주었다.

"당신이 가진 고유 영적 잠재력인 '낙인의 의지'를 '주식회사 은하'의 현물 자산으로 출자해. 그 대가로 당신은 법인의 우선주 15%를 배당받는다. 대표이사인 나는 법인의 자본금을 활용해 당신의 안전을 보장하고, 괴담의 채무로부터 당신을 방어할 의무를 진다."

"법인……? 주식회사……?"

백설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종이를 바라보았다. 괴물들이 사람의 목을 자르고 내장을 파헤치는 이 지옥에서, 주식과 지분이라니. 정신이 나간 소리처럼 들렸다.

하지만 계약서 하단에 인쇄된 붉은 인과율의 낙인을 본 순간, 그녀는 직감했다. 이것이야말로 이 미친 공간에서 유일하게 작동하는 진짜 구원줄이라는 것을.

"동의…… 할게요. 당신의…… 부속품이 되더라도…… 살고 싶어."

백설아가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 하단에 서명했다.

그 순간, 그녀의 가슴팍에서 눈부신 은빛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녀가 지닌 성수 계열의 방어 영력이 계약서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장부의 새로운 지면에 은빛 인장이 선명하게 찍혔다.

[자산 유치 성공: 백설아의 '낙인의 의지' (가치 평가액: 800,000 포인트)] [주식회사 은하 공식 설립 완료. 대표이사 한강우 지분 85%, 주주 백설아 지분 15%]

온몸을 짓누르던 죽음의 공포가 일순간 걷히는 것을 느끼며, 백설아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를 구속하던 자정의 저주 사슬이 툭, 하고 끊어져 나간 것이다.

"좋은 거래였다."

강우는 계약서를 덮으며 만족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이제 '주식회사 은하'는 단순한 구상이 아닌, 인과율의 지지를 받는 명확한 법적 실체로 존재하게 되었다.

***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윤세준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손목을 옥죄던 사슬의 장력이 다소 느슨해졌음에도, 그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강우가 보여준 계약의 힘이 자신에게 치명적인 독약이 될 수 있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미친놈이군."

윤세준이 낮게 읊조렸다.

"이 지옥에서 회계 놀이를 하며 회사를 차리다니. 한강우, 넌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한 존재야."

그의 손이 다시 태엽 시계로 향했다. *째깍, 째깍.* 초침 소리가 그의 초조함을 대변하듯 조금 빨라졌다. 그는 강우의 장부가 가진 '대가의 지불 주기'와 '공백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다. 저 장부를 빼앗을 수만 있다면, 자신이 이 아파트의 신이 될 수 있을 터였다.

강우는 윤세준의 탐욕스러운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윤세준 씨.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 내 장부를 빼앗아 지배자가 되고 싶겠지. 하지만 경고하는데, 이 장부의 세무 대가는 평범한 인간의 영혼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당장 내 왼쪽 눈과 귀가 치른 리스크를 감당할 자신은 있나?"

윤세준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넌 회계를 모른다."

강우는 한 걸음 다가서며 윤세준의 태엽 시계를 툭 쳤다.

"서로 죽고 죽이는 소모전은 비효율적이다. 기껏해야 몇백 포인트를 얻기 위해 목숨을 거는 건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지. 더 큰 시장을 보란 말이다. 이 아파트를 지배하는 '게임 설계자'들, 그놈들이 가진 무한한 영적 자산을 뜯어내고 싶지 않나?"

윤세준의 호흡이 일순 멎었다. 설계자들의 자산. 그것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선, 초월적인 힘의 근원이었다.

"동맹이라는 위선적인 단어는 쓰지 않겠다. 대신 '주식회사 은하'의 사외이사 자리를 제안하지."

강우가 장부의 한 페이지를 새로 열어 윤세준에게 보여주었다.

"사외이사 계약서다. 넌 법인의 외부 무력 자산으로 등록된다. 1동 내의 전투 및 구역 청소 업무를 외주 처리하는 조건으로, 수수료의 30%를 영적 정수로 배당하지. 단, 법인의 의사결정권과 지분은 일절 가질 수 없다. 철저한 성과급제다."

"내가 왜 네 밑으로 들어가야 하지?"

윤세준이 살기를 띠며 물었다.

"밑이 아니라 비즈니스 파트너다. 넌 안전하게 포인트를 수급하고, 난 법인의 자산을 불린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 아파트의 규칙을 파산시켜 우리를 가둔 설계자들을 끌어내린다. 너도 그 방관자 놈들의 모가지를 비틀고 싶을 텐데?"

강우의 목소리에는 지독한 계산과 함께, 설계자들을 향한 깊고 서늘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윤세준은 태엽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초침은 여전히 돌고 있었지만, 지금 강우를 공격해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와, 계약에 동참했을 때의 기대 수익률을 비교해 본 결과는 명확했다.

"……수익 분배는 확실하겠지?"

윤세준이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난 회계사다. 장부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

강우가 계약서와 펜을 내밀었다. 윤세준은 잠시 강우를 쏘아보다가, 마침내 펜을 집어 들고 서명했다.

스스스스.

장부의 페이지가 붉게 물들며, 윤세준의 서명이 낙인처럼 박혔다. 1동의 강자가 '주식회사 은하'의 사외이사로 편입되는 순간이었다. 감상적인 연대 대신, 철저한 이해관계와 자본 분할로 묶인 기괴하고 강력한 생존 동맹이 탄생했다.

"계약 성립이군."

강우가 안경을 고쳐 쓰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 순간이었다.

우르르릉!

아파트 바닥 전체가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404호의 벽면에 금이 가며 쩍쩍 갈라졌고, 그 틈새로 시커먼 진물이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

"이, 이게 무슨……!"

백설아가 비명을 지르며 강우의 뒤로 숨었다.

복도 끝에서부터 기분 나쁜 비린내를 풍기는 붉은 안개가 폭풍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안개 속에서 수천 마리의 벌레가 날갯짓을 하는 듯한 서글픈 소음이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경고: 1동 관리인이 계약 이행 의무 조항을 전면 위반했습니다!] [비상사태 발생. 관리인의 폭주로 인해 1동 복도 전체의 통로가 영구 폐쇄 단계에 돌입합니다.]

"미친……."

윤세준의 명품 시계 초침이 미친 듯이 역회전하기 시작했다. 붉은 안개는 순식간에 복도와 비상구, 창문까지 덮쳐오며 모든 탈출구를 차단해 나갔다.

질식할 것 같은 공포와 기괴한 울음소리가 가득 찬 붉은 어둠 속에서, 강우의 왼쪽 눈이 핏빛으로 번뜩였다.

강우 일행이 완전히 붉은 안개에 갇히기 직전, 복도 저편에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진 관리인의 거대한 실루엣이 다시금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의 손에는 피가 흐르는 도끼가 쥐어져 있었다.

그들의 생존을 건 진짜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된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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