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웅!
고막을 찢는 듯한 파열음과 함께 낡은 합판 문이 종잇장처럼 바스러졌다. 깨진 나무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뺨을 거칠게 긁고 지나갔다. 매캐한 먼지 구덩이 사이로 비린 생혈 향이 훅 끼쳐왔다.
스슥, 슥.
어둠을 찢고 나타난 것은 거대한 형체였다. 1동 관리인. 머리 가죽이 반쯤 벗겨져 붉은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낸 사내가 문틀을 부수며 방 안으로 거동을 들이밀었다. 그의 손에 들린, 녹슨 쇠사슬이 칭칭 감긴 피의 도끼가 바닥을 긁으며 불길한 쇳소리를 냈다. 지독하게 습한 냉기가 발목을 타고 올라와 척추를 얼려버릴 듯이 굳게 만들었다.
강우의 왼쪽 귀에서 삐이이 하는 날카로운 이명이 고막을 찔렀다. 장부를 각성한 대가로 지불한 청각의 부채가 이 순간 가장 최악의 타이밍에 발목을 잡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왼쪽 시야 너머로 붉은 안개가 피어오르듯 흐릿한 형체만 아른거렸다.
"끄... 으... 으어어..."
관리인의 찢어진 입술 사이로 검붉은 침이 뚝뚝 떨어졌다. 바닥 타일에 닿은 침이 찌지직 소리를 내며 거품을 일으켰다. 그의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오른팔이 허공을 크게 갈랐다.
휘이익!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과 함께 피의 도끼가 강우의 머리 위로 수직 낙하했다.
찰나의 순간, 강우는 몸을 옆으로 굴렸다. 둔중한 도끼날이 그가 찰나 전까지 서 있던 바닥판을 그대로 찍어 눌렀다. 쾅! 무거운 진동과 함께 시멘트 바닥이 쩍 갈라지며 눅눅한 먼지 구름이 시야를 가렸다.
바닥을 구른 강우의 안경이 비스듬히 내려앉았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쓸린 뺨에서 끈적한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의 눈빛에는 공포 대신 지독하리만치 냉정한 계산만이 번뜩이고 있었다.
오른쪽 눈으로 겨우 중심을 잡은 강우는 장부를 품에 꽉 쥔 채 관리인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바로 그때, 완전히 망가져 가던 그의 왼쪽 눈에 기이한 광경이 들어왔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관리인의 무거운 발자국이 닿는 바닥마다 붉은색 사슬 모양의 선들이 그물망처럼 얽히며 뻗어 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단순한 환각이 아니었다. 붉은 사슬 위로 반짝이는 미세한 숫자들이 어지럽게 나열되고 있었다.
'저건…….'
원귀들의 영적 비즈니스 채무 흐름. 1화에서 장부를 최초로 기동하며 지불했던 왼쪽 눈의 시각 저당이, 단순한 장애가 아닌 이 기괴한 공간의 숨겨진 인과율을 투시하는 '적색 채무 시각'으로 정착된 순간이었다.
관리인의 발밑에 선명하게 떠오른 숫자는 마이너스 부호를 그리며 요동치고 있었다.
[-4,400,000] [미납 사유: 공용 자산 무단 점유 및 승인되지 않은 혈액 약탈세 체납]
강우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지독한 계산벽을 가진 회계사의 머릿속에서 인과의 톱니바퀴가 거칠게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저 괴물은 이 아파트의 규칙을 수호하는 관리자이지만, 동시에 이 공간의 시스템에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는 탈세자였다.
"끄... 르륵... 죽... 인... 다..."
관리인이 도끼를 바닥에서 뽑아내며 다시금 몸을 돌렸다. 그의 붉은 안구가 강우의 목덜미를 정조준했다.
하지만 도끼날이 다시 호선을 그리기도 전에, 옆방인 404호의 얄팍한 벽체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며 처절한 비명이 복도를 울렸다.
"아아악!"
찢어지는 듯한 여자의 목소리.
강우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무너진 벽 너머로 향했다. 그곳에는 낡은 꽃무늬 벽지조차 핏빛으로 물든 방 한가운데, 한 여자가 쓰러져 있었다. 백설아였다. 찢어진 소맷자락 사이로 드러난 하얀 팔독에는 이미 검푸른 귀반이 돋아나 썩어 들어가고 있었고, 그녀의 목을 보이지 않는 투명한 올가미가 옥죄고 있었다.
스스스스.
그녀의 머리맡 허공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며 기괴한 활자를 그려냈다.
[영혼 지분 94% 소멸] [사망 임박: 02:45]
강우의 가슴팍이 턱 막혔다. 자신의 심장 부근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백설아와의 구출 연대 채무 계약 때문이었다. 그녀가 여기서 영혼을 완전히 빼앗겨 소멸하는 순간, 연대 보증 책임에 따라 강우 자신의 심장 지분 50% 역시 그 자리에서 압류당해 즉사하게 된다.
시간이 없었다. 남은 시간은 고작 수 분에 불과했다.
"커헉... 흑... 살... 려..."
백설아는 바닥을 손톱이 깨지도록 긁으며 강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뚝뚝 끊어지는 목소리에는 생에 대한 처절한 갈망이 담겨 있었다. 관리인은 방해물이 늘어났다는 듯, 도끼를 비스듬히 쥔 채 백설아가 있는 404호 문턱으로 거대하고 눅눅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스슥, 슥.
쇠사슬이 타일 바닥을 긁는 소리가 기괴한 박자로 방 안을 메웠다.
강우는 안경테를 차갑게 밀어 올리며 무너진 벽을 넘어 백설아의 앞으로 몸을 날렸다. 관리인의 도끼가 백설아의 이마를 찍어 누르기 직전, 강우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거칠게 끌어당겼다.
콰아앙!
도끼날이 백설아의 머리카락 몇 올을 스치며 바닥을 내리찍었다. 튀어 오른 돌가루가 강우의 옷자락을 찢었다.
"백설아 씨."
강우는 먼지 구덩이 속에서 백설아의 멱살을 잡고 그녀의 귓가에 차갑게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동정이나 연민 따위는 단 한 푼도 섞여 있지 않았다. 오직 철저한 비즈니스적 계산만이 서려 있었다.
"선택해. 여기서 저 괴물의 도끼에 찍혀 영혼까지 짓밟혀 소멸할 건지, 아니면 내 주식회사의 주주가 되어 목숨을 보존할 건지."
"무... 무슨... 윽... 컥..."
"당신의 영적 잠재력을 내게 담보로 유치하는 '생명 연장 임대 계약'이다. 계약 즉시 당신의 신체 권한 일부는 내 법인에 귀속되지만, 최소한 저 괴물 놈이 당신의 영혼을 합법적으로 도륙하는 것은 막을 수 있어. 서명해. 아니, 구두로 동의해라."
백설아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직 강우의 차가운 눈빛만이 기괴할 정도로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죽음의 공포가 그녀의 목을 조르는 와중에도, 이 남자의 목소리에는 기묘한 확신과 무게가 실려 있었다.
"동... 의... 할... 테니... 살... 려... 줘..."
그녀의 뚝뚝 끊어지는 낙인이 찍히듯 허공에 뱉어졌다.
[계약 성립] [채무자 백설아의 영적 잠재력 '낙인의 의지'가 주식회사 은하의 담보 자산으로 동결 임대됩니다.] [연대 채무 기한이 일시적으로 동결되며, 채무자의 생명 보존 권한이 대표이사 한강우에게 위임됩니다.]
장부의 페이지가 스슥 소리를 내며 격렬하게 넘어가더니, 새로운 황금빛 계약서가 낙인찍히듯 인쇄되었다. 동시에 백설아의 목을 조르던 투명한 올가미가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끊어져 나갔다. 그녀는 컥컥거리며 바닥에 엎드려 젖은 숨을 몰아쉬었다.
"이... 놈... 이... 감... 히..."
자신의 눈앞에서 먹잇감을 빼앗긴 관리인이 분노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얼굴 가죽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붉은 눈이 안와를 터뜨릴 듯이 튀어나왔다.
"공용 구역... 내에서의... 살육은... 나의... 권한... 이다..."
관리인이 다시 도끼를 치켜들었다. 이번에는 방 전체를 박살 내 버릴 듯한 광포한 기세였다.
하지만 강우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가며 품 안에서 피로 물든 괴담 장부를 높이 쳐들었다. 그의 왼쪽 눈에 얽혀 있던 적색 사슬들이 관리인의 온몸을 칭칭 감고 있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권한이라고?"
강우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잔혹하게 올라갔다.
"웃기지 마라. 은하 아파트 공동 관리 규약 제3조 및 복도 등기법에 의거, 이 복도와 방은 입주민들의 공동 재산이다. 너는 아파트 공용재산인 '복도 등기소'의 서면 승인을 받지 않고 무단으로 주민들의 혈액을 수확해 사적으로 유용했다."
관리인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그의 기괴한 눈동자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스쳤다.
"이것은 명백한 '무허가 혈액 채무 약탈'이자, 사적 소득 은닉 행위다. 1동 관리인, 너는 지난 3년간 이 구역에서 발생한 살육 수익에 대한 세금을 단 한 푼도 납부하지 않았다."
강우는 장부의 빈 페이지에 붉은 만년필로 거침없이 글자를 갈겨썼다. 서걱거리는 펜촉 소리가 방 안의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세법 제45조, 불법 소득에 대한 특별 징세 조항을 발동한다. 귀하가 무단으로 수확한 혈액 및 영적 자산에 대해 100%의 임시 수수료를 부과한다. 또한, 체납 세액의 완납 시까지 귀하의 주 무기인 '피의 도끼' 및 우측 손목의 운동 권능을 가압류한다."
"크... 으... 아아아악!"
관리인이 비명을 질렀다.
허공에서 갑자기 쇠사슬이 긁히는 듯한 날카로운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찰나의 순간, 강우의 장부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사슬들과 관리인의 몸에 얽혀 있던 적색 사슬들이 하나로 융합되며 관리인의 오른팔을 사정없이 휘감았다.
칭칭! 철컹!
"끄... 으극! 이... 이게... 무슨..."
관리인이 도끼를 쥔 손을 들어 올리려 발버둥 쳤지만, 사슬은 그의 손목을 바닥으로 사정없이 끌어내렸다. 가압류 사슬이 살 속을 파고들며 끈적이는 검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도끼를 쥔 손가락 뼈마디가 우드득 소리를 내며 뒤틀렸다.
아귀 같은 살인마가, 단지 종이 장부에 적힌 세법 조항 하나 때문에 손목이 묶인 채 단 1센티미터의 도끼질도 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주저앉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과 세법의 힘. 괴담의 규칙을 비틀어 역으로 존재 가치를 가압류하는 사채업자식 역발상 생존법이었다.
"납세 의무를 소홀히 한 대가는 뼈아플 거다."
강우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관리인을 내려다보았다.
"도끼를 들고 싶다면, 체납된 영적 세원 440만 포인트를 지금 당장 일시불로 청산해라. 그렇지 않으면 네 놈의 대가리까지 경매에 부쳐버릴 테니까."
"커... 헉... 끄으으..."
관리인은 믿기지 않는 압박감에 짓눌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던 살기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규칙을 무기로 삼던 괴물이, 규칙의 허점을 완벽하게 장악한 인간의 법률적 올가미에 걸려 완전히 무력화된 순간이었다.
방 안을 가득 채웠던 눅눅하고 불쾌한 서늘함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백설아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강우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괴물을 힘이 아닌 '계약'과 '세금'으로 굴복시키는 이 남자의 존재 자체가 그녀에게는 괴물보다 더한 충격이었다.
"후우……."
강우는 흘러내린 안경을 고쳐 쓰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왼쪽 귀의 이명은 여전히 끈적하게 귓가를 맴돌았고, 왼쪽 눈의 시야는 아찔할 정도로 흐려져 있었다. 대가는 확실히 지불되고 있었다. 하지만 생존이라는 결과값에 비하면 이 정도 부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관리인이 고통스러운 듯 기괴하게 목을 꺾으며 바닥에 검고 끈적한 피통을 울컥 토해냈다. 콰아아 하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서서히 연기처럼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일시적 가압류 집행으로 인해 이 구역에서의 물리적 실체를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상황이 완전히 정리되었다고 생각한 그 순간.
복도 깊은 곳, 등기소조차 닿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짝. 짝. 짝.
일정한 간격으로 울려 퍼지는, 지극히 여유롭고 조롱 섞인 박수 소리였다.
강우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오른쪽 눈의 시선을 박수 소리가 나는 어둠 속으로 던졌다.
"과연."
낮고 매끄러운 목소리가 어둠을 가르고 흘러나왔다.
"괴담의 규칙을 세금으로 치환해서 압류한다라……. 아주 흥미로운 회계 방식이군, 한강우 씨."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온 것은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에 고가의 명품 태엽 시계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사내였다. 1동의 또 다른 지배자이자, 힘으로 생존자들을 짓밟고 군림하던 포식자.
윤세준이었다.
그의 입가에 걸린 비틀린 미소와 태엽 시계의 초침이 째깍거리는 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깨고 다시금 새로운 파란을 예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