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눅눅한 공기를 타고 무겁게 울려 퍼졌다. 낡은 은하 아파트 1동 로비의 벽면에서 스슥하는 기괴한 마찰음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창문 틈새로 흘러드는 끈적이는 핏빛 결계가 사방을 붉게 물들였다. 입주민들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좁은 공간에 빽빽하게 모여 서로의 축축한 살결을 맞댄 채 바르르 떨었다. 사방을 에워싼 서늘한 냉기가 목덜미를 타고 축축하게 흘러내렸다.

현관 유리문은 이미 굳게 닫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손잡이를 움켜잡은 남자의 손바닥에서 끈적이는 식은땀이 흘러나와 철제 표면에 미끈거리는 흔적을 남겼다. 뒤편 엘리베이터 통로 깊은 곳에서 철사줄이 꺼덕이는 불길한 마찰음이 귓가를 후벼팠다. 도망칠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좁은 공간을 채운 사람들의 호흡은 갈수록 습한 열기를 뿜어내며 사방의 공기를 눅눅하게 오염시켰다.

"저... 저기..."

한 여자가 손가락을 떨며 1동 복도 어둠 속을 가리켰다. 복도 너머에서 슥슥 발을 끄는 기분 나쁜 구두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기이한 형체가 스르륵 솟아올랐다. 그것은 목이 비정상적으로 꺾인 채 눅눅한 수의를 걸친 원귀였다. 원귀의 입술이 갈라지며 바스락거리는 마찰음과 함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복도를 메웠다. 살을 에는 듯한 서늘한 바람이 사람들의 발목을 휘감아 돌며 끈적이는 공포를 선사했다.

원귀의 비틀린 목구멍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쇠긁는 소리처럼 스슥하며 고막을 찔렀다. 복도 바닥에 끈적이는 검은 액체를 뚝뚝 떨어뜨리며 그것이 기괴한 규칙을 선언했다.

"복도를... 달리는... 자는... 다리가... 잘린다..."

눅눅한 어둠 속에서 울리는 그 경고는 단순한 물리적 위협이 아니었다. 공간 자체를 지배하는 절대적인 제약이었다. 사람들은 숨소리마저 죽인 채 턱 끝까지 차오른 축축한 침을 삼켰다.

"말... 도... 안... 돼..."

한 청년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의 신발 밑창이 타일 바닥에 닿을 때마다 찌직거리는 둔탁한 소리가 고요를 깨트렸다.

"여기... 있으면... 다... 죽어..."

청년의 목소리는 극도로 뚝뚝 끊겼고, 두 눈은 공포로 끈적이는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그는 결국 이성을 잃고 어두운 복도 반대편을 향해 미친 듯이 발을 내디디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축축하게 젖은 바닥에 그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혔다.

청년의 거친 숨소리가 복도 공간을 채우기도 전에 슥슥하는 바람 가르는 소리가 공중을 갈랐다. 그가 서너 걸음도 채 떼기 전에 무언가 끈적이는 붉은 궤적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청년의 두 다리가 허벅지째 깨끗하게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잘려 나간 단면에서 뿜어져 나온 축축한 피가 복도 벽면을 거칠게 적셨다. 청년은 바닥을 구르며 찢어지는 비명을 스슥하는 거친 목소리로 토해냈다.

"살... 려... 줘... 아... 윽..."

청년이 잘린 다리를 붙잡으려 허우적거렸지만 손끝에 닿는 것은 끈적이는 혈사뿐이었다. 그의 몸 아래로 축축한 피 웅덩이가 고여 가며 차갑고 서늘한 기운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복도 바닥을 긁어대는 그의 손톱 소리가 슥슥하며 기괴한 울림을 남겼다. 원귀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잘려 나간 다리를 조용히 내려다볼 뿐이었다. 남은 이들은 공포에 질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온몸이 눅눅하게 굳어 버렸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한강우는 홀로 안경테를 밀어 올리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서도 끈적이는 식은땀이 흘렀지만, 눈빛만큼은 눅눅한 공포에 잠식되지 않은 채 지독하게 차가웠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무수한 숫자들이 스슥하며 어지럽게 교차하고 있었다. '복도를 달리는 자는 다리가 잘린다'는 저 규칙은 일종의 일방 계약서다. 강우의 손끝이 코트 안감 안쪽에 닿자, 평소 늘 지니고 다니던 회계 장부의 가죽 표지가 축축한 온기를 띠며 요동쳤다.

장부는 마치 심장처럼 기괴하게 쿵쾅거리며 질척이는 소리를 냈다. 가죽 모서리에서 스슥하며 피어오른 안개가 강우의 손가락을 끈적이는 거미줄처럼 옭아맸다. 평범한 종이 더미였던 장부는 이내 불길하게 빛나는 '괴담 장부'로 완벽하게 변이하기 시작했다. 서늘한 마기가 깃든 장부의 첫 페이지가 저절로 넘어가며 눅눅한 종이 냄새를 사방에 풍겼다. 강우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부조리한 공간의 인과율을 뒤틀 수 있는 단 하나의 무기가 자신의 손에 쥐어졌음을.

하지만 기적에는 응당한 대가가 따르는 법이었다. 장부의 계약 조항이 강우의 뇌리에 스슥하며 새겨지자, 그의 왼쪽 눈에 서늘한 한기가 서리며 시야가 급격히 흐려졌다. 시신경을 짓누르는 끈적이는 통증 속에서, 강우는 흐릿해진 왼쪽 눈으로 붉은빛의 거대한 사슬들을 포착했다. 그것은 원귀와 아파트 사이에 연결된 부조리한 인과 세법의 흐름이었다. 강우는 일시적으로 한쪽 눈의 시력을 저당 잡힌 대가로 귀신들의 영적 비즈니스 채무 흐름을 완벽하게 꿰뚫어 보았다. 축축한 시야 너머로 쇠사슬이 붉게 요동쳤다.

"너... 미쳤... 어...?"

뒤에 서 있던 누군가가 강우의 옷자락을 붙잡으려 했으나, 강우는 끈적이는 밤공기를 가르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구두 굽이 흐르는 피 위를 밟자 찌직거리는 눅눅한 마찰음이 복도에 울렸다. 서늘한 살기를 뿜어내던 원귀가 고개를 천천히 돌려 강우를 응시했다. 강우는 떨리는 기색 하나 없이 장부를 펼쳐 든 채 무덤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은하 아파트 1동은 주거용 건축물로 등록된 구역이다."

강우의 건조한 목소리가 복도의 눅눅한 침묵을 찢었다.

"이곳에서 입주민을 대상으로 신체 훼손 행위를 자행하는 것은 명백한 무허가 상업 활동이다."

원귀의 비틀린 얼굴에서 스슥하는 불쾌한 바람 소리가 흘러나왔다. 강우는 흐릿한 왼쪽 눈으로 보이는 붉은 사슬을 가리키며 장부에 깃펜으로 거침없이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깃펜 끝이 축축한 종이를 긁는 슥슥 소리가 복도 전체를 압도했다.

"살육이라는 행위로 공포와 영혼을 수취하는 비즈니스를 하면서도 사업자 등록조차 하지 않았다니."

강우의 입꼬리가 끈적이는 미소를 그리며 비틀려 올라갔다.

"이에 '살육 무허가 상업 규정 위반세' 명목으로 네 존재 자체를 가압류 처분한다."

장부에서 서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니 복도 바닥에 고여 있던 축축한 피가 격렬하게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질척이는 소리가 복도 벽을 타고 스슥하며 번져 나갔다. 원귀는 강우의 적반하장식 태도에 당황한 듯 몸을 부르르 떨며 기괴한 소리를 내질렀다.

그 순간, 허공에서 검은 사슬들이 스슥하는 금속성 소리를 내며 무수히 쏟아져 내렸다. 사슬들은 원귀의 비틀린 팔다리를 끈적이는 거미줄처럼 단단하게 옭아맸다.

"가... 으... 아아아..."

원귀의 눅눅한 목청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흘러나왔지만, 사슬은 자비 없이 축축한 가죽을 파고들며 조여들었다. 강우가 들고 있는 장부의 영수증 면에 원귀의 영적 권능이 강제로 전이되며 시커먼 먹물로 각인되었다. 압도적인 공포를 선사하던 존재가 단 한 장의 세금 고지서 앞에 무력하게 짓눌려 바닥에 처박혔다.

"세금 납부는 성실하게 해야지."

강우는 서늘한 시선으로 바닥에서 허우적대는 원귀를 내려다보았다. 잘린 다리 옆에서 신음하던 청년도, 뒤에서 숨죽이고 있던 생존자들도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원귀가 뿜어내던 끈적이는 마기가 서서히 걷히며 복도의 공기는 한층 가벼워졌으나, 여전히 눅눅한 기운은 가시지 않았다. 강우는 장부를 탁 소리 나게 덮으며 왼쪽 눈의 흐릿한 시야를 가볍게 비볐다. 첫 비즈니스는 성공적이었으나 몸에 새겨진 저당의 흔적은 여전히 서늘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스슥하는 미세한 진동이 뼈마디를 타고 흘렀다.

그러나 안도할 틈은 주어지지 않았다. 복도 끝, 어둠이 가장 깊게 내려앉은 곳에서 스슥하는 무거운 마찰음이 다시금 들려왔다. 무언가 거대하고 끈적이는 형체가 바닥을 질질 끌며 다가오는 소리였다. 둔탁한 금속음이 복도 내벽을 울릴 때마다 서늘한 냉기가 피부를 사정없이 후벼팠다. 이내 어둠 속에서 붉은 눈을 번뜩이며 나타난 자는 1동 전체를 지배하는 관리인이었다. 그의 손에는 축축한 피가 잔뜩 묻은 거대한 도끼가 쥐어져 있었다.

"무... 단... 침... 입... 자... 들..."

관리인의 비틀린 목구멍에서 슥슥 쇠 긁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가 도끼를 번쩍 들어 올리자 강우 일행이 서 있는 방의 문틀이 단숨에 부서져 내렸다. 끈적이는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며 눅눅한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거대한 도끼날이 문턱을 찌직거리며 넘어오는 순간, 관리인의 붉은 눈동자가 오직 강우의 얼굴만을 똑바로 겨누었다. 물러설 곳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진짜 괴물이 이빨을 드러내며 문을 완전히 부수고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도끼날이 문틀을 가르고 들어오자, 쪼개진 나무 파편들이 슥슥 소리를 내며 강우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뺨에 맺힌 미세한 핏방울이 끈적이는 식은땀과 섞여 턱 끝으로 축축하게 흘러내렸다. 관리인의 거대한 형체가 뿜어내는 서늘한 악취가 좁은 방안의 공기를 순식간에 눅눅하게 오염시켰다. 구석에 몰린 생존자들은 이빨을 마주 부딪치며 덜덜 떨었고, 몇몇은 바닥에 질척이는 오물을 흘리며 주저앉았다.

"무... 단... 침... 입... 자... 들... 은... 처... 단... 한... 다..."

관리인의 목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성은 마치 녹슨 쇠사슬이 슥슥 바닥을 긁는 듯한 불쾌한 파동을 동반했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강우를 향해 고정되자, 강우의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이 쿵쾅거렸다. 그러나 강우는 도망치는 대신 흐릿해진 왼쪽 눈을 가늘게 뜨며 관리인의 몸을 타고 흐르는 붉은 사슬들을 관찰했다. 사슬들은 관리인의 도끼와 아파트 바닥, 그리고 방 안에 모인 생존자들의 발목을 끈적이는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연결하고 있었다.

그 순간, 강우의 뇌리에 차가운 계산식이 스슥 스쳐 지나갔다. 무단 침입자라는 단어. 그것이 가리키는 계약상의 맹점이 강우의 머릿속에서 정교한 회계 장부의 형태로 맞춰지기 시작했다. 강우는 가슴팍의 괴담 장부를 다시금 움켜쥐었다. 가죽 표지에서 흘러나온 축축한 냉기가 손가락 뼈마디를 타고 올라와 심장을 서늘하게 적셨다.

"이의가 있다."

강우의 건조하고 딱딱한 목소리가 거친 도끼질 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다.

"우리는 이 아파트의 정당한 임차인 혹은 소유자다. 우리를 무단 침입자로 규정하고 처단하려는 것은 대리인인 관리인의 권한 남용이자, 관리 위탁 계약 사항의 중대한 위반이다."

관리인의 거대한 도끼가 허공에서 우뚝 멈췄다. 그의 굳어버린 관절 사이에서 찌직거리는 눅눅한 마찰음이 발생했다. 강우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흐릿한 왼쪽 눈의 시야를 빌려 장부에 거칠게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깃펜 끝이 종이를 긁는 슥슥 소리가 방 안의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계약서 제3조 2항. 관리인은 입주민의 안전한 주거 환경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귀하의 살인 행위는 '수탁 자산에 대한 고의적 가치 훼손'에 해당하며, 이에 따른 '징벌적 과세 및 임시 집행 정지'를 청구한다."

그 선언과 동시에 강우의 왼쪽 눈 뒷부분에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발생했다. 끈적이는 한기가 귓속까지 파고들며 왼쪽 청각이 일시적으로 윙윙거리는 이명 속으로 침전하기 시작했다. 장부를 조작한 대가로 오감의 일부가 강제로 압류당하는 지독한 감각이었다.

그러나 대가는 확실한 효력을 발휘했다. 허공에서 스슥하며 뻗어 나온 검은 사슬들이 관리인의 거대한 도끼날을 칭칭 감아쥐었다. 질척이는 검은 액체가 사슬을 타고 흘러내리며 도끼에 서린 붉은 살기를 빠르게 잠식해 들어갔다.

"크... 으... 으윽..."

관리인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붉은 눈을 부릅뜨고 자신의 무기를 내려다보았다. 사슬에 묶인 도끼는 단 1센티미터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강우는 한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고 한쪽 귀가 먹먹해진 상태에서도, 안경테를 차갑게 밀어 올리며 고지서를 들이밀었다.

"세법 제12조에 의거, 귀하의 처벌 권한을 자정 이후 3시간 동안 임시 압류한다. 납세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시, 다음 단계는 1동 관리 구역 전체에 대한 강제 경매 처분이다."

방 안은 쥐 죽은 듯한 침묵에 휩싸였다. 오직 관리인의 몸에서 흘러내린 끈적이는 검은 피가 바닥 타일에 닿아 찌직거리며 타들어 가는 소리만이 눅눅한 공간을 채웠다. 관리인은 강우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하다가, 이내 도끼를 바닥으로 툭 떨어뜨렸다. 슥슥하는 쇠 긁는 소리와 함께 도끼가 어둠 속으로 스르륵 사라졌다.

"내... 일... 자... 정... 세... 금... 을... 영... 수... 한... 다..."

관리인은 기괴하게 목을 꺾으며 어둠 속으로 천천히 물러섰다. 그의 거대한 형체가 완전히 사라지자, 방 안을 짓누르던 서늘한 압박감이 기적처럼 걷혔다. 구석에 몰려 있던 생존자들은 그제야 참았던 숨을 컥컥 토해내며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강우는 벽에 기대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왼쪽 눈과 귀에서 느껴지는 끈적이는 통증은 그가 치른 대가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경고하고 있었다.

위기를 넘겼다는 안도감이 퍼지기도 전에, 강우의 손에 들린 괴담 장부가 다시금 격렬하게 요동쳤다. 장부의 눅눅한 종이 위로 붉은 혈사가 스슥 소리를 내며 스스로 글자를 새겨 넣기 시작했다. 강우는 흐릿한 시야를 집중해 장부의 새로운 고지서를 읽어 내려갔다.

[긴급 연대 채무 고지] 채무자: 백설아 (1동 404호 거주) 채무 내용: 영혼 지분 90% 소멸 위기 (납기 기한: 금일 03:00) 특약 사항: 본 장부의 소유자는 채무자와 '목숨 값 채무 관계'로 얽혀 있으며, 채무 불이행 시 연대 보증 책임에 따라 소유자의 심장 지분 50%가 즉시 압류 집행됩니다.

강우의 턱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단 3시간 안에 404호에 갇힌 백설아라는 정체불명의 여자를 찾아내 구출해야만 하는 지독한 연대 책임의 사슬이 목을 죄어오고 있었다. 복도 끝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정체불명의 기괴한 비명 소리가 스슥하며 다시금 들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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