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구멍 안쪽에서 끈적한 액체가 쿨럭거리며 솟구쳤다. 귓바퀴를 타고 흘러내린 붉은 선혈이 턱선에 고였다가, 이내 뚝, 뚝 소리를 내며 바닥에 고인 핏물 위로 떨어졌다. 고막을 찢고 들어온 마담 바토리의 절대 최고조 합창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뇌수를 헤집어 놓는 진흙 같은 진동이었고, 전신을 축축하게 적셔오는 영적인 압박이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
바토리의 목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명 섞인 가창이 극장 안의 습한 공기를 사정없이 흔들었다. 벽면의 붉은 벨벳 커버 뒤에서 스슥, 스스슥하며 정체 모를 벌레들이 기어 나오는 듯한 소리가 이명의 틈새를 뚫고 들어왔다. 은하 아파트 3동을 장악한 오페라 극장의 천장이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식도처럼 꿀렁였다. 기괴하게 뒤틀린 적색 안개가 강우의 시야를 가로막았지만, 그의 왼쪽 눈—‘적색 채무 시각’은 그 안개 너머의 본질을 가차 없이 꿰뚫어 보고 있었다.
강우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잡으며 피 묻은 괴담 장부를 가슴팍에 밀착시켰다.
귀골이 으스러지는 통증 속에서도 두뇌는 얼음처럼 차갑게 돌아갔다. 감정은 사치였다. 고통 역시 회계 장부상의 일시적인 비용 지출에 불과했다. 이 일방적인 소음 피해와 신체 훼손은 고스란히 바토리의 채무 계정에 가산될 터였다.
“심리가…… 기각…… 이라고?”
강우가 피가 섞인 침을 바닥에 뱉어냈다. 그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지만, 기묘할 정도로 차분했다.
“이 무대의 지배자가 당신이라 해서, 발생한 부채까지 소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담 바토리.”
그의 동공이 왼쪽으로 무섭게 수축했다. 적색 채무 시각이 활성화되자, 허공을 가득 채운 붉은 음파의 궤적들이 미세한 숫자의 흐름으로 분해되기 시작했다. 100hz, 500hz, 그리고 소리의 파장마다 얽혀 있는 인간의 수명 단위들.
바토리는 양손을 번쩍 든 채 광소하고 있었다. 그녀의 드레스 자락 아래로 끈적끈적한 피의 사슬들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무대 바닥을 기어 다녔다.
“벌레 같은 놈이…… 여전히 입만 살았구나! 내 극장에서 네놈은 그저 독창을 돋보이게 할 제물일 뿐이다!”
그녀가 다시 숨을 들이켰다. 가슴팍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올랐다. 한 번 더 저 절대적인 음파가 쏟아진다면, 강우의 남은 청각뿐만 아니라 고막과 뇌 연수까지 통째로 파열될 것이 자명했다.
시간이 없었다. 강우는 장부의 다음 페이지를 거칠게 넘겼다. 손가락 끝에서 차가운 영기가 뿜어져 나오며 장부의 가죽 표지가 스산하게 울었다.
‘장부 조작 대가 예치.’
[경고: 괴담 장부의 특수 조항을 가동합니다. 대가로 사용자의 '오른쪽 귀의 잔여 청각' 및 '폐활량 20%'를 30분간 저당물로 예치합니다. 청산 기한 내에 세원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해당 신체 부위는 영구 압류됩니다.]
즉시 오른쪽 귀가 완벽한 침묵 속으로 잠겼다. 웅웅거리던 이명조차 사라진 지독한 적막. 동시에 폐가 쪼그라드는 듯한 극심한 호흡 곤란이 찾아왔다. 가슴을 짓누르는 습하고 무거운 압박감에 강우는 거칠게 쌕쌕거렸다. 그러나 그의 왼쪽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명징하게 빛났다.
강우는 검지손가락 끝에 묻은 자신의 적색 선혈을 장부의 공란에 문질렀다.
“……기금 소스 영양 투명 추적법(Fund Source & Nutrition Transparency Tracking Act) 가동.”
그가 속삭인 법의 이름이 장부 위에서 붉은 낙인처럼 타올랐다.
스슥, 스스스슥.
극장의 허공을 메우고 있던 바토리의 붉은 음파 주파수들 사이로, 은밀하게 숨겨져 있던 미세한 검은 실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오페라 극장 바닥을 뚫고 지하 깊은 곳, 그리고 관람석 아래에 갇혀 있는 다른 입주민들의 영혼으로 연결된 흡혈의 빨대들이었다.
바토리가 발산하는 그 경이로운 성량과 무한에 가까운 영적 에너지는 그녀 자신의 힘이 아니었다.
“당신의 그 위대한 예술이라는 것의 실체를 똑똑히 확인해 주지.”
강우가 장부를 공중으로 치켜들었다.
파지직!
극장의 천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피 안개가 일순간 거대한 스크린처럼 넓게 펼쳐졌다. 그 붉은 장막 위로, 수없이 많은 영수증의 잔상과 회계 수치들이 오성(五星)의 형태로 정렬되며 투사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토리가 지금까지 무대 뒤에서 자행해 온 ‘장부 외 비자금 탈루 내역’이었다.
[세목: 주민 수명 무단 편법 이양 및 음파 주파수 위조 연장] [납세 의무자: 마담 바토리] [누적 체납액: 78,400,000 CC (생명력 환산 가치)] [상세: 3동 거주민 142명의 잔여 수명을 '무대 기부금' 명목으로 강제 징수 후 사적 자산으로 유용. 원천징수 의무 불이행 및 불법 증여 혐의.]
허공에 떠오른 거대한 적색 영수증이 극장 전체를 붉게 물들였다.
그 순간, 극장 구석구석에서 스산한 비명이 일어났다. 관람석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혼령들과 half-dead 상태의 주주들이 일제히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몸에서 뻗어 나와 바토리의 드레스로 이어져 있던 붉은 실선들이 영수증의 인과율에 묶여 팽팽하게 당겨졌다.
“저…… 저건…… 내 수명이야…….” “내…… 목소리를…… 저 여자가…… 훔쳐 갔어…….”
관람석 뒤편에서 뚝, 뚝 끊기는 기괴한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원귀들의 목소리는 비참했고, 억울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대의 관객으로서 자발적으로 환호한 것이 아니라, 바토리의 불법적인 조세 포탈과 강제 징수에 의해 영혼을 착취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인지한 것이었다.
바토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그녀의 목덜미를 조이고 있던 사슬이 영수증의 인과와 맞물려 더욱 깊숙이 살을 파고들었다.
“이…… 이 벌레 같은 놈이 무슨 짓을……! 내 무대를, 내 고결한 예술을 감히 저급한 종이 쪼가리로 모독하다니!”
“예술도 세금은 냅니다, 마담.”
강우가 건조하게 대꾸했다.
“당신이 자랑하던 그 목소리의 원천은 타인의 재산을 무단으로 도용한 장물(臟物)에 불과합니다. 장물의 소유권은 인정되지 않으며, 현 시간부로 해당 자산에 대한 가압류 및 환수 조치를 집행합니다.”
글씨가 적힌 장부의 페이지가 스스로 넘어갔다.
화르륵!
허공의 영수증이 불타오르며, 바토리의 드레스로 흘러 들어가던 검은 실선들이 역방향으로 진동하기 시작했다. 바토리가 움켜쥐고 있던 거대한 영적 에너지가 강제로 분해되어 원래의 소유주들에게 반환되는 과정이었다.
쿠구구구구!
극장의 바닥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바토리의 몸을 감싸고 있던 찬란한 붉은 광휘가 급격히 바래 가며, 누더기 같은 회색빛 안개가 그녀의 피부 위로 흘러내렸다. 절대 최고조 합창의 성량이 반 토막 이하로 뚝 떨어졌다. 그녀의 기괴한 압박감에 짓눌려 숨도 쉬지 못하던 극장 안의 분위기가 일순간 반전되었다.
관람석 한구석에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백설아가 피를 흘리는 귀를 움켜쥔 채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녀의 눈에 경악과 함께 새로운 생기가 돌았다.
“강…… 우 씨가…… 해냈어……. 저 괴물의…… 힘이…… 줄어들고…… 있어…….”
그녀의 말투는 여전히 저주 여파로 뚝뚝 끊겼지만, 목소리에는 단호한 의지가 실려 있었다.
옆에 서 있던 윤세준 역시 오만한 미소를 지우지 못한 채, 강우의 지독하리만치 철저한 계산법에 혀를 내둘렀다.
“미친 자식. 괴물의 목숨 줄을 장부로 끊어 놓는군. 야, 주주들아! 대표이사가 판을 깔아줬는데 멍하니 구경만 할 거냐?”
윤세준이 자신의 품에서 성수가 담긴 유리병들을 꺼내 들었다. 그의 손끝에서 푸른빛의 영적 불꽃이 피어올랐다.
“투자금을 회수할 시간이다. 전원, 대표이사를 지원해라!”
백설아와 주식회사 은하의 주주들이 일제히 자신들의 영적 자산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지닌 희미한 성수의 힘과 생명력의 잔재들이 무대로 거대하게 수렴되었다. 푸른 성수가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강우의 발밑을 채웠고, 그의 무너져 가던 신체적 반동을 일시적으로 지탱해 주었다.
“크아아아악! 감히…… 감히 하등한 가축 같은 년놈들이 내 무대에서 반역을 꾀하다니!”
바토리가 단말마 같은 비명을 질렀다. 힘의 절반 이상을 압류당한 그녀의 얼굴은 더 이상 아름다운 귀부인의 그것이 아니었다. 주름 가득한 노파의 피부와 썩어 들어가는 눈동자가 피 안개 사이로 드러났다.
그녀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죽여버리겠다! 내 오페라의 대미는 너희들의 사지가 찢겨 나가는 비극이다!”
바토리가 허공을 향해 손가락을 꺾었다.
스슥, 스스스슥!
극장 좌우 벽면에 부조로 조각되어 있던 귀공녀 사신 조각상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벽면에서 이탈했다. 돌로 만들어진 그들의 눈에서 붉은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사신들이 쥐고 있던 거대한 강철 쇠사슬들이 살아 있는 뱀처럼 공중으로 솟구치더니, 무대 중앙에 서 있던 강우를 향해 무섭게 쇄도했다.
콰창! 콰장창!
강우는 피하려 하지 않았다. 저당 잡힌 폐활량 때문에 몸을 빠르게 움직일 수도 없었거니와, 그의 머릿속은 이미 다음 단계의 손익 계산을 끝마친 상태였다.
차가운 강철 사슬들이 강우의 발목과 손목, 그리고 가슴을 사정없이 휘감았다.
척! 척!
사슬이 살을 파고들며 뼈를 압박하는 둔탁한 감촉이 전해졌다. 끈적이고 차가운 쇠붙이의 질감이 온몸을 조여 올 때마다 비릿한 쇠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사신 조각상들이 사슬의 고리를 팽팽하게 당기자, 강우의 몸이 허공으로 약간 들려 올려졌다. 조금만 더 힘이 가해진다면 사지가 말 그대로 찢겨 나갈 절대적인 위기였다.
바토리가 피가 섞인 가래침을 뱉으며 강우의 면전까지 날아와 하강했다.
“끝이다, 회계사 놈아. 네 잘난 장부와 함께 갈가리 찢겨 무대의 거름이 되거라!”
그녀가 손을 들어 올려 사신들에게 사형 집행의 신호를 내리려 했다.
사슬이 뼈마디를 부술 듯이 조여드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
강우의 입꼬리가 천천히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그의 눈동자에는 공포도, 절망도 없었다. 오직 모든 리스크를 통제 하에 두었다는 오만한 확신만이 서려 있었다.
오른쪽 귀는 들리지 않았지만, 왼쪽 귀의 이명 너머로 세법의 인과율이 완성되는 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강우는 사슬에 묶여 옴짝달싹할 수 없는 손가락을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셔츠 안쪽 호주머니 속에서 피가 굳어 가죽과 눌어붙은 검은 수첩 가죽 조각 하나를 꺼내 바토리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것은 귀부인의 아방궁 소유 장고에서 가압류했던, 마담 바토리의 피 젖은 음악회 초청장 고서의 일부였다.
초청장 가죽 표지에 음각으로 새겨진 정교한 바이올린 무늬가, 바토리의 분노 어린 숨결에 반응하여 기이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게 뭔지 기억하십니까?”
강우의 나직한 목소리가 적막한 무대 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