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덜미를 향해 수직으로 내리꽂히던 지휘자의 차가운 메스날이 닿기 직전, 끈적끈적한 어둠이 시야를 통째로 덮쳤다.
스르륵, 스슥.
귓가를 간지럽히는 불쾌한 마찰음과 함께 발밑의 공간이 밑바닥부터 뒤틀렸다. 허공에 흩뿌려지던 검은 피와 찢겨 나간 가죽 촉수의 잔해들이 순식간에 먼지처럼 바스러졌다. 살을 에는 듯한 유황 냄새가 콧방귀를 뀌듯 훅 끼쳐왔고,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기묘한 진동에 몸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눈을 떴을 때, 한강우의 신체는 이미 3동 극장의 거친 가죽 좌석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습한 땀과 먼지가 찌든 붉은 벨벳 시트가 등 가죽에 기분 나쁘게 달라붙었다. 사방은 칠흑 같은 암전이었으나, 왼쪽 눈에 깃든 적색 채무 시각은 극장의 기괴한 윤곽을 피처럼 붉은 선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쿵!
무대 위에서 둔탁한 파열음이 울리며 붉은 장막이 서서히 걷혔다. 그와 동시에 천장을 가로지르는 수십 개의 굵은 로프들이 삐걱거리는 비명을 질렀다. 스르륵, 스르릉. 똬리를 튼 뱀처럼 요동치던 밧줄 끝에는 흑색 정장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시체 무용수들이 매달려 있었다.
목이 기괴하게 꺾인 무용수들의 눈구멍에서 진득한 진물이 흘러내렸다. 그들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무대 바닥 아래 입을 벌리고 있는 시커먼 가시밭을 향해 수직으로 투하되었다.
푸학! 콰직!
살점이 터지고 뼈가 가시날에 관통당하는 습한 타격음이 극장 안을 가득 메웠다. 가시에 꿰뚫린 시체들이 허공에서 버둥거리며 기괴한 합창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목구멍에 고인 썩은 피를 뿜어내며 그들이 내지르는 비명은 그대로 하나의 기이한 불협화음이 되어 극장 벽면을 타고 흘러내렸다.
“끼에에에엑! 끄아아아악!”
고막을 후벼 파는 초고주파의 파동이 사방의 공기를 짓눌렀다.
강우의 품 안에서 끈적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2동 귀부인의 아방궁에서 회수했던 ‘마담 바토리의 피 젖은 음악회 초청장 고서’였다. 고서 표지에 음각으로 새겨진 바이올린 무늬가 무용수들의 비명 소리에 진동하며 부르르 떨렸다.
스며 나오는 붉은 안개가 강우의 시야를 흐릿하게 가로막는 순간, 옆자리에서 무거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강, 우 씨…… 머리가…… 쪼개…… 질 것…… 같아…….”
설아가 양손으로 귀를 감싸 쥔 채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녀의 손가락 틈새로 붉은 선혈이 끈적하게 배어 나와 하얀 뺨을 적셨다. 2동 귀부인이 남긴 저주의 잔재가 이 극장의 음파와 공명하며 그녀의 영혼 자체를 짓이기고 있었다.
강우의 왼쪽 눈앞에 붉은 경고창이 어지럽게 명멸했다.
[경고: 채무자 백설아의 생명력 임계치 13% 돌파.]
[특약 사항 ‘연대 보증’ 조항에 의거하여, 주식회사 은하 대표이사 한강우의 영혼 지분 50%가 강제 가압류 대기 상태로 전환됩니다.]
심장을 옥죄어오는 시커먼 인과의 사슬이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것처럼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호흡이 가빠지고 가슴뼈가 내려앉는 감각 속에서도 강우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 회계 장부는 이 고통마저 철저한 수치와 리스크의 영역으로 분리해 내고 있었다.
백설아의 생명력 13%. 자신에게 부과된 가압류 대기 지분 50%.
이것은 감정의 영역이 아니었다. 청산해야 할 명확한 부채이자, 회수해야 할 담보의 손실이었다.
“백설아, 정신 차려라. 아직 파산 선고는 내려지지 않았다.”
강우가 건조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 들었다.
바로 그 순간, 극장의 무대 중앙이 피처럼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무대 바닥의 시체 더미 위로 우아하게 솟아오르는 형상이 있었다.
마담 바토리.
그녀의 드레스는 신선한 선혈로 짜여진 듯 붉고 축축하게 젖어 있었으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에 질척거리는 핏빛 발자국을 남겼다. 그녀가 입을 열자, 고혹적이면서도 소름 끼치는 소프라노의 독창이 극장 내부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
단순한 노래가 아니었다. 그것은 물리적인 파괴력을 지닌 정교한 음파의 칼날이었다.
공기가 스산하게 웅얼거리며 요동치더니, 관객석에 억지로 앉아 있던 일반 입주민들의 신체로 쏟아졌다.
“악! 끄으윽!”
첫 음절이 허공을 가르자마자, 맨 앞줄에 앉아 있던 남자의 두 귀가 펑 소리를 내며 터져 나갔다.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뒷좌석의 승객들을 적셨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또 다른 여자의 안구가 고압을 견디지 못하고 끈적한 액체가 되어 뺨으로 흘러내렸다. 음파에 닿는 모든 생명체의 고막과 신체가 차례로 파열되며 피비린내 나는 잔혹한 오페라의 연출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이것이 마담 바토리가 설계한 비극의 무대였다. 관객들의 비명과 파멸을 자양분 삼아 완성되는 절대적인 살인 영역.
강우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시트에서 몸을 떼어내는 순간, 가죽이 찢어지는 듯한 불쾌한 마찰음이 등 뒤에서 들렸다. 그는 붉은 안개를 헤치며 무대를 향해 한 걸음씩 걸어 나갔다.
품 안의 고서가 더욱 격렬하게 진동했다. 바이올린 음각 무늬가 비명 소리를 흡수하듯 부르르 떨릴 때마다, 머리를 짓누르던 음파의 압박이 미세하게 감쇄되는 것을 느꼈다.
‘소리의 주파수를 상쇄하는 인과적 장치.’
계산은 끝났다. 강우는 장부를 넓게 펼쳐 들고 무대 턱 밑까지 직진했다. 그의 구두 굽이 피로 물든 바닥을 밟을 때마다 찹, 찹 하는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렸다. 만년필 끝을 장부에 대고,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목소리는 비명과 광기의 연주로 가득 찬 극장 안을 서늘하게 가로질렀다.
“공연법 제4조 및 은하 아파트 공동 관리 규약 제21조 위반.”
바토리의 노랫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무대 위의 붉은 눈동자가 오만하게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강우는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장부의 잉크를 적셨다.
“해당 공연은 사전 소음 유발 규제를 전면 불이행했으며, 주위 동의를 얻지 않은 무단 주거 침입 소란죄에 해당한다. 이에 본 주식회사 은하 대표이사의 권한으로 정식 심리를 제기한다.”
무대 위의 연주가 일순간 뚝 끊겼다.
매달려 있던 시체 무용수들이 일제히 고개를 꺾어 강우를 내려다보았고, 가시밭의 신음 소리도 멎었다. 적막 속에서 마담 바토리가 낮게 웃기 시작했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쇠긁는 소리처럼 기분 나쁘게 고막을 긁어댔다.
“심리……? 한낱 벌레 같은 인간이, 내 위대한 예술의 무대 위에서 감히 인간의 법률을 읊조리는구나. 이곳은 내 영지다. 내가 곧 법이자 규칙이거늘,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바토리의 손끝이 강우를 향했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기괴하게 찢어지며 다시 한번 소프라노의 독창을 자아냈다. 이번에는 광범위한 살포가 아니었다. 오직 한강우라는 하나의 과세 대상을 완전히 뭉개버리기 위한 전속 음파 투사였다.
“아아아아아——!”
공기가 찢어지는 고주파의 진동이 강우의 전신을 향해 쇄도했다. 눈앞의 공간 자체가 일그러지며 끈적한 붉은 장막이 그를 덮쳐왔다.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통증과 함께 왼쪽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강우는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그의 만년필은 이미 장부 위에 새로운 계약의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담보물 실행.”
강우의 목소리는 바람 빠진 소리처럼 건조했으나 명확했다.
“피압류자 윤세준의 소유였던 ‘귀빈 방어 결계’의 임시 전용을 신청한다. 해당 자산의 소유권은 현재 주식회사 은하에 가압류되어 있으므로, 대표이사의 재량에 따라 즉각적인 담보 소모를 집행한다.”
서걱!
장부의 한 페이지가 거칠게 찢겨 나가며 공중에서 불타올랐다.
그와 동시에 강우의 주변으로 반투명한 금빛의 장막이 스르륵 솟아올랐다. 윤세준이 지니고 있던 가장 강력한 영적 방어구의 권능이 장부의 인과율 조작을 통해 강우의 방패로 화한 것이다.
쾅! 콰과광!
바토리의 살인적인 음파가 금빛 결계에 부딪치며 격렬한 스파크를 일으켰다. 쩌적, 쩌적 하는 불쾌한 균열음이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결계 표면이 붉은 음파에 의해 조금씩 깎여 나갔다.
“이것은……!”
바토리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스쳤다. 자신의 절대적인 공격이 한낱 방어막에 막혀 진입하지 못하는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그녀의 미간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타인의 권능을 이렇게 제멋대로 다루다니…… 쥐새끼 같은 놈!”
“제멋대로가 아니다. 합법적인 자산 매각 및 담보 집행이다.”
강우는 결계 너머로 바토리를 응시하며 차갑게 대꾸했다. 그의 왼쪽 눈, 적색 채무 시각은 이미 바토리의 전신을 감싸고 있는 붉은 실핏줄 같은 채무의 흐름을 꿰뚫고 있었다.
[마담 바토리: 사전 소음 규제 미준수 벌과금 3,200,000 CC 체납 중.] [불법 영토 침입 및 주거 소란죄 과태료 5,500,000 CC 누적.]
“당신의 무허가 공연으로 인해 우리 주식회사 은하의 주주들이 심각한 정신적, 신체적 손실을 입었다. 이는 명백한 영업 방해이자 불공정 거래 행위다. 지금 즉시 소음을 중단하고 과태료를 청산하지 않으면, 이 극장 전체를 강제 압류 처분하겠다.”
“닥쳐라! 내 무대에서 감히 파산을 논해?”
바토리가 격노하며 양손을 치켜들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안개가 극장 천장으로 치솟으며, 매달린 시체들의 비명 소리를 더욱 증폭시켰다.
결계가 부서져 나가는 찰나의 시간 속에서, 강우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명령했다.
“백설아. 움직여라.”
그 짧은 지시에,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던 설아가 이가 부러질 정도로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귀에서는 여전히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으나, 눈빛만큼은 가차 없는 행동대장의 그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 으…… 알겠…… 어요…… 대표…… 님.”
설아는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관객석으로 뛰어들었다. 그녀의 손에 쥐어진 낙인의 의지가 붉게 타오르며 주변의 어둠을 갈랐다.
“모두…… 일어나……! 죽고…… 싶지…… 않으면…… 이쪽으로……!”
설아의 뚝뚝 끊기는 목소리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던 주주들의 귀에 내리꽂혔다. 그녀는 강우가 바토리의 이목과 음파 공격을 전면에서 받아내며 벽을 치고 있는 사이, 관객석에 남은 주주들과 생존자들을 이끌고 비상 방사 통로로 향했다.
“끄으윽, 설아 씨! 하지만 저놈이……!”
“대표님이…… 길을…… 열었어……. 우리는…… 도망쳐서…… 결계를…… 유지…… 해야 해……!”
설아는 거칠게 주주들의 덜미를 잡아채며 통로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녀의 헌신적인 호위와 기민한 대피 유도 덕분에, 강우는 주변의 자잘한 방해 요소 없이 오롯이 무대 위의 바토리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완벽한 일대일의 전장을 확보하게 되었다.
바토리는 관객들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며 조소했다.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이 극장 자체가 내 목구멍 안쪽이나 다름없거늘!”
그녀가 발을 구르자, 무대 바닥의 가시밭에서 뿜어져 나온 끈적한 핏물이 해일처럼 솟구쳐 강우의 금빛 결계를 덮쳤다. 철벅, 철퍽 하는 불쾌한 촉각적 충격과 함께 결계의 빛이 급격히 약해졌다.
강우는 장부의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그의 손가락 끝은 이미 피로 물들어 미끈거렸으나, 펜촉을 움직이는 궤적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피고 바토리. 소음 공해 및 무단 영토 침입에 대한 긴급 제재 조항을 발동한다. 피고의 가창 행위 자체를 강력 범죄 소음으로 규정, 매 초당 1,000,000 CC의 과태료를 즉시 징수하겠다. 납부 능력이 없을 시, 피고의 발성 기관을 가압류한다.”
[인과 세법 제114조: 공공의 안녕을 해치는 무단 소음 및 영적 위해 행위에 대해 즉각적인 자산 압류 권한이 부여됩니다.]
[체납 고지서가 발급되었습니다.]
허공에서 쇠사슬이 긁히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붉은 안개를 뚫고 나타난 시커먼 사슬들이 마담 바토리의 목덜미와 양팔을 향해 뱀처럼 날아들었다.
“이깟 쇠사슬 따위가!”
바토리가 소프라노의 고음을 질렀다. 강력한 음파의 파동이 날아오던 사슬들을 타격했다. 쿠웅! 귀청을 찢는 폭음과 함께 사슬들이 공중에서 요동쳤으나, 인과의 법칙으로 묶인 사슬은 완전히 끊어지지 않고 오히려 그녀의 목을 조여들기 시작했다.
스르륵, 끈적이는 사슬이 그녀의 하얀 목 피부를 파고들며 검붉은 자국을 남겼다. 바토리의 아름다운 얼굴이 괴물처럼 일그러졌다.
“크윽…… 벌레 같은 놈이 감히 내 목을……!”
그녀는 목이 죄어오는 고통 속에서도 광기 어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의 눈동자에 서린 살의가 극에 달했다.
“심리? 과태료? 재판? 하하하! 우스운 소리 마라! 이곳의 지배자는 나다! 내 무대에서 내려지는 판결은 오직 하나, 너희들의 처참한 죽음뿐이다!”
바토리가 공중으로 서서히 떠올랐다. 그녀의 드레스에서 뿜어져 나온 피 안개가 극장 전체를 완전히 장악했다. 사방의 벽면과 천장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내장 기관처럼 붉고 끈적하게 변해갔다.
“내 예술의 최고조를 보여주마. 관객이 없는 무대라 할지라도, 너의 비명만큼은 가장 아름다운 악기가 될 테니!”
그녀는 목에 감긴 사슬을 억지로 버텨내며,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모든 영적 에너지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가창이 아니었다. 극장의 모든 원귀들과 시체들의 영혼을 한데 뭉쳐 터뜨리는 절대 최고조 합창(Grand Finale)의 전조였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음파의 성량이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로 증폭되었다. 사방의 공기가 미친 듯이 진동하며 강우의 금빛 결계를 완전히 산산조각 내버렸다. 콰장창! 유리창이 깨지는 듯한 비명과 함께 결계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강우의 전신에 바토리의 절대적인 가창 공격이 그대로 쏟아졌다.
“……!!”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강우의 귀골 깊은 곳에서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둔탁한 파열음이 일어났다.
귓구멍 속에서 뜨겁고 끈적한 액체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붉은 선혈이 양 귀를 타고 내리며 목덜미를 적셨고, 시야가 온통 적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강우의 왼쪽 눈은 바토리의 목덜미에 감긴 사슬이 더욱 단단히 조여드는 것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피비린내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서, 강우는 피 묻은 장부를 움켜쥔 채 입꼬리를 기괴하게 올렸다.
귀에서 뿜어져 나오는 선혈이 바닥에 툭, 툭 떨어지며 새로운 인과의 영수증을 적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