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철창이 맞물리는 쇳소리는 유난히 건조하고 날카로웠다.

탈탈탈, 둔탁하게 굴러가는 소리를 내며 윤세준의 명품 태엽 시계가 핏물 고인 바닥을 굴렀다. 사파이어 글라스 너머로 미세하게 움직이던 초침이 붉은 점액에 걸려 스슥, 스슥,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멈춰 섰다. 강우는 구두 굽으로 그 비싼 스위스제 시계를 가볍게 짓밟았다. 쩍, 가죽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톱니바퀴들이 으스러져 진흙 속에 박혔다.

“너…… 어떻게…….”

철창 안쪽, 온몸의 가죽이 벗겨진 것처럼 붉은 진흙투성이가 된 윤세준이 쇠창살을 움켜쥐었다. 손가락 끝에서 흘러내린 끈적이는 진물이 검은 쇠창살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그의 목구멍에서 끓어오르는 소리는 젖은 가죽을 비비는 것처럼 서늘하고 축축했다.

“내…… 시계를…… 그…… 타이밍을…….”

강우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은 채,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왼쪽 눈의 적색 채무 시각이 번뜩였다. 윤세준의 전신에 칭칭 감겨 있던 붉은색 사슬들이 이제는 강우의 손끝으로 이어져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자정 직후 10초.”

강우의 목소리는 회계 장부의 건조한 숫자만큼이나 기계적이었다.

“내가 괴담 장부의 대가를 지불하느라 오감이 차단되는 순간. 미각이든, 시각이든, 청각이든 일시적으로 마비되어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는 그 10초의 공백. 그걸 노리려고 사흘 동안 내 옆에서 태엽 시계의 초침을 초 단위로 쪼개며 관측했겠지. 내가 숨을 들이쉬는 주기, 장부를 펼치는 속도, 잉크가 마르는 시간까지 전부 계산해서.”

윤세준의 동공이 잘게 떨렸다. 그의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은 눈물이 아니라 검붉은 피였다.

“그…… 러나…… 분명…… 10초…… 정지…… 했잖아…….”

“정지했지. 하지만 내 장부의 소유권은 정지하지 않아.”

강우가 품에서 가죽 표지의 괴담 장부를 꺼내 들었다. 장부의 모서리마다 묻은 마른 핏자국이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났다.

“네가 내 심장을 찌르려 칼을 뽑았던 그 10초 동안, 내 장부는 이미 백설아에게 ‘단기 영혼 신탁 임대’ 계약으로 양도되어 있었어. 네가 찌른 건 내 육체였지만, 네가 침해한 것은 ‘주식회사 은하’의 수탁 자산이었다는 뜻이다. 사유 자산 무단 침해 및 배임죄. 법인 규약 제4조에 의거해, 네가 1동에서 축적한 모든 영적 권능과 신체 지분은 그 즉시 가압류 집행 대상이 되었지.”

윤세준이 고개를 흔들며 쇠창살을 들이받았다. 쿠엉, 쿵, 기괴한 타격음이 복도에 울려 퍼졌다.

“으…… 아아아! 강우…… 네놈…… 처음부터……!”

“의심스러운 채권자는 만기가 오기 전에 담보를 처분하는 법이야.”

강우는 미련 없이 뒤를 돌았다.

바로 그 순간, 아파트 전체가 거대한 생물의 위장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벽지가 찢어지며 그 틈새로 시커먼 가죽질의 피막이 돋아났다. 3동 아파트를 감싸고 있던 피막이 마치 거대한 막구조 가죽처럼 사방으로 팽창하며, 아파트 단지의 정중앙을 거대한 원형 극장의 형태로 변형시키기 시작했다. 끈적이는 타르 냄새와 썩은 내 가득한 습한 바람이 사방에서 스쳐 지나갔다.

스스스슥, 스스스슥.

귀를 긁는 듯한 불쾌한 마찰음이 천장에서 들려왔다. 가죽 막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햇빛 한 점 통과하지 못하는 완벽한 연옥의 극장이 완성되고 있었다.

강우는 장부를 펼쳤다. 윤세준에게서 강제 집행한 신체 권리와 1동의 가압류 지분이 장부의 백지 위에서 붉은 글씨로 빠르게 정산되기 시작했다.

[가압류 자산: 윤세준의 영적 지분 100% 및 신체 통제권] [처분 내역: 3동 ‘마담 바토리의 연옥 극장’ 진입용 전방위 장막 통행권으로 강제 치환]

파지직!

장부에서 뻗어 나온 붉은 쇠사슬이 윤세준의 가슴팍을 뚫고 들어가 그의 영혼 깊숙한 곳에 찍혀 있던 낙인을 뜯어냈다. 윤세준은 단말마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털썩 쓰러져 쇠창살 틈새로 끈적이는 진흙처럼 흘러내렸다.

동시에 강우의 손바닥 위에 검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기괴한 마크가 새겨진 통행 티켓 한 장이 떨어졌다. 티켓 표면은 차갑고 축축했으며, 만질 때마다 소름 끼치는 이명이 귓가를 때렸다.

“들어가실 준비는 끝났습니까, 대표님.”

어둠 속에서 백설아가 걸어 나왔다. 그녀의 왼쪽 귀 밑에는 여전히 2동 귀부인의 전파 소음 저주로 인해 흘러내린 핏자국이 가늘게 말라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투명하고 단단했다.

강우는 그녀를 가만히 응시했다.

“가처분 백업 계약서의 효력은 확인했나?”

“예.”

백설아가 품에서 자신이 서명한 붉은 인장의 계약서를 꺼내 보였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목소리만큼은 흔들림이 없었다.

“제 영혼과 낙인의 의지를 담보로 한 신탁 계약. 대표님이 무력화되거나 장부의 대가를 청산하지 못해 신체 지분을 빼앗길 위기에 처할 경우, 제 모든 잔여 생명력이 대표님의 부채를 상쇄하는 즉시 예치금으로 자동 전환되도록 설정했습니다. 이 조항으로 인해…… 저는 이제 대표님과 완벽하게 묶인 셈이네요.”

그녀의 말에는 슬픔이나 두려움 따위의 감정은 섞여 있지 않았다.

이 지옥 같은 은하 아파트에서, 인간적인 애정이나 값싼 동정은 가장 먼저 썩어 문드러지는 배신자의 전유물일 뿐이다. 백설아가 느낀 것은 구원이라는 이름의 완벽하게 영수 보증된 신뢰였다. 한강우라는 남자는 감정 대신 숫자로, 눈물 대신 철저한 계약으로 자신을 지켜주었다.

법적인 구속력이야말로 이 미친 공간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진리였다.

“대표님의 자산 가치가 0이 되기 전까지, 전 부도나지 않습니다.”

백설아가 단호하게 덧붙였다.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이 회사의 소유주와 끝을 함께하겠다는 등기 특약 합의를 성사한 걸로 알겠습니다.”

강우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좋은 자세다. 주주로서의 의무를 다하도록.”

그는 장부의 하단, 백설아와의 계약서 아래에 기재된 특약 사항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특약 사항: 채무자(백설아)가 거주하는 도(domicile, 은하 아파트)는 채무자와 운명을 공동으로 나누며, 불법 침범 및 훼손 시 연대 보증 책임을 진다.]

이 조항은 단순한 방어책이 아니었다. 3동의 지배자이자 설계자인 마담 바토리가, 혹은 이 아파트 자체가 백설아를 강제로 도륙하려 하거나 규약을 위반하는 순간, 아파트 전체가 그녀의 채무 연대 지분 책임자가 되어 강우의 장부에 가압류당하는 거대한 덫이었다.

강우는 품에서 또 하나의 물건을 꺼냈다. 2동 귀부인의 아방궁 소유 장고에서 회수한 ‘마담 바토리의 피 젖은 음악회 초청장 고서’였다.

스으으으.

고서 표지에 음각으로 새겨진 바이올린 무늬가 3동 쪽에서 흘러나오는 기괴한 음파에 반응하여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끈적이는 붉은 액체가 음각의 홈을 타고 스멀스멀 흘러내렸다.

강우는 적색 채무 시각을 극도로 확장했다.

그의 붉은 시야 속에서, 3동 원형 극장의 형태를 띤 아파트 전체 구조 설계도가 반투명하게 떠올랐다. 극장의 정중앙, 마담 바토리의 권능이 집중된 무대 한가운데에 거대한 피 빛 여백이 존재했다. 그 여백 위에 떠 있는 숫자는 기가 막힐 정도로 거대했다.

[피청구인: 마담 바토리] [누적 체납 세액 및 무단 용도 변경 벌과금: 89억 CC (영적 통화)] [토지 공시지가 평가액: 산정 불가 (연옥 극장 자체의 지분)]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파산 재판을 청구한다.”

강우가 만년필을 쥐고 장부의 정중앙에 날카롭게 글자를 기재했다.

사각, 사각.

만년필 끝이 종이를 찢을 듯이 지나갈 때마다, 3동 아파트를 감싸고 있던 가죽 막구조가 움찔거리며 피를 흘려보냈다.

“연극의 대본이 아무리 화려해도, 무대가 서 있는 땅 자체가 경매로 넘어가면 연극은 상영할 수 없지. 마담 바토리의 연극을 무대째로 파쇄한다.”

강우가 통행 티켓을 백설아에게 건넸다.

두 사람은 거대하게 입을 벌린 3동의 입구, 검붉은 가죽 장막 너머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장막을 들추고 들어가자, 습하고 무거운 공기가 온몸을 짓눌렀다. 사방에서 스슥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람의 뼈로 만든 듯한 샹들리에가 천장에서 기괴하게 흔들리며 붉은 촛불을 밝히고 있었다. 수천 개의 관객석은 이미 텅 빈 채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무대 위에는 두꺼운 벨벳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강우와 백설아는 무대 정중앙이 가장 잘 보이는 VIP 좌석으로 걸어가 나란히 자리에 앉았다. 의자의 벨벳 시트는 사람의 살결처럼 비정상적으로 부드럽고 끈적였다.

강우가 좌석에 완전히 착석하는 순간.

탁!

사방의 불이 동시에 꺼지며, 무대 위로 핏빛 조명 하나가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스스스스슥!

천장에서 수십 개의 굵은 삼베 로프가 소름 끼치는 마찰음을 내며 밑으로 풀려 내려왔다.

그리고 그 로프의 끝에 매달려 있는 것들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들은 전부 검은색 정장과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시체들이었다. 목에 밧줄이 감긴 채, 썩어 들어가는 얼굴로 기괴하게 웃고 있는 무용수들.

스슥, 툭! 툭!

갑자기 천장의 도르래가 풀리며, 흑색 정장 차림의 시체 무용수들이 무대 바닥 아래에 촘촘하게 박혀 있는 날카로운 철제 가시밭을 향해 수직으로 투하되기 시작했다.

푸욱! 콰직!

뼈가 으스러지고 살이 찢기는 둔탁한 파열음이 극장 전체를 울렸다. 가시에 박힌 시체들의 상처에서 시커먼 피와 오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무대 바닥을 적셨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가시에 꿰뚫린 시체들은 비명을 지르는 대신 쩍 벌어진 입으로 일제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목구멍에 고인 피가 잔뜩 끓어오르는 기괴하고 소름 끼치는 합창이 연주되는 순간이었다.

“아…… 아아…… 위대한…… 종말의…… 서곡…….”

동시에, 굳게 닫혀 있던 무대의 붉은 벨벳 커튼이 천천히 양옆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갈라진 커튼 너머의 어둠 속에서, 거대한 인간의 척추뼈를 엮어 만든 지휘대가 솟아올랐다.

지휘대 위에는 가죽이 벗겨진 채 붉은 근육을 날것으로 드러낸 지휘자가 서 있었다. 그가 지휘봉 대신 날카로운 해부용 메스를 허공에 휘두를 때마다, 쉭, 쉭, 공기를 가르는 불쾌한 바람 소리가 객석까지 불어와 강우의 뺨을 축축하게 적셨다. 메스 끝에서 튄 붉은 핏방울들이 바닥의 카펫에 닿자마자 치익, 소리를 내며 썩어 들어갔다.

지휘자가 삐걱거리는 목뼈를 꺾으며 강우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가죽이 없는 그의 얼굴은 붉은 힘줄이 꿈틀거리는 기괴한 형상이었다.

“첫…… 곡은…… 청중의…… 비명…… 으로…… 연주…… 합니다…….”

뚝, 뚝. 지휘자의 손목 관절이 비틀리며 메스를 쥔 손이 강우의 심장을 정확히 가리켰다.

강우의 왼쪽 눈, 적색 채무 시각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지휘자의 온몸에서 뻗어 나온 붉은 채무의 실타래가 무대 바닥을 지나 강우가 앉은 VIP 석의 다리를 옭아매고 있었다. 단순한 관람이 아니었다. 관객석에 앉는 행위 자체가 ‘자발적 신체 기증 계약’으로 자동 체결되는 기만적인 약관이었다.

의자 시트에서 돋아난 가느다란 가죽 촉수들이 강우의 허벅지를 스멀스멀 감싸 안았다. 질척이고 차가운 감각이 바지를 적시며 살 속으로 파고들려 했다. 찌르르하는 미세한 진동이 척수를 타고 올라왔다. 옆자리의 백설아 역시 이마에 핏대를 세운 채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녀의 발목은 이미 붉은 가죽 끈에 단단히 결박되어 피가 통하지 않아 하얗게 질려 있었다.

“강우 씨…… 발이…… 움직이…… 지…… 않아요…….”

설아의 목소리가 모래를 씹는 것처럼 가늘게 긁혔다.

강우는 떨리는 손가락을 억누르며 품에서 괴담 장부를 꺼냈다. 미각을 잃어 입안에는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 기괴한 공허가 맴돌았지만, 그의 이성은 그 어느 때보다 명료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계약서 제12조.”

강우는 만년필을 쥔 손에 힘을 주며 페이지를 거칠게 넘겼다.

“관객은 관람료를 지불할 의무가 있으나, 이는 정당한 ‘티켓’ 소지자에게 이중 청구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윤세준의 전 재산을 압류해 정식 인가받은 전방위 장막 통행권을 제출했다. 이중 과세이자 부당 이득 반환 청구 대상이다.”

서걱!

만년필 촉이 장부를 가르며 붉은 인과의 잉크를 흩뿌렸다.

장부에서 뻗어 나온 검은 사슬들이 강우와 설아의 몸을 감싸던 가죽 촉수들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퍼억, 콰직! 채찍질 같은 파열음과 함께 촉수들이 찢겨 나가며 검은 피를 사방으로 뿜어댔다. 바닥에 떨어진 파편들이 스르륵 녹아내리며 고약한 유황 냄새를 풍겼다.

그러나 지휘자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메스를 쥔 손을 허공으로 높이 치켜들었다.

“이중…… 과세…… 무관…… 합니다…… 이곳은…… 특별…… 유료…… 공연…… 구역…….”

그가 메스를 허공에 내리긋는 순간, 천장에 매달려 있던 시체 무용수들이 일제히 목을 길게 늘이며 기괴한 고음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끼에에에엑! 끄아아아악!”

그 소리는 단순한 비명이 아니었다. 고막을 찢어발기는 초고주파의 음파가 사방의 공기를 찢으며 밀려왔다.

강우의 품 안에 있던 ‘마담 바토리의 피 젖은 음악회 초청장 고서’가 그 비명 소리에 공명하여 미친 듯이 진동했다. 고서 표지의 바이올린 음각 무늬가 부르르 떨리며,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안개가 강우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아아악!”

설아가 양손으로 귀를 감싸 쥐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2동 귀부인의 저주가 3동의 음파와 결합하여 그녀의 영혼을 직접적으로 붕괴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경고: 채무자 백설아의 생명력 임계치 15% 돌파.]

[특약 사항 ‘연대 보증’ 조항에 의거하여, 주식회사 은하 대표이사 한강우의 영혼 지분 50%가 강제 가압류 대기 상태로 전환됩니다.]

강우의 왼쪽 눈 시야가 피색으로 물들며, 시커먼 사슬이 그의 심장을 향해 서서히 조여들기 시작했다. 숨이 가빠오고 가슴을 짓누르는 압박감이 온몸을 지배했다.

그 와중에 지휘대의 붉은 거인이 메스를 쥔 채 무대 아래로 도약했다. 쿵! 무거운 육중한 소리와 함께 바닥이 흔들렸고, 지휘자의 메스가 강우의 목덜미를 향해 무겁게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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