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서랍 뒤를 뒤지고 나온 강우의 앞을 피눈물이 줄줄 흐르는 가면을 쓴 귀부인이 가택 무단 침입죄를 속삭이며 그녀의 칼날 부채로 가로막아선다.

“무…… 단…… 침…… 입…… 은…… 죽…… 음…… 뿐…….”

도자기 가면의 틈새로 뚝뚝 떨어지는 검붉은 진액이 카펫 바닥을 적시며 치직거리는 불쾌한 소리를 냈다. 시큼하고 비린 혈향이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귀부인이 쥔 칼날 부채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끈적끈적한 붉은 안개가 강우의 목덜미를 휘감으며 피부를 조여 왔다.

하지만 강우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오히려 품속에서 가죽 장부를 꺼내 손끝으로 가볍게 톡톡 두들길 뿐이었다. 차가운 종이 질감이 감각이 사라진 오른손 대신 왼손바닥을 통해 건조하게 전해졌다.

“가택 침입이라. 기소 주체의 자격 요건부터 미달이군요.”

강우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서늘했고, 얼음처럼 건조했다.

“피고인 귀부인. 당신이 주장하는 가택 침입죄 소송은 이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기각합니다.”

“감…… 히…… 이…… 벌…… 레…… 같은…… 놈이…….”

귀부인의 도자기 가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득득, 득득득. 이빨을 가는 듯한 금속성 파열음이 연회장 사방의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가 부채를 크게 휘두르자, 수십 개의 날카로운 칼날이 강우의 미간을 향해 쏘아져 왔다. 바람을 찢는 파공음이 귓가를 찔렀다.

쾅!

그러나 칼날들은 강우의 얼굴에 닿기 직전, 허공에 나타난 검은 쇠사슬들에 가로막혀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철렁거리는 쇳소리가 사납게 울려 퍼졌다. 인과의 사슬이 귀부인의 무력을 강제로 억누르고 있었다. 2동 연회장이 공용 지분으로 소급 적용되었다는 특약 사항이 발동한 결과였다. 사유지가 아닌 곳에서 가택 침입을 논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

강우는 천천히 왼쪽 눈을 치켜떴다.

스르륵.

완전히 암전되었던 왼쪽 시야가 복구되면서, 평범한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기괴한 풍경이 펼쳐졌다. 적색 채무 시각. 강우의 왼쪽 눈동자가 핏빛으로 물들며, 귀부인의 온몸을 칭칭 감고 있는 시커먼 인과의 사슬과 그 위에 흐려지는 붉은 숫자들을 선명하게 포착해 냈다.

그 숫문자들은 귀부인이 지금까지 은하 아파트에서 저지른 온갖 불법 행위와 미납된 세액의 실체였다. 사슬의 한가운데에는 2동 관리인이 숨겨놓았던 독소 면책 조항의 은밀한 연결 고리까지 붉은 실선처럼 투명하게 비치고 있었다. 귀부인의 발밑, 화려한 드레스 자락 아래 숨겨진 그림자 속에 정교하게 각인된 기괴한 문양. 그것이 바로 그녀가 법망을 피해 가기 위해 설정해 둔 '면책 가문 인장'의 위치였다.

강우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적색 시각이 가리키는 채무의 흐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공용 지분 점유권 박탈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강우는 왼손으로 장부의 다음 페이지를 거칠게 넘겼다. 스르릉 하는 거친 종이 마찰음이 연회장의 습한 공기를 갈랐다.

“세무조사 결과를 통보해 드리지요. 귀부인, 당신이 지난 3년간 2동 입주민들을 대상으로 자행한 ‘영혼 포식’ 행위는 단순한 유희가 아닙니다. 인과 세법 제8조에 의거, 이는 명백한 ‘사적 소득 및 자산 증식’ 행위에 해당합니다.”

“무…… 무슨…… 개…… 소…… 리를…….”

귀부인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가면에 새겨진 피눈물이 더 빠르게 흘러내려 드레스 깃을 적셨다.

“시끄럽군요. 듣고 보고서나 작성하시지.”

강우는 장부를 공중에 띄웠다. 붉은 채무 시각을 통해 흘러나온 빛이 장부의 표면을 타고 흐르며, 허공에 거대한 핏빛 두루마리 형태의 문서들을 길게 늘어뜨렸다. 그것은 귀부인의 전체 수입 내역과 세무 신고 누락액이 적힌 압류 집행 목록이었다.

“일시 및 장소, 2동 302호 입주민 영혼 흡수 건. 신고 누락. 2동 507호 단체 연회 건, 신고 누락. 이 모든 미신고 영혼 포식 건수를 현행 인과율 가치로 환산하면, 당신의 세무 신고 누락액은 총합 ‘3만 리터의 원혈(原血)’에 달합니다. 이는 지방세법 제112조에 따른 중가산세 대상이며, 조세포탈 혐의로 즉시 강제 압류 절차에 착수할 수 있는 수준의 중범죄입니다.”

허공에 뜬 핏빛 문서들이 귀부인의 머리 위를 무겁게 짓눌렀다. 3만 리터라는 숫자가 붉은 낙인처럼 허공에서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이…… 으으으윽!”

귀부인은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자신의 영혼 심층부에 축적되어 있던 거대한 원혈의 기운이, 강우가 제시한 압류 목록의 인과율에 묶여 급격히 동결되기 시작한 탓이었다.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던 기괴한 귀기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화려했던 드레스가 누더기처럼 가차 없이 바스러져 갔다.

완벽한 역습이었다. 공포의 지배자였던 귀부인이 단 한 장의 세무 수배 문서 앞에 무릎을 끓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 광경을 귀부인의 뒤편, 어두운 그늘 속에서 지켜보고 있던 윤세준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틱. 틱. 틱.

윤세준은 바지 주머니 속에서 낡은 명품 태엽 시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의 손끝이 시계의 초침이 돌아가는 미세한 진동을 느끼며 규칙적으로 움찔거렸다. 그의 시선은 귀부인의 몰락이 아니라, 오직 한강우의 신체 변화에 고정되어 있었다.

‘지금이다.’

윤세준의 가느다란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강우가 귀부인의 원혈을 동결하기 위해 장부의 인과율을 극도로 끌어올린 순간이었다. 등가교환의 법칙은 자비가 없다. 강우가 치러야 할 새로운 대가가 그의 육체를 잠식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스스스슥.

강우의 오른쪽 바지춤 안쪽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이내 그의 오른쪽 다리 전체가 딱딱하게 굳어 들어갔다. 관절 마비. 뼈마디가 통째로 굳어 버린 것처럼, 강우의 오른쪽 다리가 바닥을 지탱하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으려 했다.

강우는 이를 악물었지만, 신체의 지분이 일시적으로 저당 잡힌 고통은 정신력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몸이 눈에 띄게 오른쪽으로 기울어졌다. 절뚝이는 발걸음. 무력화되어 가는 육체.

윤세준은 그 모습을 보며 가슴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희열을 느꼈다.

‘장부를 조작할 때마다 놈의 몸은 망가진다. 자정 직후의 공백뿐만 아니라, 대형 조작을 가할 때의 신체 마비 주기…… 확실하게 파악했어.’

윤세준은 품속의 단도를 살며시 쥐었다가 놓았다. 지금 당장 강우의 목덜미를 찌르고 장부를 빼앗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귀부인의 무력이 완전히 소멸하지 않았고, 강우에게는 아직 부려먹을 고기 방패들이 남아 있었다. 그는 조금 더 확실한 파산 타이밍을 기다리기로 하며, 슬그머니 발걸음을 뒤로 물렸다.

“강우 씨!”

그때, 귀부인의 저주로 귀에서 피를 흘리며 신음하던 백설아가 바닥을 딛고 거칠게 일어섰다. 그녀의 눈동자에 서린 ‘낙인의 의지’가 붉은 불꽃처럼 타올랐다.

백설아는 강우의 오른쪽 다리가 굳어 절뚝이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녀에게 강우는 단순한 동료가 아니었다. 자신의 영혼을 담보로 잡고 목숨을 연장해 준 지독한 채권자이자, 이 지옥 같은 아파트에서 유일하게 생존의 길을 제시하는 법인 대표였다. 그가 무너지면 자신의 존재도 소멸한다.

“내 자산 보증인을 건드리지 마라, 이 괴물 년아!”

백설아가 몸을 날렸다. 그녀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순수한 영혼의 은빛 비구름이 연회장 천장으로 쏘아 올려졌다.

화아아아아!

연회장 내부에 은빛의 영혼 비가 거세게 내리치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귀부인의 몸에 닿을 때마다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썩은 가죽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백설아는 자신의 영혼력을 아낌없이 연소시키며, 강우의 소유 자산인 ‘자기 자신’과 ‘강우의 신체’를 침범하려는 귀부인의 공세를 필사적으로 가로막았다.

“커…… 억…… 끄아아악!”

영혼 비를 맞은 귀부인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도자기 가면 표면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귀부인은 이대로 물러설 존재가 아니었다. 2동의 절대 지배자로서 쌓아온 원념과 아파트 설계자들의 비호가 그녀의 영혼 깊은 곳에서 요동쳤다.

“이…… 하찮은…… 가축들이…… 감히…… 내…… 가문을…… 모독해……?”

귀부인의 목소리가 기괴한 다중 음성으로 변하며 연회장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녀의 드레스 자락이 사방으로 찢어지며, 그 안에서 수십 개의 검붉은 가문 인장들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2동을 지배하는 무조(巫祖)의 가문 인장들이었다.

그 인장들이 공중에서 불타오르며 사방으로 파멸적인 저주의 탄환을 난사하려 했다. 공기의 흐름이 급격히 왜곡되며, 닿는 모든 것을 분해해 버릴 듯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백설아의 영혼 비조차 그 압도적인 무력 앞에 증발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 찰나였다.

화르륵!

강우의 코트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괴담 장부가 갑자기 스스로 뜨겁게 달아오르며 검은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강우의 머릿속으로 찌르르한 이명과 함께 붉은 경고 메시지가 무자비하게 내리꽂혔다.

[경고: 대가 지불 연체 감지.] [우측 하지(下肢)의 저당 기한이 만료되어 가며, 추가 세원 확보율이 임계치 미만입니다.] [장부 강제 정지 타이머 작동: 10, 9, 8……]

장부의 겉표지에 새겨진 붉은 눈동자 문양이 기괴하게 깜빡이며 강제 종료 기한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장부가 강제 종료되는 순간, 귀부인의 원혈 동결은 해제될 것이고, 마비된 다리를 가진 강우는 저 난사되는 가문 인장의 포화 속에서 뼈도 남지 않고 바스러질 터였다.

시간이 없었다. 단 10초의 유예.

강우의 차가운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허공에서 광기 어리게 번뜩이는 귀부인의 가문 인장들을 응시했다.

“……7, 6……”

죽음의 카운트다운이 그의 영혼을 조여 오기 시작했다.

……5…… 4……

머릿속을 헤집는 소리가 눅눅하고 무겁게 울려 퍼졌다. 귓속 깊은 곳에서 고막을 짓누르는 검붉은 이명이 고약하게 끓어올랐다. 왼쪽 귓바퀴를 타고 뜨겁고 끈적끈적한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강우는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내지도 않은 채, 오히려 입술을 더 비틀어 올렸다. 귀부인의 머리 위에 떠오른 가문 인장들이 기괴한 소음을 내며 사방의 공기를 찢어발기고 있었다. 쇠붙이가 콘크리트 바닥을 긁는 듯한 날카로운 마찰음이 고각으로 고막을 찔렀다. 이대로 간다면 장부는 강제 종료될 것이고, 저주받은 낙인들은 백설아와 자신의 온몸을 걸레짝으로 만들 터였다. 강우는 망설임 없이 장부의 여백에 자신의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좌측 청각의 영구 상실 위기를 담보로, 임시 저당 계약을 갱신한다.’

스스스스.

차가운 냉기가 왼쪽 귀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사방을 가득 채우던 귀부인의 비명과 바람을 찢는 파공음이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왼쪽 세상이 완벽한 무음의 진흙탕 속으로 침전해 들어갔다. 오직 오른쪽 귀에만 의지해 들려오는 왜곡된 소리들이 웅웅거리며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하지만 그 가혹한 대가 덕분에, 붉게 타오르던 장부의 타이머가 ‘2’에서 딱 멈춰 섰다. 흘러내리는 피가 장부의 가죽 표면을 적시며 검붉은 활자로 재구성되었다. 적색 채무 시각을 통해 귀부인의 몸 위에 덧씌워진 탈세의 실체가 더욱 선명하게 핏빛으로 번쩍였다.

“네…… 놈이…… 감히…… 내…… 가문을…….”

귀부인의 도자기 가면 뒤에서 거친 숨소리가 쉭쉭거리며 새어 나왔다. 그녀는 자신의 원혈이 동결되자 본능적으로 위기를 직감한 듯했다. 썩은 시체 냄새가 끈적이는 안개와 섞여 사방으로 진동했다. 그녀는 일그러진 가면을 백설아에게로 돌렸다. 뼈마디가 기괴하게 꺾인 손가락이 허공을 가르며, 백설아의 목덜미를 향해 검은 안개의 사슬을 길게 뻗어냈다.

“공동…… 보증…… 으로…… 저…… 년의…… 영혼을…… 귀속…… 시키겠다…….”

지배자의 권능을 이용해 하위 입주민인 백설아에게 자신의 채무를 강제로 연대 보증시키려는 수작이었다.

그 추악한 광경을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던 윤세준의 입꼬리가 기묘하게 비틀려 올라갔다.

째깍, 째깍, 째깍.

그의 손끝에서 만져지는 태엽 시계의 초침 소리가 마치 마른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처럼 그의 뇌리를 두들겼다. 윤세준은 강우의 왼쪽 귀에서 흘러내린 피가 턱 끝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오른쪽 다리는 이미 통나무처럼 굳어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왼쪽 귀마저 완전히 먹통이 된 상태였다.

‘한계다. 저 장부의 힘을 끌어다 쓸 때마다 놈의 몸뚱이는 넝마가 되고 있어.’

윤세준은 침을 삼켰다. 그의 손가락이 주머니 속 단도의 자루를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배어나는 축축한 식은땀이 서늘하게 식어갔다. 조금만 더, 놈들이 서로의 밑천을 탈탈 털어내며 공멸하기 직전의 그 순간만 포착하면 되었다. 그러면 이 은하 아파트의 최강자는 자신이 될 것이 분명했다.

“컥…… 으윽!”

백설아의 목에서 밭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귀부인이 강제로 연결한 연대 보증의 검은 사슬이 그녀의 얇은 목가죽을 사정없이 조여 들었다. 사슬이 살을 파고들 때마다 치직거리는 불쾌한 소리와 함께 은빛 영혼의 편린들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목이 졸린 그녀의 눈동자가 핏빛으로 충혈되며 머리가 터질 듯한 압박감이 그녀를 엄습했다.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비린 피 냄새를 억지로 삼키며, 그녀는 강우를 향해 손을 뻗으려 했지만 손가락 끝조차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끈적끈적한 저주의 낙인이 그녀의 온몸을 옭아매고 있었다.

하지만 강우는 그 처절한 광경을 보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차가운 왼쪽 눈에 서린 핏빛 채무 시각이 한층 더 짙은 적색으로 타올랐다.

“공동 보증이라. 아주 기가 막힌 선택을 하셨군요, 귀부인.”

강우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한쪽 귀의 공백을 뚫고 낮게 울렸다.

“은하 아파트 임대차 계약 특별 약정 제4조. 채무자가 거주하는 도는 채무자와 운명을 공동으로 나누며, 제3자가 불법적으로 해당 채무자의 지분을 침범할 시 입주 권한과 영토 전체가 연대 책임의 대상으로 강제 전환된다.”

강우는 피로 얼룩진 장부의 한 페이지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당신이 백설아를 강제로 연대 보증인으로 지정한 순간, 백설아의 채권자인 나와 맺은 ‘생명 연장 임대 계약’의 독소 조항이 당신의 2동 영토 전체에 소급 적용됩니다.”

“뭐…… 라고……?”

귀부인의 단절된 목소리에 처음으로 극도의 공포가 담겼다.

쿠구구구궁!

연회장 바닥이 쩍쩍 갈라지며,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거대한 검은 사슬들이 솟구쳐 올랐다. 그 사슬들은 백설아의 목을 조이던 귀부인의 저주를 통째로 뜯어내더니, 역으로 귀부인의 심장과 2동 연회장의 기둥들을 칭칭 감아쥐기 시작했다. 쇠사슬이 부딪치는 귀를 찢는 듯한 소음이 사방을 가득 채웠다.

“채무 불이행에 따른 2동 전체 자산 가압류 및 강제 인도 절차를 개시합니다.”

강우가 선언하는 순간, 귀부인의 몸을 지탱하던 붉은 안개가 순식간에 검은 쇠사슬 속으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그녀의 가문 인장들이 비명을 지르며 하나씩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귀부인의 눈동자에서 이성이 완전히 날아간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크아아아아악! 죽여…… 버리겠다…… 다…… 같이…… 죽어……!”

귀부인의 얼굴을 덮고 있던 하얀 도자기 가면이 쩍쩍 갈라지더니, 이내 시커먼 진액과 함께 완전히 깨져 나갔다. 가면 뒤에 숨겨져 있던 실체는 꿈틀거리는 수만 마리의 핏빛 구더기들이 뭉쳐진 기괴한 형상이었다. 지독한 악취가 사방으로 터져 나오며 연회장 천장의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무참하게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강우의 손에 들린 괴담 장부의 표면이 쩌적 하고 갈라지는 불길한 소리가 울렸다. 장부의 붉은 눈동자에서 검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시스템 과부하 경고.] [2동 전체의 인과율 압류로 인해 장부의 허용 용량이 초과되었습니다.] [강제 청산 실패 시, 소유자의 영혼 지분 90%가 즉시 소멸합니다.]

머리를 강타하는 붉은 경고음과 함께, 천장에서 떨어진 거대한 콘크리트 잔해가 강우의 머리 위를 덮쳐왔다. 마비된 다리로는 피할 수 없는 궤적이었다. 강우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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