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수술실의 공기는 여전히 차갑고 무겁습니다. 환자의 심폐 바이패스 기기(Cardiopulmonary Bypass)가 멈추고, 스스로 뛰기 시작한 심장 소리가 모니터의 규칙적인 금속성 비프음으로 수술실에 울려 퍼집니다. *삐 ー 삐 ー.* 정상 파형(Sinus Rhythm)을 되찾은 심전도 그래프를 확인한 당신은 수술 장갑을 벗어 던집니다.

불량 마취제에 포함된 유기 인계 화합물이 유발한 '급성 콜린성 위기(Cholinergic Crisis)'. 이는 체내의 신경 전달 물질이 분해되지 않고 가득 쌓여 심장이라는 엔진의 전원을 강제로 내려버리는 '원전 백업 차단'과 같은 현상입니다. 당신은 해독제 아트로핀(Atropine)의 초정밀 정맥 미세 주입(Micro-infusion)을 통해 이 위기를 완벽하게 극복해 냈습니다.

수술실 외부 참관실에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이사회의 침묵은 곧 거대한 폭풍으로 변했습니다. 약물 오염을 설계한 배후인 부원장 김태훈의 세력은 원내 감염위원회(Infection Control Committee)의 긴급 조사 앞에서 순식간에 붕괴 직전의 마비 상태에 빠집니다.

몇 시간 뒤, 비밀스러운 부원장실. 차가운 대리석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당신과 부원장 김태훈이 마주 앉아 있습니다. 방 안에는 가습기 내부의 진동자가 미세하게 떨리는 고주파 마찰음만이 고요하게 흐릅니다. 김태훈은 감정에 호소하는 패배자가 아닙니다. 그는 철저한 계산이 깔린 서류 몇 장을 당신 앞으로 밀어냅니다.

"서진 선생. 이번 학회 보고서와 원내 규정 위반 데이터를 보니 아주 정교하게 나를 옭아맸더군." 김태훈의 목소리는 조용하면서도 이성적입니다. "하지만 사법 기관 고발은 우리 둘 다에게 자멸입니다. 병원의 '의료 질 평가(Healthcare Quality Evaluation)' 등급이 한 단계만 감등되어도 연간 400억 원의 정부 보조금이 삭감되고, 메디 홀딩스의 주가는 폭락할 겁니다. 그건 네 아버님이신 이사장님조차 원치 않는 시나리오지."

그는 품속에서 만년필을 꺼내 놓으며 말을 잇습니다. "여기 메디 홀딩스가 보유한 병원 경영 지분 50%의 양도 서약서가 있네. 수사를 덮고 내부 징계 선에서 '단순 직원의 수동적 관리 실책'으로 합의해 주게. 그렇다면 자네는 이 병원의 실질적인 지배권을 지금 당장 차지하게 되는 걸세. 적을 죽이는 것보다, 그 적의 힘을 흡수하는 편이 훨씬 유능한 집도의의 선택이지 않겠나?"

김태훈이 제안한 지분은 단순한 돈이 아닙니다. 인사권과 약제 구매권, 즉 거대 의료 제국을 당신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정당한 권력의 열쇠입니다.

그가 밀어놓은 만년필 끝의 금속 촉이 형광등 불빛을 받아 서늘하게 반짝입니다. 당신은 테이블 위에 놓인 서약서와 남자의 가라앉은 눈빛을 번갈아 응시합니다. 당신의 손가락 끝이 만년필을 향해 느리게 움직입니다.

여기서 적당한 타협으로 더 거대한 힘을 쥐고 내부에서 비리를 뿌리뽑을 것인가, 아니면 저 더러운 손을 잡지 않고 즉시 법의 칼날로 숨통을 끊어버릴 것인가. 당신의 선택만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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