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차가운 법정의 대리석 바닥이 구둣발 소리를 흡수하지 못한 채 날카롭게 반사한다. 피고인석에 선 당신의 귓가에 울리는 것은 수술실의 익숙한 맥박음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의 사회적 생명 유지 장치가 꺼져감을 알리는 법관의 단호한 낭독 소리다.

“피고인 백서진을 의료법 제8조 및 형법 제268조 업무상과실치사 방조 혐의로 징역 2년에 처한다. 아울러 보건복지부 행정처분 규칙에 의거, 의사 면허 취소를 명한다.”

순간, 귓가에서 '삐-' 하는 이음이 들려온다. 영양 공급이 중단된 심근 세포가 산소 부족으로 파괴될 때 발생하는 허혈성 통증처럼,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지독한 무력감이 조여 온다.

상대가 준비한 그물망은 치밀했다. 당신이 제시한 약물 오염 증거와 부원장의 비리 리포트는 사법부와 거대 의료 법인의 카르텔 앞에서 무력화되었다. 그들은 증거의 신빙성을 탄핵하기 위해 병원 전산망의 로그 기록을 조직적으로 변조했고, 이식학회의 권위자들을 포섭해 당신의 수술 행위를 '초응급 상황을 가장한 무단 생체 실험'으로 규정했다.

이는 인체 내에 침투한 악성 종양(Malignancy)이 정상 면역 체계를 교란하기 위해 위장 단백질을 뿜어내는 과정과 일치한다. 정상적인 사법 절차라는 면역 세포들은 그들이 뿌려둔 로비와 특권이라는 위장 장막에 가로막혀 갈 길을 잃었다. 당신이 학술적 데이터와 수술 기록지를 제시하며 집도의로서의 정당성을 논리적으로 호호했음에도, 판사는 오직 변조된 진료 지침서와 조작된 규정 위반 보고서만을 판결의 근거로 채택했다.

수술실에서 미세 혈관을 봉합할 때 쓰던 10-0 나일론 실보다 더 얇고 촘촘하게 짜인 사법적 덫이었다.

“판결에 불복한다면 항소할 수 있으나, 피고인의 면허 효력은 금일 자정을 기해 즉시 정지됩니다.”

형 집행 정지와 동시에 내려진 국외 추방 권고. 사법 카르텔은 당신이라는 불순물을 한국 의료계라는 생체 조직에서 완벽하게 절제(Resection)해 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병원 이사장 가문의 막내아들이라는 배경조차, 이 거대한 기득권의 담합 앞에서는 아무런 보호막이 되지 못했다.

공항 대기실의 차가운 금속 의자에 앉아, 당신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수만 번의 봉합과 절개를 반복하며 굳은살이 박인, 그 어떤 미세한 떨림도 허용하지 않던 천재 외과의의 손이다. 그러나 이제 이 손끝에 닿는 것은 수술용 메스의 묵직한 그립감이 아닌, 편도행 비행기 표의 얇은 종이 질감뿐이다.

전생에서 음모에 휘말려 쓸쓸히 죽어갔던 그 비참한 밤의 기억이 뇌리를 스친다. 역사는 반복되었고, 이번에는 육체의 죽음이 아닌 사회적 자아의 완벽한 뇌사(Brain Death)였다. 인공호흡기를 떼어낸 환자의 심전도 모니터가 평탄한 직선(Flatline)으로 수렴하듯, 당신이 쌓아 올린 외과 의사로서의 명예와 미래는 차갑게 식어간다.

창밖으로 어둠이 내린 활주로가 보인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환자의 기도 삽반을 준비하듯, 비행기의 엔진이 무겁게 회전하는 소리가 고막을 때린다. 당신은 결국 거대한 거인의 심장을 도려내지 못한 채, 이 땅에서 영원히 추방되는 패배자로서 비행기 트랩을 오른다. 차갑게 닫히는 해치 너머로, 당신의 찬란했던 의학적 영광은 암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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