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안을 지배하는 것은 극도의 정적, 그리고 그것을 깨뜨리는 기계의 규칙적인 박동음뿐입니다.
“삑— 삑— 삑—”
심전도(EKG) 모니터가 내는 금속성 전자음이 78bpm의 일정한 가락으로 공기를 두드립니다. 멸균포로 덮인 환자의 흉부는 이미 수직으로 절개되어 정중흉골절개기(Sternum retractor)에 의해 좌우로 벌어진 상태입니다. 그 틈새로 붉고 뜨거운 심장이 분당 일흔여덟 번씩 힘차게 요동치고 있습니다.
화려한 재단 이사회장, 승계 구도를 두고 벌이던 추악한 암투와 정적들의 비명은 수술실의 이중 밀폐문 너머로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병원 경영 규정 제24조 ‘공익 목적의 의료 시설 운영 및 기금 독립성’ 조항을 발휘해 이사회의 반대파들을 논리로 굴복시켰습니다. “단순 적자 사업이 아닙니다. 연간 120억 원 규모의 감세 혜택과 세계적 수준의 임상 데이터 누적은 장기적으로 병원 브랜드 가치를 32% 이상 상승시킬 것입니다.” 수치화된 재무 분석과 사내 법적 근거를 들이미는 당신 앞에 탐욕스러운 주주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당신 앞에 펼쳐진 아시아 최대 규모의 무료 심장 센터입니다. 당신은 권력의 왕좌 대신 이 멸균된 수술실을 선택했습니다.
“OPCAB(무인공심폐기 관상동맥 우회술) 준비합니다. 스태빌라이저 거치해 주세요.”
당신의 차분한 음성이 마이크를 타고 수술실 내부에 울립니다. 심장을 강제로 멈추고 인공심폐기에 생명을 맡기는 일반적인 수술과 달리, 이 수술은 살아 움직이는 심장 위에 직접 미세 혈관을 이어 붙여야 합니다. 이는 마치 거친 파도 위에 떠 있는 돛배 위에서 정밀 도면을 그리는 작업과 같습니다.
심장의 일부분을 물리적으로 고정하는 석션형 스태빌라이저(Stabilizer)가 좌전하행지(LAD) 주변에 밀착되자, 흡인기의 쉬익거리는 분무음이 한층 날카로워집니다. 고정되었다고는 하나, 미세한 박동은 1.5밀리미터 두께의 혈관을 여전히 흔들어 놓습니다.
“7-0 프로린(Prolene) 주십시오.”
당신이 손을 뻗자, 소독간호사가 머리카락보다 얇은 봉합사가 달린 미세 포셉을 정확히 쥐여줍니다. 금속 기구들이 교차하며 “착, 착” 둔탁한 마찰음을 냅니다.
미세 가위로 협착된 관상동맥을 종축으로 절개하자, 붉은 선혈이 솟구칩니다. 어시스트가 식염수를 뿌리며 시야를 확보하는 찰나, 당신의 손끝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바늘이 혈관벽을 관통하는 감각이 티타늄 포셉을 타고 당신의 손가락 끝 신경세포로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0.1밀리미터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한계를 넘나드는 봉합입니다.
“수축기 혈압 85로 일시 저하됩니다.” 마취과 의사의 경고음이 울렸으나, 당신의 심박수는 오히려 차분히 내려앉습니다. 전생에서 음모에 휘말려 숨을 거두기 직전 느꼈던 그 차가운 무력감은 이제 없습니다. 오직 환자의 생명을 쥐고 있는 이 메스의 따뜻한 무게감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마지막 매듭을 짓고 스태빌라이저를 제거하자, 우회된 혈관을 통해 새로운 피가 막힘없이 흘러 들어갑니다. 요동치던 심장이 이내 가장 안정적인 박동을 찾아가며 모니터의 경고음도 평온한 장음으로 돌아옵니다.
“수술 끝났습니다. 폐흉 진행해 주세요.”
당신은 메스를 내려놓고 수술실 글라스 너머를 바라봅니다. 이곳은 당신이 설계한 전설의 시작점이며, 앞으로도 수많은 이들이 대가 없이 생명을 구원받을 방주입니다. 권력의 정점에서 스스로 외과의의 길을 선택한 당신의 눈빛은, 수술등의 빛보다 더욱 투명하고 예리하게 빛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