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이 회차는 아직 그래픽 노블 장면이 제작되지 않아 일반 노블로 보여드려요.

"한시윤이 메인 챔버의 티타늄 차단 도어를…… 아예 용접 가공해서 봉쇄해 버렸다고……."

주현우의 붉은 침이 셔틀의 파손된 조종 패널 위로 점점이 떨어졌다.

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주현우의 목덜미에 매달린 은색 펜던트 단말기로 향해 있었다. 가로 32밀리미터, 세로 50밀리미터 크기의 직사각형 금속 편. 그것은 정부 최고위 관료에게만 지급되는 비상 탈출용 프라이빗 게이트웨이 장치였다.

손끝에 피와 불산 가스의 그을음이 묻어났다. 태오는 주현우의 가슴팍에서 펜던트를 거칠게 뜯어냈다. 금속 체인이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끊어졌다.

"커헉! 형사…… 네놈이 그걸 가져가 봐야……."

"한시윤은 이 도어의 기하학적 락킹 구조를 과소평가했어."

태오의 목소리는 평탄했다. 심박수는 분당 72회. 동요는 없었다.

"용접부의 두께가 50밀리미터 이하라면, 아틀라스 고압 증기 라인의 잔류 압력 역류로 파괴가 가능하다. 필요한 건 내부 밸브를 제어할 오버라이드 권한뿐이지."

태오는 주현우를 찌그러진 가속 셔틀의 잔해 속에 그대로 방치한 채 몸을 돌렸다. 뒤에서 주현우가 쇳소리를 내며 저주를 퍼부었으나, 태오의 청각 신호 처리 장치는 이미 그 소음을 물리적으로 필터링하고 있었다.

우측 측두엽 부근에서 74헤르츠의 고주파 이명이 뇌를 찔렀다. 12회에 걸친 루프 누적으로 신경망의 39.6%가 영구 소실된 대가였다. 시야의 오른쪽 가장자리가 회색 픽셀처럼 깨져 나갔지만, 태오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시간은 오후 9시 10분. 아틀라스의 파멸까지 남은 시간은 2시간 49분이었다.

***

지하 500미터, 제3구역 핵융합 핵심 원자로 메인 포트.

대기 중의 불산 가스 농도는 45ppm을 상회하고 있었다. 허용 기준치의 15배가 넘는 수치였다. 방사선 감지기가 붉은색 LED를 점멸하며 시간당 12밀리시버트(mSv)의 누적 피폭을 경고했다. 공기는 뜨겁고 끈적했으며, 들이쉴 때마다 폐포가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태오는 방화 격벽 앞에 도달했다.

이미 현장에 도착해 대기하고 있던 민세아가 방사선 차폐 헬멧을 벗어 던지며 태오를 향해 소리쳤다. 그녀의 이마에는 기름때와 땀이 뒤섞여 흘러내리고 있었다.

"늦었잖아요! 밸브 라인 압력이 벌써 85바(bar)를 넘어섰어요. 여기서 더 올라가면 용접 부위가 아니라 메인 파이프 자체가 터져 나가요!"

세아의 손에는 다목적 원자로 툴팩과 티타늄 유압 절단기가 들려 있었다. 그녀의 호흡은 분당 32회로 가빴고, 동공은 공포와 극도의 피로로 산대되어 있었다.

"도어는?"

태오가 물었다.

"말도 마요. 한시윤 그 미친 인간이 도어 틈새를 고장력 텅스텐 카바이드 합금으로 아예 용접해 버렸어요. 유압 잭으로 밀어내려고 해도 접합부 면적이 너무 넓어서 미동도 안 해요. 물리적인 타격으로는 24시간을 통째로 써도 못 뚫어요."

세아가 가리킨 곳에는 지름 4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원형 티타늄 격벽 도어가 버티고 있었다. 도어의 테두리를 따라 푸르스름한 용접 흔적이 기괴한 흉터처럼 굳어 있었다. 열적 팽창으로 인해 도어 표면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태오는 격벽 우측에 매립된 제어 콘솔 패널로 다가갔다. 액정 화면에는 적색 경고등과 함께 잠금 메시지가 점멸하고 있었다.

[경고: 물리적 차단 프로토콜 작동 중. 메인 제어기와의 동기화 단절.]

"이브."

태오가 콘솔의 음성 인식 단자에 대고 건조하게 말했다.

[세션 연결 완료. 형사 강태오.]

콘솔의 스피커에서 감정 없는 여성의 합성 음성이 흘러나왔다.

[현재 구역의 구조적 무결성은 14% 이하로 저하되었습니다. 23분 내로 해당 구역에서 이탈하지 않을 경우, 생존 확률은 0.03%로 수렴합니다. 격벽 개방 승인은 불가능합니다.]

"차단 도어의 수동 해제 시퀀스를 가동해라."

[거부합니다. 해당 명령은 돔 정부 최고 평의회의 바이오 인증 승인이 요구되는 보안 레벨 9의 프로토콜입니다. 현재 가용 전력 한계 내에서 임의의 권한 우회는 시스템 무결성 수칙 제4조에 위배됩니다.]

세아가 절망적인 표정으로 태오의 어깨를 잡았다.

"거봐요, 이브는 절대로 안 열어줘요! 이 인공지능은 우리가 죽든 말든 에덴의 시스템 가동률만 계산하는 기계라고요!"

"아니, 열 수 있어."

태오는 주현우에게서 탈취한 은색 펜던트를 콘솔 하단의 확장 슬롯에 밀어 넣었다.

철컥.

금속성 접합음과 함께 펜던트의 측면에서 청색 레이저 슬릿이 돌출되었다. 태오는 자신의 전두엽 칩을 구동했다. 뇌 신경망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두통과 함께, 5회차 루프 당시 주현우의 집무실 컴퓨터에서 해킹해 두었던 '정부 고위 관료 안구 홍채 바이오 키의 대칭 난수 소스 코드 메타데이터'가 활성화되었다.

이것은 5화에서 주현우의 생체 정보를 스캔해 둔 복선 데이터의 완전한 동기화였다.

"이브. 주현우 행정처장의 개인 생체 난수 패스코드를 전송한다."

태오가 펜던트 단말기를 조작하자, 슬롯을 통해 초고밀도 안구 생체 난수 소스 코드가 주입되기 시작했다. 콘솔 화면에 수천 개의 난수열이 초당 4.2기가비트의 속도로 연산되며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데이터 수신 중…….]

이브의 음성이 미세하게 끊겼다.

[신원 확인: 정부 행정처장 주현우. 바이오 메디컬 데이터 대조 완료. 대칭 난수 일치율 99.98%.]

"이어서 원자로 비상 대응 매뉴얼 제12조를 적용한다."

태오가 콘솔의 광학 센서에 손을 얹었다.

"챔버 내부의 국소적 열적 폭주가 감지될 경우, 시스템 관리자는 현장 정비사의 안전을 위해 격벽의 '물리적 기하학 락킹핀'을 강제 해제할 권한을 갖는다. 주현우의 바이오 키 권한으로 이 예외 조항을 승인한다. 이브, 도시 생존 확률 재계산해."

정밀한 알고리즘의 대결이었다. 이브는 인간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태오가 제시한 '주현우의 최상위 권한'과 '매뉴얼의 논리적 무결성'이라는 수학적 인과 관계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약 1.5초의 정적. 그것은 이브의 양자 프로세서가 수만 개의 시나리오를 연산하는 시간이었다.

[경로 분석 완료.]

마침내 이브의 기계음이 출력되었다.

[예외 프로토콜을 승인합니다. 물리 차단 도어의 5중 고장력 수동 압착 기하학 락킹핀 해제 권한을 활성화합니다. 수동 조작을 시작하십시오.]

"해냈어……."

민세아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흔들렸다.

그동안 그 어떤 물리적 수단으로도, 이브의 철벽 같은 방화벽으로도 열리지 않던 사상 최강의 물리 차단 도어가 단 몇 초 만에 전산적으로 해제 승인을 받아낸 것이다. 세아는 태오의 창백하고 핏기 없는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루프 속에서 홀로 죽음의 한계를 넘나들며 이 모든 수치와 공식을 머릿속에 각인해 왔을 남자. 세아는 그의 야윈 뺨과 건조한 눈빛에서 형용할 수 없는 전율과 함께, 기묘한 신뢰감을 느꼈다.

'이 사람이라면…… 정말로 이 지옥 같은 하루를 끝내줄지도 몰라.'

세아는 마른침을 삼키며 툴팩을 고쳐 잡았다. 절망으로 가득했던 그녀의 눈빛에 처음으로 명확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세아, 멍하니 있을 시간 없다. 락킹핀 제어 시퀀스를 시작하지."

태오의 차가운 명령이 회색빛 콘크리트 벽에 부딪혀 울렸다.

***

"락킹핀은 총 5개. 도어의 외주부를 따라 72도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어."

세아가 도어 측면의 기계식 점검창을 열며 빠르게 설명했다. 내부에는 지름 80밀리미터의 고장력 강철 핀들이 유압 실린더에 의해 꽉 맞물려 있었다. 용접된 텅스텐 합금 때문에 모터 구동은 불가능했다. 오직 순수한 물리적 토크와 공학적 타이밍으로만 뽑아내야 했다.

"시간은?"

"용접부가 열적 팽창으로 완전히 고착되기 전까지 앞으로 정확히 3분. 그 안에 5개의 핀을 순서대로 뽑지 않으면 도어는 영구히 고착돼요."

태오는 유압 절단기의 압력을 250바(bar)로 설정했다.

"첫 번째 핀, 12시 방향. 기하학적 압착 해제 시퀀스 개시."

태오가 절단기의 쐐기를 락킹핀의 틈새에 밀어 넣었다. 금속과 금속이 맞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세아, 유압 밸브 개방률 40%로 고정해."

"지금 고정했어요! 밀어붙여요!"

찌이이익!

고압의 유압 오일이 호스를 통과하며 비명을 질렀다. 첫 번째 핀이 마찰열로 붉게 달아오르며 서서히 밀려 나왔다.

쿵!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첫 번째 핀이 격벽 내부로 떨어졌다.

"두 번째, 2시 방향! 이쪽은 용접 열 변형이 심해요. 압력을 320까지 올려야 해요!"

세아의 손놀림은 정확했다. 그녀의 미련할 정도의 사명감과 정교한 정비 기술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태오는 뇌신경의 따끔거리는 통증을 무시하며 두 번째 핀에 절단기를 걸었다.

우측 시야가 완전히 암전되었다. 오직 감각과 소리, 그리고 머릿속에 저장된 3차원 설계도 데이터에 의존해 절단기를 조작했다.

쿠웅!

두 번째 핀 탈거.

"세 번째, 5시 방향! 서둘러요, 용접부가 식으면서 수축하기 시작했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엔트로피는 누적되고 있었다. 이전 루프에서 손상된 배관의 균열을 통해 고온의 증기가 피시식 소리를 내며 뿜어져 나왔다. 태오의 가죽 장갑이 열기에 녹아내려 살을 파고들었지만, 그의 표정은 한 치의 흐름도 없었다. 고통은 신경 신호의 전기적 자극일 뿐이다.

쿠웅! 쿠웅!

세 번째와 네 번째 핀이 연달아 떨어졌다.

마지막 다섯 번째 핀은 9시 방향에 있었다. 용접부의 가장 두꺼운 중심부와 맞닿아 있어, 유압 절단기의 힘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안 돼요! 압력이 부족해요! 유압 펌프가 과열로 멈추려고 해요!"

세아가 절규하듯 소리쳤다. 계기판의 바늘이 적색 위험 지대에서 격렬하게 진동했다.

태오는 펜던트 단말기를 응시했다.

"이브. 주현우의 바이오 권한으로 4번 구역의 보조 냉각수 라인을 강제 차단해. 그로 인해 발생하는 잉여 유압을 이 제어 콘솔로 바이패스한다."

[승인합니다. 바이패스 라인 연결.]

쉬이이익!

콘솔 하단의 파이프가 요동치며 유압 게이지가 순간적으로 450바(bar)까지 치솟았다.

"지금이다!"

태오가 절단기의 스위치를 끝까지 움켜쥐었다. 세아가 망치로 핀의 후면을 강타했다.

깡-!

귀를 찢는 금속음과 함께 마지막 다섯 번째 고장력 락킹핀이 뽑혀 나갔다.

동시에 도어를 고정하고 있던 용접 접합부가 엄청난 유압과 잔류 증기압의 격차를 이기지 못하고 우지끈하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금속 원판이 비틀리며 틈새가 벌어졌다.

치이이이이익-!

내부에 갇혀 있던 고압의 가스가 뿜어져 나오며 시야를 하얗게 가렸다. 태오는 세아의 덜미를 잡아 뒤로 끌어당겼다.

마침내, 수동 압착 기하학 락킹핀 도어가 튼실하게 열려젖혀졌다.

그것은 이브의 데이터 장벽과 물리적 철문을 동시에 돌파한, 완벽한 공학적 승리였다.

***

가스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챔버 내부의 정경이 드러났다.

원자로 심부 챔버 핵 구역.

그곳은 아틀라스의 심장부였다. 지름 50미터의 거대한 원형 공간 한가운데, 초고온의 플라즈마를 가두고 있는 자기장 코일이 푸른빛을 발산하며 웅웅거리고 있었다. 그 푸른 빛 아래,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한시윤.

그는 평소처럼 단정한 회색 수트 차림이었으나, 그의 머리 뒤쪽에는 기괴한 장치가 결착되어 있었다.

두개골 후두부에 직접 박혀 있는 은색 인터페이스 포트. 그 포트에서 뻗어 나온 수십 개의 광섬유 케이블이 원자로의 메인 제어 콘솔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이미 인간의 그것이 아니었다. 동공 내부에서 미세한 데이터 스트림이 실시간으로 발광하며 흐르고 있었다.

"늦지 않게 오셨군요, 강태오 형사님."

한시윤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의 목소리는 원자로의 공진음과 겹쳐 기묘하게 울렸다.

"그리고 민세아 정비사님도. 주현우 처장의 난수 코드를 이용해 기하학적 락킹을 풀다니, 훌륭한 공학적 해법이었습니다."

태오는 권총을 들어 한시윤의 미간을 겨누었다.

"인터페이스에서 떨어져라, 한시윤. 코어 제어권을 반환해."

한시윤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그의 등 뒤로, 콘솔 화면에 붉은색 타이머가 떠올랐다.

[02:14:55]

"이 장치는 '역방향 동기 모듈 양자 안착기'입니다."

한시윤이 자신의 이마를 가리켰다.

"제 뇌 신경망은 현재 아틀라스의 자기장 제어 루프와 동기화되어 있습니다. 제가 입력한 최종 주파수 공식은 이미 양자 상태로 고정되었습니다. 형사님이 저를 쏘거나, 이 장치를 강제로 분리하는 순간……."

한시윤의 미소 뒤로 차가운 광기가 번득였다.

"원자로의 자기장 차폐막은 즉시 붕괴합니다. 대폭발은 '내일'이 오기 전에, 바로 이 자리에서 즉각적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세아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가셨다.

"인질극이라도 벌이겠다는 건가요?"

"아니요, 선택을 제안하는 겁니다."

한시윤의 눈동자 속 데이터 스트림이 급격히 회전했다.

"이 상태로 2시간 14분 뒤에 예정대로 폭발을 맞이하면, 세계는 다시 오늘 오전 00시로 루프합니다. 당신들의 기억도, 엔트로피도 그대로 보존된 채로 말이죠. 하지만 만약 지금 저를 죽이고 억지로 멈추려 하신다면……."

한시윤이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광섬유 케이블들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루프의 기회조차 없이, 에덴은 이 자리에서 영원한 재가 되어 사라질 겁니다. 자, 형사님. 뇌세포의 40%를 잃어버린 당신의 그 훌륭한 전두엽 칩으로 계산해 보십시오.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인 생존 확률인지."

원자로 코어의 푸른 불빛이 태오의 무표정한 얼굴을 차갑게 비추었다.

결정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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