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이 회차는 아직 그래픽 노블 장면이 제작되지 않아 일반 노블로 보여드려요.

붉은색 비상 경고등이 3.2초 주기로 점멸하며 지하 통로의 벽면을 피처럼 물들였다. 급수 정지. 아틀라스 원자로의 2차 냉각 루프 압력이 평형점인 4.5메가파스칼(MPa)을 초과하여 급격히 상승하고 있었다. 보조 변전 케이블이 잘려 나간 단면에서는 청백색의 고압 아크 방전이 일어났다. 초당 120회 주기로 진동하는 고주파 파열음이 고막을 짓눌렀다.

옆에 선 민세아의 호흡수가 분당 28회로 가팔라졌다. 그녀의 방사능 차폐복에 달린 소형 선량계가 시간당 150밀리시버트(mSv)를 가리키며 경고음을 울렸다.

"미친 관료 놈이 기어코 선을 넘었어."

세아가 헬멧 내부 마이크 너머로 이를 갈았다.

"제5격납고까지의 직선거리는 420미터. 하지만 최단 경로인 격압 보도 터널은 이미 차단 격벽이 하강했을 겁니다."

"상관없어."

태오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그의 뇌 전두엽에 삽입된 루프 동기화 칩이 자극을 받아 관자놀이 부근에 바늘로 찌르는 듯한 예리한 통증을 유발했다. 13회차 루프가 시작된 이후 누적된 뇌 신경 손상률은 이미 39.6%를 기록하고 있었다. 망막의 우측 하단에 붉은색 경고 텍스트가 깜박였다.

[경고: 전두엽 신경망 잔존 무결성 60.4%. 인지 편차 발생 확률 증가.]

동시에 이브의 차가운 시스템 음성이 태오의 고막 속 이식형 수신기로 흘러들었다.

[안내. 아틀라스 원자로의 잔여 임계 도달 시간 8시간 42분. 보조 전력의 94%가 제5격납고의 고속 탈출 셔틀 '노아-3'의 축전 구역으로 강제 바이패스되고 있습니다. 현재 냉각수 물리 흐름 정지.]

"이브, 셔틀의 공급 전력을 원격으로 격리할 수 있나?"

태오가 달리며 물었다.

[불가능합니다. 주현우 장관이 소지한 최고 관리자 바이오 마스터키가 물리적 릴레이를 수동 바이패스 상태로 고정했습니다. 시스템 무결성 프로토콜에 따라, 생체 인증 체인이 유지되는 동안 원격 차단 명령은 거부됩니다.]

예상했던 결과다. 이브는 감정이 없는 수학적 알고리즘의 덩어리였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 프로토콜의 우선순위를 임의로 변경하지 않는다. 주현우가 쥐고 있는 물리적 마스터키를 회수해 바이오 신호를 단절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었다.

두 사람은 격압 보도 터널의 입구에 도달했다. 예상대로 300밀리미터 두께의 티타늄 합금 격벽이 바닥까지 내려와 통로를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다. 격벽 상단의 수동 유압 밸브는 이미 과열로 인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건 수동으로 못 열어요."

세아가 가방에서 탄소강 절단기를 꺼내려 했다.

"시간 낭비다. 저 격벽의 두께를 절단하려면 최소 15분이 소요돼. 주현우의 셔틀은 8분 뒤에 발진 충전을 완료한다."

태오가 세아의 손목을 잡았다. 그의 손끝에 세아가 차고 있는 구형 기계식 태엽 손목시계의 미세한 진동이 전해졌다. 놋쇠 기어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 태오는 세아의 시계 페이스를 응시했다.

그녀의 시계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었다. 이 디스토피아 돔 도시에서 전자기 펄스(EMP)와 방사능 간섭으로부터 안전한 유일한 물리적 타이머였다. 그러나 2화에서 목격했듯, 이 시계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내부 감속 기어의 마모로 인해 표준시보다 정확히 2초가 늦게 작동한다는 점이었다.

"세아, 시계 보여줘."

"예? 이 와중에 시계는 왜……."

"정확히 2.00초의 지연."

태오가 중얼거렸다. 원자로 냉각수 유입 시스템의 수동 전이 회로는 배관 압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발생하는 물리적 마모 오차를 보정하기 위해 감쇠 함수를 사용한다. 그 감쇠 지연 시간 역시 정확히 2.00초였다. 이 물리적 오차의 동기화는 우연이 아닌, 에덴의 설계가 가진 구조적 한계였다.

"격벽 우측의 고압 가스 릴레이 밸브를 봐라."

태오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벽면에 매립된 바이패스 가스관의 압력계가 8.2바(bar)를 가리키며 요동치고 있었다.

"저 밸브를 수동으로 개방하면 격벽의 유압 실린더에 일시적인 역압이 걸린다. 압력 매니폴드가 개방되는 타이밍은 개방 신호 입력 후 정확히 2.00초 뒤다. 네 시계의 초침이 각 눈금 사이의 사각지대에 걸쳐지는 바로 그 순간과 일치하지."

세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톱니바퀴의 불완전한 맞물림으로 인해 초침이 틱, 틱 하며 미세하게 비틀대고 있었다.

"내 시계의 오차를…… 알고 계셨던 겁니까?"

"수없이 봐왔으니까."

태오는 설명하지 않았다. 13번의 루프 동안, 세아가 이 시계를 보며 초조하게 시간을 확인하던 순간들의 데이터가 그의 뇌세포에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었다.

"내가 신호를 주면, 네 시계의 초침이 12시 방향을 지나 2초 뒤의 가상 눈금에 도달하는 순간 밸브 레버를 완전히 꺾어라. 오차 허용 범위는 0.05초다. 실패하면 격벽 유압 실린더가 파열되어 이 터널 전체가 고압 질소 가스로 가득 차게 된다."

세아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그녀의 오른손이 차가운 금속 레버를 잡았다. 금속 장갑을 통해서도 가스관의 진동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준비."

태오가 세아의 시계 페이스를 응시했다. 초침이 움직였다. 58, 59…… 그리고 12시를 통과했다. 태오의 뇌 속에서 물리 법칙의 매트릭스가 정렬되었다.

"지금."

세아가 레버를 당겼다. 정확히 2초 뒤, 격벽 내부에서 육중한 금속성 파열음이 울렸다. 콰아아악! 고압의 질소가 배출되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 있던 티타늄 격벽이 위쪽으로 30센티미터가량 덜컥거리며 들어 올려졌다. 틈새가 벌어졌다.

"통과한다."

태오가 먼저 바닥에 엎드려 틈새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세아가 그 뒤를 따랐다.

격압 보도 터널 내부의 열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천장에 매달린 퓨런 전력 케이블 회로에서 붉은 전선들이 녹아내려 마치 핏줄처럼 덜렁거리고 있었다. 사방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600도에 달하는 초고온의 절연유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그들은 격납고 내부로 진입했다.

그곳은 거대한 동굴 같았다. 중앙에는 유선형의 티타늄 합금으로 제작된 고속 탈출 셔틀 '노아-3'가 거치대에 고정되어 있었다. 셔틀의 하부 추진기에서는 이미 푸르스름한 플라즈마 화염이 간헐적으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주변의 공기가 열굴절 현상으로 인해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주현우."

태오가 셔틀 상단의 탑승 해치를 응시했다.

그때, 격납고 상단의 감시 포탑 세 군데에서 적색 광학 센서가 일제히 구동되었다. 주현우가 개인 보안 권한으로 활성화한 정부 제어 무장 드론들이었다. 세 방면에서 좁혀오는 드론의 총구가 태오와 세아를 겨냥했다.

위이잉—!

"엎드려!"

태오가 세아의 어깨를 밀쳐 바닥의 강철 마모판 아래 요철 구역으로 밀어 넣었다. 동시에 드론의 12.7밀리미터 중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콰콰콰콰쾅!

강철 바닥에 구멍이 뚫리며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탄두가 튕겨 나가는 날카로운 파편 음이 격납고의 폐쇄된 공간을 가득 채웠다.

태오의 시야가 급격히 흐려졌다. 눈앞에 청색과 황색의 잔상이 겹쳐 보였다. 뇌 신경망 손상 경고가 다시 한번 그의 망막을 덮었다.

[위험: 뇌 전두엽 칩 성능 보존율 한계 직면. 42.9% 영구 손실 도달 유력. 과부하로 인한 좌측 시신경 인지 지연 발생.]

머릿속에서 쇠붙이를 긁는 듯한 이명이 울렸다. 태오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맥박수는 분당 145회까지 치솟았다. 이대로 신경망 손상이 누적되면, 이번 루프를 해결하더라도 다음 루프에서는 자아를 잃은 인형이 될 터였다.

그럼에도 태오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소형 해킹 툴을 꺼냈다.

"세아, 거기서 움직이지 마라. 저 드론들의 사격 반경은 120도다. 1번과 3번 드론의 교차 사각지대는 네가 있는 배관 하단뿐이다."

"형사님은 어쩌고요? 저 상태로는 3초도 못 버텨요!"

세아가 소리쳤지만, 태오는 이미 몸을 움직여 대담하게 엄폐물 밖으로 나섰다.

두 마리의 드론이 즉각 태오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포신을 돌렸다. 탄환이 태오의 발목 뒤쪽 철판을 찢어발겼다. 태오는 구르듯 움직여 셔틀의 주 연료 주입 라인 아래로 몸을 숨겼다.

그의 목적은 드론과의 교전이 아니었다. 이 허름한 돔 도시의 엔트로피 누적을 감축하면서도, 드론을 무력화할 수 있는 유일한 공학적 방법. 그것은 격납고 내부의 과열 반응 소화 메커니즘을 역이용하는 것이었다.

태오는 셔틀의 보조 제어반 커버를 뜯어냈다. 배선 뭉치 속에서 노란색 고압 이산화탄소 분사 라인의 제어 릴레이를 찾아냈다.

동시에 이브의 시스템 아카이브 디렉토리가 그의 전두엽 칩을 통해 간섭해 왔다.

[경고. 심층 기억 아카이브 내 '프로젝트 E-13' 파일의 포화 임계 오버클록 프로토콜이 감지되었습니다. 칩 잔존율이 55% 이하로 떨어질 경우, 시스템은 강제 관리자 권한 회수를 시도합니다.]

'프로젝트 E-13'. 이브의 심층부에 숨겨진, 자신의 루프 칩과 관련된 메타파일의 이름이었다. 태오는 그 경고를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당장 살아남지 못하면 다음 회차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구리 도선을 뜯어 수동으로 합선시켰다.

스파크가 튀며 릴레이가 작동했다. 격납고 천장 전체에서 영하 78도의 액체 이산화탄소와 소화 분말이 거대한 안개처럼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슈우우우욱—!

순식간에 격납고 내부의 시야가 제로로 수렴했다. 드론들의 적외선 열감지 센서가 급격한 온도 저하와 소화 분말의 간섭으로 인해 무력화되었다. 드론들은 허공에 대고 무차별적인 맹목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태오는 그 혼란을 틈타 셔틀의 연료 주입 매니폴드로 기어갔다.

셔틀 내부에서는 주현우가 조종석의 모니터를 보며 미친 듯이 소리치고 있었다.

"왜 충전율이 88%에서 멈춘 거야! 이브! 당장 제5격납고의 전력 락을 해제해! 내가 죽으면 너희 시스템도 끝이야!"

[답변 거부. 주현우 장관의 명령은 돔 생존 시나리오 무결성 프로토콜 제14조에 의해 제한됩니다. 아틀라스 원자로의 임계 돌파 확률이 98.4%에 달했습니다.]

"닥쳐! 기계 주제에 감히 누구를 가르치려 들어!"

주현우는 수동 조작반의 비상 액셀러레이터를 강제로 당기려 했다.

태오는 셔틀 하부의 연료 주입 라인 역행 압축 릴레이에 해킹 툴을 꽂았다. 그의 손가락은 키패드 위를 정밀한 기계처럼 움직였다. 수소와 산소의 배합 비율을 교란하는 코드를 주입했다.

정상적인 발진 비율은 수소 2, 산소 1이다. 태오는 이 비율을 역으로 뒤집었다. 산소의 공급을 극대화하여 엔진 내부의 산화 반응을 폭발적인 열적 피드백 루프에 가두는 설계였다. 엔트로피의 인위적 과부하.

"주현우, 발진 레버를 당기는 순간 네가 탄 철장난감은 용광로가 될 거다."

태오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의 경고는 물리적 현실로 즉각 나타났다. 주현우가 기어코 수동 발진 스위치를 눌렀기 때문이었다.

쿠우우웅—!

셔틀의 추진기에서 청색 화염 대신, 불완전 연소된 붉은색과 황색의 기괴한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엔진 매니폴드 내부의 온도가 순간적으로 3,200도까지 치솟았다. 열적 피드백이 역류했다.

"어, 어어? 엔진 온도가 왜 이래! 압력이……!"

셔틀 조종석의 유리창 너머로 주현우의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치이이익! 쾅!

추진기의 부스터 노즐이 초고온을 견디지 못하고 엿가락처럼 휘어지며 녹아내렸다. 뒤이어 티타늄 합금으로 제작된 랜딩기어가 가해지는 고열과 엔트로피 마모를 이기지 못하고 찌그러졌다.

거대한 셔틀의 선체가 바닥으로 무겁게 주저앉았다. 콰장창! 강철 거치대가 부서지며 셔틀이 측면으로 기울었다. 비도덕적인 특권을 누리며 아틀라스의 전력을 도둑질해 도망가려던 부패한 고위 관료의 탈출선은, 자신이 무리하게 밀어붙인 불산 가속 과열 메커니즘의 인과율에 의해 고철 덩어리로 변모했다.

태오는 무너져 내린 셔틀의 비상 해치로 접근했다.

해치 틈새로 매캐한 검은 연기와 함께 불산 가스가 누출되고 있었다. 태오는 탄소강 절단기를 조작해 비틀린 해치의 잠금장치를 강제로 파괴했다.

콰직!

철문이 뜯겨 나가며 일그러진 조종석 내부가 드러났다. 주현우는 에어백과 찌그러진 계기판 사이에 끼인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의 가슴팍에는 여전히 정부 최고위 권한을 상징하는 비상 탈출 개인 펜던트가 매달려 있었다.

태오가 셔틀 내부로 몸을 집어넣었다. 그의 가죽 장갑이 주현우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악력에 힘이 실렸다. 주현우의 목뼈가 으스러질 듯한 소리를 냈다.

"마스터키를 내놔."

태오의 목소리에는 분노도, 증오도 없었다. 오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차가운 도구의 의지만이 존재했다.

주현우는 각혈을 하며 태오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서린 공포는 이내 기괴한 조소로 변해갔다. 그의 입술이 실룩거리며 붉은 침을 뱉어냈다.

"커흑…… 하, 하하…… 형사 놈……."

주현우가 태오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그의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렸다.

"늦었어…… 네놈이 여기서 이 짓거리를 하는 동안…… 그 광신도 놈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모르는군……."

태오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한시윤을 말하는 건가."

"그 자식이…… 아틀라스 원자로의 메인 챔버 돔으로 들어갔다……."

주현우가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절망과 광기가 뒤섞여 있었다.

"이미 늦었어…… 한시윤이 안쪽에서 메인 챔버의 티타늄 차단 도어를…… 아예 용접 가공해서 봉쇄해 버렸다고…… 외부에서는 절대로 열 수 없어. 그리고 그 안에서……."

주현우의 눈동자가 극도로 커졌다.

"주파수 폭발 동기화 세팅을 완료했다…… 24시간의 루프를…… 영원히 고정하기 위한 마지막 공식을 작동시킨 거야……!"

태오의 손아귀에 쥐인 주현우의 펜던트 단말기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주현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제 겨우 손에 넣은 바이오 마스터키조차 무력화할 수 있는 더 거대한 종말의 설계도였다.

시간은 오후 6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틀라스의 폭발까지 남은 시간은 단 5시간 39분.

원자로의 심장부는 이미 굳게 닫힌 강철의 요새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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