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릉, 콰르르릉.
갓 진화된 아틀리에 마당의 젖은 흙 위로 무거운 무한궤도가 짓이겨지는 진동이 지진처럼 고스란히 전해졌다. 불과 몇 분 전, 은바람이 토해낸 신비로운 영풍(靈風)에 씻겨 내려갔던 공기가 다시금 숨 막히는 디젤 연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매캐한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검은 매연을 뿜어내며 청록동의 좁은 골목길을 비집고 들어오는 소형 불도저 장비들. 그 전면에 달린 시커먼 철제 삽날들이 아틀리에의 이층 목조 벽을 향해 전속력으로 진격해 오고 있었다.
“방화로 안 된다면, 아예 뼈대째로 무너뜨려 주지. 전원 진격해! 싹 다 밀어버려!”
선두에 선 강준환이 미친 듯이 소리쳤다. 가죽 장갑을 낀 그의 손이 무전기를 꽉 쥐고 있었다. 방화 실패로 이성을 잃은 그의 눈등에는 붉은 실핏줄이 터져 있었다.
붉은 헬멧을 쓴 사내들이 모는 철제 괴물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틀리에의 낡은 나무 기둥을 향해 돌진했다. 그 서슬 퍼런 기세에 마당에 피어 있던 들꽃들이 무참히 꺾이고 흙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여기서 무너지면 모든 것이 끝난다. 할아버지의 숨결이 깃든 이 집도, 내가 간신히 찾은 나의 안식처도 전부 먼지가 되어 사라지겠지.
가슴 깊은 곳에서 서늘한 공포가 치밀었지만, 나는 이를 악물었다. 입술 사이로 비어져 나오는 신음 소리를 삼켰다. 동조율 100%에 달한 뇌리에 아틀리에에 숨어든 동물들의 공포와 슬픔이 실시간으로 동기화되어 내 오감을 사정없이 난도질하고 있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고, 온몸의 뼈마디가 타들어 가는 것만 같은 과부하의 통증이 밀려왔다. 눈앞이 붉게 번지며 숨이 턱 막혔다.
“여울 씨!”
백은우가 내 어깨를 단단히 붙잡았다. 그의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묵직하고 따뜻한 온기가 파도처럼 내 몸을 감싸 안으며 과부하의 고통을 조금씩 밀어냈다. 은우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올곧았다.
“내가 막을게요. 더는 당신 혼자 아프게 두지 않아.”
“언니, 내 오토바이로 저 새끼들 궤도 바퀴에 체인이라도 감아버릴게!”
송도희가 가죽 재킷 소매를 걷어붙이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눈에 서린 야성적인 안광이 번뜩였다.
하지만 저 거대한 고철 덩어리들을 몸으로 막아서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더 확실하고 치명적인 물증이 필요했다. 법률과 돈이라는 거대한 방패를 두른 강준환을 단번에 무너뜨릴 결정적인 무기가 바로 내 손바닥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코트 주머니 속을 더듬었다.
손끝에 가장 먼저 걸린 것은 찬란한 은빛 광채를 내뿜는 ‘은빛 바늘 실’ 한 타래였다. 할아버지의 재봉 보관함 깊숙한 곳에서 발견했던 이 정체불명의 실타래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다. 영혼의 수선 장부와 반응해 아틀리에의 마법적인 공간 확장을 이끌어내고 온기를 증폭시키는 기적의 매개체였다. 내 손끝에 닿은 은빛 실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내 몸의 감각 과부하를 가라앉히는 완충 장치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만져지는 단단한 물건. 유기견 깜이가 물고 있던 특수 플라스틱 뼈 장난감이었다. 코끝을 스치는 묘한 상류층 전용 메디컬 센터의 인공적인 소독약 향기. 강준환이 자신의 메디컬 펫 빌리지 사업을 위해 무고한 길짐승들을 대상으로 불법 임상 시험을 자행했다는 완벽한 증거물이었다.
마지막으로, 도망치던 강준환의 부하 직원이 떨어뜨렸던 두꺼운 종이 뭉치. 청록동 재개발 관련 국유지 무단 불하 및 불법 배수로 매립 건설 도면이 내 손에 꽉 쥐여 있었다.
—이 세 가지만으로도 강준환을 파멸시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저 불도저의 시동을 끄게 만들려면, 놈들이 방금 저지른 ‘방화’의 직접적인 증거가 더 필요해.
나는 시선을 돌려 방금 전까지 불길이 치솟았던 지하실 입구의 잿더미를 바라보았다. 검게 그을린 목재 파편과 타버린 가재도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그곳에서, 아주 미세한 금속성 영기(靈氣)가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수선 장부의 시각적 수치가 내 눈앞에 가상 창으로 떠올랐다.
[영혼의 동조율 100% - 주변 잔류 사념 추적 활성화] [방화범의 소지품 감지: 잔존 온기 42°C]
“거기야……!”
나는 은우의 손을 뿌리치고 잿더미를 향해 달렸다.
“여울 씨! 위험해요! 불도저가 밀고 들어옵니다!”
은우의 비명 같은 외침이 등 뒤에서 들렸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무릎을 꿇고 뜨겁게 식어가는 재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날카로운 못과 깨진 유리 조각이 손가락 끝바닥을 긁어내며 붉은 피가 배어 나왔지만 통증을 느낄 새도 없었다. 뜨거운 재를 헤치고 마침내 손끝에 걸린 것은, 액정이 반쯤 깨진 채 붉은 표시등을 깜빡이고 있는 최신형 스마트폰이었다. 강준환의 사설 방화범이 도망치며 떨어뜨린 폰이었다.
화면을 켜자, 잠금장치도 걸려 있지 않은 상태로 통화 녹음 폴더가 열려 있었다. 가장 최근에 녹음된 파일의 이름은 ‘강 회장님’.
나는 곧바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깨진 스피커 사이로 지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너무나도 익숙하고 사악한 목소리가 마당 전체에 울려 퍼졌다.
—『어이, 배 씨. 소방 도로 쪽에 미리 준비해 둔 공사 자재들 다 깔아뒀지? 소방차 진입하는 데 최소 삼십 분은 걸리게 만들어 놔. 그리고 불 지를 때 아틀리에 옆 빌라들까지 불길 좀 번지게 유도해. 그래야 청록동 주민 놈들이 겁을 처먹고 이주 합의서에 사인을 하지. 사람이 몇 명 죽든 말든 상관없으니까 확실하게 태워 버려.』
순간, 진격하던 불도저들의 엔진 소리가 일제히 잦아들었다.
아틀리에 마당 주변을 둘러싸고 발을 동동 구르며 눈물을 흘리던 청록동 주민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갔다.
“방금…… 저게 무슨 소리야?”
“우리 집까지 다 태워 죽이려고 했다고……?”
군중 속에서 나직한 웅성거림이 시작되더니, 이내 거대한 분노의 파도로 변해갔다. 그중에는 골드 디벨롭먼트가 제시한 막대한 보상금에 눈이 멀어 은밀히 주민들을 회유하고 아틀리에를 배척하는 데 앞장섰던 몇몇 변절 상인들도 섞여 있었다. 상가 번영회의 총무를 맡고 있던 박 씨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강준환을 가리켰다.
“강, 강 회장님……! 이게 진짜 당신 목소리예요? 소방 도로를 막아서 우리 애들까지 다 태워 죽이려고 했다는 게, 그게 진짜냐고!”
강준환의 얼굴에서 여유로운 미소가 순식간에 휘발되었다. 놈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기 위해 무전기를 흔들며 소리쳤다.
“이건 조작된 음성입니다! 요즘 세상에 인공지능 목소리 변조 같은 건 일도 아니라는 거 다들 아시잖습니까! 속지 마세요! 저 여자가 지금 아틀리에를 안 빼앗기려고 자작극을 벌이는 겁니다!”
“자작극?”
나는 스마트폰을 높이 치켜들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내 손가락 끝에서 흘러내린 피가 깨진 화면 위로 붉게 번졌다.
“자작극인지 아닌지는 경찰과 소방서에서 감식해 보면 알겠죠. 그리고 강준환 씨, 당신이 그동안 저지른 추악한 짓이 어디 이 방화뿐인 줄 아십니까?”
나는 코트 주머니에서 깜이의 뼈 장난감과 국유지 무단 불하 도면을 꺼내 주민들 앞에 펼쳐 보였다.
“이 장난감에서 나는 냄새, 청록동 길고양이들과 강아지들이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지게 만들었던 불법 신약의 임상 시험 약물입니다. 당신들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선전하던 상류층 전용 메디컬 센터의 지하에서 무슨 짓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이 물증이 증명해 줄 겁니다. 그리고 이 도면!”
나는 흙먼지가 묻은 설계도를 높이 털었다.
“당신들이 우리 청록동을 허물고 지으려던 번듯한 건물들 아래, 국가 소유의 배수로를 불법으로 매립하려던 계획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만약 이대로 공사가 진행되었다면, 매년 여름마다 우리 청록동 전체가 물바다가 되어 가라앉았을 겁니다! 당신들의 목숨과 재산을 제물 삼아, 오직 저 인간 혼자만의 배를 불리려 했다는 뜻입니다!”
주민들의 눈빛이 완전히 뒤집혔다.
“이 개만도 못한 자식들이……!”
“우리를 아주 벌레만도 못하게 봤구나!”
돈에 눈이 멀어 마을을 팔아넘기려 했던 변절 이웃들이 가장 먼저 무릎을 꿇었다. 박 씨는 흙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대성통곡했다.
“여울 씨…… 미안하네, 정말 미안해……! 우리가 돈 몇 푼에 눈이 멀어 자네 할아버지의 소중한 아틀리에를 괴롭히고, 이 악마 같은 놈들 편을 들었어……!”
“여울아, 이 아줌마가 죽을죄를 지었다! 정말 미안하다!”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내 마음속의 방어벽 틈새로, 주민들의 진심 어린 참회와 사죄의 온기가 흘러들었다. 타인의 호의를 위선으로 의심하며 언제나 한 걸음 물러서서 방어 기제를 취했던 나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들의 눈물이 아틀리에를 지키기 위한 거대한 불꽃으로 화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죄는 나중에 하세요.”
나는 단호하게 외쳤다.
“지금 당장 저 괴물들부터 멈춰 세워야 합니다!”
“당연하지! 얘들아, 다들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야? 연장 챙겨!”
도희가 오토바이 시동을 거칠게 걸며 소리치자, 마당에 모여 있던 청록동 상인들과 원주민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세탁소 쇠파이프, 식당의 두꺼운 식칼과 식자재 박스, 야구 배트와 농기구들이 주민들의 손에 쥐어졌다. 그들은 철제 불도저의 앞을 몸으로 가로막으며 거대한 인간 장벽을 형성했다.
“밀어 볼 테면 밀어 봐라, 이 살인마 놈들아!”
수십 명의 주민이 한뜻으로 뭉쳐 소리치는 기세에, 불도저를 몰던 용역 사내들이 겁을 먹고 조종간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내 품 안의 ‘영혼의 수선 장부’가 눈부신 황금빛을 뿜어내며 공중에 스스로 떠올랐다.
[영혼의 수선 장부 ‘온기 지수’가 임계점을 돌파했습니다.] [현재 온기 지수: 100% (완전 각성)] [히든 스킬 ‘은빛 해방막’의 범위가 아틀리에 경계를 넘어 청록동 전체 반경으로 대대적으로 확장됩니다.]
우우웅—!
아틀리에의 지붕 틈새에서 장난감 태엽 열쇠 모양의 황동 단추를 굴리며 놀던 길고양이 네로가 나를 내려다보며 냐앙, 하고 길게 울었다. 그 울음소리를 신호탄 삼아, 아틀리에의 쪽빛 향나무 문턱에서부터 시작된 은은한 은빛 에너지가 파도처럼 퍼져 나갔다.
포근하고 따뜻한 봄볕 같은 은빛 장막이 아틀리에 마당을 넘어, 청록동 골목길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불도저가 뿜어내던 매캐한 디젤 가스가 은빛 장막에 닿자마자 맑고 향기로운 풀꽃 냄새로 정화되어 흩어졌다. 주민들의 몸에 깃들어 있던 피로와 공포가 씻겨 내려갔고, 그들의 무기에는 은빛 수호의 기운이 서려 번뜩였다.
“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
강준환은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기적적인 광경에 뒷걸음질을 쳤다. 놈이 고용한 사설 용역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한 채 불도저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항복 선언을 하고 있었다.
“철수해! 일단 철수하라고!”
강준환이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고급 세단으로 도망쳐 몸을 실었다. 놈의 차가 비겁하게 흙먼지를 일으키며 청록동 골목길 너머로 도망치는 모습을 보며, 주민들은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우리가 이겼다! 아틀리에를 지켰어!”
은우가 내 곁으로 다가와 피투성이가 된 내 손을 손수건으로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그의 따뜻한 눈동자가 나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었다.
“여울 씨, 정말 대단해요. 당신이 이 마을을 구한 겁니다.”
“아니요, 은우 씨. 우리가 함께 지켜낸 거예요.”
나는 은우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활짝 미소를 지었다. 더는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과,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진짜 가족이 바로 내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가슴을 따뜻하게 채워왔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승리의 함성으로 가득 찬 청록동 골목길의 저편, 은빛 해방막의 인지가 미처 닿지 않는 어두운 외곽의 음지 속에서.
지직, 지지직.
검은색 선팅이 짙게 깔린 밴 차량 석 대가 시동을 걸지 않은 채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다. 차량 내부의 어둠 속에서, 군용 나이프를 만지작거리는 사내들의 서늘한 눈빛이 번뜩였다. 그들의 귀에 꽂힌 인이어 무전기 너머로, 도망치던 강준환의 악에 받친 마지막 음성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법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어. 청록동 외곽에서 대기해라. 한여울 그년과 그 수의사 놈, 그리고 그 미친 아틀리에에 있는 것들을 오늘 밤 안으로 반드시 소리 소문 없이 청소해 버려. 흔적도 남기지 말고 찢어 죽여라.』
사내들이 품 안에서 차가운 쇠붙이들을 꺼내 들며 어둠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청록동을 향한 진짜 피비린내 나는 보복의 칼날이, 이제 막 찾아온 평화의 온기를 향해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