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뇌의 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가 안개 속에서 고막을 찔렀다.
무쇠로 단조된 활줄이 내는 날카로운 마찰음. 왕선의 머릿속 연산계가 즉각 반응하며 붉은색 궤적을 허공에 그리기 시작했다.
[시각 동기화 완료.] [적의 쇠뇌: 가공 장력 약 120파운드급 고려식 궐장노.] [유효 사거리 내 진입: 40보.] [피탄 예상 지점: 가마 주변 반경 5장(丈) 이내 집중.] [심박수 급증: 142bpm. 오버클록 가동 시 심근 손상 위험 증가.]
"발사하라!"
동시에 안개 너머에서 자객 우두머리의 명령이 떨어졌다.
*투두두둑!*
스무 대의 쇠뇌에서 발사된 철촉 화살들이 안개를 찢으며 비처럼 쏟아졌다. 날카로운 파공음이 사방을 뒤덮는 찰나, 왕선은 가마 문틀을 짚으며 몸을 낮췄다. 가마의 두꺼운 참나무 판벽에 무쇠 화살촉들이 박히며 거친 파열음이 일었다. 나무 파편들이 왕선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방패를 올려라! 전하를 호위하라!"
호위장 무휼이 장도를 뽑아 들며 소리쳤으나, 기습을 당한 열두 명의 호위 무사들은 이미 사선에 노출되어 있었다. 두 명의 무사가 목과 어깨에 깃든 화살에 관통당하며 비명을 지르고 쓰러졌다. 순식간에 아군의 방어선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것들."
왕선은 끓어오르는 가슴의 통증을 억누르며 소매 안에서 놋쇠로 주조된 소형 분화통(噴火筒) 두 자루를 꺼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 머릿속 연산계가 정밀한 수치를 띄웠다.
[신형 흑색 수화류탄(水火榴彈).] [장약: 정제 초석 75%, 정밀 황 10%, 목탄 15%.] [도화선 연소 속도: 초당 1.2인치.] [폭발 제어 반경: 8보.]
이 수화류탄은 이전에 사찰 지하실을 수색해 은밀히 장악해 두었던 거대한 초석 밭에서 추출한 고순도 초석으로 제조된 것이었다. 흙법 제철소의 도가니에서 뽑아낸 극저탄소강 파편 수십 개를 외피 내부에 촘촘히 박아 넣어, 폭발 시 살상의 효율을 극대화한 왕선의 독자적 발명품이었다.
*치이이익-*
왕선이 부싯돌을 튕겨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불꽃이 타들어 가는 소리가 기이할 정도로 선명하게 들렸다. 그의 눈동자가 안개 속에서 돌격해 오는 철혈방 자객들의 움직임을 기하학적인 점과 선으로 해체했다.
"셋, 둘, 하나."
입술 사이로 차가운 숫자가 흘러나왔다. 왕선은 자객들이 밀집하여 돌파를 시도하는 우측 사선 방면으로 첫 번째 분화통을 투척했다.
*콰아아아앙-!*
대지를 흔드는 폭음과 함께 붉은 화염이 안개를 찢어발겼다.
일반적인 연막용 화약과는 차원이 다른 폭발 압력이었다. 고순도 초석이 빚어낸 급격한 가스 팽창은 놋쇠 외피를 산산조각 내며 사방으로 강철 파편을 비산시켰다.
"끄아아악!" "내 눈! 눈이 안 보인다!"
폭풍의 중심에 있던 자객 일곱 명이 사지가 찢긴 채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가혹하게 가공된 강철 파편들은 그들이 입고 있던 조잡한 가죽 갑옷을 종잇장처럼 뚫고 들어가 뼈와 살을 으스러뜨렸다. 폭풍의 충격파에 휩쓸린 뒤쪽의 자객들도 고막이 터져 비틀거렸다.
"두 번째다."
왕선이 연이어 두 번째 분화통의 도화선에 불을 붙여 측면의 쇠뇌수들을 향해 던졌다.
*콰앙!*
다시 한번 뇌성이 고개를 뒤흔들었다. 화약 연기와 자욱한 피비린내 속에서 철혈방의 대열은 순식간에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자객 우두머리가 피를 흘리며 소리쳤다.
"이, 이게 무슨 요술이냐! 물러서지 마라! 저 자의 목만 따면 만금이 우리 손에 들어온다!"
그러나 이미 공포는 그들의 뼛속까지 침투해 있었다. 살아남은 자객들이 주춤하는 찰나, 고갯길 아래쪽에서 육중한 말발굽 소리가 대지를 울리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
"전하! 소첩이 늦었사옵니다!"
안개를 뚫고 나타난 것은 안변 한씨 가문의 방패 기마 사병들이었다. 선두에 선 한이린이 가문의 깃발을 치켜든 채 백마를 달리고 있었다. 그녀의 뒤로 두꺼운 목방패를 마구에 덧댄 오십여 기의 중장 기병들이 철풍처럼 몰아쳤다.
"방패 돌격! 잔당들을 단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한이린의 차가운 명령과 함께, 기병들이 철혈방 자객들을 향해 들이닥쳤다. 말 앞가슴에 장착된 목방패가 자객들의 신체를 들이받아 뼈를 바스러뜨렸고, 기병들의 장도가 사정없이 아래를 향해 내리쳤다.
전투는 순식간에 도살극으로 변했다.
왕선은 가마 벽에 기대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하며 뜨거운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우윽……."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을 보며, 왕선은 손등으로 입가를 훔쳤다.
[연산 오버클록으로 인한 심근 내부 압력 유도 한계 도달.] [수명 잔여일수: 118일.]
이틀이 또 가라앉았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여전히 기계처럼 차갑고 흔들림이 없었다.
말에서 내린 한이린이 다급히 다가와 왕선의 상태를 살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염려를, 왕선은 손짓 하나로 차단했다.
"상황은?" "철혈방의 습격자들은 전멸했습니다. 사로잡은 자들의 품에서 채충순의 밀지와 수결이 찍힌 지시서를 확보했습니다."
한이린이 핏물 묻은 종이뭉치를 건넸다. 왕선은 그것을 받아 채충순의 연판장과 함께 품에 넣었다.
"서경 도호부가 아니라, 즉시 행궁으로 간다. 주상이 머물고 계신 어전으로."
왕선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제거되어 있었다. 오직 정적을 완벽하게 숨통을 끊어놓겠다는 공학적 목적의식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 * *
서경 행궁의 숭덕전(崇德殿).
새벽의 한기가 채 가시지 않은 전각 내부는 무거움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옥좌에 앉은 현종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양옆으로 늘어선 조정의 대신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숨소리조차 죽이고 있었다.
그 중심에 문벌 귀족의 우두머리, 정당문학(政堂文學) 채충순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비록 가택 연금 상태였으나, 그는 오늘을 위해 준비한 비장의 카드가 있었다.
"폐하! 종실 왕선이 사사로이 병기창을 군사 기지화하고, 사찰의 재산을 침탈하였으며, 이제는 조정의 노신들에게 역모의 누명을 씌우려 하고 있사옵니다! 이는 명백한 사직 찬탈의 음모이옵니다!"
채충순이 홀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며 앞으로 나섰다. 그의 백발이 분노로 잘게 흔들렸다.
"폐하! 종실 왕선은 서경의 야철소를 사유화하여 사병의 무기를 주조하고, 불법으로 사찰의 재산을 강탈하였사옵니다. 이제는 나라의 대사를 논하는 노신들에게 역모의 누명을 씌우려 하니, 어찌 이 자의 표독한 사술을 믿으시옵니까! 저 연판장은 필시 위조된 것이옵니다!"
대신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커졌다. 채씨 가문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문벌 귀족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기색을 보였다.
왕선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가슴속 심장은 여전히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뱉어내고 있었으나, 눈동자만큼은 얼음처럼 투명했다. 그는 품에서 두 개의 문서 뭉치를 꺼내 어전 바닥에 내던졌다.
*탁.*
"위조라 하셨습니까."
왕선의 목소리는 낮고 평이했다. 감정이 배제된 기계의 음성이 전각 내부를 얼려버렸다.
"이 연판장에 날인된 채 대감의 수결과 낙인은 예부(禮部)에 등록된 공인(公印)과 소수점 이하의 오차도 없이 일치합니다. 머릿속으로 계산해 볼 것도 없으나, 혹여 의심이 가신다면 지금 서경 도호부의 인장첩을 가져와 대조해 보시지요."
"그, 그것은 얼마든지 모방하여 깎아낼 수 있는 법……!"
"낙인의 우측 상단, 모서리에서 안쪽으로 영 점 삼 밀리미터 지점에 미세한 실금이 가 있습니다. 이는 삼 년 전 채 대감이 개경의 사택에서 낙인을 떨어뜨려 생긴 균열이지요. 목판의 나이테 방향과 가해진 충격의 궤적까지 완벽히 일치하는 위조품을 만들려면, 고려의 모든 장인을 모아도 백 년은 걸릴 겁니다."
왕선의 손끝이 채충순의 얼굴을 가리켰다.
"또한 여기, 방금 전 저를 습격한 자객들의 품에서 나온 지시서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채 대감의 친필 서명과 함께 사가(私가)에서 은밀히 사용하는 가인(家印)이 찍혀 있지요. 이 역시 위조라 하실 겁니까?"
숭덕전에 가득한 신료들이 일제히 숨을 들이켰다.
채충순의 미간이 급격히 일그러졌다. 그의 다리가 눈에 띄게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쇠가 고로 속에서 녹아내리듯, 그의 오만한 기세가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폐하, 저 자는…… 저 자는 요술을 부리는 괴물이옵니다! 어찌 저런 해괴한 수치들을 믿으시옵니까!"
현종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황제는 용상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주먹이 용안(龍案)을 내리치자, 청자 서적 받침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져 박살 났다.
*쨍그랑-!*
"닥쳐라!"
황제의 포효가 전각을 뒤흔들었다.
"짐을 기만하고, 종실을 살해하려 했으며, 거란과의 전쟁을 앞두고 군세를 분열시키려 한 죄. 채충순, 네 놈이 정녕 사직을 요나라에 통째로 바치려 하였느냐!"
"폐, 폐하! 억울하옵니다!"
"성상 폐하의 명을 받들어라!"
왕선이 차갑게 덧붙였다.
"의금부와 순군만호부는 즉시 역적 채충순과 그에 동조한 가담자 가문들의 가산을 전량 몰수하라. 또한 그 권속들을 서경 도호부 옥사에 하옥하고, 몰수한 사유 광산과 사병 무장용 철기는 모두 서경 병기창으로 귀속시킨다."
"왕선! 이 천하의 독종 놈이……!"
채충순이 머리를 풀어헤친 채 무사들에게 끌려 나갔다. 그의 비명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전각 안의 그 누구도 왕선의 서늘한 시선을 마주하지 못했다. 호족들의 거대한 카르텔이 왕선이 설계한 명분과 물리적 증거라는 외통수에 걸려 단 한 번의 공방으로 해체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승리의 침묵은 길지 않았다.
숭덕전의 무거운 참나무 문이 거칠게 열리며, 전신이 피와 흙먼지로 뒤덮인 파발병이 안으로 굴러 들어왔다.
"보, 보고드립니다! 북방 전선에서 파발이옵니다!"
파발병의 목소리는 찢어질 듯 갈라져 있었다. 그의 등 뒤에 꽂힌 붉은 깃발 세 개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삼중 급보. 국가 존망의 위기 시에만 울리는 신호였다.
"거란의 이십만 대군이 마침내 움직였습니다! 소배압이 이끄는 친위 마갑 연대가 압록강에 열여덟 개의 부교를 가설하고, 도강을 전격 시작하였사옵니다!"
전각 안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대신들은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했고, 현종 역시 안색이 흙빛으로 변해 자리에 주저앉았다.
[돌발 변수 감지. 거란군 선봉 기동 속도 연산.] [예상 도강 완료 시간: 삼십육 시간 이내.] [아군 서경 방어선 전개 완료율: 사십칠 퍼센트.]
왕선의 눈앞에 붉은색 경보창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의 심장이 다시금 둔중한 타격음을 내며 박동하기 시작했다.
"결국 시작되었군."
왕선은 입술을 깨물었다. 머릿속 도면들이 가쁘게 회전했다. 고장력 포신 주조 공정은 이제 막 안정 궤도에 올랐으나, 아직 포신을 배치하고 화약을 충전할 시간적 여유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때, 파발병이 숨을 헐떡이며 마지막 전언을 올렸다.
"또한…… 거란의 선봉 기병 오천 기가 북방 방어선을 우회하여, 서경으로 향하는 관문인 기주성(淇州城) 요새를 향해 강하하고 있사옵니다! 기주성이 돌파당하면 서경의 야철소 배후가 완전히 노출되옵니다!"
[경고. 기주성 요새 붕괴 시 물리적 위협.] [사찰 지하실에서 확보한 미정제 초석 수송 경로 차단 위험도: 구십구 퍼센트.] [서경 병기창 가동 중단 확률: 구십오 퍼센트.]
왕선의 눈동자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기주성은 단순한 요새가 아니었다. 그곳은 사찰 지하실에서 몰수한 대량의 은닉 초석 밭에서 추출한 원료를 서경 야철소로 운송하는 유일한 보급로였다. 거란의 선봉 기병단이 기주성을 함락하는 순간, 왕선이 준비한 모든 신형 화포는 단 한 발의 화약도 공급받지 못하는 거대한 고철덩어리로 전락할 터였다.
남은 시간은 하루 남짓.
왕선은 품속의 단죄된 연판장을 꽉 움켜쥐었다. 가슴을 찢는 각혈의 전조가 다시금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그는 어전 한가운데로 걸어 나갔다.
* * *
**고려사(高麗史) 제 백 이십 칠 권 - 열전(列傳) 왕선 편(王宣 傳) 요약** *현종 신해년(1011년) 정월, 종실 왕선이 조정의 권간 채충순의 역반(逆叛) 모의를 밝혀내어 그 일가를 하옥하고 사가(私家)의 광산과 사병을 서경 야철소로 귀속시키니, 서경의 제철 위세가 비로소 군을 압도하였다. 동월, 거란 주의 소배압이 이십만 철기를 거느리고 압록강에 부교를 가설하여 침공하니, 종실 왕선이 서경의 신형 병기를 가동하기 위해 기주성으로 급히 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