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발각되었다! 종실 놈의 목을 베어라!"

거란어로 부르짖는 날카로운 노성이 서경 야철소의 습한 안개를 찢었다. 사병의 군복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세 명의 살수가 일제히 거란식 곡도(曲刀)를 뽑아 들었다. 은백색 칼날이 새벽녘의 어스름을 가르며 왕선의 목덜미를 향해 호선을 그리며 쇄도했다.

정상적인 인간의 반응 속도로는 피할 수 없는 거리였다.

[위기: 좌측 전방 1.8미터, 우측 전방 2.1미터, 속도 초속 4.2미터로 접근 중.] [심박수 188bpm 돌파. 뇌 신경 전달 물질 과부하 상태.] [경고: 연산 오버클럭 지속 시 좌심실 영구 손상 발생.]

머릿속에 적색 경고등이 요란하게 점멸하며 망막 위에 붉은 수치들이 어지럽게 나열되었다.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처럼 요동쳤고, 목구멍까지 차오른 피비린내가 혀끝을 적셨다. 눈앞의 세상이 프레임 단위로 쪼개져 느리게 흘렀다.

'지금 쓰러지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간다.'

왕선은 한이린의 부축을 거칠게 뿌리치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의 시선은 살수들의 칼날이 아닌, 그들의 머리 위에 비스듬히 솟아 있는 제3호 황토 가마의 대들보로 향했다. 2화 전부터 공학 연산계가 끊임없이 경고해 왔던, 가마 내부의 미세 산소 균열로 인해 붕괴 직전에 몰린 바로 그 지점이었다.

[가마 좌측 지지보 전단 응력 한계 도달율 99.1%.] [외력 150뉴턴 가해질 시 0.8초 내에 완전 붕괴 가능.]

"이린, 엎드려라!"

왕선은 소리침과 동시에 바닥에 뒹굴고 있던 무거운 무쇠 쇠지게를 온 힘을 다해 걷어찼다. 묵직한 무쇠 자루가 공중을 날아 제3호 가마를 받치고 있던 뒤틀린 참나무 대들보의 균열부를 정확히 타격했다.

콰아아앙!

귀를 찢는 듯한 파열음이 야철소 계곡을 뒤흔들었다. 균형을 잃은 참나무 대들보가 굉음을 내며 부러졌고, 그 위에 얹혀 있던 수천 근의 황토 벽돌과 시뻘겋게 달아오른 점토 가마의 상부가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억?!"

달려들던 거란의 살수들과 그 뒤를 따르던 임몽익의 사병들의 머리 위로 뜨거운 흙먼지와 돌덩이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날카로운 비명과 뼈가 부러지는 둔탁한 소리가 자욱한 먼지 구덩이 속에서 뒤엉켰다. 가마가 무너지며 뿜어낸 열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살수 두 명은 무너진 가마 더미에 하반신이 깔린 채 비명을 질렀다. 겨우 피해 살아남은 한 명 역시 쏟아진 고온의 황토 가루에 눈을 움켜쥐고 비틀거렸다.

"무, 무슨 이런 일이……!"

임몽익이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뒤로 자빠지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공학적 연산이 만들어낸 완벽한 붕괴의 덫이었다. 왕선은 입가에 번진 검붉은 피를 소매로 닦아내며 차가운 눈빛으로 무너진 잔해를 내려다보았다.

"가마의 미세 균열조차 감지하지 못하는 자들이 제철을 논하다니. 가소롭군."

왕선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떨어져 있던 백갱철 판과 그가 설계한 신형 탄성 강철검을 수레 위에 올렸다. 수레 주위에는 삼백 명의 야철소 장인들과 군민들이 창을 쥔 채 임몽익의 남은 사병들을 포위하고 있었다.

"성공의 기쁨을 나누기도 전에 손님들이 무례하구나. 가자, 개경으로."

왕선은 쓰러질 듯한 육체를 억지로 지탱하며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황제에게 가마의 성공을 보고하고 이 지긋지긋한 이권의 고리를 끊어낼 시간이었다.

그러나 야철소의 정문을 막아선 것은 흙먼지뿐만이 아니었다.

두터운 안개 속에서 수십 필의 마필이 말방울 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나타났다. 말 위에는 개경의 문벌 귀족들이 거느리는 상급 금군들과 화려한 비단 시복을 입은 사신단이 서 있었다. 그들의 선두에 선 중추원 소속의 고위 관료가 품속에서 황색 비단으로 감싼 소환 압송 영장을 치켜들었다.

"어명이다! 서경 야철소의 사사로운 가마 건설과 황실 재정 유용 혐의로 종실 왕선을 즉시 개경으로 소환하여 국문하라는 문하평장사 채충순의 날인이 찍힌 압송령이 내렸느니라! 누구도 이 영장을 거역할 수 없다!"

개경에서 온 관료단의 고압적인 목소리가 야철소 정문에 메아리쳤다.

강감찬이 미간을 찌푸리며 앞으로 나서려 했으나, 왕선은 그의 옷자락을 가볍게 잡았다. 왕선의 눈빛은 차갑다 못해 동결된 강철 같았다.

"피할 이유가 없지. 내 발로 가겠다."

수명의 단축을 알리는 머릿속의 경고음이 이명처럼 울렸으나, 왕선은 입가를 비틀어 미소를 지었다. 문벌 귀족들이 파놓은 함정의 깊이만큼, 그들을 묻어버릴 무덤의 깊이도 깊어질 터였다.

***

사흘 뒤, 개경 황궁 연경전(延慶殿).

장엄한 기둥들이 늘어선 조정의 바닥은 차가운 청석으로 깔려 있었다. 기둥들 사이로 스며드는 겨울바람이 조정 관료들의 보랏빛과 붉은빛 시복 자락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어전 중앙에 선 왕선의 몸에는 쇠사슬이 채워져 있지 않았으나, 좌우로 삼엄하게 늘어선 금군들의 창날이 그를 매섭게 겨누고 있었다. 그의 오른편에는 한이린이 꼿꼿한 자세로 서 있었고, 조정의 상석에는 문하평장사 채충순이 승리자의 미소를 머금은 채 황제를 굽어보고 있었다.

"폐하! 서경의 왕선은 종실의 명예를 더럽히고, 황실의 제철 독점 조례를 사사로이 해석하여 서경 외곽에 불법적으로 가마를 지었나이다. 장인들을 혹사하여 가마가 붕괴하는 참극을 빚었으며, 검증되지 않은 저질 철을 명검이라 속여 황실의 군비를 탕진하려 획책하였으니 그 죄가 실로 막중하옵니다!"

채충순의 낭랑한 목소리가 연경전의 높은 천장을 때렸다. 목소리에는 문벌 귀족들의 이권을 침해한 이단아를 단숨에 밟아 죽이겠다는 서슬 퍼런 독기가 서려 있었다.

황제 현종은 옥좌에 앉아 묵묵히 왕선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우려와 의구심이 교차하고 있었다.

"왕선은 답하라. 채 평장사의 말이 사실인가? 네가 만든 철이 진정 군기시의 철보다 우수하단 말이냐?"

왕선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황제를 똑바로 쏘아보았다. 그의 양손에는 야철소에서 가져온 강철검이 들려 있었다.

"폐하. 무기란 말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물리적인 파괴력으로만 증명하는 법이옵니다. 채 평장사가 저의 철을 저질이라 칭하니, 즉석에서 검증할 것을 청하옵니다."

"검증이라?"

채충순이 콧방귀를 뀌며 앞으로 나섰다.

"좋다! 내 그럴 줄 알고 거란의 정예 기병들이 입는 일류 수입 찰갑을 준비했다. 송나라의 일류 장인들이 냉단 가공하여 만든 특수 찰갑으로, 두께가 이 분(약 2.2mm)에 달해 고려 군기시의 어떤 청동검이나 연철검으로도 흠집조차 낼 수 없는 명갑이다. 너의 그 조잡한 흙법 철검으로 이것을 벨 수 있겠느냐?"

채충순의 손짓에 금군들이 어전 중앙에 거대한 나무 지지대를 세우고, 그 위에 검붉게 빛나는 거란의 찰갑을 걸어놓았다. 쇠가죽 위에 수십 개의 정교한 강철 편들이 촘촘히 엮인,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방어구였다.

왕선은 찰갑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의 뇌리 속 공학 연산계가 번개처럼 가동되었다.

[거란식 냉단 찰갑 분석 중.] [재질: 저탄소 아공석강. 두께 2.2mm. 결정 구조의 불균일성 감지.] [약점 포인터 도출: 좌측 어깨 하단 접합부, 응력 집중 계수 2.4.] [공격 최적화 각도: 하향 35도. 요구 운동 에너지: 180줄 이상.]

왕선이 쥔 강철검의 사양 역시 뇌리에 시각화되었다.

[고려 신형 탄성 강철검.] [탄소 함량 0.62%. 미세 펄라이트 및 템퍼드 마르텐사이트 복합 조직.] [인장 강도 1100MPa, 충격 인성 완벽 확보.]

"이 검은 고려의 황토와 흑연, 그리고 수력 송풍관을 통한 고온 제어로 탄생한 '강철'이옵니다. 저질 연철에 불순물만 가득한 군기시의 고철과는 궤를 달리하지요."

왕선은 검을 느리게 들어 올렸다. 그의 팔 근육이 정밀하게 계산된 각도에 맞춰 수축했다.

"무모한 짓을!"

채충순이 비웃는 순간, 왕선의 신형 강철검이 허공을 갈랐다.

파아앗!

단순한 휘두름이 아니었다. 칼끝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는 둔탁한 바람 소리가 아니라, 예리한 금속성 파음이었다. 검날이 거란 찰갑의 좌측 어깨 접합부를 정확히 스쳤다.

서걱!

이어 들린 소리는 쇠와 쇠가 부딪치는 파열음이 아니었다. 두꺼운 종이뭉치를 날카로운 가위로 자르는 듯한 기이한 마찰음이었다.

연경전에 모인 수십 명의 대신들이 일제히 숨을 들이켰다.

거란의 일류 찰갑이 어깨선부터 대각선으로 깨끗하게 잘려 나가며 두 조각으로 분리되었다. 쇠가죽 끈뿐만 아니라, 냉단 가공되었다는 두꺼운 철편들까지 단 한 번의 베기로 완전히 양단된 것이다. 잘려 나간 찰갑 조각들이 청석 바닥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뒹굴었다.

왕선이 검을 거두었다. 검날에는 미세한 이 빠짐도, 긁힌 자국도 존재하지 않았다. 푸르스름한 철광의 빛깔만이 형형하게 빛날 뿐이었다.

"이, 이것이 어찌……!"

채충순의 얼굴에서 핏기가 한순간에 가셨다. 그의 눈동자가 바닥에 뒹구는 찰갑 조각과 왕선의 검을 번갈아 보며 사정없이 흔들렸다.

"찰갑이 종잇장처럼 잘려 나갔다……!" "고려의 철로 저런 명검을 만들었단 말인가?"

대신들의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번져나갔다. 지식과 물리적 무력의 압도적인 우위가 조정 전체를 침묵시켰다.

왕선이 황제를 향해 검을 비스듬히 내리며 말했다.

"폐하. 이것이 서경 야철소의 기술이옵니다. 거란의 철기가 아무리 단단한들, 신의 강철 앞에서는 한낱 진흙 인형에 불과하옵니다. 그런데도 채 평장사는 가문의 사소한 이권과 옛 구례만을 내세워 이 강철 가마를 폐쇄하라 주장하고 있사옵니다. 이것이 진정 사직을 위한 길입니까, 아니면 사욕을 위한 길입니까?"

"네 이놈! 감히 어전에서 망언을!"

채충순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으나, 그의 목소리에는 이미 힘이 빠져 있었다.

그때, 조정 회랑 뒤편에서 단호하고 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폐하. 명검의 증명은 끝났으니, 이제 저들이 왜 이 명검의 탄생을 그토록 조직적으로 방해하려 했는지 그 추악한 명분을 밝히고자 하옵니다."

안변 한씨 가문의 한이린이었다. 그녀는 소매 속에서 정교하게 필사된 두터운 장부 사본 수십 장을 꺼내 들었다. 그녀의 걸음걸이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안변 한씨 가문의 여식 한이린이 폐하께 고하옵니다. 채 평장사를 비롯한 문벌 호족들은 지난 삼 년간 서경과 황주 일대의 철산이 '매몰되어 폐광되었다'고 거짓 장계를 올렸나이다. 그러나 여기, 그들이 사적으로 가동한 야철소의 무쇠 유통 영수증 사본이 있사옵니다."

한이린의 손에서 장부가 황제의 어탁 앞으로 전달되었다.

"이 영수증들에 기록된 사유 무쇠의 양만 해도 오만 근에 달하옵니다. 그들은 국가의 세금을 면탈하기 위해 광산을 폐쇄했다 속이고, 뒤로는 사병들의 무기와 가문의 사유 재산을 불리기 위해 철을 밀매해 왔나이다. 왕선 전하께서 추진하시는 황실 직영 제철 조례가 시행되면 자신들의 이 은밀한 돈줄이 끊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위조된 교지까지 동원해 전하를 역모로 몰려 한 것이옵니다!"

"무, 무슨 근거로 그런 유언비어를!"

채충순이 이빨을 갈며 한이린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한이린은 냉정한 미소를 지으며 수치들을 하나하나 읊조렸다.

"경인년 오월 사일, 채씨 가문의 가신 이영보가 서경 광산에서 무쇠 삼천 근을 수령한 영수증에 찍힌 수결이 바로 여기 있사옵니다. 날짜와 수량, 세율의 허점을 이용한 횡령의 정황이 이토록 명백하거늘, 어찌 유언비어라 하십니까? 평장사께서는 이 수결이 본인의 가신 것이 아니라고 맹세하실 수 있사옵니까?"

채충순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장부에 기록된 수치들은 너무도 구체적이었고, 가문의 세법 맹점을 정확히 찌르고 있었다. 조정의 법적 구례와 명분을 무기로 삼던 문벌 귀족들이, 자신들이 파놓은 탈세의 맹점에 스스로 목이 졸린 형국이었다.

황제 현종의 눈에 가혹한 분노의 서리가 서렸다.

"채충순. 이 장부의 내용이 사실이냐?"

"폐, 폐하! 그것은…… 호족들의 사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구례에 따른 것으로……."

"닥쳐라!"

황제의 호통이 연경전을 뒤흔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어전의 육중한 문이 거칠게 열리며, 흙먼지와 땀에 젖은 급보 전령이 바닥에 엎어졌다.

"보, 보고드립니다! 압록강 접경지대의 수령이 올린 긴급 급보이옵니다!"

전령의 목소리는 공포로 떨리고 있었다.

"거란의 태자가 이끄는 요나라 선봉군 수만 기병이 압록강 건너편에 집결하여 군세를 펼쳤으며, 군수 물자와 병장기를 가득 실은 대형 함선 수백 척이 강 하구로 집결하기 시작했나이다! 선봉대의 기치가 압록강을 향해 움직이고 있사옵니다!"

연경전 내부가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전쟁의 거대한 파도가 마침내 고려의 턱밑까지 밀려온 것이다. 대신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수만 기병의 철제 장갑을 막아낼 방도가 고려에게는 없었다.

왕선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그의 눈빛은 기계적인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폐하. 시간이 없사옵니다. 거란의 철기병을 꺾으려면 아군의 무장을 전면 강철화해야 하옵니다. 신에게 서경 병기창의 전권을 주시고, 채충순을 비롯한 호족들이 사유화한 철산과 전국 사찰에 은닉된 초석을 즉시 몰수할 수 있도록 교서를 내려주소서. 신이 저 거란의 기병들을 가루로 만들 강철 화포를 완성해 보이겠나이다!"

황제 현종은 쪼개진 거란의 찰갑과 왕선의 푸른 강철검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채충순의 가문이 저지른 영수증 장부를 꽉 쥐었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갈림길에서, 황제의 선택은 단 하나뿐이었다.

"문하평장사 채충순의 제철소 폐쇄 청원을 기각한다! 종실 왕선에게 서경 병기창의 전령 전권을 부여하고, 전국의 철산과 사유 광산을 황실 직영으로 회수하여 전량 국산화할 것을 명하노라! 이에 거역하는 자는 거란과 내통한 역적으로 다스릴 것이다!"

황제의 단호한 교서가 내려지는 순간, 채충순은 힘없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왕선은 그를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속으로 연산했다.

'첫 번째 이권 장악 완료. 이제 남은 것은 전쟁이다.'

***

국문이 끝나고 연경전의 거대한 문을 나서는 왕선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한이린이 그의 곁을 지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성공하셨습니다, 전하. 이제 서경의 모든 철산이 우리 손에 들어왔습니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이제 초석을 확보하고 가마의 온도를……."

왕선이 말을 마치지 못했다.

갑자기 그의 심장 부근에서 전례 없는 격렬한 격통이 휘몰아쳤다. 갈비뼈 깊은 곳에서 가시 돋친 넝쿨이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기괴한 고통이었다.

"윽……!"

왕선은 한쪽 무릎을 꿇으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경고! 경고! 경고!] [뇌 신경 및 심장 기저부 과부하율 320% 돌파.] [인체 수용 한계치 초과. 심실세동 발생 가능성 매우 높음.] [수명 잔여 수치 급감: 240일 차감.] [잔여 수명: 120일.]

시야가 급격히 암전되며 사방의 소리가 물속에 잠긴 듯 아득해졌다. 머릿속의 공학 연산계가 붉은 경고음을 요란하게 울려댔으나, 그것을 제어할 정신적 여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어전에서의 검증과 연산계를 통한 정밀 설계의 대가가 그의 육체를 사정없이 갉아먹고 있었다.

"전하! 왕선 전하!"

한이린의 다급한 비명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왕선은 입안을 가득 채운 검붉은 선혈을 돌바닥 위에 울컥 토해냈다. 차가운 청석 바닥이 순식간에 붉은 피로 물들었다. 그의 몸이 중심을 잃고 그대로 차가운 돌바닥 위로 쓰러졌다.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압록강을 건너오는 거란의 철기군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듯했다.

***

**고려사(高麗史) 세가(世家) 권제사(卷第四) 요약** 현종 원년 겨울, 거란의 병선이 압록강에 이르렀다는 급보가 당도하니 온 조정이 전율하였다. 황제가 어전에서 종실 왕선에게 서경 병기창의 전권을 부여하고 철산을 국산화하도록 교서를 내리니, 간신 채충순의 무리가 감히 말을 얹지 못하였다. 선이 어전의 국문을 이기고 궁문을 나서다 갑자기 피를 토하고 고꾸라지니, 상이 크게 놀라 어의를 보내어 구호하게 하였다. 나라의 명운이 풍전등화와 같을 때, 강철을 다루는 유일한 장수가 쓰러졌으니 도성의 백성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천우신조를 빌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