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적대 세력의 물리적 위협이 임계치에 도달함.] [심박수: 128 bpm] [뇌 신경망 부하율: 34%] [공학 연산계 비상 연산 기동……]
망막 위에 붉은색 경고 도표들이 어지럽게 명멸했다.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턱끝에 맺혀 차가운 흙바닥으로 떨어졌다. 머릿속이 끓는 물처럼 요동치는 감각과 함께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이 고동쳤다. 오버테크놀로지 연산을 가동할 때마다 찾아오는 특유의 흉통이 식도를 타고 올라왔다.
왕선은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비어져 나오려는 신음을 삼켰다. 그의 눈앞에 선 중추원 부사 채충순은 말 위에서 거만한 태도로 조칙을 쥐고 있었다. 그 장중한 기세는 험준한 사철산의 기암괴석조차 압도할 만큼 무거웠다.
"어찌 말이 없느냐, 왕선아."
채충순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종실의 핏줄이라 하여 국법의 엄중함을 피할 수 있으리라 믿었더냐? 군기(軍器)에 들어가는 사철을 사사로이 채취하여 가산을 불리는 것은 태조 대왕께서 남기신 사조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행위다. 군사들은 무얼 하느냐! 당장 저 불법 야철 가마를 무너뜨리고, 사철산을 압류하라!"
"예이!"
철갑을 두른 사병들이 거친 함성과 함께 가마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쇄석들이 군화 굽에 짓밟히며 스산한 소리를 냈다.
왕선은 감각의 날을 세웠다. 공학 연산계가 그의 뇌리에 고려의 세법과 군기시의 해묵은 조례들을 초단위로 인출해 올리기 시작했다. 수치와 텍스트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하나의 완벽한 공학적 경로를 만들어냈다.
"멈추어라."
나지막하지만 계곡의 바람을 가르는 목소리였다. 왕선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없었다. 마치 기계 장치가 정해진 신호를 내보내듯, 지극히 건조하고 명확한 어조였다.
"중추원 부사 대감. 대감께서는 지금 태조 대왕의 사조를 빌려 사사로운 사리사욕을 채우려 하시는군요. 그것도 황실의 권위를 참칭하여 말입니다."
"무엇이라? 이놈이 끝내 제정신을 잃었구나!"
채충순의 눈썹이 험악하게 치켜 올라갔다. 그의 곁에서 칼을 쥔 채 눈치를 보던 군부 사령관 김우선이 검 자루를 고쳐 잡으며 소리쳤다.
"무례하다! 감히 조정의 중신이자 중추원의 수장 앞에서 그 무슨 망언이냐!"
왕선은 김우선을 흘겨보지도 않은 채, 채충순을 똑바로 응시했다.
"대감께서 가져오신 조칙과 그 사조는 성종 정해년(987년)에 개정된 '경종정해식목조례(景宗丁亥式目條例)'에 의해 이미 그 적용 범위가 제한되었습니다. 조례 제삼조에 이르기를, '황실의 외명부와 직영 궁방이 관할하는 궁방전(宮房田) 내의 야철지는 군기시의 독점 대상에서 제외하며, 오직 내수사의 관리하에 황실 조달용으로만 방출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왕선의 목소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는 품에서 황색 견사로 봉인된 오래된 서첩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 사철산은 본래 목종 대왕의 비이신 선정왕후의 소유였으며, 현 황상께서 즉위하시며 내수사를 통해 저에게 관리를 위임하신 궁방전의 일부외다. 즉, 이곳에서 나오는 사철은 사사로운 사재가 아니라, 황실의 내탕금을 메우고 서경의 방비를 굳건히 하기 위한 황실 직영 자원이라는 뜻입니다."
"허튼소리! 궁방전의 명부는 중추원에서 관리한다. 내 그런 기록을 본 적이 없거늘!"
채충순이 채찍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일갈했다.
"보지 못하셨겠지요."
왕선이 냉소했다.
"대감께서 중추원의 권력을 쥐고 사사로이 가문의 가솔들을 늘리며, 황실 궁방전 서른두 곳의 장부에서 은결(隱結)을 만들어 세금을 탈루해 오셨으니 말입니다. 김우선 장군."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검을 빼 들고 서 있던 군부 사령관 김우선의 어깨가 굳어졌다.
"너, 너는 어찌 나를 부르는 것이냐?"
"김 장군. 장군이 이끄는 서경 안찰사 산하의 외군이 지난 삼 년간 조달받은 철제 환도와 갑주의 수량은 총 사천 이백 장에 달하오. 그러나 군기시의 상납대장을 보면, 실제로 인도된 것은 이천 팔백 장에 불과하지. 나머지 천 사백 장의 철물은 어디로 흘러갔겠소?"
왕선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그의 머릿속 공학 연산계는 이미 서경 군영의 보급 장부와 철물 유통 경로의 수치적 불일치를 완전히 계산해 낸 상태였다.
"장군이 채 대감의 가문에서 운영하는 사가 야철소에 철광석 원자재를 넘기고, 그 대가로 매년 은 백 오십 냥과 삼베 오백 필을 받아 챙긴 명부가 내 손에 있소. 이것은 단순한 세금 탈루가 아니라, 군수 물자를 사사로이 빼돌려 군의 전력을 약화시킨 외통수의 대역죄(大逆罪)요. 장군, 대감의 사적인 욕심에 동참하여 가문의 대가 끊기는 멸문지화를 당하고 싶으신 거요?"
"그, 그것이 무슨……! 당치 않은 모함이다!"
김우선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의 이마에서 비 오듯 땀이 흘러내렸다. 왕선이 제시한 수치와 거래 내역은 오직 당사자들만이 알 수 있는 극비 중의 극비였다. 현대의 회계 감사 기법과 연산계의 데이터 추출 능력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치명적인 비수였다.
채충순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왕선의 시선에서 단순한 허세가 아닌, 자신들의 목줄을 정확히 쥐고 흔드는 포식자의 확신을 읽었다.
그 팽팽한 대치의 침묵을 깨고, 뒤편에서 맑고 단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기에 안변 한씨 가문의 증언을 보태겠나이다."
한이린이 장포 자락을 휘날리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붉은 밀랍으로 봉인된 서한이 들려 있었다.
"이것은 안변 한씨 가문과 황실 내수사가 공동으로 체결한 북방 군기 조달 보증서입니다. 저희 가문은 이 사철산에서 생산되는 선철을 바탕으로 황실에 일천 자루의 신형 강철검을 납품하기로 계약을 마쳤습니다. 만약 오늘 중추원의 압류로 인해 이 계약이 파기된다면, 저희 안변 한씨는 물론이요, 북방의 여진족 제어에 사활을 걸고 있는 동계의 모든 호족 가문들이 중추원을 향해 그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채 대감, 북방 호족 전체를 적으로 돌리실 각오가 서 있으십니까?"
한이린의 목소리에는 거상의 가문다운 매서운 실리와 명분이 가득 차 있었다. 그녀의 등장은 채충순이 쌓아 올린 명분의 제단에 종지부를 찍는 격이었다.
채충순은 이빨을 악물었다. 왕선의 치밀한 법적 구례 인용과 한이린이 들이민 북방 호족들의 연대보증 서한. 이제 사철산 압류는 단순한 종실의 이권 찬탈이 아니라, 황실의 내탕금을 건드리고 북방 호족들과 전면전을 벌여야 하는 정치적 자살 행위로 변모해 있었다.
"……장군."
채충순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김우선을 불렀다.
"대, 대감."
"회군한다."
"하오나 대감! 저놈들의 오만방자한 행태를 그대로 두고 보시겠습니까?"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군사를 물리라 했다!"
채충순의 사효가 계곡을 울렸다. 그의 얼굴은 굴욕과 분노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조정의 최고 실권자 중 하나인 그가, 일낱 몰락한 종실의 새파란 애송이에게 완패당한 것이다.
김우선은 서둘러 무릎을 꿇으며 왕선에게 고개를 숙였다.
"소장, 황실의 깊은 뜻을 미처 알지 못하고 범궐을 범할 뻔하였습니다. 혜량하여 주시옵소서."
"가시오. 내 경고한 장부의 숫자는 아직 내 머릿속에만 들어 있으니."
왕선은 차갑게 대꾸했다. 그의 눈길은 이미 그들을 떠나 저 멀리 뿜어져 나오는 황토 가마의 자욱한 연기로 향해 있었다.
터덜터덜, 압류군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계곡 아래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채충순은 말머리를 돌리며 왕선을 쏘아보았다. 그 눈빛에는 뼈를 깎는 증오가 서려 있었다.
* * *
상황이 정리되자마자, 왕선은 한이린의 부축을 거절하고 서경 비밀 계곡의 황토 가마(고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중추원의 수장을 상소 한 장 없이 법령의 자구와 세법의 구례만으로 무릎 꿇리시다니요."
한이린이 감탄 섞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으나, 왕선은 그저 가마 내부의 상태만을 주시할 뿐이었다. 그의 머릿속은 오직 제철의 효율과 온도 계산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감정적인 승리의 도취감 따위는 그의 뇌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직 시작도 안 했소. 채충순이 물러간 것은 단지 더 큰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웅크린 것뿐이오. 그보다 가마의 상태가 급하오."
터벅터벅 걸어 들어간 야철소의 내부는 그야말로 연옥과 같았다.
화덕에서 뿜어져 나오는 섭씨 천 도 이상의 열기가 온몸을 구울 듯이 밀려왔다. 장인들은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친 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무 송풍기를 미친 듯이 돌리고 있었다. 쇠가 녹아내리는 매캐한 황 화합물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현대의 정밀 고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조잡하고 원시적인 흙벽 가마였다.
왕선은 가마 앞에 서서 눈을 지긋이 감았다.
[공학 연산계 시각 동기화 가동] [노내 내부 온도 정밀 측정 중……] [중앙 연소 구역: 1180℃] [하부 산소 분압: 0.15 atm] [슬래그 점도: 2.8 Pa·s]
그의 안구 위로 황토 가마의 단면도가 3차원 반투명 도면으로 입체화되어 떠올랐다. 붉은색과 푸른색의 열흐름 선들이 가마 내부를 휘돌고 있었다. 고려의 조잡한 자철석을 녹이기 위해서는 온도를 더 올려야 했으나, 현재의 송풍력과 흙벽의 내화력으로는 한계가 명확했다.
그때, 연산계의 모퉁이에 붉은색 경고 신호가 작게 깜빡였다.
[경고: 우측 3번 송풍구 상측 황토 벽체 내부 미세 균열 감지] [균열 길이: 12cm, 깊이: 4cm] [가스 누출 및 가마 외벽 붕괴 확률: 18.7% (점진적 상승 중)]
왕선은 미간을 찌푸렸다. 흙과 짚을 섞어 만든 조잡한 가마인 탓에 내부의 열팽창률을 견디지 못하고 구조적 결함이 발생하고 있었다.
'미세 가스 균열인가.'
그는 연산계의 메모리에 해당 위치와 균열의 진전 속도를 정확히 도면화하여 기록해 두었다. 지금 당장 무너질 수준은 아니었으나, 조만간 이 가마는 한계에 도달할 터였다. 하지만 이 치명적인 결함조차 왕선의 머릿속에서는 하나의 공학적 변수로 계산되어 저장되었다. 훗날 이 가마가 붕괴하게 된다면, 그것을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이용해야 마땅했다.
"장인들에게 전하시오."
왕선이 곁에 선 야철 장인에게 건조한 어조로 명령했다.
"우측 삼 번 송풍구 상단 외벽에 황토 반죽을 더 덧대고, 송풍의 압력을 미세하게 조절하라. 쇠가 녹는 소리가 탁해지면 즉시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
"예, 예! 나으리!"
장인이 황급히 허리를 굽혔다. 왕선은 그에게 수고했다거나 고맙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않은 채, 다시 가마의 도면만을 응시했다. 그의 냉혹한 기계적 태도에 장인들은 경외심과 함께 묘한 두려움을 느꼈다.
그때였다.
"잠깐 기다리십시오!"
계곡 입구 쪽에서 다급한 외침과 함께 말방울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퇴각하던 채충순의 무리 중, 그의 심복이자 중추원 도사(都事)인 최기였다. 그가 이끄는 대여섯 명의 사병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야철소 마당으로 난입했다.
최기의 얼굴에는 비열한 미소와 함께 승자의 오만함이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말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품 안에서 어사인의 붉은 낙인이 찍힌 무거운 가죽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왕선은 들으라!"
최기가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왕선을 단숨에 나락으로 떨어뜨리겠다는 악의가 가득했다.
"황상께서 내리신 밀조(密詔)이시다! 종실 왕선은 들으라!"
왕선과 한이린의 시선이 일제히 최기의 손에 든 가죽 주머니로 향했다.
"종실 왕선은 그 품행이 단정치 못하고, 사사로이 이익을 탐하여 황실의 명예를 더럽혔다. 이에 황명으로 안변 한씨 한이린과의 모든 국혼 및 정혼 맥을 즉시 단절하노라! 또한, 왕선의 종실 작위를 삭탈하고, 오늘부로 가산과 영지를 몰수하여 동북방의 최변방 황무지인 함주(咸州) 하급지로 추방하노니, 즉시 압송하라!"
청천벽력 같은 선언이 계곡의 뜨거운 공기를 얼려버렸다.
한이린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고, 야철소의 장인들이 일제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채충순이 정면 대결에서 패하자마자 준비해 둔 최종적인 비수를 들이민 것이다. 그것은 황제의 권위를 빌려 왕선의 모든 기반을 뿌리째 뽑아버리겠다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심박수: 145 bpm] [경고: 심장 과부하 발생 위험] [새로운 시나리오 연산 중……]
왕선의 망막 위에 푸른색 연산 도표들이 미친 듯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의 심장이 터질 듯이 요동치는 가운데, 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냉혹한 계산기가 그의 머릿속에서 마침내 가장 완벽한 반격의 경로를 찾아낸 것이다.
* * *
**[고려사(高麗史) 권 兵器志 요약]** 현종 원년(1010년) 10월 말, 중추원 부사 채충순이 사철산 압류에 실패하자, 황상의 밀조를 빌려 종실 왕선의 작위를 박탈하고 안변 한씨와의 혼맥을 끊어 변경으로 추방하려 하였다. 이에 야철소의 형세가 다시금 극도의 혼란에 빠졌으나, 왕선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이를 받아들였다 하니,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이때 이미 서경 야철소의 가마 내부에는 기이한 균열이 자라나고 있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