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한가운데를 시뻘겋게 달군 쇠꼬챙이로 후벼 파는 듯한 통증이었다.
가슴뼈 안쪽에서 시작된 격통이 왼쪽 어깨와 턱 끝까지 뻗쳐 나갔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포가 찢어지는 감각에 강현의 눈앞이 순간적으로 흐려졌다. 멸균 마스크 속으로 가쁜 숨결이 가둬지며 이마에서 솟구친 식은땀이 속눈썹을 적셨다.
[경고: 신뢰 포인트(Trust Point) 부족!] [현재 보유 포인트: 150 PT] [요구 포인트: 1,500 PT] [상태: 자원 부족으로 인한 초과 인출(Overdraft) 강제 집행.] [대가: 급성 협심증(Acute Angina) 유발 및 영구적 생명력 감소 패널티가 즉시 부과됩니다.]
눈앞에 명멸하는 핏빛 경고 문구들이 시야를 가로막았지만, 강현은 눈을 감지 않았다. 아니, 감을 수 없었다. 지금 그의 손끝이 닿아 있는 곳은 인간의 생명이 맥동하는 가장 은밀하고도 취약한 성역(聖域)이었다.
"백 선생? 왜 그래요? 손 떨려요!"
어시스트 자리에 선 한서희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수술실의 정적을 깨뜨렸다. 그녀의 단호한 눈동자가 멸균 고글 너머로 강현의 흔들리는 눈빛을 쏘아보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강현은 피 맛이 도는 침을 삼키며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숨결이 거칠었지만, 메스를 쥔 오른손만은 거짓말처럼 고정되어 있었다. 생명의 장부가 강제로 집행한 '초인적 정밀 재건 능력'이 그의 말초신경을 지배하기 시작한 덕분이었다. 심장의 격통과 손끝의 완벽한 감각이라는 극단적인 불협화음이 그의 전신을 지배했다.
지금 누워 있는 환자는 단순한 VIP가 아니었다.
'환자 X.'
한서희가 며칠 전 전공의 당직실에서 서류를 정리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던 그 이름. 바벨 워드 극비 격리 구역에 정체를 숨긴 채 누워 있던 고령의 불치병 환자. 그의 진짜 정체는 정계의 막강한 막후 실력자이자 전 국회의장인 설창국 고문이었다.
그는 심각한 상행 대동맥류와 만성 신부전을 앓고 있었고, 국내의 내로라하는 대학병원들조차 수술 중 사망 확률이 90%가 넘는다는 이유로 집도를 거부했던 시한폭탄이었다. 그 폭탄을 자신의 영달을 위해 덥석 받아 문 것이 바로 차민우였고, 그 결과는 지금 보란 듯이 터져 버린 대동맥 파열이었다.
"메스 내려놓고 석션 세게 잡아요, 한 선생."
강현의 어조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하지만 지금 백 선생 상태가……."
"환자 대동맥 박리가 상행을 지나 아치(Aortic arch, 대동맥궁)까지 타고 올라가고 있어요. 30초 내로 프록시말(Proximal, 근위부) 통제 못 하면 이 환자는 테이블 데스(Table death)입니다. 딴생각할 시간 없어요."
서희는 강현의 기세에 압도당한 듯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재빨리 석션 팁을 환자의 흉강 깊숙이 밀어 넣었다.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암적색 혈액이 투명한 플라스틱 관을 타고 쉴 새 없이 빨려 들어갔다.
수술실 유리창 너머, 2층의 참관실(갤러리)은 그야말로 숨이 막힐 듯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그곳에는 기획조정실장 서지훈과 흉부외과 과장 김태섭, 그리고 사색이 된 차민우가 서 있었다. 차민우는 자신의 손으로 찢어놓은 환자의 대동맥을 백강현이 메우는 모습을 바라보며, 손톱 밑이 터져 피가 흘러내리는지도 모른 채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저게…… 저게 가능한 속도인가?"
김태섭이 마른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감출 수 없는 경악과 미세한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백강현은 지금 인공심폐기를 돌리지 않는 무심폐기 상태에서, 뛰고 있는 심장의 대동맥을 직접 봉합하는 미친 짓을 벌이고 있었다. 그것도 보통의 속도가 아니었다. 메스를 놀리는 손길은 마치 보이지 않는 정밀 기계가 자를 대고 긋는 것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서지훈의 차가운 눈동자가 가느다랗게 좁아졌다.
"김 과장."
"예, 예? 실장님."
"자네가 분명 백강현이를 이번 주 안으로 완전히 매장하겠다고 보고하지 않았나?"
"그, 그게…… 분명 계획대로 진행 중이었습니다! 놈이 가진 패가 무엇이든 간에……."
김태섭은 말을 흐리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미 백강현은 김태섭의 목줄을 완벽하게 쥐고 있었다.
과거 회귀 전, 김태섭이 제약회사로부터 받아 챙긴 수억 원대의 리베이트 장부와 대리 수술 비리 기록들. 김태섭은 그것들을 자신의 과장실 최고급 개인 캐비닛 속, 이중 암호화된 보안 태블릿에 숨겨두었었다.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사흘 전, 백강현은 김태섭을 과장실로 불러내어 정확한 폴더 경로와 암호의 첫 여덟 자리를 읊조렸다.
'과장님, 캐비닛 세 번째 칸의 가죽 파우치 안. 태블릿 비밀번호는 과장님 첫 수술 사고 환자의 등록번호더군요. 그거 풀리는 순간, 은퇴가 아니라 구속인 건 아시죠?'
그 나직한 경고 한 마디에 김태섭은 사냥개에서 이빨 빠진 개로 전락했다. 지금 김태섭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백강현이 이 수술에서 실수하기만을 바라는 비겁한 기도뿐이었다.
그러나 강현의 손끝은 기도를 허락하지 않을 만큼 완벽했다.
"프롤렌(Prolene) 5-0 주세요."
강현이 손을 내밀자, 소독간호사가 지체 없이 봉합사를 얹었다.
강현의 시야 속에서 환자의 혈관 조직들이 3차원 홀로그램처럼 분해되어 보였다. 생명의 장부가 제공하는 초인적 감각이었다. 찢어진 내막의 경계선, 혈류의 압력을 견뎌내야 하는 외막의 두께가 마이크로미터 단위로 뇌리에 박혔다.
'여기다.'
바늘이 탄력 있는 대동맥 벽을 뚫고 들어갔다.
서희는 강현의 바느질 속도에 맞추어 실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보통의 수술이라면 바늘 하나를 통과시키고 매듭을 짓는 데 수십 초가 소요되지만, 강현의 손놀림은 그 과정을 단 3초 만에 끝마쳤다.
슥, 슥, 슥.
규칙적이고 경쾌한 마찰음이 수술실을 채웠다.
"말도 안 돼……."
서희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녀는 수많은 천재 의사들의 수술을 어시스트해 보았지만, 이토록 정교하면서도 압도적인 속도를 자랑하는 집도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강현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눈가로 스며들었다. 가슴의 통증은 점점 더 심해져, 마치 갈비뼈가 안쪽으로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폐가 산소를 받아들이지 못해 뇌가 비명을 질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텨라.'
강현은 자신의 쪼그라드는 심장을 향해 채찍을 가했다. 과거 구하지 못했던 수많은 환자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권력자들의 이권 다툼 속에서 소모품처럼 버려졌던 생명들. 그리고 그 끝에서 쓸쓸하게 죽어갔던 자기 자신.
두 번 다시 그런 무력한 결말을 맞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 병원의 정점에 서서, 그 누구도 돈과 권력 때문에 치료를 포기당하지 않는 나만의 의료 제국을 세우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환자를 반드시 살려내야만 했다.
"타이(Tie, 매듭)."
마지막 매듭이 지어지는 순간, 강현이 나직하게 외쳤다.
"클램프 아웃(Clamp out)."
대동맥을 차단하고 있던 겸자를 천천히 풀었다. 혈류가 다시 재건된 상행 대동맥을 타고 세차게 흐르기 시작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1초, 2초, 3초.
피가 새어 나오지 않았다. 완벽한 문합이었다. 인공 혈관과 환자의 원래 조직이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단단하게 맞물려 있었다.
동시에, 정지 직전까지 갔던 하트 레이트(Heart rate, 심박수) 그래프가 규칙적인 파형을 그리며 솟구치기 시작했다.
비프, 비프, 비프.
수술실을 가득 채우던 불길한 경고음이 사라지고,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운 생명의 신호음이 울려 퍼졌다.
"혈압 120에 80, 정상 범위로 복귀합니다!"
마취과 의사의 상기된 목소리가 수술실에 울려 퍼졌다.
한서희는 긴장이 풀린 듯 리트랙터를 잡은 손을 미세하게 떨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강현을 바라보았다. 강현은 여전히 심장 부근을 한 손으로 움켜쥔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차가웠지만, 그 이면에는 지독할 정도의 완벽주의와 스스로를 갉아먹는 병적인 죄책감이 서려 있었다. 서희는 이상하게도 그 모습에서 깊은 슬픔을 느꼈다. 저 남자는 왜 이토록 자신을 파괴해가며 생명을 구하려 하는 걸까.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 묘한 연민의 감정이 싹텄다.
"수술 종료합니다. 아웃(Out)하겠습니다."
강현은 메스를 내려놓고 수술대 뒤로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수술실 문이 열리며 갤러리에 있던 서지훈과 김태섭, 그리고 환자의 보호자가 안으로 들이닥쳤다. 환자의 보호자는 다름 아닌 현직 유력 국회의원이자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는 설준호 의원이었다.
설 의원은 수술실의 모니터 수치와 침대 위의 아버지를 번갈아 보더니, 이내 무릎을 꺾었다.
쿵.
"아버님……! 아버님!"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는 언제나 당당하던 거물 정치인이, 차가운 수술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들어 백강현을 바라보았다.
"백 선생…… 백 선생이 아버지를 살리신 겁니까?"
"예.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대동맥은 완벽하게 재건되었습니다."
강현의 덤덤한 대답에 설 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강현의 양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고,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에는 진심 어린 경외심이 가득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 설가가 존재하는 한, 백 선생의 앞길은 내가 책임지겠소!"
그 순간, 강현의 시야에 믿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시스템 메시지: 환자 X(설창국) 및 유족(설준호)의 진정성 있는 신뢰가 장부에 기록됩니다.] [신뢰 포인트 대량 적립: +5,000 PT!] [현재 신뢰도 잔액: -1,350 PT -> +3,650 PT (흑자 전환 완료!)]
머릿속을 가득 메우던 붉은 경고창이 순식간에 찬란한 황금빛으로 변했다.
동시에 가슴을 짓누르던 협심증의 격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폐부 깊숙이 시원한 공기가 흘러들었고, 전신에 새로운 생명력이 요동치며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적자에서 단숨에 역대 최고의 흑자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강현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시선이 설 의원의 어깨 너머, 하얗게 질려 있는 서지훈을 향했다.
서지훈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 했으나, 굳게 다문 입술과 떨리는 눈꺼풀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자기가 파놓은 함정에 자신이 걸려 넘어진 꼴이었다.
하루 뒤.
VIP 병동 바벨 워드는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설창국 고문의 병실 앞에는 수많은 정재계 인사들이 보낸 화환들이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지훈 기획조정실장이 몇몇 보직 의사들을 거느린 채 서 있었다.
"설 고문님의 회복 속도가 이례적으로 빠르십니다. 역시 우리 병원의 최고의 의료진이……."
서지훈이 병실 문을 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선을 떨려던 찰나였다.
스르륵.
병실 문이 안쪽에서 먼저 열렸다.
휠체어도 타지 않고, 환자복 위에 정갈한 가운을 걸친 설창국 고문이 직접 걸어 나왔다. 그의 얼굴에는 오랜 병마를 떨쳐낸 대정치인다운 서슬 퍼런 기세가 가득했다.
"고문님! 벌써 거동을 하시다니요, 아직 안정을 취하셔야……."
서지훈이 반갑게 손을 내밀며 다가섰다.
짝-!
고요한 복도에 날카롭고 파괴적인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서지훈의 고개가 옆으로 꺾였다. 그의 안경이 바닥으로 떨어져 쨍그랑 소리를 내며 깨졌다. 복도에 서 있던 모든 비서들과 의사들이 숨을 멈췄다.
"고, 고문님……?"
서지훈이 뺨을 움켜쥔 채 붉어진 얼굴로 설창국을 바라보았다.
설창국은 피도 눈물도 없는 차가운 눈빛으로 서지훈을 내려다보았다.
"이따위 돌팔이 새끼를 내 몸에 대라고 허락한 게 너였나, 서 실장?"
설창국의 손가락이 서지훈의 뒤편, 구석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차민우를 가리켰다.
"저 무능한 놈의 칼끝에 내 목숨이 날아갈 뻔했다. 대학병원의 실장이라는 자가, 환자의 생명을 두고 정치질을 해?"
"그, 그것은 오해이십니다. 저희는 최선을 다해……."
"시끄럽다!"
설창국이 호통을 치자 서지훈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설창국은 품 안에서 미리 준비해 둔 서류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서지훈의 뺨에 사정없이 내던졌다. 흩날리는 서류 조각들 사이로 굵은 글씨가 선명하게 보였다.
[임명장: 흉부외과 과장 겸 VIP 바벨 워드 총책임자 백강현]
"오늘부로 이 병원의 진짜 실세는 백강현 선생이다. 서 실장, 네 놈이 가진 모든 권한을 백 선생에게 이양해라. 이의 있나?"
서지훈의 눈빛이 극도로 살벌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백강현은 그 파멸적인 갈등의 시작점 한가운데 서서, 서지훈을 향해 나직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