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가슴 뼈 아래가 불로 지지는 것처럼 뜨거웠다.

심장 근육이 쥐어짜이듯 비틀리며 가쁜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회귀의 대가는 자비가 없었다. 보유한 신뢰도 자원이 없는 상태에서 강제로 끌어다 쓴 100포인트의 대가. 영구적인 수명 1년의 단축과 함께 심장을 짓누르는 급성 협심증의 통증이 강현의 전신을 지배했다.

턱 선을 타고 흘러내린 식은땀이 수술 포 위로 툭 떨어졌다.

하지만 메스를 쥔 오른손만은 기이할 정도로 미동조차 없었다. 손가락 끝의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눈앞의 공기가 서늘하게 가라앉으며, 환자의 가슴을 덮은 멸균 포 너머 찢어진 상행 대동맥의 위치가 머릿속에 3차원 입체형상으로 그려졌다.

[생명의 장부]가 붉은 안개를 뿜어내며 허공에 수치를 띄웠다.

[환자 이민우의 생명력: 7.9% (하강 속도: 분당 -1.3%)] [상태: 대동맥 박리 및 파열로 인한 대량 심장 탐포나데(Cardiac Tamponade)] [‘신의 손’ 기량 활성화 잔여 시간: 29분 59초]

"백강현, 너 진짜 미쳤어?!"

한서희가 강현의 어깨를 거칠게 잡아챘다. 그녀의 눈동자가 공포와 분노로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취과 의사도 없고, 인공심폐기도 세팅 안 됐어! 이 상태에서 메스를 대는 건 의사가 아니라 도살자나 하는 짓이야! 당장 손 떼!"

서희의 손이 강현의 뺨을 향해 날아들었다. 무모한 짓을 막으려는 본능적인 물리력이었다.

탁.

강현이 왼손으로 서희의 손목을 낚아챘다. 뼈마디가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수술실의 정적을 깨뜨렸다. 서희가 신음하며 강현을 올려다보았다. 강현의 눈동자는 깊은 심연처럼 차갑고 가라앉아 있었다. 고통으로 허덕이던 인턴의 눈빛이 아니었다. 수천 번의 죽음을 목도하고 메스를 잡았던 노련한 대가의 눈이었다.

"뺨치는 건 수술 끝나고 해."

강현이 서희의 손목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지금 가슴 안 열면 3분 뒤에 심정지야. 마취 가스 세팅은 네가 더 잘 알잖아. 펜타닐이랑 베쿠로늄 투여해. 인튜베이션 튜브 압력 확인하고."

"하지만……."

"살리고 싶으면 내 지시에 따라. 죽이고 싶으면 계속 소리 지르고."

강현의 목소리에는 거역할 수 없는 압도적인 권위가 실려 있었다. 3년 차 전공의인 서희조차 그 기세에 눌려 숨을 들이켰다.

강현은 망설이지 않았다. 수술실의 문을 안쪽에서 완전히 걸어 잠근 그는 곧바로 메스를 쥐었다.

"흉골 절개(Sternotomy) 시작한다."

칼날이 청년의 가슴 정중앙을 매끄럽게 갈랐다. 피부와 피하지방층이 갈라지며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강현의 손놀림에는 군더더기가 전혀 없었다. 기계로 자른 듯 정교한 일직선이었다.

"전기 소작기(Bovie) 줘."

서희는 뺨을 때리려던 손을 거두고, 귀신에 홀린 듯 소작기를 강현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녀의 이성은 이 수술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강현의 손끝이 보여주는 비현실적인 정확도가 그녀의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찌르르하는 소리와 함께 단백질이 타는 냄새가 수술실을 채웠다. 강현은 흉골 절개용 톱(Sternum Saw)을 잡았다.

드르륵!

단단한 뼈가 갈려 나가는 진동이 강현의 손목을 타고 뇌리로 전해졌다. 뼈가 열리자, 그 아래에서 압력으로 터질 듯 팽창한 심낭(Pericardium)이 모습을 드러냈다. 심낭 내부에 피가 가득 차 심장을 압박하는 심장 탐포나데 상태였다. 심장이 제대로 수축하지 못해 파르르 떨고 있었다.

"썩션(Suction)."

강현이 심낭을 절개하자마자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아……!"

서희가 비명을 삼키며 흡인기 관을 심낭 내부로 밀어 넣었다. 뿜어져 나오는 피의 양이 엄청났다. 시야가 순식간에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혈압 떨어집니다! 60에 30! 어레스트(심정지) 옵니다!"

서희의 목소리가 찢어졌다.

"수액 풀로 로딩해. 도파민 5마이크로 가동해."

강현의 목소리는 여전히 건조했다. 그의 시선은 피바다가 된 심장 내부의 한 지점에 고정되어 있었다. 대동맥 기부(Aortic Root) 근처, 찢어진 틈새로 뿜어져 나오는 동맥혈이 보였다.

인공심폐기를 연결할 시간은 없었다. 체외 순환 없이, 박동하는 심장을 그대로 둔 채 찢어진 대동맥을 봉합해야 하는 이른바 '무심폐기 대동맥 수술(Off-Pump Aortic Surgery)'이었다. 그것도 혼자서.

정상적인 의사라면 시도조차 하지 않을 자살 행위였다.

하지만 강현의 머릿속에는 장부가 부여한 '신의 손' 감각이 실시간으로 최적의 봉합 궤적을 그려내고 있었다.

"5-0 프롤린(Prolene, 비흡수성 봉합사) 줘."

"이걸 그냥 꿰매겠다고? 박동하는 대동맥을? 찢어질 거야! 압력 때문에 혈관벽이 종잇장처럼 상했다고!"

서희의 지적이 맞았다. 대동맥 박리가 일어난 혈관은 흐물흐물해져 바늘을 찌르는 족족 찢어지기 십상이었다.

"펠트(Teflon Felt) 덧댈 거야. 샌드위치 기법으로 간다. 지침기(Needle Holder) 줘."

강현이 손을 내밀었다.

서희는 입술을 깨물며 지침기를 넘겼다. 그녀의 손끝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강현은 지침기를 잡자마자 망설임 없이 바늘을 밀어 넣었다.

서희의 눈이 크게 떠졌다.

강현의 손놀림은 인간의 속도가 아니었다. 1초에 서너 번씩 박동하며 요동치는 대동맥의 움직임을 정확히 예측하고, 그 박자에 맞춰 바늘이 혈관벽을 통과했다. 쿵, 쿵, 뛰는 심장의 리듬 사이, 그 0.1초의 틈새를 정확히 파고드는 침투였다.

바늘이 들어가고, 펠트 조각이 혈관벽을 단단히 고정했다.

"말도 안 돼……."

서희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녀가 아는 백강현은 평범한 펠로우였다. 실력은 나쁘지 않았지만, 김태섭 과장의 눈치를 보며 궂은일을 도맡아 하던 유순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메스를 휘두르는 남자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마치 수만 번의 대동맥 수술을 집도해 본 백전노장과 같은 노련함. 아니, 그 이상의 신성함마저 느껴지는 정밀함이었다.

"리트랙터(견인기) 잡아. 시야 확보해."

강현의 낮게 가라앉은 명령에 서희는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그녀는 이미 단순한 참관인이 아니었다. 강현의 압도적인 실력에 매료되어, 그가 창조하는 기적의 조력자가 되기로 결심한 어시스트였다.

"프롤린 한 번 더."

강현이 손을 내밀 때마다 서희의 반응 속도도 빨라졌다.

수술실 내부에는 오직 흡인기가 피를 빨아들이는 쉭쉭 소리와, 환자의 심전도 모니터가 내는 기계음만이 울려 퍼졌다.

"백강현, 너 진짜 정체가 뭐야?"

서희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리트랙터를 당기며 나지막이 물었다.

"의사."

강현은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의사면 다 이래? 김태섭 과장도, 심지어 서지훈 실장도 박동하는 대동맥을 이렇게 꿰매진 못해. 이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야."

"조용히 해. 집중해."

강현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서희가 신속하게 거즈로 그의 이마를 닦아냈다.

서희는 강현의 차가운 집중력에 숨을 죽이면서도, 머릿속을 맴돌던 기이한 의문을 지우지 못했다. 그녀는 강현의 메스 끝을 응시하며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럴 실력이 있으면서 왜 지금까지 숨기고 있었어? 이 정도 실력이면…… 신관 20층에 있는 그 환자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강현의 손끝이 미세하게 멈칫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바벨 워드 극비 격리구역 말이야."

서희가 주위를 슬쩍 살피며 목소리를 극도로 낮췄다.

"거기에 정체불명의 환자가 하나 누워 있어. 이사회랑 서지훈 실장이 극비리에 관리하는 환자 X. 다들 손 놓고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거든.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밀봉해 놨는데…… 어쩌면 너라면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환자 X.

강현의 뇌리에 회귀 전 기억의 파편이 스쳐 지나갔다.

혜화회와 서지훈이 자신들의 추악한 임상 시험 실패를 은폐하기 위해 신관 바벨 워드 깊숙한 곳에 가두어 둔 불치병 환자. 차민우가 집도하려다 실패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던, 그 거대한 음모의 핵심 열쇠였다.

'결국 이번 생에서도 그 환자를 만나게 되겠군.'

강현은 내면의 동요를 억누르며 마지막 봉합사를 당겼다.

"타이(Tie)."

강현이 실을 묶었다.

첫 번째 매듭이 지어지고, 두 번째, 세 번째 매듭이 대동맥 벽에 단단히 안착했다.

"클램프 해제한다."

강현이 대동맥에 물려 있던 클램프를 조심스럽게 풀었다.

긴장된 순간이었다. 새로 봉합한 부위가 혈압을 버티지 못하고 터지면, 환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서희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이내 들려오는 것은 평온한 모니터 음이었다.

삑- 삑- 삑-

"혈압…… 110에 70. 안정적입니다."

서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대동맥 봉합 부위에서는 단 한 방울의 피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찢어졌던 혈관벽은 인조혈관과 펠트로 완벽하게 보강되어 세차게 흐르는 혈류를 굳건히 버텨내고 있었다.

[생명의 장부]의 화면이 붉은색에서 온화한 녹색으로 전환되었다.

[환자 이민우의 생명력: 82.4% (상태: 안정)] [수술 성공률: 99.8%] [신뢰도 획득: 한서희로부터 절대적 신뢰 획득 (+150 Point)] [시스템 정산: 현재 보유 신뢰도 50 Point (흑자 전환)]

"살았어……."

서희가 다리가 풀린 듯 수술대 옆의 카트에 기대어 섰다. 그녀의 등은 이미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진짜로 살렸어. 마취과도 없이, 혼자서 대동맥 파열을……."

그녀는 눈앞의 청년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던 환자의 얼굴에 붉은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것은 의학의 한계를 뛰어넘은, 완벽한 구호였다.

강현은 피 묻은 장갑을 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가슴을 찌르던 협심증의 통증이 서서히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흑자 전환된 장부의 수치가 그의 생명력을 아주 미세하게 회복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쉴 틈은 없었다.

쾅!!!

수술실의 두꺼운 철문이 거칠게 흔들렸다. 외부 잠금장치를 강제로 풀려는 기계음과 함께 고함 소리가 복도 너머에서 흘러나왔다.

"백강현! 당장 문 열어! 미친 새끼가 결국 일을 저질렀구나!"

김태섭 과장의 목소리였다.

쿵! 쾅!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강현은 피 묻은 메스를 수술대 옆 트레이에 올려놓았다.

"서희야, 정리해."

강현은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며, 수술실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마침내 수술실 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의 김태섭이 들이닥쳤다. 그의 뒤에는 마취과 과장과 부원장 직속 보안요원 서너 명이 험악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 빌어먹을 자식! 감히 마취과 승인도 없이 수술실을 점거하고 무단 집도를 해?! 이건 명백한 살인 행위이자 병원 규정 위반이다!"

김태섭이 강현의 멱살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보안요원들, 뭐 해! 당장 이 미친놈 끌어내고 경찰에 신고해! 의사 면허 박탈은 물론이고 형사 처벌까지 받게 만들 테니까!"

김태섭의 눈에는 광기 어린 희열이 서려 있었다. 강현이 무리하게 수술을 감행하다 환자를 죽였으리라 확신한 것이다. 골칫거리였던 강현을 합법적으로 매장할 수 있는 완벽한 명분이 제 발로 굴러들어 온 셈이었다.

하지만 강현은 김태섭의 손길을 가볍게 피하며, 피 묻은 수술 가운을 천천히 벗어 던졌다.

"살인 행위라뇨."

강현의 목소리는 너무나 차분해서 오히려 섬뜩하게 들렸다.

"환자 바이탈부터 확인하시죠, 과장님."

"뭐?"

김태섭이 멍청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모니터에는 너무나도 규칙적이고 건강한 심전도 곡선이 그려지고 있었다. 혈압 115에 75, 산소포화도 99%.

"이…… 이게 어떻게……."

김태섭의 입이 벌어졌다. 뒤따라 들어온 마취과 과장 역시 모니터와 환자의 상태를 번갈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대동맥 박리 및 파열 환자, 무심폐기 상태로 상행 대동맥 인조혈관 치환술(Off-Pump Ascending Aorta Replacement) 성공했습니다. 출혈점은 완벽히 잡혔고, 바이탈은 안정적입니다."

강현이 김태섭의 코앞까지 다가서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과장님이 도망치라고 밀어 넣으신 사지에서, 제가 환자를 살려 걸어 나왔습니다."

김태섭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주변의 보안요원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 이건 무단 집도야! 결과가 좋다고 해서 과정의 불법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란 말이다!"

김태섭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병원 징계위원회를 열어서 널 반드시 파면하겠다! 내 지시를 어기고 독단적으로 행동한 대가를 치르게 해 주지!"

그 협박을 들으며, 강현은 오히려 입꼬리를 부드럽게 올렸다.

회귀 전, 김태섭이 자신에게 누명을 씌우고 파멸로 몰고 갔던 온갖 비리들. 그리고 그의 방 깊숙한 최고급 개인 캐비닛 속에 숨겨진 보안 태블릿의 비밀번호가 강현의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떠올랐다.

사냥개가 짖어대기 시작했다. 이제 주인을 물어뜯을 덫을 놓을 차례였다.

강현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김태섭의 귓가에 속삭였다.

"징계위원회라뇨. 과장님 캐비닛 안에 있는 '그 물건'이 세상에 나와도, 과연 그런 소리가 나오실지 궁금하군요."

김태섭의 눈동자가 그 어떤 순간보다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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