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발락의 대검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마력이 베아트리스의 황가 전속 인장 패에 부딪혀 비산했다. 웅웅거리는 파열음이 지하 통로의 거친 돌벽을 두드렸고, 사방으로 흩어진 스파크가 어두운 동굴을 신경질적으로 밝혔다.

"황가 전속 중재권이라니……."

발락의 입술 사이로 이빨 갈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대검을 쥔 그의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황실의 그림자이자 교단의 집행관인 그조차도, 황제의 직계 대리인에게만 부여되는 이 초법적인 사법적 방패를 정면으로 깨부술 수는 없었다. 만약 여기서 검을 내지른다면 그것은 곧 황실에 대한 반역이자, 제국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대참사로 이어질 터였다.

"미련한 영애 같으니라고. 네가 지금 무엇을 품에 안고 감싸는지 정녕 모른단 말이냐."

발락이 검을 거칠게 거두어들이며 침을 뱉듯 내뱉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시우를 향한 멸절의 광신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베아트리스는 가슴뼈 아래가 저릿할 정도의 압박감을 견디며 인장 패를 쥔 손을 내리지 않았다. 그녀의 등 뒤에 선 시우는 여전히 미동조차 없었다. 칼날이 목전까지 다가왔던 순간에도, 그의 검은 눈동자는 오직 한 곳—공허의 서고 입구에 새겨진 고대 수식의 기하학적 균열만을 무심히 쫓고 있었다.

"이 자의 무죄를 증명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집행관."

베아트리스가 가늘게 떨리는 숨을 고르며 차갑게 대꾸했다.

"법과 절차에 따라, 아카데미의 최고 원로원과 황실 재판소의 공식적인 심문을 거치겠다는 뜻이다. 이단의 낙인은 그 후에 찍어도 늦지 않는다."

"흥, 제 발로 단두대로 걸어가겠다는 심산이군. 좋다. 원로원의 대강당에서 그 오만한 목을 어떻게 매달지 지켜봐 주마."

발락이 손짓하자, 뒤를 따르던 성기사들이 일제히 무기를 거두고 뒤로 물러섰다.

지하 유적의 차가운 흙먼지와 어둠을 뒤로한 채, 그들은 지상으로 향했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시우의 신체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심장 박동수가 분당 40회 이하로 떨어지며, 손끝부터 시작된 한기가 혈관을 타고 폐부까지 얼려버릴 듯 몰아쳤다. 입술이 퍼렇게 질리고 가늘게 떨리는 호흡 끝에 옅은 핏방울이 섞여 나왔다.

"에온……!"

동행을 허가받은 유리아가 다급히 시우의 팔을 부축했다. 그녀의 소매 안에서 작은 유리병이 흘러나왔다. 병 속에는 맑고 푸른빛을 띠는 액체가 은은한 열기를 내뿜으며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이거, 마셔요. 지난번에 보여줬던 연금학 수식…… 불순물 정제 불균형 공식을 드디어 완성했어요. 에온이 칠판에 적어둔 엔트로피 보정값을 대입하니까, 정제 과정에서 마나가 손실되면서 생기던 유독성 반동이 99.98% 사라졌어요. 심장의 부담을 극도로 완화해 줄 약제예요."

시우는 말없이 유리병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차가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 액체가 위장에 닿는 순간,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정교하게 고정된 마나 분자들이 시우의 혈관 내부에서 급격한 열역학적 결합을 일으켰다. 불순물이 완벽히 배제된 연금 결합액은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며 굳어 가던 심장 근육을 자극했고, 이내 멎어가던 고동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쿵, 쿵, 하고 느리지만 확실한 파동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심박수가 안정적인 궤도로 올라서자 각혈이 멈추고 뺨에 미약한 온기가 돌았다.

"효율적이군."

시우가 턱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무덤덤하게 평했다.

"정제 오차율이 0.02% 미만이다. 이 정도면 생물학적 활성 마나의 손실을 방지하기에 충분해."

유리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그의 지독할 정도로 냉정하고 논리적인 반응에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자신은 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연금술의 비기를 완성해 온 것이었으나, 정작 당사자에게는 그저 잘 만들어진 계산식의 결과물에 불과해 보였기 때문이다.

* * *

사흘 뒤, 라그랑주 황립 아카데미의 심장부인 '태양의 대강당'.

평소라면 학문적 토론과 마법적 서약이 이루어질 고풍스러운 원형 강당은, 오늘만큼은 피비린내 나는 단죄의 재판장으로 변모해 있었다. 천장의 높은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흘러내리는 겨울의 창백한 햇살이 바닥의 거대한 기하학적 문양들을 차갑게 비추었다.

단상 높은 곳에는 아카데미의 최고 원로원 의원들과 황실에서 파견된 법관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줄지어 앉아 있었다. 그들의 중심에 선 인물은 원로원의 실권자이자 기성 마법학의 거두인 엘리아스 교수였다. 그의 화려한 법복에는 아카데미의 권위를 상징하는 금빛 자수가 수놓아져 있었으나, 시우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비열한 독기로 가득 차 있었다.

"피고 에온 에스토크."

엘리아스의 목소리가 대강당의 높은 천장을 타고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너는 고대의 금기 구역인 공허의 서고에 무단으로 침입했을 뿐만 아니라, 기성 제국 마법의 질서를 부정하는 이단적인 마법을 구사했다. 영창도 없고, 마법진의 기하학적 대칭도 존재하지 않는 기괴한 힘. 그것은 마법이 아니다."

엘리아스가 단상 앞으로 걸어 나오며 시우를 매섭게 지목했다.

"그것은 마력이 왜곡되어 발현되는 변종 무저 질병(無底 疾病)이거나, 혹은 세상을 종말로 이끄는 마왕의 저주받은 권능이다! 마나의 성스러운 순환을 거스르고 주변의 열을 빼앗아 동토로 만드는 그 재앙을, 어찌 감히 마법이라 부르겠는가!"

강당을 가득 메운 장로들과 학생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일었다. 그들의 눈에는 경멸과 함께, 실기 시험장에서 은백색의 서리로 공간 전체를 얼려버렸던 시우의 힘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가 서려 있었다.

시우는 피고석에 서서 가만히 엘리아스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의 '정리된 엔트로피의 시선'이 발동하며 주변의 마나 흐름이 수많은 물리 공식과 숫자로 치환되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 순간, 시우의 몸 안에서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저체온증의 전조가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심장이 조여들고 손끝의 감각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그때, 피고석 바로 뒤에서 경호를 서고 있던 베아트리스의 품에서 은은한 마나 파동이 느껴졌다. 그녀가 목에 걸고 있던 '이상 반응 연성 펜던트'였다. 본래 마나의 조율 오차를 측정하기 위해 참관용으로 착용하는 기구였으나, 시우의 눈에는 그 내부의 미세한 마법식 구조가 완전히 해체되어 보였다.

'저 펜던트의 내부 공진 주파수를 역연산하면…….'

시우는 즉각적으로 머릿속의 공식을 가동했다. 펜던트 내부에 잠재된 이상 에너지 고정술의 기하학적 경로를 마나 연산으로 실시간 분해하기 시작했다. 에너지 손실률을 0%로 수렴시키며, 펜던트가 방출하는 미세한 안정화 마나를 자신의 체내 엔트로피와 동조시켰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펜던트의 열에너지 고정 장치가 시우의 생물학적 저체온 상태를 강제로 묶어두는 임시 완충기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다. 얼어붙어가던 폐부에 따뜻한 혈류가 공급되며 신체 기능이 정상 궤도를 유지했다.

몸이 가벼워진 시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의 떨림도 없이, 지나치게 맑고 평온했다.

"변종 질병도, 저주도 아닙니다."

시우가 단상 위의 엘리아스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당신들이 숭배하는 '마나 원소 증식학'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가설 위에 세워진 오류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일 뿐입니다."

"무엇이라?!"

엘리아스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화를 띠었다. 평생을 바쳐 연구하고 가르쳐온 제국의 마법 체계를, 일개 낙제생 소년이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제국 장로 가문이 수천 년간 정립해 온 마나 증식학은 완벽하다! 기하학적 대칭을 통해 마나를 원형 마법진에 가둬두면, 원소는 스스로 공명하며 무한히 증식한다. 이것이 마법의 보존 법칙이다!"

"틀렸습니다."

시우가 품에서 분필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피고석 앞의 석판으로 다가가 거침없이 수식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dQ = dU + dW$

$\Delta S \ge 0$

간결하고도 완벽한 기호들의 조합. 그것은 이 세계의 그 어떤 마법서에도 기록되지 않은, 그러나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물리적 진리였다.

"이것은 에너지 보존 법칙, 그리고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입니다."

시우의 무심한 목소리가 정적에 잠긴 강당에 울려 퍼졌다.

"우주에 존재하는 에너지는 새로 창조되거나 소멸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 형태를 바꿀 뿐이지요. 당신들이 주장하는 '마나 증식학'은 외부에서의 에너지 유입 없이 스스로 동력을 만들어내는 영구기관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열역학 제1법칙에 위배되는 수학적 불가능입니다."

"그, 무슨 해괴망측한 궤변이냐! 성스러운 기하학의 공명을 감히 숫자의 장난으로 모독하려 들다니!"

엘리아스가 삿대질을 하며 외쳤지만, 시우의 손끝은 멈추지 않았다.

"당신들이 자랑하는 최고 효율의 정형 기하 마법진을 분석해 보았습니다. 완벽한 원형과 대칭을 유지하기 위해 낭비되는 마나 흐름의 저항값, 그리고 그로 인해 허공으로 흩어지는 쓸모없는 열에너지의 총합을 계산하면, 마나 손실률은 정확히 42.18%에 달합니다. 무한한 증식이 아니라, 시전할 때마다 막대한 에너지를 열로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우가 석판을 툭툭 쳤다.

"제가 구사하는 마법은 마나를 증식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주변 공간의 기체 분자들이 지닌 운동 에너지, 즉 '열'을 빼앗아 그것을 순수한 마력의 정렬 상태로 치환하는 것입니다. 에너지를 빼앗긴 분자들은 운동을 멈추고 절대영도($0\text{ K}$)에 수렴하게 되며, 그 결과로 공기가 얼어붙고 진공이 발생합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열역학적 결과입니다."

"절대…… 영도……?"

한 장로가 넋을 잃은 채 시우가 적어 내려간 수식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들은 평생을 아름다운 기하학적 문양과 신에게 바치는 영창 속에서 마법을 이해해 왔다. 하지만 시우가 단 세 줄의 수식으로 증명해 낸 마법의 본질은, 그들이 믿어온 신비주의의 장막을 가차 없이 찢어발겼다.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제국의 자랑스러운 마법학이, 단지 에너지 효율을 계산하지 못해 발생한 '42%의 오차를 품은 미완성 수학'에 불과하다는 사형 선고였다.

"말도 안 돼…… 저 수식의 배치는…… 좌우의 균형이 단 일 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떨어지고 있어."

유리아 옆에 앉아 있던 학술원의 원로 학자가 손에 쥔 펜을 떨어뜨렸다. 그의 눈동자는 깊은 신앙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듯한 공포와 경외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베아트리스 역시 멍하니 시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그녀는 시우의 소리 없는 마법을 보며 세상을 멸망시킬 마왕의 재앙이라 여겼다. 하지만 지금 그가 보여주는 것은 파괴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가장 정직하며, 단 하나의 낭비도 허용하지 않는 '궁극의 질서'였다.

자폐적인 결핍인 줄만 알았던 그의 무심하고 차가운 태도는, 인간의 구차한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진리 그 자체의 현신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가슴 속에서 오랫동안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던 맹목적인 신앙의 벽이 소리 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무결한 진리에 대한 도취였다.

"이…… 이단자 놈이 감히 아카데미의 원로들을 기만하려 드는구나!"

엘리아스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찢어졌다. 그의 이마에 핏대가 굵게 솟아올랐고, 전신이 수치심으로 부들부들 떨렸다. 평생을 다해 쌓아 올린 자신의 학문적 지위와 가문의 위상이, 저 미천한 소년의 분필 끝에서 한낱 쓰레기 조각으로 변해버린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주변 장로들의 수군거림과 자신을 향하는 의심의 눈초리들이 엘리아스의 정신을 극한으로 몰고 갔다.

"아니다…… 내가 틀렸을 리 없다! 네놈이 사악한 마왕의 주술로 우리 모두의 눈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엘리아스의 눈동자가 광기로 완전히 뒤집혔다. 그의 손이 단상 아래, 원로원 의장석 내부에 비밀스럽게 장치되어 있던 붉은색 레버로 향했다.

그것은 아카데미의 비상사태 시 단상 주변의 모든 마나를 강제로 폭주시켜 침입자를 소멸시키기 위해 설치된, 극렬한 마나 폭발 장치였다. 조율되지 않은 불안정한 마력 동력원이 단상 내부에서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비이성적인 분노에 눈이 먼 엘리아스가 소리쳤다.

"죽어라! 마왕의 환생아! 너와 함께 이 가짜 수식들을 전부 날려버리겠다!"

쿠구구구궁—!

단상 밑바닥에서부터 불길한 붉은 광포한 진동이 대강당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무작위로 날뛰기 시작한 마나의 파동이 통제력을 잃고 폭발을 향해 급발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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