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차가운 대리석 바닥이 비명을 지르며 쪼개지는 소리가 사방을 메웠다.

"종말의 마왕이다! 전원 무기를 들고 사방을 통제하라!"

기사단장의 날카로운 사효가 귓전을 때리기 무섭게, 수십 자루의 철검이 일제히 소년을 향해 검끝을 겨누었다. 서슬 퍼런 쇠붙이들이 뿜어내는 예기가 공기를 찢었지만, 시우의 감각은 이미 그보다 훨씬 더 근원적인 종말을 향해 침잠하고 있었다.

쿵. 쿵. 쿵.

가슴뼈 안쪽에서 울리는 심장의 고동이 기이할 정도로 느렸다. 분당 서른두 번. 생명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마지노선이었다. 열역학 제2법칙을 강제로 비틀어 절대영도의 영역을 구현한 대가는 소년의 혈관을 얼려버릴 듯한 저체온증으로 되돌아왔다.

"에온! 움직이지 마라!"

어깨를 붙잡으려는 기사단장의 손길이 닿기 직전, 시우는 참아왔던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꺾었다.

"우욱, 쿨럭!"

차디찬 대리석 바닥 위로 붉은 선혈이 한 움큼 쏟아져 내렸다. 붉은 핏방울들은 바닥에 닿자마자 미처 퍼지지도 못한 채, 지독한 냉기에 부딪쳐 투명한 결정으로 얼어붙었다. 붉은 보석처럼 응고된 피를 내려다보며 시우는 턱끝에 맺힌 핏방울을 소매로 닦아냈다. 비정상적으로 낮아진 체온 때문에 시야가 흐릿하게 번졌지만, 그의 푸른 눈동자는 여전히 갈라진 지면 아래를 응시하고 있었다.

타인들의 공포 섞인 비명도, 자신을 마왕이라 부르는 광기 어린 외침도 소년의 고막에는 그저 주파수가 맞지 않는 잡음에 불과했다.

"기다려 주십시오! 검을 거두셔야 합니다!"

대치를 깨뜨린 것은 숨을 헐떡이며 연무장 안으로 뛰어든 유리아였다. 그녀의 머리칼은 땀과 먼지로 엉망이었고, 품에는 아카데미 학장의 인장이 찍힌 거대한 황금빛 양피지가 안겨 있었다.

"이건... 학장 각하의 친필 서명이 담긴 '해독 조력 계약서'입니다! 에온의 수식이 없다면, 방금 열린 지하 유적의 고대 봉인을 해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기사단장의 눈썹이 거칠게 꿈틀거렸다.

"비켜라, 유리아 양. 이 자는 아카데미를 동토로 만들 예언의 마왕이다. 원로원의 명령에 따라 즉시 압송해야 한다."

"원로원의 엘리아스 교수님께서도 이미 서명하셨습니다!"

유리아가 양피지를 기사단장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양피지 하단에는 기하학적 문양의 인장과 함께, 시우를 처멸하지 못해 안달이 나 있던 엘리아스의 친필 사인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시우는 흘러내리는 핏자국을 보며 무표정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엘리아스가 자신을 살려두려 할 리가 없었다. 즉, 이것은 함정이다. 자신을 합법적으로 처단하기 위해, 혹은 그가 가진 수식의 비밀을 안전하게 갈취하기 위해 지하의 금기 구역인 '공허의 서고'로 유인하려는 수작이 분명했다.

'논리적 오류가 넘쳐나는 공식이지만, 목적지는 일치하는군.'

시우에게는 원로원의 음모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곳에 고대 문명이 남긴 차원 이동의 천체 좌표가 있다면, 제 발로 호랑이 굴에 걸어 들어가는 것쯤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다. 그것이 유일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었으니까.

결국 기사단은 학장과 원로원의 연명 서류 앞에 검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단, 조건이 붙었다. 시우의 양옆을 철저히 감시할 성기사단과,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베아트리스가 동행하는 조건이었다.

***

아카데미 지하 깊은 곳, 수천 년 동안 빛이 닿지 않았던 '공허의 서고'로 내려가는 계단은 차갑고 축축한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불어오는 지상의 바람조차 이곳까지는 닿지 못해, 공기는 마치 고체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조심해, 에온. 이곳은 고대 마법사들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는 위험한 구역이야."

베아트리스가 장검의 자루를 쥔 채 시우의 반 걸음 뒤에서 속삭였다. 그녀의 붉은 머리칼이 어두운 지하 통로의 횃불 빛을 받아 핏빛으로 일렁였다. 그녀의 시선은 시우의 창백한 목덜미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의 가문에 내려오는 오래된 고서에는 세상을 파멸로 이끌 마왕이 극도로 무자비하고 오만한 파괴자로 묘사되어 있었다. 소리도 없이 세상을 얼려버리는 저 소년의 힘은 분명 그 예언과 일치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앞에 서서 비틀거리는 소년은, 위압적인 지배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소년은 그저 창백하게 질린 손가락을 끊임없이 허공에 움직이며,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받아 적고 계산하는 데 몰두하고 있을 뿐이었다.

'너는 정말로 세상을 멸망시킬 괴물인가? 아니면... 그저 길을 잃은 아이인가.'

베아트리스의 가슴가에 걸린 이상 반응 연성 펜던트가 그녀의 복잡한 심경을 대변하듯 미세하게 붉은 광채를 발하며 진동했다. 시우가 뿜어내는 비정상적인 저체온의 파동에 반응해 펜던트 내부의 기하학적 마법진이 스스로를 보호하려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에온, 이 수식 좀 봐봐."

그들의 뒤를 따르던 유리아가 흥분으로 가득 찬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녀는 시우가 이전에 칠판에 적어주었던 미완성 불순물 정제 공식의 수치들을 가죽 수첩에 빼곡히 적어 둔 상태였다.

"이 정제 공식을 조금만 더 보정하면, 네 심장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여줄 연금 결합액을 정제할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아직 분자 구조의 균형을 맞추는 마지막 상수를 모르겠어."

"그건 0.1428의 오차를 허용하는 고전 기하학의 한계 때문입니다."

시우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건조하게 대답했다.

"분자의 질량 보존 법칙을 무시한 채 형태의 대칭성에만 집착하니 손실률이 발생하는 겁니다. 나중에 완전히 정수화된 상수를 드리죠."

"정말?! 꼭 약속한 거다!"

유리아의 눈이 학구적인 열망으로 반짝였다.

그들이 마침내 지하 1층의 거대한 석문에 도달했을 때, 통로는 막혀 있었다. 석문 앞에는 붉은빛으로 일렁이는 미세한 마나의 그물이 쳐져 있었다. 원로원의 엘리아스가 탐수대의 진입을 늦추고 시우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사전에 장치해 둔 차단 결계였다.

"흠, 이건 고대 삼각 마법진의 변형이군."

동행한 아카데미의 수석 조사관이 돋보기를 들이대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최소 세 시간은 정밀 역연산을 거쳐야 기하학적 균열점을 찾을 수 있겠소. 다들 대기..."

"필요 없습니다."

시우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의 눈동자가 푸른빛으로 침잠하며 '정리된 엔트로피의 시선'이 활성화되었다.

소년의 시야에 비친 결계는 아름다운 마법진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나라는 이름의 에너지가 불완전하게 결합하여 끊임없이 외부로 열을 유출하고 있는, 극도로 비효율적인 열역학적 오류 덩어리였다.

시우의 뇌리에 낯익은 수치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 결계의 에너지 손실률... 내가 이 세계에 처음 각성했을 때 관측했던, 그 좁은 방 안 구리 동전의 마찰열 손실 수치와 정확히 일치하는군.'

1화에서 각성한 직후, 손가락 사이로 떨어뜨린 구리 동전이 바닥에 부딪히며 발생시켰던 0.00032%의 미세한 마찰열 손실. 엘리아스가 설계한 이 결계 역시 외형의 화려함에만 치중한 나머지, 접합부에서 정확히 0.00032%의 미세 기하학적 마나 유출 경로를 남겨두고 있었다.

그것은 기성 마법학이 '불가피한 자연적 손실'이라 치부하며 무시해 온 오차였다. 하지만 시우에게 그 오차는 결계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완벽한 아킬레스건이었다.

시우는 검을 뽑지도, 장황한 영창을 읊지도 않았다. 그저 결계의 접합부, 마나가 미세하게 유출되는 정확한 좌표를 향해 손끝을 가볍게 튕겼을 뿐이다.

틱.

작은 마찰음과 함께, 시우의 손끝에서 시작된 국소적 절대영도의 파동이 0.00032%의 미세 유출 경로를 따라 역추적해 들어갔다. 열운동이 완벽하게 정지당한 마나의 분자들이 순식간에 동결되며 결계의 결합 구조를 내부에서부터 파괴하기 시작했다.

콰드드득!

"아, 아니?!"

수석 조사관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세 시간은 걸릴 것이라 호언장담했던 고위 결계가, 소년이 손가락을 한 번 튕긴 것만으로 마치 유리창이 깨지듯 산산조각이 나 버린 것이다. 먼지 한 톨, 소음 한 점 없이 깨끗하게 사라진 결계의 잔해 너머로 공허의 서고 입구가 그 거대한 입을 벌렸다.

"이게... 말이 되는가? 마법진의 기하학적 구조를 해체하지도 않고, 어떻게 결계의 핵을 바로 찾아내서 소멸시킨 거지?"

조사관들이 경악하며 서로를 바라보았지만, 시우는 그들의 호들갑에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이미 석문 내부, 어둠 속에 잠겨 있는 벽화로 향해 있었다.

시우는 먼지 쌓인 돌벽 앞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고대 문명의 일지가 기하학적 문양과 수식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유리아, 조명등을 이쪽으로."

유리아가 서둘러 마법 등불을 비추었다. 빛이 닿은 벽면에는 고대 차원 마법사들이 기록해 둔 '차원 이동 보정 축선'의 수치들이 왜곡된 형태로 박혀 있었다. 후대의 마법사들이 종교적 미학에 맞춰 수식을 변형해 놓은 탓에, 원래의 완벽한 상수가 기괴하게 뒤틀려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물리 법칙의 눈을 가진 시우에게는 그 뒤틀림 속에서도 원래 존재해야 할 진정한 수식의 궤적이 선명하게 보였다.

'3.1415... 아니, 이 세계의 공간 곡률을 적용하면 상수는 달라진다. 차원 왜곡을 보정하기 위한 축선 수치는...'

시우는 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벽화에 숨겨진 진짜 수치들을 빠른 속도로 받아 적기 시작했다. 사소해 보이는 수학적 오차를 바로잡는 이 과정이야말로, 그의 뇌리에 잠들어 있는 지구 귀환 포탈의 가동 공식을 완성할 마지막 열쇠였다.

그때였다.

쿠웅-!

유적 깊은 곳에서 정체불명의 진동이 울려 퍼졌다. 지하 1층 중심부에 위치한 고대 마력로의 시그널이 시우의 몸 안에서 요동치는 '정리된 엔트로피'의 제어력에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에너지가 고갈되어 잠들어 있던 고대 유물들이, 에너지 손실률 0%에 수렴하는 시우의 마법적 파동에 공명하며 하나둘씩 푸른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웅웅웅-.

"마, 마력로가 반응하고 있어! 이 유적은 완전히 죽어 있었는데...!"

조사관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그 진동과 함께 서고 중앙의 바닥이 거칠게 요동치며, 고대의 방어 체계가 작동했다.

파앗!

바닥의 대리석들이 기하학적 궤도를 그리며 어지럽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딛는 순간 침입자의 질량을 감지하여 공간을 왜곡시키고 침입자를 압사시키는 고대의 시공 함정이었다. 사방에서 차가운 중력의 왜곡이 발생하며 공기가 비틀리고, 돌가루들이 허공으로 둥둥 떠올랐다.

"모두 대피해! 공간이 일그러지고 있다! 이대로 있다간 형체도 없이 으스러질 거야!"

베테랑 조사관들이 혼비백산하여 퇴로를 향해 달아나려 했다. 베아트리스 역시 검을 뽑아 들고 시우의 앞을 가로막으려 했다.

"에온, 뒤로 물러서! 내가 길을..."

그러나 시우는 베아트리스의 어깨를 가볍게 스쳐 지나가며, 오히려 요동치는 시공 함정의 중심부로 걸음을 옮겼다.

"미련한 짓 마라! 죽으려는 거냐!"

기사단장의 외침에도 소년의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시우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완벽한 물리학적 연산이 끝난 상태였다.

'고대 질량 분석 완료. 왜곡된 공간의 중력 가속도는 초속 9.8미터에서 주기적으로 변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 왜곡의 주기는 단순한 사인 곡선을 따르는군.'

그는 비틀리는 공간의 궤적과 중력의 왜곡점을 완벽하게 역상쇄할 수 있는 마나의 흐름을 계산했다.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발끝이 닿는 순간의 압력과 질량의 분포를 0.001그램 단위로 조율하면 그만이었다.

탁. 탁.

소년의 가벼운 발소리가 일그러진 공간 속에서 규칙적으로 울렸다.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시우가 발을 내딛는 자리마다,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던 중력의 왜곡이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그의 발끝이 대리석에 닿는 찰나, 국소적인 중력 가속도가 완벽하게 역상쇄되어 무력화된 것이다.

사방에서 왜곡된 공간이 찢어지는 굉음이 울려 퍼지는 와중에도, 소년은 마치 평화로운 아카데미의 정원을 거닐듯 유유히 함정의 중심부를 관통해 나갔다. 그의 옷자락에는 흙먼지 한 알조차 묻지 않았다.

"어... 어떻게..."

도망치려던 조사관들이 넋을 잃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마법의 장벽을 부수거나 강한 힘으로 억누른 것이 아니었다. 소년은 그저 공간의 법칙 자체를 비웃듯이, 완벽한 계산만으로 함정의 틈새를 유유히 걸어 잠재웠다. 그것은 기성 마법학의 상식을 완전히 초월한, 오직 신의 영역에 오른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무결한 지배력이었다.

베아트리스는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것이... 마왕의 힘인가?'

아니었다. 그것은 파괴를 위한 폭력이 아니었다. 우주의 진리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자만이 부릴 수 있는, 극도로 아름답고 정교한 '질서'였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마왕에 대한 공포와 학문적 경외감이 기묘하게 뒤엉키며 인지부조화의 균열을 넓혀갔다.

드디어 소년의 손이 함정 너머 제단 위에 놓인 고대의 서판에 닿았다. 그것은 지구로 돌아갈 차원 포탈의 좌표를 완성할 마지막 핵심 단서, '소실된 고대 좌표 서판'이었다.

시우의 무표정한 얼굴에 아주 미미한 안도의 빛이 감돌았다. 이제 이것만 손에 넣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공식의 90%가 완성된다.

그가 서판을 인양하기 위해 손가락을 뻗은 바로 그 순간.

화아아악!

제단 주변의 돌벽에 새겨진 왜곡된 고대 제어 방어문이 기괴한 붉은빛을 뿜으며 강제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마법이 아니었다. 수천 년 동안 축적된 차원 잔류 열에너지가 폭주하며 발생하는 재앙적인 연쇄 반응이었다.

쿠구구구궁!

엄청난 굉음과 함께, 그들이 들어왔던 지하 1층 입구의 거대한 거석이 통째로 붉은 화염에 휩싸였다.

"안 돼! 문이...!"

유리아의 비명 소리와 함께, 화염에 휩싸인 거석이 엄청난 속도로 낙하하며 출구를 완벽하게 폐쇄해 버렸다. 지상으로 통하는 유일한 퇴로가 차단된 것이다. 사방을 집어삼키는 붉은 불길과 가쁜 숨을 몰아쉬는 동료들 사이에서, 시우의 심장은 다시 한번 위험할 정도로 느리게 고동치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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