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뒤, 라스베이거스의 열기는 밤이 되어도 식지 않는다.
사막의 건조한 바람이 체육관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만 가득한 늦은 밤. 메인 코트의 불은 꺼져 있었고, 보조 연습 코트의 누런 조명 아래에서 주황색 농구공이 바닥을 때리는 파열음만이 불규칙하게 울려 퍼진다.
툭, 툭, 콰앙!
강기태는 림바닥에 떨어지는 공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거친 숨을 내쉰다. 젖은 앞머리 사이로 흘러내린 땀방울이 턱끝에 맺혔다가 코트 바닥으로 툭 떨어져 번진다. 머릿속 장부는 쉴 새 없이 숫자를 갱신하고 있다.
[현재 심박수: 122 bpm] [동맥 산소 포화도: 94%] [누적 젖산 수치: 38%]
안정적이다. 준결승전에서 마커스 밀러를 철저히 도구로 소모하며 체력을 안배한 덕분이다. 하지만 기태의 미간은 펴지지 않는다.
결승전 상대는 잭슨 칼터가 이끄는 본팀. 그리고 에밀리 정이 전해준 하워드 스톤 단장의 통화 녹취록 속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기 때문이다.
—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동양인의 심장을 완전히 멈춰 세워라.
단순한 경고가 아니다. 하워드는 기태의 심장 페널티를 눈치채고 그것을 물리적으로 짓밟으려 들 것이다. 잭슨 칼터라는 피지컬 괴물을 사냥개로 풀어서.
그때, 코트 반대편 3점 라인 뒤에서 둔탁한 마찰음이 들린다.
"윽……!"
나직한 신음과 함께 둔중한 신체가 바닥으로 무너지듯 주저앉는다. 마커스 밀러였다. 그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오른쪽 무릎을 꽉 움켜쥔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거친 숨소리가 어두운 체육관 사방으로 흩어진다.
기태는 공을 옆구리에 낀 채 천천히 마커스에게 다가간다.
마커스는 기태의 발자국 소리를 듣자마자, 언제 아팠냐는 듯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쳐들었다. 하지만 그의 이마에는 핏대와 함께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어이, 꼬맹이. 밤바람이 찬데 연습이 너무 과한 거 아냐? 나처럼 나이 먹으면 뼈마디가 시리다고."
말은 가볍게 던지지만, 마커스의 손가락은 오른쪽 무릎 보호대를 찢어발길 듯이 움켜쥐고 거듭 조여 매고 있다. 두꺼운 네오프렌 보호대 위로 드러난 그의 무릎 관절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올라 있었다. 마치 내부에 뜨거운 열수가 가득 찬 풍선처럼 터질 듯 팽팽하다.
기태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그 다리로 결승전을 뛰겠다고요?"
"하! 이 정도는 그냥 가벼운 노화 현상이지. 뜨끈한 찜질 한 번이면 직방이야."
마커스는 주머니에서 정체불명의 흰색 알약 세 개를 꺼내 물도 없이 씹어 삼켰다. 바스락거리는 약포지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그는 보호대의 벨크로를 찢어질 듯이 잡아당겨 무릎 통증을 억지로 봉인하려 했다.
하지만 그 손끝의 미세한 떨림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마커스의 눈동자 깊은 곳에는 평소의 뻔뻔함 뒤에 숨겨진, 지독할 정도의 독기가 서려 있었다.
"이봐, 기태. 난 젊은 날에 반지를 눈앞에서 빼앗겼어. 파이널 7차전, 단 1초를 남겨두고 내 무릎이 터졌지. 그때 내 커리어도, 내 영혼도 다 타버린 줄 알았어."
마커스가 무릎 보호대를 마지막으로 꽉 조이며 이를 악물었다. 가죽이 쓸리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린다.
"근데 말이지, 늙은 사자도 사냥감 냄새를 맡으면 침이 고이는 법이야. 결승전이다. 저 빌어먹을 하워드 스톤의 낯짝에 내 은퇴 반지를 던져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여기서 멈추면 난 진짜 시체나 다름없어."
그 순간, 기태의 시야가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지잉―!
이명이 고막을 찌르더니, 아무런 예고도 없이 눈앞에 거대한 상태창이 팝업된다. 이전에 본 적 없는 기괴한 형태의 시스템 메시지였다.
[경고: 동료 연동 프로토콜 활성화.] [대상: 마커스 밀러 (PF/C)] [신체 동기화율: 78%] [마커스 밀러 - 오른쪽 무릎 슬개건 파열 위험도: 88% (임계점 돌파 직전)] [플레이어 강기태 - 심장 파열 마모 한계: 85%]
두 줄기의 붉은 광선이 기태의 가슴과 마커스의 오른쪽 무릎을 잇는 사슬처럼 허공에 그려진다. 붉은 선은 맥박처럼 고동치며 두 사람의 한계 수치를 실시간으로 시각화하고 있었다.
그 아래로, 붉은 글씨가 낙인처럼 찍히며 깜빡인다.
⚠️ [시스템 경보: 극단적 공명 상태 도입] ※ 플레이어의 심박수가 180bpm을 초과할 경우, '붉은 선'의 표기 속도가 2배로 가속화되는 무한 고각 궤적이 활성화됩니다. ※ 단, 가속 활성화 시 동료의 무릎 파열 수치와 플레이어의 심장 파열 마모 한계가 동시 폭증하며, 극단적인 근육 및 인대 파열 부작용을 유발합니다.
기태의 호흡이 멎는다.
심박수가 180을 넘어서는 폭주 상태. 붉은 선의 궤적이 두 배로 빨라져 그 어떤 수비도 찢어발길 수 있는 신의 영역에 진입하지만, 그 대가는 마커스의 다리와 자신의 심장을 완전히 파괴하는 동반 자살에 가깝다.
상태창의 붉은 빛이 기태의 무표정한 얼굴을 기괴하게 비춘다.
기태는 코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커스의 옆자리였다. 두 남자의 그림자가 누런 조명 아래 길게 늘어진다.
"마커스."
기태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온기가 없었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담겨 있었다.
"내 무릎은 이미 한 번 뜯겨 나갔던 물건입니다. 뼈와 뼈가 부딪히는 소리가 어떤 건지, 은퇴 통보를 받았을 때 눈앞의 세상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나도 잘 압니다."
마커스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기태가 자신의 과거를, 그 지독한 트라우마를 직접 입에 올린 것은 처음이었기에.
기태는 자신의 왼쪽 무릎을 툭툭 쳤다.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회귀 전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기괴한 수술 자국이 영혼의 흉터로 남아 있는 곳이다.
"당신이나 나나 벼랑 끝에 서 있는 건 똑같단 뜻입니다. 난 당신을 믿지 않습니다. 코트 위에서 믿을 수 있는 건 완벽한 성공률뿐이니까."
"하, 여전히 정 없는 꼬맹이군."
"하지만."
기태가 마커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 그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그 안에서 타오르는 집념은 마커스의 독기와 완벽하게 공명하고 있었다.
"당신이 림 밑에서 버텨주지 않으면 내 계산기 두드릴 시간도 안 나옵니다. 그러니까 내일, 딱 한 경기만 버티십시오. 당신 다리가 부서지기 전에, 내가 저 새끼들의 목을 먼저 따버릴 테니까."
마커스가 멍하니 기태를 바라보다가, 이내 어깨를 들썩이며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능글맞은 베테랑의 미소 뒤로, 맹수와도 같은 살기가 뿜어져 나온다.
"비즈니스 파트너치고는 꽤나 살벌한 제안이군. 좋아, 계약 성립이다, 꼬맹이. 내 은퇴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해 보라고."
두 남자는 코트 바닥에 주먹을 가볍게 맞부딪쳤다. 묵직한 가죽 공이 림을 가르는 소리가 다시금 체육관을 채웠다.
***
다음 날, 라스베이거스 토마스 앤 맥 센터(Thomas & Mack Center).
서머리그 결승전의 열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만 명이 넘는 관중이 관람석을 빽빽하게 메웠고, 수십 대의 미디어 카메라가 코트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었다. 경기장 전체가 거대한 용광로처럼 들끓는다.
"우우우우우―!"
기태가 코트에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야유 소리가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라스베이거스 현지 관중들은 이미 하워드 스톤 단장이 흘린 '동양인 가드의 피지컬 한계와 유전학적 결함' 찌라시에 선동되어 있었다. 관중석 곳곳에는 기태를 조롱하는 피켓들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Yellow Fever는 여기까지!] [Jackson, 저 가짜 천재를 박살 내라!]
"와아아아! 결승전이 시작됩니다!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 가운데, 이번 서머리그 최고의 신데렐라 강기태와 드래프트 1순위 후보 잭슨 칼터가 드디어 외나무다리에서 만났습니다!"
해설진의 목소리가 앰프를 타고 찢어질 듯 울린다.
기태는 코트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그때, 거대한 그림자가 기태의 시야를 가로막는다.
쿵!
엄청난 질량의 신체가 기태의 왼쪽 가슴을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고의적이고도 묵직한 어깨 들이받기였다. 기태의 신체가 뒤로 서너 걸음 밀려나며 둔탁한 통증이 흉부를 강타한다.
"윽!"
들이받은 주인공은 잭슨 칼터였다. 201cm의 거구, 야수 같은 근육을 자랑하는 그가 이빨을 드러내며 기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이, 옐로 몽키.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 나와?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세탁소나 회계 사무실이야."
칼터의 목소리는 낮고 자극적이었다. 그의 어깨 근육이 기괴하게 팽창해 있었고, 호흡은 비정상적으로 가빴다.
지잉!
기태의 머릿속 장부가 격렬하게 경고음을 울린다.
[경보: 외부 충격 감지.] [심박수 급증: 110 → 150 bpm] [경고: 심폐 기능 수치 급변으로 인한 젖산 축적률 상승.]
가슴의 통증보다 더 기태의 눈을 자극하는 것은 칼터의 눈빛이었다. 그의 눈동자는 실핏줄이 터져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입가에는 아주 미세한 경련이 일고 있었다.
정상적인 신체 상태가 아니다. 에밀리가 말했던 'PED(경기력 향상 약물) 오버클럭'의 전형적인 증상이었다. 하워드 스톤이 결승전을 위해 칼터에게 금단의 약물을 투여한 것이 분명했다.
관중석의 야유는 극에 달했다.
"하워드 녀석, 아주 작정을 했군."
마커스가 기태의 곁으로 다가오며 읊조렸다. 그의 오른쪽 무릎은 이미 테이핑으로 꽁꽁 싸여 있었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코트 위의 어떤 젊은이보다 사나웠다.
기태는 가슴을 움켜쥐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심박수는 150에서 멈춰 섰다. 차가운 이성이 분노를 누르고 장부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기태는 관중석의 야유 소리를 완전히 소거했다. 오직 림과,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붉은 선의 궤적만을 시야에 남겨둔다.
기태가 마커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경기장 정중앙으로 걸어 나가 나란히 섰다.
그리고는 관중석을 향해, 그리고 VIP 룸에서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을 하워드 스톤을 향해 오른쪽 주먹으로 왼쪽 가슴을 강하게 두 번 내리쳤다.
쿵, 쿵.
이어서 검지손가락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두 사람의 완벽하게 일치된 시그니처 세리머니.
동양인 가드를 비하하던 야유 소리가 순간적으로 잦아들며, 경기장 전체에 묘한 침묵이 가라앉는다. 그 어떤 도발에도 흔들리지 않는 두 남자의 비장한 기세가 만 명의 관중을 압도해 버린 것이다.
"저, 저 건방진 새끼들이……!"
벤치 구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하워드 스톤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다.
삑―!
주심이 코트 중앙으로 걸어와 공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팁오프 직전.
기태는 잭슨 칼터와 마주 섰다. 칼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정상적인 열기가 코트의 공기를 달구고 있었다.
그 순간, 기태의 눈앞에 시스템의 최종 경고등이 피빛으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 위험: 상대 플레이어 '잭슨 칼터'의 생체 수치 이상 감지.] [근육 수축력 평가: 일반 한계치 대비 140% 돌파 (불법 화학 물질 반응 확률 99.8%)] [시스템 분석: 상대의 물리적 충돌 강도가 플레이어의 생명력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준입니다. 충돌 시 심장마비 및 무릎 완전 파열 확률 급증.]
심판이 공을 하늘로 던져 올리는 순간, 칼터의 핏발 선 눈동자가 기태를 향해 잔혹한 살기를 뿜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