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삑―!

주심이 코트 중앙으로 걸어와 공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팁오프 직전.

기태는 잭슨 칼터와 마주 섰다. 칼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정상적인 열기가 코트의 공기를 달구고 있었다.

그 순간, 기태의 눈앞에 시스템의 최종 경고등이 피빛으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 위험: 상대 플레이어 '잭슨 칼터'의 생체 수치 이상 감지.] [근육 수축력 평가: 일반 한계치 대비 140% 돌파 (불법 화학 물질 반응 확률 99.8%)] [시스템 분석: 상대의 물리적 충돌 강도가 플레이어의 생명력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준입니다. 충돌 시 심장마비 및 무릎 완전 파열 확률 급증.]

심판이 공을 하늘로 던져 올리는 순간, 칼터의 핏발 선 눈동자가 기태를 향해 잔혹한 살기를 뿜어냈다.

쿵!

공중에서 맞부딪힌 것은 공이 아니었다. 칼터의 거대한 어깨가 기태의 가슴팍을 그대로 짓눌렀다.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기태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가슴뼈 깊은 곳에서부터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기태는 어금니를 악물며 신음 소리를 안으로 삼켰다.

"큭……!"

심판의 휘슬은 울리지 않았다. 주심은 교묘하게 고개를 돌려 멀리 떨어진 볼의 궤적만을 쫓고 있었다. 라스베이거스 토마스 앤 맥 센터의 코트 위에는 이미 하워드 스톤의 검은 손길이 뻗쳐 있었다. 돈과 권력으로 매수된 심판진에게 기태가 당하는 물리적 폭력은 그저 '거친 서머리그의 몸싸움'일 뿐이었다.

"어이, 동양인 꼬맹이. 숨은 쉬어지냐?"

칼터가 착지하며 기태의 귓가에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의 입가에는 광기 어린 미소가 걸려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확장된 동공이 기태의 움직임을 집요하게 쫓았다. 단순한 도핑이 아니었다. 하워드 스톤이 결승전 승리를 위해 투여한 PED 오버클럭 약물은 칼터의 신체를 통제 불능의 야수로 만들어 놓았다.

"겨우 이 정도냐? 하긴, 너희 인종의 심폐 기능으로는 이 속도를 따라오는 것조차 기적이겠지."

칼터가 비웃으며 기태를 지나쳤다.

기태는 가슴을 움켜쥐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심박수는 이미 155를 가리키며 붉게 깜빡이고 있었다. 가슴을 짓누르는 압박감 속에서도 기태의 머릿속 장부는 차갑게 돌아갔다.

'무모하게 맞붙는 건 자살행위다. 저놈의 근육 수축력은 지금 정상 범주를 벗어났어.'

[동맥 산소 포화도: 91%] [근육 내 젖산 수치: 6.8 mmol/L] [무릎 슬개건 마찰계수: 임계점 대비 82%]

상태창의 수치들이 경고등을 켜며 기태의 이성을 압박했다. 한 발자국만 잘못 디뎌도 과거의 비극이 재현될 수 있는 위험한 외줄 타기였다.

그때, 마커스 밀러가 기태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의 오른쪽 무릎은 붕대와 테이핑으로 칭칭 감겨 있어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마커스는 능글맞은 평소의 표정을 지워버린 채, 자신의 무릎 보호대를 거칠게 다시 조여 맸다.

스윽, 스윽.

찍찍이를 당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마커스의 눈동자 속에는 평소의 가벼움 대신, 젊은 날 눈앞에서 도둑맞았던 우승 반지에 대한 독기와 한이 서려 있었다.

"기태야."

"예, 마커스."

"저 새끼들, 지금 심판까지 구워삶았어. 우리가 평소처럼 덤비면 코트 위에서 합법적으로 시체가 될 거다."

마커스의 목소리는 낮고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일부러 부러진 척해라."

"예?"

기태가 눈을 미세하게 가늘게 떴다. 마커스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저 칼터 녀석, 약 기운 때문에 지금 눈에 뵈는 게 없어. 네가 조금만 아픈 척을 해도 지가 완벽하게 널 부쉈다고 믿고 기고만장해질 거다. 짐승을 잡으려면 덫을 놔야지. 네가 미끼가 돼라. 뼈를 주고 살을 취하는 거야."

마커스의 제안은 철저히 비즈니스적이고도 영악한 계산이었다. 하지만 기태에게는 그보다 더 확실한 카드가 있었다. 에밀리 정이 쥐고 있는 스모킹 건.

"좋습니다. 장단 맞춰 주죠."

기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플레이가 시작되자, 기태는 고의로 한 템포 느리게 움직였다. 칼터가 다시 한번 스크린을 서며 기태의 진로를 몸으로 막아섰다. 기태는 가벼운 충돌임에도 불구하고 오른쪽 무릎을 부여잡으며 코트에 쓰러졌다.

"아악!"

짧은 비명과 함께 기태가 코트 위를 뒹굴었다.

"하하! 벌써 다리가 풀렸냐? 쓰레기 같은 녀석!"

칼터가 엎드린 기태를 내려다보며 침을 뱉듯 뱉어냈다. 관중석의 야유와 비웃음이 쏟아졌다. VIP 룸의 유리창 너머로 하워드 스톤이 샴페인 잔을 치켜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얼굴에는 승리자의 오만한 미소가 가득했다. 동양인 가드의 한계를 증명했다는 안도감과 확신이 가득 찬 미소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코트 바닥에 엎드린 기태의 눈동자가 소름 끼칠 정도로 차갑고 고요하게 빛나고 있다는 것을.

***

같은 시각, 미디어 석 벤치 바로 뒤편.

에밀리 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허공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그녀가 띄워놓은 화면에는 하워드 스톤의 개인 클라우드에서 해킹해 낸 극비 문서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잭슨 칼터의 PED(경기력 향상 약물) 오버클럭 메디컬 리포트 원본. 그리고 기태를 매장하기 위해 하워드가 위조한 '동양인 가드의 생리학적 가치 저하 보고서'.

"더러운 영감탱이. 감히 우리 자산의 가치를 깎아내려 해?"

에밀리의 입술 사이로 서늘한 실소가 새어 나왔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전송 버튼을 눌렀다. 수신인은 미국 내에서 가장 공신력 있고 파급력이 강한 스포츠 기자인 ESPN의 아드리안 보먼이었다.

[보먼 기자님, 지금 보낸 메일 확인하세요. NBA 역사상 가장 거대한 도핑 스캔들이 그 안에 있습니다. 3분 뒤 트위터에 올리시면 오늘 밤 전 세계의 헤드라인은 당신 겁니다.]

전송 완료를 알리는 신호음이 울렸다. 에밀리는 코트 위의 기태를 바라보며 턱을 치켜올렸다.

"자, 이제 무대를 뒤집을 시간이야, 기태."

***

코트 위는 칼터의 독무대처럼 보였다. 기태가 다리를 절며 제대로 수비하지 못하자, 칼터는 호쾌한 덩크슛을 꽂아 넣으며 포효했다.

"봤냐! 이게 바로 진짜 농구다! 너 같은 동양인 난쟁이가 낄 자리가 아니라고!"

칼터는 관중석을 향해 포효했고, 하워드 스톤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그 영광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갑자기 경기장 한편에 자리한 프레스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노트북을 두드리던 기자들이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들의 눈이 스마트폰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하더니, 이내 중계석의 해설진에게 급하게 쪽지를 전달했다.

"어…… 어?!"

중계 마이크를 잡고 있던 캐스터의 목소리가 크게 흔들렸다.

"시청자 여러분, 지금 방금 들어온 믿기지 않는 극비 속보를 전해드립니다. ESPN의 아드리안 보먼 기자가 단독으로 보도한 내용입니다!"

해설자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현재 서머리그 결승전을 치르고 있는 잭슨 칼터 선수가…… 경기력 향상 약물인 PED를 비정상적인 수치로 복용했다는 메디컬 리포트 원본이 유출되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약물 복용을 주도하고 음모를 꾸민 배후가 바로 구단의 하워드 스톤 단장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목소리는 경기장 내 전체 스피커와 대형 전광판을 통해 실시간으로 퍼져 나갔다.

전광판의 중계 화면이 갑자기 전환되더니, 에밀리가 보낸 원본 메디컬 리포트와 하워드 스톤의 서명이 선명하게 박힌 문서 캡처본이 거대하게 떠올랐다.

"저, 저게 뭐야……?"

관중석에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야유로 가득했던 체육관이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 침묵은 곧 거대한 배신감과 분노의 함성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도핑 가짜 괴물이었잖아!"

"하워드 스톤, 저 더러운 늙은이가 조작한 거였어!"

포효하던 잭슨 칼터의 몸이 굳어졌다. 그가 멍하니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이름과 함께 선명하게 박힌 '불법 도핑', '조작'이라는 글자가 그의 눈동자에 박혔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게 유출된 거지? 하워드가 분명 완벽하게 처리했다고 했는데……!"

칼터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갔다. 약물의 부작용으로 극도로 예민해져 있던 그의 정신이 한순간에 붕괴하기 시작했다. 온몸의 근육이 경련하듯 떨렸고,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사방으로 흔들렸다.

그 모습을 보며, 기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를 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연기는 여기까지다, 약쟁이 새끼야."

"너…… 네놈이 한 짓이냐?!"

칼터가 이성을 잃고 기태를 향해 달려들려 했지만, 이미 그의 스텝은 엉망으로 꼬여 있었다.

기태는 상태창을 활성화했다.

[동료 연동 프로토콜 가동.] [마커스 밀러 무릎 위험도: 88% | 강기태 심박수: 182bpm] [⚠️ 경고: 심박수 한계 돌파! 붉은 선 표기 속도가 2배로 가속됩니다.]

기태의 시야가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림을 향해 뻗어 나가는 선명한 붉은 궤적이 평소보다 두 배는 빠른 속도로 계산되어 뇌리에 꽂혔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요동치고, 가슴을 짓누르는 고통이 밀려왔지만 기태는 멈추지 않았다.

"마커스!"

기태의 외침과 동시에 마커스가 칼터의 앞을 가로막으며 스크린을 걸었다.

퍽!

칼터가 마커스의 탄탄한 몸에 가로막혀 튕겨 나갔다. 그 사이, 기태는 하프라인 바로 앞에서 공을 쥔 채 하늘로 솟구쳤다.

"미친, 저 거리에서?!"

수비수들이 절규하듯 손을 뻗었지만, 기태의 시야에는 오직 완벽하게 그어진 붉은 선만이 존재했다.

서걱―!

하프라인 초장거리 3점슛이 그물망을 찢을 듯이 통과했다.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뒤덮였다.

"말도 안 되는 슛입니다! 강기태! 도핑 파문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을 수 없는 초장거리 3점슛을 성공시킵니다!"

하워드 스톤은 VIP 룸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주저앉았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샴페인 잔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그의 농구 제국이, 그가 그토록 무시했던 동양인 가드와 한물간 노장에 의해 완전히 박살 나고 있었다.

칼터는 완전히 이성을 상실했다. 약물의 독기와 패배의 공포가 그의 뇌를 지배했다.

"죽여버릴 거야…… 기태, 너만 없었어도!"

경기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단 3초. 점수는 이미 뒤집혔고, 기태의 마지막 쐐기 레이업 찬스였다.

기태가 가볍게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완벽한 득점 궤적.

그 순간, 뒤에서 무섭게 쫓아온 잭슨 칼터가 공이 아닌 기태의 몸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공중에서 무방비 상태인 기태의 어깨를 잡고 바닥으로 내동댕이치려는, 명백한 살인적 파울이었다.

"내 인생을 망친 대가다! 같이 죽어!"

칼터의 광기 어린 비명과 함께 기태의 몸이 공중에서 중심을 잃고 뒤집혔다. 머리부터 코트 바닥으로 떨어질 절체절명의 위기. 기태의 눈에 뒤집힌 천장과 붉게 물든 경고창이 어지럽게 회전했다.

바닥에 닿기까지 단 0.5초.

"기태야―!"

오른쪽 무릎이 완전히 박살 날 것을 직감하면서도, 마커스 밀러가 자신의 몸을 기태의 추락 지점을 향해 사정없이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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