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아아아아!
승리의 포효가 라스베이거스 콕스 파빌리온 체육관의 천장을 찢어발길 듯 울려 퍼진다. 관중들의 함성은 고막을 마비시키는 해일이 되어 코트로 밀려든다. 그러나 그 환호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선 강기태의 시야는 기괴하게 뒤틀려 간다.
붉은색 경고등이 망막을 사정없이 찌른다.
[경고: 무릎 슬개건 마찰계수 92% 도달 (임계치 초과)] [동맥 산소 포화도 급감 중. 심박수 불안정.]
"끄윽……!"
가슴을 쥐어짜는 압박감과 함께 눈앞의 풍경이 암전된다. 중력이 사방에서 잡아당기는 것처럼 몸이 무거워진다. 비틀거리던 기태의 무릎이 꺾이며 코트 바닥으로 사정없이 무너져 내린다. 차가운 마룻바닥의 감촉을 마지막으로, 기태의 의식은 깊은 나락 속으로 침잠한다.
***
치익―.
기분 나쁜 기계음과 함께 차갑고 축축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박힌다.
"정신이 들어?"
낮고 정돈된 음성. 기태는 천근만근 같은 눈꺼풀을 밀어 올린다. 낯선 천장, 그리고 코를 찌르는 강한 소독약 냄새. 얼굴에는 투명한 마스크가 씌어 있고, 그 안으로 차가운 고농축 산소가 쉴 새 없이 공급되는 중이다. 에밀리 정이 팔짱을 낀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여긴……."
"경기장 전용 의료실이야. 구단 스태프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내가 전세 냈어. 네가 쓰러지자마저 하워드 스톤 그 인간이 메디컬 팀을 보내서 네 신체 데이터를 수집하려고 아주 혈안이 되어 날뛰더군."
에밀리가 들고 있던 태블릿 화면을 기태 쪽으로 돌린다. 화면에는 기태의 생체 신호가 실시간으로 기록된 그래프가 흐르고 있다.
"동맥 혈류 개선 고농축 산소 마스크야. 이걸로 산소 포화도는 겨우 96%까지 끌어올렸어. 하지만 네 혈액 속 젖산 수치는 여전히 정상인의 다섯 배를 웃돌아. 기태, 너 방금 코트 위에서 무슨 짓을 한 거야?"
기태는 대답 대신 마스크를 거칠게 벗어던지려 했다. 하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정도로 전신이 굳어 있다.
[생명력 강제 대환 대출 페널티 적용 중] - 누적 피로도 회복 속도 50% 저하. - 무릎 슬개건 영구 마찰 계수 고정 차감 (+6%).
머릿속 상태창이 냉혹한 장부의 숫자를 갱신한다. 기태는 입술을 깨문다. 피 비린내가 입안에 감돈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다 직면한 죽음의 문턱. 하지만 후회는 없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 지옥 같은 코트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 테니까.
"쓸데없는 질문은 사양하지, 에밀리. 대출의 대가는 내가 치러."
"대출이라니? 무슨 헛소리야."
에밀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기태의 침대 곁으로 바짝 다가앉는다. 그녀의 눈동자에 서린 것은 단순한 걱정이 아니다. 철저한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자신이 투자한 최고의 상품이 망가지는 것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이다.
"스톤 단장은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어. 네가 쓰러진 걸 빌미로 '동양인 가드의 유전학적 심폐 기능 결함 보고서'라는 말도 안 되는 찌라시를 이사회와 언론에 뿌리려고 준비 중이야. 네가 가진 가치를 제로로 만들어서 노예 계약을 맺거나, 아예 리그에서 매장하려는 수작이지."
"그 쓰레기 같은 보고서가 통할 것 같아?"
"충분히 통해. 여긴 편견이 지배하는 NBA의 밑바닥이니까. 하지만 걱정 마. 네 생체 데이터 분석 결과는 내가 철저히 숨겼어. 구단 공식 메디컬 리포트에는 단순 탈진으로 기록을 조작해 뒀으니까."
에밀리가 손가락을 튕기자, 의료실 구석의 어둠 속에서 거구의 사내가 걸어 나온다. 묵직한 가방을 든, 굳은살 박힌 손을 가진 남자다.
"내가 개인적으로 고용한 비밀 마사지 전문가야. 스포츠 의학계에서 암암리에 활동하는 최고 수준의 관리사지. 네 굳어버린 근육과 젖산 수치를 강제로 정상화해 줄 거야. 스톤 단장이 눈치채기 전에 내일 경기를 뛸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들어야 해."
"내일 경기……?"
기태가 상체를 간신히 일으키며 묻는다.
"마커스는 어떻게 됐지?"
그 노련하고 능글맞던 베테랑. 기태의 체력 안배를 돕겠다며 장부 동맹을 맺었던 마커스 밀러가 경기 도중 오른쪽 다리가 꺾여 들것에 실려 가던 장면이 뇌리를 스쳤다. 동료를 믿지 않는 기태였지만, 마커스는 그의 장부 계산에서 가장 효율적인 도구이자 유일한 파트너였다. 그 도구가 부러졌다면 앞으로의 계산은 완전히 어그러진다.
"나 불렀냐, 꼬맹이?"
끼이익, 소리와 함께 의료실 문이 열린다.
오른쪽 다리에 두꺼운 깁스를 대고 목발을 짚은 마커스 밀러가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걸어 들어온다.
"마커스. 다리는……."
"걱정 마라. 겉보기엔 요란해도 뼈나 인대에는 이상 없어. 단순한 일시적 타박상이란다. 의사 놈들은 한 주 쉬라고 난리법석인데, 내 사전에 쉬는 날은 은퇴하는 날뿐이야."
마커스가 목발을 한쪽에 기대어 두고 침대 옆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리고는 습관처럼 자신의 오른쪽 무릎 보호대를 거듭 조여 맨다.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능글맞은 평정심 뒤에 감춰진, 타오르는 듯한 독기가 기태의 눈에 포착된다.
'저 눈빛…….'
기태는 직감한다. 마커스 역시 자신과 같은 부류다. 과거의 부상으로 모든 것을 잃을 뻔했던 트라우마, 그리고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우승 반지를 차지하겠다는 광기 어린 집착. 두 사람의 무릎 부상 수치와 결핍이 묘한 공명을 일으킨다.
"네놈이 코트 위에서 괴물처럼 날뛰는 걸 보고 있자니, 내 늙은 피가 끓어올라서 가만히 누워 있을 수가 없더군."
마커스가 씩 웃으며 기태의 어깨를 툭 친다.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제안하지. 내일 플레이오프 준결승전, 난 진통제 빨로 버틴다. 네가 날 소모품으로 쓰든 말든 상관없어. 대신, 날 이용해서 네 체력을 아껴라. 우린 결승으로 가야 하니까."
기태는 마커스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를 빤히 응시했다. 철저한 손익 계산서 위에 새로운 계약 조건이 적힌다. 신뢰가 아니다. 서로의 목적을 위해 서로를 가장 잔혹하게 이용하겠다는 강철 같은 동맹의 체결이다.
"좋아. 마커스. 내일은 네가 내 방패가 되어 줘야겠어."
[동맹율 상승: 베테랑 마커스 밀러와의 '강철 장부 동맹'이 강화됩니다.] [마커스 밀러의 스크린 및 공간 창출 효율 +15% 증가.]
뇌리속 상태창의 알림이 울린다. 기태는 마스크를 완전히 벗어 던졌다. 몸 깊은 곳에서부터 새로운 힘이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
다음 날, 라스베이거스 서머리그 플레이오프 준결승전.
콕스 파빌리온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현장 중계석의 마이크를 잡은 캐스터의 목소리가 찌릿하게 울려 퍼진다.
-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준결승전은 그야말로 예측 불허입니다! 어제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나 탈진으로 쓰러졌던 강기태가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과연 그의 심폐 기능에 문제가 없다는 구단 측의 발표가 사실일까요?"
- "게다가 오른쪽 다리 부상으로 결장이 예상되던 마커스 밀러까지 출전을 감행합니다! 이건 미친 짓이거나, 아니면 결승행 티켓에 목숨을 건 광기입니다!"
웅장한 함성 소리와 함께 기태가 코트 위로 걸어 나간다.
쿵. 쿵. 쿵.
심장이 규칙적으로 뛴다. 어제 에밀리가 주선한 특수 케어 덕분에 피로도는 어느 정도 제어되고 있다. 기태는 머릿속 상태창을 켰다.
[현재 심박수: 105 bpm] [무릎 슬개건 마찰계수: 86%] [※ 경고: 심박수 180 bpm 초과 시, '한계 돌파형 고속 붉은 선 궤적 제어'가 활성화되나 극단적인 근육 파열 부작용을 유발합니다.]
'심박수를 철저히 140 이하로 통제한다.'
기태는 차갑게 머리를 식힌다. 오늘은 어제처럼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는 난사전을 벌이지 않는다. 마커스라는 훌륭한 계산기가 코트 위에 함께 서 있으니까.
삐익―!
경기를 알리는 휘슬이 울린다.
상대 팀은 기태의 체력 저하를 노리고 경기 시작부터 강력한 전면 강압 수비(Full-court press)를 들고 나왔다. 수비수 두 명이 기태의 동선을 차단하며 피지컬로 밀어붙인다. 거친 숨소리와 땀 냄새가 기태의 감각을 자극한다.
"어이, 동양인 꼬맹이! 어제 쓰러졌다며? 오늘도 코트 위에서 구급차 타게 만들어 줄까?"
상대 가드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기태의 진로를 몸으로 막아선다.
하지만 기태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의 눈앞에는 이미 수비수들의 움직임에 따른 사각지대가 붉은색 선으로 정밀하게 그려지고 있다.
스윽.
그 순간, 마커스 밀러가 깁스를 한 다리로 절뚝이면서도 귀신같은 타이밍에 길목을 차단한다.
쾅!
묵직한 스크린. 마커스의 몸과 상대 수비수가 부딪치며 둔탁한 파열음이 난다. 마커스는 고통으로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기태를 향해 눈짓한다.
'지금이다, 가라!'
기태는 망설임 없이 빈 공간으로 파고든다. 수비 한 명이 황급히 따라붙지만, 기태는 슛을 쏘는 척 가볍게 상체를 흔드는 펌프 페이크를 날린다. 수비수가 허공으로 붕 뜬 순간, 기태는 무리하게 슛을 고집하지 않고 골밑으로 가볍게 컷인하는 동료에게 자로 잰 듯한 패스를 찔러 넣는다.
휙! 찰칵!
깔끔한 골밑 레이업 득점.
- "완벽한 팀플레이입니다! 강기태, 어제의 고독한 해결사 모습은 어디로 가고 오늘은 극도로 효율적인 게임 리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좋은 패스다, 기태!"
골밑에서 득점한 포워드가 기태와 하이파이브를 나누려 손을 내민다. 하지만 기태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 손을 지나쳐 백코트한다. 동료는 그저 효율적인 가치를 생산해 내는 도구일 뿐이다. 정서적인 교감 따위는 사치다.
경기는 기태의 철저한 계산 아래 흘러간다.
마커스의 노련한 스크린과 기태의 정밀한 패스 앤 고(Pass and Go) 플레이. 기태는 시스템의 상태창을 활성화하는 시간을 1초 미만으로 극도로 쪼개 썼다. 붉은 선이 보이는 찰나의 순간에만 패스 궤적을 확인하고 즉시 상태창을 끈다.
심박수는 120 bpm 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무릎 마찰계수 역시 더 이상 깎이지 않는다.
3쿼터 종료 시점, 점수는 이미 15점 차로 벌어져 있었다. 기태의 체력을 갉아먹으려던 상대 팀의 전략은, 오히려 기태의 허허실실 패스 플레이에 말려들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맞이한 4쿼터 종반. 경기 시간은 단 1분 30초가 남았고, 점수는 18점 차. 사실상 승부는 결정 난 상황이었다.
하지만 상대 팀은 순순히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들의 벤치에서 거친 지시가 내려왔고, 수비수 세 명이 기태를 에워싸며 하프라인 부근에서부터 숨통을 조여 왔다. 물리적인 충돌을 유도해 기태의 무릎을 완전히 끝장내겠다는 잔인한 의도가 엿보이는 악질적인 수비였다.
"이 새끼, 여기서 다리를 부셔 놓아라!"
상대 수비수가 기태의 착지 지점을 노리고 발을 들이밀며 거칠게 덮쳐온다.
체육관 전체에 야유와 비명이 뒤섞인다. 에밀리가 관중석에서 벌떡 일어선다. VIP석의 하워드 스톤 단장은 입가에 음산한 미소를 띠며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기태의 머릿속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수비수 세 명의 시선이 전부 나에게 쏠려 있다. 사각지대 발생.'
기태의 눈앞에 세 가닥의 정밀한 붉은 궤적이 그려진다. 그 궤적이 향하는 끝에는, 상대의 허를 찌르고 골밑으로 파고드는 마커스 밀러가 있었다.
"죽어라!"
수비수 세 명의 거대한 피지컬이 기태를 덮치는 찰나.
기태는 슛을 던지는 동작을 취하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모든 관중이 기태의 슛을 예상하며 숨을 죽인 순간, 기태의 손목이 기괴한 각도로 꺾였다.
비하인드 더 백 패스. 그것도 공을 보지도 않고 등 뒤로 찔러 넣는 완벽한 노룩 백패스(No-look Back Pass)였다.
슈우욱!
공은 세 명의 수비수 사이, 단 수 센티미터의 틈새를 정밀하게 관통하여 골밑의 마커스에게 정확히 배달된다.
"뭐, 뭐라고?!"
수비수들이 허공에서 뒤엉키며 기태를 덮쳤지만, 공은 이미 기태의 손을 떠난 뒤였다.
골밑에서 공을 잡은 마커스 밀러의 눈에 광기가 서린다. 그는 절뚝이는 오른쪽 다리로 땅을 힘차게 굴렀다. 젊은 날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듯, 그의 신체가 허공으로 솟구친다.
쾅―!!!
림이 부서질 듯한 마커스의 쐐기 백돔 슬램덩크가 작렬한다.
띡―!
경기 종료 부저가 체육관을 울린다. 최종 스코어 92대 72. 20점 차의 잔인한 학살극이자 완벽한 승리였다.
- "와아아아아! 경기 종료! 강기태와 마커스 밀러! 이 기적 같은 콤비가 플레이오프 준결승을 지배합니다! 20점 차 대승! 그들은 이제 서머리그 결승으로 향합니다!"
관중석은 광란의 도가니로 변했다. 동양인 가드를 무시하던 미국 현지 팬들이 이제는 기태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다.
"강기태! 강기태! 강기태!"
기태는 코트 바닥에 누워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세 명의 수비수에게 부딪힌 충격으로 온몸이 쑤셨지만, 심박수는 135 bpm을 넘지 않았다. 체력 과부하는 단 12%에 불과했다. 최소한의 자원 소모로 최대의 승리를 쟁취해 낸 완벽한 장부 정리였다.
마커스가 다가와 기태에게 손을 내민다.
"끝내주는 패스였다, 꼬맹이. 내 평생 이보다 짜릿한 어시스트는 받아본 적이 없어."
기태는 마커스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사람의 시선이 관중석 위, VIP 스위트룸을 향한다.
그곳에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태블릿을 움켜쥐고 있는 하워드 스톤 단장이 서 있었다. 기태가 일어선 것을 확인한 스톤의 눈등에 핏대가 솟구친다. 기태는 그를 향해 차가운 비웃음을 날려 주었다. 스톤이 숨겨둔 잭슨 칼터의 PED 복용 포트폴리오 칩은 이미 기태의 주머니 속에 있었다. 역습의 시간은 머지않았다.
스위트룸 안.
하워드 스톤은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의 눈은 악에 받쳐 핏발이 서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무거운 침묵이 흐르자, 스톤이 낮고 살기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결승 상대는 잭슨 칼터의 본팀이다. 잭슨에게 전해라. 결승전 코트 위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동양인의 심장을 완전히 멈춰 세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