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어억!
그물을 통과한 농구공이 코트 바닥에 튀는 둔탁한 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진다.
귀를 찢을 듯한 관중들의 함성과 중계석의 다급한 외침이 고막을 사정없이 때리지만, 지금 강기태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은 폭주하는 심장 소리뿐이다. 쿵, 쿵, 쿵.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처럼 요동치는 맥박이 시야를 붉게 물들인다.
[경보: 심폐 기능 한계 도달 우려] - 현재 심박수: 178 bpm - 동맥 산소 포화도: 84% (급격한 저하) - 근육 젖산 수치: 88% (과부하 위험) ※ 경고: 다음 쿼터 시스템 사용 제한 필수. 무리한 활성화 지속 시 영구적인 근육 파열 및 심전도 정지 위험 발생.
눈앞을 가로막은 반투명한 적색 경고창이 기태의 호흡을 한층 더 가쁘게 만든다. 폐포 하나하나가 뜨거운 납을 삼킨 것처럼 타들어 가고, 허벅지 근육은 단단히 굳어 비명을 지른다. 천천히 발을 내딛는 매 순간마다 무릎 슬개건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가느다란 경고음을 울린다.
"후우, 후우……."
기태는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리지도 못한 채 벤치로 걸어간다. 겨우 1쿼터가 끝났을 뿐이다. 하지만 몸속의 에너지 장부는 이미 처참한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회귀와 함께 얻은 이 빌어먹을 시스템은 기태에게 신의 슈팅 능력을 준 대신, 생명의 모래시계를 매 초마다 뒤집어엎는 가혹한 거래를 요구한다.
벤치에 털썩 주저앉자마자 보조 코치가 건네는 이온 음료를 받아 들이켠다. 차가운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리지만, 가슴 깊은 곳의 타는 듯한 갈증은 조금도 가시지 않는다.
"기태, 페이스 조절해. 너 지금 안색이 엉망이야."
관중석 바로 뒤, 에이전트 에밀리 정이 차가운 눈빛으로 기태의 상태를 살핀다. 그녀의 손에 들린 태블릿에는 기태의 실시간 바이오데이터가 소수점 단위로 찍히고 있을 터다. 철저한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그녀는 기태라는 상품이 이 타이밍에 과부하로 망가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기태는 대답 대신 수건으로 얼굴을 덮는다. 수건 밑의 어둠 속에서, 그는 머릿속 장부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근육 젖산 수치 85% 하락 대기 중. 회복 속도가 너무 느려. 다음 쿼터에 시스템을 1초라도 더 키면 무릎이나 심장 중 하나는 확실히 터진다.'
동료들을 믿고 패스를 돌린다? 이곳은 라스베이거스 서머리그다. 제각기 NBA 정식 계약을 따내기 위해 눈이 뒤집힌 야수들이 득실거리는 진흙탕. 기태가 공을 넘기는 순간, 그것으로 끝이다. 그들은 기태에게 다시 공을 돌려주지 않고 무리한 난사로 기회를 날려버릴 것이다. 결국 홀로 해결해야 하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최악의 딜레마다.
삑-!
2쿼터를 알리는 버저 소리가 체육관을 날카롭게 가른다.
기태는 굳어버린 허벅지를 주먹으로 강하게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신경을 자극하는 통증이 억지로 다리를 움직이게 만든다. 코트로 걸어 나가는 기태의 걸음걸이가 미세하게 무겁다.
그때, 옆에서 슥 다가온 거대한 그림자가 기태의 어깨를 툭 친다.
"어이, 꼬맹이. 얼굴이 아주 썩어 들어가는구만."
능글맞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마커스 밀러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이 베테랑 가드는 기태의 미세한 호흡 불균형과 뻣뻣한 움직임을 단박에 간파한 눈치다. 마커스는 제 오른쪽 무릎 보호대를 거칠게 다시 조여 매며 씩 웃는다.
"나 오늘 점심에 먹은 칠리 핫도그가 얹혔나 봐. 속이 더부룩해서 도저히 안쪽으로 파고들 힘이 없네. 그러니까 말인데……."
마커스가 기태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네가 외곽에서 좀 받아먹어라. 내가 안에서 똥오줌 다 받아내 줄 테니까."
말도 안 되는 핑계다. 하지만 기태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마커스는 기태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현재 기태의 신체적 위기를 자신이 온몸으로 분담하겠다는 제안을 던진 것이다. 이것은 신뢰나 우정 같은 값싼 감정이 아니다. 철저히 서로의 이익을 위한 계약적 공조다. 기태의 슈팅 성공률이 유지되어야 마커스 자신의 어시스트와 가치도 동반 상승하니까.
"……확실하게 뚫어 놔요."
기태가 낮게 읊조린다. 마커스는 만족스럽다는 듯 윙크를 해 보이고는 코트 중앙으로 달려 나간다.
2쿼터 시작과 동시에 잭슨 칼터가 이끄는 상대 팀의 압박이 시작된다. 칼터는 1쿼터 마지막에 당한 굴욕 때문인지 눈에 불을 켜고 기태를 노려보고 있다.
"야, 동양인 꼬맹이! 아까 그건 뽀록이었어! 이번엔 네 뼈마디를 전부 분질러 놓을 테니까!"
칼터가 거대한 피지컬로 기태의 진로를 막아서며 거칠게 몸싸움을 걸어온다. 평소라면 기태는 비하인드 더 백 드리블이나 급격한 크로스오버로 칼터의 무게 중심을 무너뜨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체력이 없다. 젖산이 가득 찬 다리로 무리한 방향 전환을 시도했다간 그대로 무릎 슬개건이 파열될 판이다.
그 순간, 마커스가 기태의 앞으로 득달같이 달려온다.
쿵!
마커스의 단단한 상체가 칼터의 측면을 그대로 들이받는다. 완벽한 오프더볼 스크린이다.
"윽! 이 늙은이가!"
칼터가 비명을 지르며 마커스의 가슴을 밀치려 하지만, 마커스는 얄미울 정도로 끈질기게 칼터의 진로를 방해하며 엉겨 붙는다. 마커스의 온몸이 상대 수비수들의 거친 손길과 어깨싸움에 이리저리 치인다. 둔탁한 살과 뼈가 부딪히는 소리가 코트에 울려 퍼진다.
마커스는 비틀거리면서도 기태를 향해 수비진의 사각지대를 완전히 열어젖힌 채 소리친다.
"지금 던져!"
기태의 시야에 마커스가 몸으로 만들어낸 단 하나의 틈새가 들어온다.
동시에 붉은 상태창이 머릿속에서 번쩍인다.
[초정밀 궤적 분석 가동] - 소모 시간 설정: 0.5초 - 성공 궤적 라인 동기화 완료.
기태는 상태창의 활성화 시간을 극도로 단축한다. 단 0.5초. 슛 동작을 가져가기 직전의 찰나의 순간에만 시스템을 켜고, 공이 손끝을 떠나는 순간 바로 꺼버린다. 생체 장부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처절한 계산이다.
림을 향해 길게 뻗은 선명한 붉은색 선.
기태의 신체가 공중으로 솟구친다. 다리의 통증을 잊은 채, 오직 붉은 선의 궤적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손목이 부드럽게 꺾이고, 공이 손가락 끝을 타고 회전하며 날아간다.
포물선은 우아하고 정밀했다.
서어억!
그물을 가르는 청량한 소리가 체육관에 울려 퍼진다. 깨끗한 3점슛이다.
"와우! 강기태! 마커스 밀러의 환상적인 스크린을 받아 지체 없이 3점포를 가동합니다! 저 간결한 릴리즈를 보십시오! 수비수가 손을 뻗을 틈조차 주지 않습니다!"
"대단합니다! 저 슛 폼은 마치 기계로 찍어낸 것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군요!"
중계석의 흥분이 관중석으로 전염된다. 야유와 야만적인 소음으로 가득했던 라스베이거스의 체육관이 조금씩 동요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감탄할 시간은 없다. 곧바로 이어진 상대의 공격을 막아선 뒤, 다시 기태가 하프코트를 넘어간다. 마커스는 이미 숨을 헐떡이면서도 기태의 앞길을 가로막는 수비수를 향해 다시 돌진하고 있다.
"한 번 더 간다, 꼬맹이!"
마커스가 상대 빅맨의 거친 엘보우를 갈비뼈로 받아내며 다시 한번 스크린을 건다. 억 소리가 나는 충격 속에서도 마커스는 이 악물고 버텨낸다. 그의 눈빛에는 늙은 사자의 마지막 투혼과도 같은 독기가 서려 있다. 젊은 날, 아쉽게 놓쳐버린 우승 반지에 대한 갈망이 이 미친듯한 헌신의 원동력이다.
기태의 발이 다시 한번 코트를 박차고 오른다.
[초정밀 궤적 분석 가동] - 소모 시간 설정: 0.4초 - 궤적 일치율: 100%
공이 허공을 가르며 다시 한번 아름다운 호를 그린다. 수비수가 블록슛을 위해 손을 뻗었지만, 공은 이미 그들의 손끝을 아득히 비껴간 뒤다.
서어억!
연속 3점슛 성공.
"성공입니다! 또 들어갑니다! 연속 2개의 3점포! 강기태, 오늘 경기 벌써 3점슛만 몇 개째입니까! 성공률이 무려 80%를 상회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지켜보는 스카우트들의 펜이 멈추지 않습니다! 동양에서 온 이 젊은 가드는 요행이 아닙니다! 저것은 완벽하게 계산된 정밀 저격입니다! 마치 코트 위의 침묵의 암살자(Silent Assassin) 같습니다!"
관중석의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힌다. 처음에는 동양인 가드라는 프레임에 갇혀 야유를 보내던 미국 관중들이, 이제는 기태가 공을 잡을 때마다 침을 삼키며 정적 속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슛이 그물을 가르는瞬间, 폭발적인 함성을 내지른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스카우트들의 태블릿 화면에는 기태의 이름 옆에 붉은색 강조 표시가 선명하게 새겨진다. 편견의 벽에 금이 가는 소리가 체육관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기태의 시선은 관중석도, 전광판도 향하지 않는다.
오직 머릿속 상태창의 수치만을 계산할 뿐이다.
[생체 정보 업데이트] - 심박수: 155 bpm (안정화 진행 중) - 젖산 수치: 78% - 획득 보상: 관중 인지도 15% 상승, 스카우트 주목도 급증.
마커스의 육탄 방어 덕분에 시스템 사용을 최소화하며 심폐 기능이 아슬아슬하게 회복세로 돌아섰다. 기태의 입꼬리가 가볍게 올라간다. 철저한 비즈니스 동맹의 승리다.
기태는 코트를 돌아 내려가며 마커스에게 다가갔다. 마커스는 갈비뼈를 움켜쥔 채 끙끙거리면서도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어때, 내 핫도그 핑계가 꽤 쓸만했지?"
"나쁘지 않았습니다. 계약 이행 능력이 훌륭하군요."
기태의 차가운 대답에 마커스는 큭큭거리며 웃어댔다. 서로를 신뢰하지 않기에 오히려 완벽하게 기능하는 기묘한 콤비 플레이. 이 비정한 코트 위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가장 유용한 도구로 삼아 승리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경기는 어느덧 4쿼터 막판으로 치닫고 있었다. 점수는 78 대 76. 기태의 팀이 단 2점 차로 아슬아슬하게 앞선 상황.
칼터의 팀은 완전히 이성을 잃고 물리적인 폭력을 방불케 하는 거친 수비를 감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기태에게 농락당한 잭슨 칼터의 눈은 핏발이 서 있었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그의 드래프트 1순위 명성에 치명적인 오점이 남을 터였다.
"막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동양인 놈을 막으라고!"
칼터가 고함을 지르며 기태를 향해 달려들었다.
기태는 공을 쥔 채 마커스의 움직임을 기다렸다. 마커스는 평소처럼 기태의 수비를 벗겨내기 위해 돌진했다. 그의 시선이 기태와 마주친 순간, 마커스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스크린을 걸어 기태에게 결승포를 선물하겠다는 무언의 신호였다.
마커스가 칼터의 진로를 막아서기 위해 몸을 던진 바로 그 순간이었다.
칼터의 뒤쪽에서 달려오던 상대 팀의 거구의 포워드가, 스크린을 피하려는 듯한 시늉을 하며 마커스의 하체를 향해 비열하게 몸을 날렸다. 고의성이 다분한, 그리고 아주 은밀한 물리적 가격이었다.
툭. 빠각!
불길한 파열음이 코트에 작게 울려 퍼졌다.
"아아악-!"
마커스의 입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의 거대한 몸이 낙엽처럼 꺾이며 코트 바닥으로 볼품없이 굴러떨어졌다. 마커스는 제 오른쪽 무릎을 두 손으로 움켜쥔 채 고통으로 얼굴을 피투성이처럼 붉게 물들이며 비명을 질렀다.
코트 전체가 순간적인 정적에 휩싸였다.
기태의 눈동자가 극도로 수축했다. 마커스의 움켜쥔 손 사이로 드러난 오른쪽 무릎 보호대가 비정상적인 각도로 뒤틀려 있었다. 과거 기태 자신의 커리어를 끝장냈던, 그 끔찍한 무릎 파열의 기억이 뇌리를 스치며 눈앞의 광경과 겹쳐진다.
"마커스……!"
기태가 공을 쥐어 잡은 채 얼어붙은 그 순간, 심장 박동수가 다시 한번 폭발적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릿속 상태창이 통제 불능의 붉은 빛으로 미친 듯이 점멸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