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동양인 가드가 말도 안 되는 효율을 보입니다. 당장 보고서를 조작해야 합니다."

라스베이거스 콕스 파빌리온 체육관 2층 귀빈석 구석. 하워드 스톤의 비서가 전화기를 움켜쥔 채 잔뜩 낮춘 목소리로 속삭인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거친 호흡 소리가 수화기를 진동시킨다.

"그 옐로 보이가 코트에서 날뛰게 내버려 두지 마라. 스카우팅 리포트의 신체 운동 능력 란을 전부 C등급 이하로 깎아. 슈팅 성공률은 단순한 뽀록, 요행이라고 적어라. NBA는 그런 서커스단이 아니다."

하워드 스톤의 명령은 단호하고 차가웠다. 전화를 끊은 비서가 서둘러 태블릿을 두드리며 강기태의 데이터를 수정하기 시작한다.

그 시각, 코트 아래. 작전 타임 휘슬이 울리고 화이트 팀의 벤치로 걸어오는 기태의 목덜미로 후끈한 열기가 쏟아진다.

"야, 너 방금 뭐 한 거야?"

대학 리그 출신의 포워드, 데릭이 기태의 가슴팍을 툭 치며 으르렁거린다. 그의 거친 손길에 기태의 져지가 사정없이 구겨진다.

"패스하라고 했잖아! 왜 네 맘대로 템포를 죽여? 동양에서 온 얼간이 새끼가 미국 농구를 물로 보나 본데, 여긴 네가 뛰던 동네 놀이터가 아니야."

기태는 데릭의 핏대 선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데릭의 턱밑으로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이 코트 바닥을 적신다. 기태는 대꾸하는 대신 오른쪽 발목 스트랩을 꽉 조일 뿐이다.

동료들의 냉대와 멸시는 기태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한다. 애초에 이 코트 위에 서 있는 인간 중 단 한 명도 믿지 않는다. 패스를 주지 않는다면, 기어코 공을 빼앗아 직접 림을 가르면 그만이다.

"거기, 14번."

귓가를 때리는 굵직하고 거만한 목소리. 기태가 고개를 돌린다.

테이블 석에 거만하게 턱을 괴고 앉아 있는 사내. 덴버 너기츠의 단장이자 보수적인 스카우터, 하워드 스톤이다. 그의 곁에는 에이전트 에밀리 정이 굳은 표정으로 서 있다.

스톤이 기태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비웃음을 흘린다. 일부러 주변의 스카우터들이 다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높인다.

"리치도 짧고, 서전트 점프도 보잘것없군. 동양인 특유의 얇은 프레임으로는 NBA의 피지컬을 단 1분도 견디지 못해. 드래프트 제외 대상으로 분류해라. 이런 요행 슈터들은 G리그에서도 사흘이면 밑천이 드러나지."

스톤의 폭언에 주변에 모여 있던 타 구단 스카우터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몇몇은 아예 기태의 이름이 적힌 리포트 페이지를 넘겨버린다. 편견은 전염병보다 빠르게 퍼져나간다.

"하워드 단장님."

에밀리 정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는다. 그녀의 하이힐 끝이 체육관 바닥을 날카롭게 짓이긴다.

"선수의 가치를 논하기엔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기태의 야투 성공률은 지금 100%입니다. 이게 요행입니까?"

"에밀리, 자네는 아직 젊어서 숫자에 속는군."

스톤이 핏줄이 불거진 손가락으로 코트를 가리킨다.

"저기 서 있는 흑인 야수들을 봐라. 발을 한 번 구르면 림을 폭격하는 신체 조건을 가졌지. 저 친구가 가진 가짜 재능은 진짜 피지컬 앞에서는 한 줌의 먼지처럼 사라질 걸세. 내가 장담하지."

에밀리의 주먹이 하얗게 쥐어진다. 당장이라도 스톤의 면상에 서류 가방을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이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이글거린다.

하지만 기태는 흔들리지 않는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머릿속으로 조용히 상태창을 불러낼 뿐이다.

================================== [생존형 피로도 장부 - 실시간 세팅] - 현재 심박수 : 128 bpm - 동맥 산소 포화도(SpO2) : 97% - 근육 내 젖산 수치 : 2.1 mmol/L - 무릎 슬개건 마찰계수 : 안전 (0.12) ==================================

'아직 여유가 있다.'

기태는 차갑게 손익을 계산한다. 스톤의 편견 가득한 도발은 오히려 좋은 기회다. 저 늙은 구시대의 권력자가 자신을 깎아내리기 위해 더 강한 수비수를 붙여줄 테니까. 그리고 그 수비수를 처참하게 무너뜨릴 때, 자신의 몸값은 배로 뛴다. 철저한 비즈니스다.

삑-!

"화이트 팀, 선수 교체!"

스톤이 벤치를 향해 손짓하자, 상대 블랙 팀에서 거구의 가드가 걸어 나온다. 196cm의 신장에 터질 듯한 이두박근을 가진 디펜더, 마커스 모리스다. 그는 대학 시절 수비 베스트 5에 들었던 피지컬 괴물이다.

"이봐, 옐로 보이. 단장님이 너 아주 꼴 보기 싫으시단다."

모리스가 기태의 정면에 서며 이빨을 드러낸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지독한 땀 냄새와 압박감이 기태의 시야를 가로막는다.

"여기서 네 다리를 부러뜨려 주지."

기태는 대꾸 없이 드리블을 시작한다.

쿵, 쿵, 쿵.

공이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묵직하게 체육관에 울려 퍼진다.

모리스가 긴 팔을 뻗어 기태의 상체를 강하게 압박한다. 홱, 하고 손을 뻗어 공을 낚아채려는 찰나, 기태의 눈앞에 붉은 선들이 어지럽게 교차하기 시작한다.

[초정밀 궤적 분석 시스템 활성화]

싸늘한 시스템 음과 함께 모리스의 무게 중심, 발의 각도, 그리고 수비 사각지대가 붉은 실선으로 시각화된다. 모리스의 가랑이 사이와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뻗어 나가는 극도로 좁은 궤적.

동시에 기태의 가슴 속에서 경고음이 울린다.

두근! 두근!

================================== [경고: 시스템 가동에 따른 신체 페널티 적용] - 동맥 산소 포화도(SpO2) : 97% -> 91% (급감 중) - 근육 내 젖산 수치 : 2.1 -> 5.8 mmol/L (폭등 중) - 심박수 : 155 bpm ==================================

폐가 쪼그라드는 듯한 압박감이 기태의 기도를 막아선다. 무릎 슬개건 부근에서 찌릿한 통증이 올라오지만, 기태는 이를 악물고 몸을 부딪친다.

쾅!

피지컬의 격차로 인해 기태의 몸이 뒤로 밀려난다. 관중석에서 야유와 탄식이 터져 나온다.

"끝났다! 밀어붙여, 모리스!"

하워드 스톤이 흥분해 소리친다.

하지만 기태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간다. 밀려나는 반동을 이용해, 기태는 상체를 바닥에 닿을 듯이 숙이며 극단적인 슬라이딩 돌파를 감행한다.

"뭐... 뭐야?!"

모리스의 눈이 경악으로 물든다. 자신의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진 동양인 가드의 움직임을 신체가 따라가지 못한다.

기태의 무릎 관절이 비명을 지른다. 슬개건 마찰계수가 위험 수치인 0.85를 돌파한다. 하지만 기태는 붉은 선이 가리키는 유일한 탈출구를 놓치지 않는다.

모리스의 다리 사이. 단 15cm의 틈새.

기태가 손목을 스냅을 이용해 공을 바닥으로 강하게 내리꽂는다.

탁!

정밀한 물리학 공식처럼 계산된 바운스 패스가 모리스의 가랑이 사이를 관통한다. 공은 자석에 이끌리듯, 골밑에서 멍하니 서 있던 데릭의 가슴팍으로 정확하게 배달된다.

"어...?"

데릭은 자신도 모르게 공을 움켜쥔다. 주변 반경 2미터 내에 수비수가 단 한 명도 없다. 완벽한 오픈 찬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데릭이 림을 향해 솟구쳐 오른다.

쿵쾅-!

림이 찢어질 듯한 굉음과 함께 데릭의 투핸드 덩크가 꽂힌다.

체육관이 순간 정적에 휩싸인다.

"와아아아아-!"

이내 관중석에서 폭발적인 함성이 터져 나온다. 방금 전까지 야유를 보내던 관중들이 머리를 감싸 쥐며 소리를 지른다.

"방금 그 패스 봤어? 모리스의 가랑이 사이를 찢어발겼다고!" "말도 안 돼! 저 각도에서 저 속도로 패스를 찔러 넣는다고?"

림에 매달려 있던 데릭이 바닥으로 착지한다. 그의 얼굴은 승리의 기쁨보다 극심한 어리둥절함으로 가득 차 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무시하고 멸시하던 동양인 가드가 만들어준, 생애 가장 완벽한 어시스트였다.

데릭이 기태를 쳐다본다. 기태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백코트를 하고 있다. 그의 숨소리는 거칠지만, 눈빛만큼은 얼음처럼 투명하다.

"야... 너..."

데릭이 말을 더듬는다. 기태가 그를 향해 짧게 턱짓을 한다.

"다음엔 외곽으로 빠져. 수비가 몰릴 테니까. 멍청하게 서 있지 말고 몸이나 움직여."

지시하는 말투. 완벽한 권력의 역전이다.

데릭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기태가 코트 위의 지배자라는 사실을, 그의 몸이 먼저 인정해 버린 것이다.

체육관 2층 귀빈석.

하워드 스톤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다. 그가 쥐고 있던 펜이 뚝 부러진다.

"이...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단장님."

에밀리 정이 스톤의 옆으로 다가와 차갑게 미소 짓는다.

"방금 그것도 요행입니까? NBA의 그 어떤 가드도 모리스를 상대로 저런 정밀한 패스를 만들어내진 못합니다. 기태의 가치는 이제 숫자를 넘어섰습니다."

스톤은 대답하지 못하고 씩씩거릴 뿐이다.

한편, 관중석 셋째 줄 구석.

야구모자를 깊게 눌러쓴 한 사내가 기태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오른쪽 무릎에는 두꺼운 보호대가 채워져 있다.

사내는 들고 있던 낡은 수첩에 무언가를 빠르게 적어 내려간다.

[강기태. 슛 릴리즈 속도 0.3초. 수비 사각지대 인지 능력 S급. 신체 밸런스 붕괴 시의 패스 궤적 오차 범위 1% 미만.]

"요행이 아니야."

사내의 입술 사이로 낮고 거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젊은 날 잃어버린 우승 반지에 대한 독기와, 새로운 괴물을 발견한 사냥꾼의 탐욕이 동시에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저 꼬맹이, 코트를 수학 공식처럼 풀고 있어. 미친 천재 새끼군."

사내가 모자를 벗자, 희끗희끗한 머리칼과 함께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가드, 마커스 밀러의 얼굴이 드러난다.

삑-! 삑-! 삑-!

경기 종료를 알리는 부저가 울린다. 화이트 팀의 역전승.

기태는 승리의 환호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생체 장부를 확인한다.

================================== [경기 종료 생체 데이터 결과] - 최종 심박수 : 162 bpm - 동맥 산소 포화도(SpO2) : 92% (회복 중) - 근육 내 젖산 수치 : 7.2 mmol/L (피로 누적) - 무릎 슬개건 미찰계수 : 경고 (0.78) ==================================

'위험했다. 조금만 더 뛰었으면 무릎이 먼저 터졌겠군.'

기태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락커룸으로 향한다. 승리의 기쁨 따위는 없다. 그저 오늘도 살아남았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는 안도감뿐이다.

땀과 습기로 가득 찬 어두운 샤워실.

기태가 젖은 져지를 벗으려던 찰나, 등 뒤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기태가 경계심을 품고 고개를 돌린다.

샤워실 입구에 기댄 채, 오른쪽 무릎 보호대를 거칠게 조여 매고 있는 사내. 마커스 밀러가 독기 서린 눈빛으로 기태를 노려보고 있었다.

"헤이, 꼬맹이."

밀러가 기태를 향해 천천히 걸어온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압도적인 위압감이 샤워실의 뜨거운 증기를 가른다.

"너, 그 무릎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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