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차 몰고 서초동 한백 빌딩 앞으로 와요. 20분 내로."
수화기 너머로 윤재필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잠에서 막 깬 듯 껄끄러운 목소리였지만, 태윤의 서슬 퍼런 목소리에 이내 긴장감이 묻어났다.
-뭐? 이 새벽에 갑자기 무슨 한백 빌딩이야? 아현동이라며!
"상황이 바뀌었어. 민세아가 감금지에서 탈출했습니다. 강성의 사냥개들이 뒤를 쫓고 있어요. 목적지는 한백 빌딩 앞입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설마 미행이라도 붙여 둔 거냐?
"설명할 시간 없으니까 밟기나 해요. 놓치면 우리 패는 전부 휴지 조각이 되는 겁니다."
태윤은 전화를 끊고 침대 모서리를 짚으며 겨우 일어섰다.
시야는 여전히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했다. 한백의 특수 진통제가 뇌를 찌르는 통증을 억지로 억누르고 있었지만, 망막에 가해진 대가의 흔적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굳어버린 시신경 사이로 붉은 핏발이 서는 것이 느껴졌다. 태윤은 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대충 훔쳐내며 옷을 껴입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차가운 새벽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오피스텔 주차장 입구에 윤재필의 구형 소나타가 바퀴 비명 소리를 지르며 미끄러져 들어왔다. 태윤은 조수석 문을 거칠게 열고 몸을 던졌다.
"출발해요."
"야, 강태윤. 네 눈 상태가 왜 그 모양이야? 동공이 완전히 풀렸잖아."
윤재필이 기어를 변속하며 태윤의 얼굴을 힐끗 보았다. 그의 눈에 노골적인 의구심이 스쳤다.
"앞은 보이는 거냐?"
"운전이나 하세요. 잃을 것 없는 인간이 갈 곳은 한 군데뿐이니까."
태윤은 창밖을 응시했다. 가로등 불빛들이 번진 물감처럼 길게 늘어져 보였지만, 머릿속의 '미래 법률 대장'은 민세아의 이동 경로를 실시간으로 갱신하며 그의 뇌리에 선명한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었다.
민세아.
강성그룹의 기술 탈취로 아버지를 잃고, 가문이 풍비박산 난 비운의 천재 개발자.
회귀 전 그녀는 한백의 악랄한 합의 종용과 협박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은 강성그룹의 완벽한 기술 독점이라는 더러운 승리로 이어졌다. 이번 생에서는 그 결말을 반드시 뒤틀어야 했다. 그것이 한백의 숨통을 쥘 첫 번째 열쇠였기에.
끼이이익!
윤재필의 차가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산한 도로를 찢으며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거대한 대리석으로 지어진 법무법인 한백의 사옥이 어둠 속에서 거대한 괴물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그 괴물의 발치, 가로등 불빛이 겨우 닿는 가로수 아래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비에 젖은 듯 헝클어진 머리칼, 흙먼지가 잔뜩 묻은 얇은 셔츠 차림의 민세아였다.
그녀의 손에는 깨진 소주병 목 부분이 쥐여 있었다. 날카로운 유리 단면이 그녀의 가녀린 목덜미를 겨누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힘을 주면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올 형국이었다. 눈동자에는 독기와 절망만이 가득 차 있었다.
"민세아 씨!"
윤재필이 차에서 내리며 소리쳤지만, 태윤이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먼저 빠르게 걸어 나갔다.
"오지 마! 가까이 오면 그어버릴 테니까!"
민세아가 쇳소리 섞인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유리 조각을 쥔 그녀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목줄기를 타고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러내려 셔츠 깃을 적셨다.
태윤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더 다가서며 그녀의 초점 없는 눈동자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여기서 죽으면 뭐가 달라집니까?"
태윤의 목소리는 얼음물처럼 차갑고 고요했다. 위로나 동정 따위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극도로 건조한 어조였다.
"당신이 여기서 목을 긋고 쓰러지면, 한백의 홍보팀은 내일 아침 9시 정각에 보도자료를 뿌릴 겁니다. '피해망상에 시달리던 20대 여성의 안타까운 극단적 선택.' 언론사 부장들에게는 강성그룹의 광고비가 입금될 거고, 당신 아버지의 이름은 영원히 대기업의 기술을 훔치려다 자살한 파렴치한 범죄자로 남겠죠."
"시끄러워! 당신들이 뭘 알아? 그 새끼들이 우리 아빠를…… 우리 회사를 어떻게 짓밟았는지 알기나 하냐고!"
민세아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유리 조각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태윤은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그리고 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번개처럼 손을 뻗어 유리 조각을 쥔 그녀의 손목을 강하게 낚아챘다.
귀를 찢는 듯한 마찰음과 함께 유리 조각이 아스팔트 바닥으로 떨어져 쨍그랑 소리를 내며 깨졌다.
"이거 놔! 놓으란 말이야, 이 한백의 개새끼야!"
민세아가 발악하며 태윤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두들겼다. 하지만 태윤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그녀의 손목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 힘에 밀려 민세아는 가로수 둥치에 등을 부딪치며 주저앉았다.
태윤은 그녀의 눈높이에 맞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의 눈동자에 서린 안개가 완전히 걷히고, 심연보다 깊은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잘 들어요, 민세아 씨."
태윤의 낮은 목소리가 그녀의 귓전을 때렸다.
"난 당신을 구하러 온 천사가 아닙니다. 당신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한백의 파트너 변호사, 백설희의 밑에서 일하고 있는 어쏘 변호사지. 당신이 방금 말한 그 '개새끼'가 맞다는 뜻입니다."
민세아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몸을 뒤틀며 벗어나려 했지만, 태윤의 손아귀는 쇠창살처럼 단단했다.
"하지만 차이점이 하나 있지."
태윤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난 당신보다 그 개새끼들을 더 잔혹하게 찢어발기고 싶어 하는 복수귀거든."
"……뭐?"
"법이 그들 편이라고 했습니까? 맞아요. 법은 가진 자들의 무기지. 하지만 그 무기를 다루는 법을 제대로 안다면, 역으로 그들의 목을 치는 가장 완벽한 단두대로 만들 수 있습니다."
태윤은 민세아의 젖은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며, 뇌리에 각인된 미래의 법조문을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기괴한 확신을 주었다.
>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벌칙)** > ① 영리를 목적으로 하거나 외국에서 사용될 것을 알면서 영업비밀을 취득·사용하거나 제3자에게 누설한 자는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 조항으로 강성을 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못 쳐요. 한백은 이미 법관들의 목줄을 쥐고 있고, 이 사건을 단순한 '공동 개발 지분 분쟁'으로 세탁할 기획을 끝마쳤으니까. 하지만 말입니다."
태윤이 상체를 더 밀착시켰다.
"만약 강성그룹의 후계자인 강한찬이, 당신들의 기술을 빼앗는 과정에서 '강요'와 '공갈', 그리고 영업비밀을 해외로 유출하려 한 사설 계약서의 존재가 폭로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도 한백이 그 거래의 배후에서 자금을 세탁해 준 정황과 함께 말입니다."
민세아의 호흡이 멈췄다. 그녀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난 당신의 얄량한 정의감 따위에는 관심 없습니다. 억울함을 풀어줄 생각도 없어. 내가 원하는 건 하나, 강성그룹과 한백이라는 거대한 카르텔을 법망이라는 늪에 밀어 넣어 스스로 질식하게 만드는 겁니다."
태윤은 손목을 쥐고 있던 손을 천천히 풀었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 손바닥을 위로 한 채 내밀었다.
"죽을 용기가 있다면, 그 목숨을 내게 저당 잡혀요. 당신의 그 타오르는 원한을 내 법적 시나리오의 땔감으로 던져 넣으란 말입니다. 내가 약속하지. 강한찬과 백설희, 그 두 인간이 당신 아버지의 묘소 앞에서 무릎 꿇고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어 줄 테니까."
새벽녘의 차가운 정적 속에서 태윤의 선언이 무겁게 떨어졌다.
뒤에서 지켜보던 윤재필조차 침을 삼키며 마른 미소를 지었다. 미친놈. 저건 변호사의 탈을 쓴 악마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할 나위 없이 신뢰가 가는 악마였다.
민세아는 멍하니 태윤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거짓이 없었다. 정의를 외치는 위선자의 눈빛이 아니었다. 오직 대상을 철저히 도구로 써서라도 목적을 달성하려는, 자신보다 더 깊은 어둠을 품은 자의 눈빛이었다.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정말, 그 괴물들을 죽여줄 수 있어?"
"합법적으로, 사회적 생명을 완전히 끊어놓을 겁니다. 흔적도 남지 않게."
민세아가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그녀는 자신의 젖은 셔츠 안쪽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진흙과 핏자국이 묻은, 군용 스펙의 투박하고 고장 난 암호화 USB였다. 모서리가 심하게 긁히고 일부 부품이 파손되어 겉보기에는 고철 덩어리에 불과해 보였다.
"아빠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에 내 손에 쥐여준 거예요. 강성이 우리 회사 서버를 통째로 복제해 간 원천 기술 세부 로그 데이터와, 한백의 지시로 작성된 이면 합의서 초안이 들어있어요."
민세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미군 표준 암호화가 걸려 있고, 강성 경호팀이 들이닥쳤을 때 하드웨어가 일부 파손돼서…… 국내 어떤 사설 포렌식 업체에서도 복구를 못 했어요. 한백 놈들도 이걸 뺏으려고 날 가두고 고문했던 거고."
태윤은 그 차갑고 묵직한 USB를 건네받았다.
손바닥에 닿는 금속의 감촉이 소름 끼치도록 차가웠다. 그의 머릿속에서 미래 법률 대장이 격렬하게 반응하며 푸른빛을 점멸했다. 훗날 강성그룹의 숨통을 끊어놓을 거대한 폭탄이 그의 손에 쥐어진 순간이었다.
"좋아요. 계약 성립이군요."
태윤이 USB를 주머니 깊숙이 넣으며 가볍게 웃었다. 철저히 비즈니스적인, 그래서 더 잔혹한 미소였다.
민세아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던 그 찰나였다.
눈을 멀게 할 듯한 강력한 하이빔 조명이 세 사람의 시야를 덮쳤다.
끼이이이익!
굉음과 함께 검은색 카니발 두 대가 한백 빌딩 앞 가로수 길을 가로막으며 급정거했다. 타이어 탄내가 사방으로 진동했다.
슬라이딩 도어가 거칠게 열리며, 검은색 정장을 입고 무전기 이어폰을 낀 거구의 사내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들의 가슴팍에는 강성그룹 경호팀을 상징하는 금색 배지가 번뜩이고 있었다.
선두에 선 흉터 가득한 얼굴의 사내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쥐새끼처럼 잘도 도망치더니, 결국 제 발로 한백 앞으로 기어들어 왔네. 민세아 씨, 이제 집에 가셔야지?"
사내들이 태윤과 윤재필을 포위하며 서서히 압박해 들어왔습니다.
윤재필이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으며 욕설을 뱉었고, 민세아는 본능적으로 태윤의 옷소락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태윤은 도망치기는커녕,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그들을 향해 느긋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빛은 이미 사냥을 시작한 뱀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윤재필의 어깨가 딱딱하게 굳었다. 품 안의 가스총을 만지작거리는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민세아는 태윤의 코트 자락을 찢어질 듯 움켜쥔 채 숨을 죽였다. 그녀의 손톱 끝이 가죽 재질을 뚫고 태윤의 살갗을 파고들었다.
"강태윤 변호사님 맞으시지?"
흉터 가득한 사내, 강성그룹 경호 2팀장 박만길이 이죽거리며 다가왔다. 그의 가죽장갑 낀 손이 가볍게 쥐어졌다 펴졌다.
"한백의 샛별이라더니, 남의 집 도망간 강아지나 찾아다니는 취미가 있으셨네. 좋은 말로 할 때 그 여자 넘기고 꺼지시죠. 대기업 비즈니스에 어쏘 따위가 끼어드는 거 아닙니다."
태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감기는 눈꺼풀 아래로 뇌리를 쥐어짜며 '미래 법률 대장'의 심연으로 파고들었다.
*키워드: 강성그룹 박만길, 비리, 약점.*
쿠웅!
머릿속에서 거대한 쇠문이 닫히는 듯한 충격과 함께, 관자놀이가 터져 나갈 듯한 편두통이 엄습했다.
"아……."
태윤의 입술 사이로 신음이 흐르며, 왼쪽 코끝에서 붉은 선혈이 툭, 투둑 아스팔트 위로 떨어졌다. 눈앞의 가로등 불빛이 순식간에 암전되며 완벽한 어둠이 찾아왔다. 실명(失明). 하지만 그 암흑의 스크린 위로, 피처럼 붉은 미래의 판결문과 수사 기록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미래 법률 대장 검색 완료] [대상자: 박만길 (경호 2팀장)] [비공개 범죄 사실: 2017년 강성그룹 비자금 4억 원 횡령 및 차명 임대차 계약 의혹. 2018년 경쟁사 대성정밀에 강성그룹 보안 시스템 우회 프로토콜 무단 매각 혐의(유죄 확정).]
태윤은 코끝에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거칠게 닦아냈다. 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고개는 정확히 박만길의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했다.
"박만길 팀장님."
"엉? 이 새끼가 피를 흘리더니 맛이 갔나……."
"형법 제355조 제2항,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
태윤의 건조한 목소리가 새벽 공기를 갈랐다.
> **형법 제356조(업무상의 횡령과 배임)** >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하여 제355조의 죄를 범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특히 그 배임의 대상이 대기업의 보안 프로토콜이고, 그걸 경쟁사인 대성정밀에 팔아넘겨 챙긴 돈이 차명 계좌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죠.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적용될 테니까."
박만길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그의 가죽장갑 낀 손이 허공에서 굳어버렸다. 주변을 에워싸던 경호원들 사이에서도 미세한 동요가 일었다.
"너…… 너 지금 무슨 개소리를……."
"스위스 크레디트아그리콜 차명 계좌. 예금주, 처남 정진우. 매달 25일마다 대성정밀 기획실 명의로 3천만 원씩 입금되는 돈의 성격이 아주 흥미롭더군요. 강한찬 상무가 이 사실을 알면 어떻게 될까요? 그 양반, 자기 돈에 손대는 인간은 산 채로 콘크리트에 묻어버리는 성격인 건 본인이 더 잘 아실 텐데."
박만길의 얼굴에서 핏기가 순식간에 가셨다. 그의 턱이 덜덜 떨리며 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태윤의 귀에 선명하게 꽂혔다.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사냥감의 목덜미를 완벽하게 물었다는 것을.
"선택해요, 박 팀장."
태윤이 한 걸음 다가서며 속삭였다.
"민세아가 강물에 뛰어들어 실종됐다고 보고하고 철수할지, 아니면 내일 아침 강한찬 상무의 책상 위에 당신의 외환거래 내역서가 놓이는 걸 볼지."
침묵이 지배했다. 박만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려 흙바닥에 떨어졌다. 그의 부하들은 영문을 몰라 서로 눈치만 살폈다.
"……미친 새끼."
박만길이 이를 악물며 뒤로 반 걸음 물러섰다. 그의 자존심이 완전히 짓밟힌 순간이었다.
그가 철수 명령을 내리려 손을 들어 올린 바로 그 순간.
띠리리리링—.
정적을 깨고 박만길의 품에서 요란한 벨 소리가 울렸다. 박만길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액정을 확인한 그의 눈동자가 공포로 수축했다.
"상, 상무님……."
그가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누르고 스피커폰을 켰다.
화면 너머에서 신경질적으로 얼음을 깨물어 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거칠고 오만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찢고 흘러나왔다.
- "어이, 박 팀장. 왜 이렇게 굼떠? 쥐새끼 한 마리 치우는 게 그렇게 어려워?"
강성그룹의 상속자, 강한찬이었다.
-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놈은 누구야? 목소리가 아주 기고만장한데. 변호사 배지 달았다고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보지?"
강한찬의 비열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태윤은 보이지 않는 눈으로 소리가 나는 방향을 째려보았다. 관자놀이의 통증이 극에 달해 이가 갈렸다.
- "야, 어쏘 새끼야. 네가 뭘 쥐고 있든 상관없어. 어차피 넌 오늘 내 사냥개 선에서 정리될 테니까. 아, 참. 백설희 파트너한테 안부 전해라. 자기가 키우는 개새끼가 주인 물려고 날뛴다고 말이야. 지금 내 옆에 아주 얌전히 앉아 계시거든."
그 순간, 전화기 너머로 익숙하고 차가운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강태윤 변호사. 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했을 텐데요."
백설희의 목소리였다.
태윤의 심장이 쿵 떨어졌다. 등 뒤로 서늘한 소름이 돋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