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사냥개가 너무 똑똑하고 유능해지면, 주인은 목줄을 더 세게 죄거나…… 아예 안락사를 시켜야 하는 법이지. 자네가 우리 한백의 머리 꼭대기 위에서 놀려던 정황이 너무 많이 포착되었어."

백설희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음성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녀는 손목에 찬 파텍 필립 시계를 톡톡 두드렸다. 규칙적인 금속 마찰음이 널찍한 전무이사실의 침묵을 찢었다.

태윤의 등 뒤로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 넷이 퇴로를 완벽히 차단하고 서 있었다. 한백 자체 감찰팀의 정예 요원들. 그들의 가슴팍에서 은색 배지가 형광등 불빛을 받아 서늘하게 번뜩였다.

"강 변호사. 자네의 그 대단한 '정보망'이, 한백 감찰팀의 정예 요원들 앞에서도 통할지 아주 궁금하군."

백설희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

태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시야는 여전히 불투명한 유리를 통해 보는 것처럼 흐릿했다. 귓가에는 고주파 이명이 삐 소리를 내며 고막을 찔러댔다.

미래 법률 대장을 무리하게 조회한 대가였다. 뇌신경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태윤은 코트 안주머니에 담긴 작은 유리 앰플을 손가락 끝으로 감지했다.

'뉴로세타-D(Neuroceta-D).'

회귀 전, 한백의 로열패밀리들과 초재벌들이 극비리에 사용하던 뇌신경 차단제이자 안압 조절 약물이었다. 대장을 처음 조회했을 때 찾아왔던 뇌신경 마비와 시야 전체가 암전되는 특수한 실명 전조. 그 끔찍한 페널티를 일시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약물이 바로 이것이었다. 한백의 최고위 파트너들만이 스위스 제약사를 통해 밀수해 부작용을 감수하며 복용하던 극약. 태윤은 회귀 직후 이 약물의 제조 배합비와 한백의 유통 경로를 장악해 미리 충분한 수량을 확보해 두었었다.

지금 그의 혈관 속에는 조금 전 주사한 뉴로세타-D가 돌며 신경을 강제로 개방하고 있었다. 이명이 점차 잦아들고, 백설희의 오만한 얼굴이 선명하게 초점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태윤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일개 어쏘 변호사다운 비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표님, 무언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제가 어찌 감히 한백의 머리 꼭대기에 서려 하겠습니까. 저는 그저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일을 가장 확실하게 처리하고자……."

"입 닥쳐."

소파 옆에 서 있던 감찰팀장 임형묵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거구의 몸집에 멧돼지 같은 인상을 가진 사내였다. 그는 태윤의 코앞까지 다가와 서류 봉투 하나를 바닥에 팽개쳤다.

탁!

"경거망동하지 마라, 강태윤. 네놈이 뒤로 윤재필과 접촉해서 정보 빼돌린 거, 그리고 강한찬의 이복형제들 뒷조사해 준 거 전부 채증 끝났다. 변호사법 제34조 위반, 소송 사기 공모, 그리고 업무상 배임까지. 징계위원회 갈 것도 없이 바로 영구 제명에 구속 수사로 넘겨버릴 수 있어."

임형묵이 짓씹듯 뱉어냈다. 그의 거친 숨결에서 불쾌한 담배 냄새가 풍겼다.

백설희는 그 모습을 소파에 깊숙이 기댄 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파리를 내려다보는 인간의 그것과 다름없었다.

태윤은 바닥에 떨어진 서류들을 묵묵히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허리를 숙여 그것들을 한 장씩 주워 올렸다. 손끝이 가늘게 떨리는 것처럼 보였다. 임형묵은 그 모습을 보며 콧방귀를 꼈다.

"겁먹었나? 네놈이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한백의 밥그릇 안에서 노는 똥개새끼일 뿐이야. 백 대표님이 기회를 주실 때 순순히 자백하고, 네놈이 가진 정보망의 정체와 배후를 불어라. 그럼 최소한 감옥에 가는 건 면하게 해줄 테니."

태윤은 서류를 가지런히 모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입가에 걸려 있던 비굴한 미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서늘하기 짝이 없는 무표정이 그 자리를 채웠다.

"임형묵 팀장님."

태윤의 목소리는 너무나 차분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 방에 들어오기 전에, 제가 무슨 준비를 해뒀을지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임형묵의 눈썹이 꿈틀했다.

"뭐라? 이 새끼가 미쳤나……."

"윤재필 변호사가 참 유능한 사람입니다. 험한 일을 많이 해봐서 그런지, 이런 보안 장비를 다루는 솜씨가 아주 일품이더군요."

태윤은 양복 안주머니에서 소형 수신기 하나를 꺼내 들었다. 붉은색 LED 불빛이 미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어제 저녁, 이 방의 청소 교대 시간에 맞춰 윤 변호사가 아주 흥미로운 작업을 했습니다. 이 전무이사실 안의 모든 의자 밑면, 그리고 천장 몰딩 안쪽의 마이크에 '불법 도청 방지 역추적 장치'를 심어두었죠. 주파수 대역을 완전히 교란하면서도, 이 안에서 오가는 모든 음성을 무선으로 외부 서버에 실시간 송출하는 장치입니다."

백설희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크게 흔들렸다. 그녀가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강태윤, 지금 무슨 수작이지?"

"수작이라니요. 대표님께서 저를 사냥개로 쓰시다가 언제든 목줄을 끊으실 분이라는 걸, 제가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태윤은 소파 맞은편의 의자를 끌어당겨 아주 자연스럽게 주저앉았다. 감찰팀 요원들이 그를 제압하려 움찔했으나, 태윤이 수신기를 쥔 손을 가볍게 흔들자 임형묵이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임형묵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네놈이 녹음을 하든 말든 상관없어! 이 안에서 나온 얘기는 전부 정당한 내부 감찰 과정일 뿐이다.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단 말이다!"

"과연 그럴까요?"

태윤이 싱긋 웃었다. 그의 시선이 임형묵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임 팀장님. 3년 전, 한백이 대리했던 '명성건설 기획부도 사건' 기억하십니까?"

임형묵의 얼굴에서 핏기가 순식간에 가셔갔다.

"당시 명성건설의 채권단이 한백을 상대로 제기했던 100억 원대 소송 사기 의혹. 한백의 기획부도 공모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내부 문건이 감찰실로 접수되었죠. 하지만 그 문건은 하루아침에 사라졌고, 제보자는 허위사실 유포로 구속되었습니다."

태윤이 미래 법률 대장에서 읽었던 판결문 소수 의견과 비공개 내사 자료의 한 구절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2018고합XXX 소송사기 및 뇌물수수] 피고인 임형묵은 법무법인 한백의 감찰팀장으로 재직 중, 명성건설 기획부도 관련 내부 고발 문건을 인멸하는 대가로 차명 계좌(신한은행 110-302-XXXXXX, 예금주 임형순)를 통해 총 5억 원의 뇌물을 수수한 사실이 인정됨. ```

태윤은 중앙 정렬된 판결문의 텍스트를 머릿속으로 완벽히 복기하며, 한 자 한 자 정확하게 읊조렸다.

"임형순. 팀장님의 사촌 동생 이름이죠? 신한은행 계좌번호는 110-302로 시작하더군요. 명성건설 부도 당일, 그 계좌로 정확히 5억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송금인은 한백의 페이퍼 컴퍼니인 '블루스톤 홀딩스'.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단순한 변호사법 위반이 아니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및 증거인멸로 최소 징역 7년형입니다."

"너, 너…… 그걸 어떻게……!"

임형묵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거구의 몸이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태윤은 품속에서 낡은 가죽 지갑을 꺼내더니, 그 안에서 두 번 접힌 오래된 종이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윤재필이 사채 시장과 한백 상층부를 연결하는 사설 비밀 클럽 '화청'의 금고에서 빼돌려 은닉하고 있던 비밀 간이 장부의 조각이었다. 3화에서 윤재필이 태윤에게 자랑하듯 보여주며 숨겨두었던 바로 그 치명적인 카드.

"여기 적힌 이니셜 'L.H.M'. 임형묵 팀장님이 화청을 통해 세탁해 준 한백 파트너들의 비자금 배달 사고 내역이더군요. 날짜와 액수, 그리고 전달한 퀵서비스 업체의 일지까지 전부 세트로 묶여 있습니다."

"이, 이 자식이……!"

임형묵이 태윤의 멱살을 잡으려 달려들었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태윤의 서늘한 경고에 임형묵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지금 이 방 안의 모든 대화, 그리고 임 팀장님의 그 경이로운 반응은 실시간으로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최진엽 검사의 개인 태블릿 PC로 송출되고 있습니다. 제가 5분 간격으로 송신 장치의 '생존 신호'를 보내지 않으면, 방금 보여드린 명성건설 차명 계좌 내역과 화청 장부 스캔본이 대검찰청 홈페이지와 언론사 50곳에 자동으로 배포되도록 예약 전송을 걸어두었거든요."

방 안의 공기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감찰팀 요원들은 이제 태윤을 덮치기는커녕, 서로의 눈치만 보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임형묵을 지나 백설희에게로 향했다.

백설희의 얼굴은 분노와 경악으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강태윤…… 네놈이 감히 나를 협박해?"

"협박이라니요, 대표님. 저는 그저 '을'로서 제 최소한의 생존권을 방어하는 것뿐입니다."

태윤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생긋 웃었다.

"자, 임 팀장님. 선택하십시오. 여기서 저를 징계하고 검찰에 넘기시겠습니까? 아니면 본인의 그 화려한 뇌물 역사와 화청의 비자금 세탁 내역을 들고 저와 함께 감방 동기가 되시겠습니까? 아, 팀장님은 구속 기소라 보석도 안 될 겁니다."

임형묵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비 오듯 흘러내려 바닥을 적셨다. 그의 다리가 눈에 띄게 후들거렸다.

대기업 회장 앞에서도 기 한번 죽지 않던 한백의 사냥개 임형묵이, 이제는 사시나무 떨듯 떨며 태윤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 강 변호사…… 아니, 강 동지. 우리 사이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네. 이건 백 대표님의 지시가 아니라, 우리 감찰팀에서 과잉 충성을 하느라 벌어진 불상사일 뿐이야."

임형묵의 목소리가 비굴하게 기어들어 갔다. 그는 슬금슬음 태윤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의 큰 덩치가 태윤의 발끝 아래에서 잔뜩 움츠러들었다.

"제발…… 그 녹음 파일이랑 예약 전송 좀 멈춰 주게. 내가 잘못했네. 자네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줄 테니, 제발 그 계좌 내역만은……."

심문하는 자와 당하는 자의 위치가 단 10분 만에 완벽하게 역전된 순간이었다. 한백의 무소불위 감찰본부장이 일개 신입 변호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걸복걸하는 꼴은 그야말로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태윤은 무릎 꿇은 임형묵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일말의 동정심도 없었다. 오직 도구를 다루는 차가운 이성만이 번뜩일 뿐이었다.

"일어나십시오, 팀장님. 보기 흉합니다."

태윤이 나직하게 말했다. 임형묵은 허겁지겁 일어나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태윤은 시선을 돌려 백설희를 바라보았다. 백설희는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며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고 있었다. 그녀의 오만한 자존심이 완전히 찢겨 나간 표정이었다.

"대표님."

태윤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사냥개가 너무 유능하면 안락사를 시키는 게 아니라, 더 큰 사냥감을 물어오도록 고기를 던져주셔야 하는 법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백설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살의와 두려움이 복잡하게 얽혀 타올랐다.

태윤은 가죽 지갑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끝이 양복 안쪽 주머니에 닿았다. 그곳에는 민세아가 넘겨주었던, 그녀의 아버지가 남긴 군용 고장 난 암호화 USB가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강성그룹의 핵심 기술 원천 특허와 백설희를 단숨에 파멸시킬 가공할 스모킹 건. 아직은 이 카드를 꺼낼 때가 아니었다. 3일 뒤에 있을 주주총회, 그 화려한 무대 위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에 터뜨려야만 했다.

"오늘 감찰 조사는 아주 유익했습니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태윤은 백설희를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철저하게 '을'의 가면을 쓴 채였다.

그가 문을 열고 나가려 하자, 등 뒤에서 백설희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태윤. 네놈이 이겼다고 생각하지 마라. 한백은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아."

태윤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저도 그러길 바랍니다, 대표님. 그래야 부수는 재미가 있을 테니까요."

***

사흘 뒤.

한백 사옥의 분위기는 폭풍전야처럼 고요했다.

임형묵 감찰본부장이 돌연 일신상의 사유로 사직서를 제출했고, 한백의 자체 감찰본부는 사실상 자진 해체 수순을 밟게 되었다는 소문이 사내에 파다하게 퍼졌다. 겉으로는 조용했지만, 내부 카르텔은 이미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태윤은 자신의 사무실 창가에 서서 서초동 법조타운의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귓가에 미세한 이명이 다시 찾아왔지만, 머릿속의 미래 법률 대장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때, 태윤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화면에 민세아의 이름이 떴다.

- 강 변호사님, 백설희가 움직였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빨라요.

민세아의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 감찰본부가 해체되자마자, 백설희가 당초 계획했던 상속세 우회 기획을 전면 취소했습니다. 그리고…… 강성그룹의 상속 집행을 단독으로 강행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오늘 오후 정기 이사회에서 강한찬의 지분 승계 안건을 기습 상정해 통과시키려 합니다.

태윤의 눈빛이 매섭게 가라앉았다.

백설희가 태윤을 제거하는 데 실패하자, 마침내 강성그룹의 지배구조를 단독으로 집어삼키기 위해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것이었다.

"이판사판으로 나오시겠다……."

태윤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그려졌다.

"세아 씨. 준비해 둔 USB의 암호 해독 결과를 이사회 시작 10분 전에 맞춰 이사들의 개인 메일로 송신하세요. 사냥터는 이미 준비되었습니다."

그는 전화를 끊고 코트를 걸쳐 입었다.

마침내, 강성그룹과 한백의 목줄을 완전히 끊어버릴 마지막 사투의 막이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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