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강 변호사! 우리의 위대한 승리를 축하하며 건배하지!"
강한찬이 크리스털 잔을 치켜들며 호쾌하게 웃었다. 잔 속에 담긴 싱글 몰트위스키가 황금빛 출렁임을 만들어냈다. 방금 막 강성그룹의 승계 핵심 지분 전체를 태윤이 설계한 공익재단으로 이전하는 서명을 마친 참이었다.
하지만 태윤의 귓가에는 강한찬의 목소리가 웅웅거리는 이명 너머로 아득하게 멀어져 갔다. 주머니 속 스마트폰의 진동과 동시에, 뇌리를 짓이겨오는 극심한 편두통이 시작되었다. 시야가 붉게 물들더니 어두운 홀로그램 같은 텍스트가 안구 뒷면에 강제로 새겨졌다.
```txt [경고: 미래 경로의 급격한 변동 감지] - 대상자: 강한찬 (강성그룹 상무) - 변동 사항: 강한찬의 지분 이전 계약 체결로 인해 기존 '강성그룹 승계 시나리오' 전면 파기. - 새로운 위협 발생: 강한찬의 이복형제(강준찬, 강혜원) 연합체 결성. - 행동 분석: 강태윤의 법률 자문단장 임명에 의문을 품고 사설 탐정을 고용하여 강태윤의 회귀 전 행적 및 윤재필과의 불법 거래 정황 내사 착수. ```
안구 뒤쪽에서 바늘로 쑤시는 듯한 통증이 치밀었다. 태윤은 어금니를 악물며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렸다. 눈앞의 강한찬은 자신이 왕좌에 앉은 줄 알고 취해 있지만, 그의 이복형제들은 이미 사냥개의 목덜미를 노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성그룹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건배하겠습니다, 상무님."
태윤은 비굴하리만큼 공손하게 잔을 맞부딪쳤다. 챙, 하는 맑은 소리가 밀실에 울렸다. 위스키를 목구멍 뒤로 넘기자마자 태윤은 속으로 차갑게 읊조렸다.
'강준찬, 강혜원. 내 뒤를 캐시겠다?'
사냥개의 사냥개를 자처하는 쥐새끼들이라면, 더 거대한 덫으로 유인해 뼈째로 씹어 삼키면 그만이었다.
***
그날 밤 11시, 서초동의 야산 자락에 위치한 한적한 주차장.
어둠 속에 시동을 끈 채 서 있는 검은색 세단 안에서 윤재필이 엽궐련을 깊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조수석 문이 열리며 태윤이 올라타자, 윤재필은 가래 끓는 목소리로 킬킬거렸다.
"어이, 강 변호사. 검찰청에서 무사히 빠져나오자마자 또 이런 음침한 데서 보자고 하네. 나 이제 전과자 딱지 뗄 뻔했는데, 네놈이랑 엮이면 자꾸 강력계 형사들 촉이 선다니까?"
"쓸데없는 소리 마시고, 그거 꺼내시죠."
태윤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손을 내밀었다. 윤재필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비벼 끄며, 품 안에서 꼬질꼬질하게 때가 탄 가죽 수첩을 꺼냈다. 수첩 틈새로 삐져나온 거친 종이 조각들이 보였다.
"이거 말이지? 사채 시장 큰손들하고 한백 상층부 늙은이들이 비밀 클럽 '화청'에서 굴리던 사설 비자금 장부 조각들. 내가 왕년에 강력부 검사 쪼가리 할 때 목숨 걸고 빼돌려 둔 건데 말이야. 이거 은닉죄로 걸리면 나 진짜 한강 가야 해."
"그 한강 가야 할 물건, 지금 쓰겠습니다."
태윤이 수첩을 낚아채듯 가져갔다.
과거 3화 시점에서 윤재필이 자신의 생명줄이라며 자랑하듯 은닉해 두었던 바로 그 '화청' 간이 장부 조각과 명단이었다. 한백의 총괄대표 백설희가 사채 시장의 검은돈을 세탁해 차명 채권으로 전환해 둔 극비 금고의 위치와 비밀번호 힌트가 고스란히 담긴 스모킹 건.
태윤은 장부의 특정 페이지를 스마트폰으로 정밀하게 촬영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가짜 장부 조각의 일부를 조작하여 새로운 텍스트를 덧입혔다.
"강준찬과 강혜원 측 사설 탐정들이 내 뒤를 밟고 있습니다. 내일 오전 중으로 이 장부의 사본과 가짜 추적 단서를 그 탐정들 손에 자연스럽게 흘리세요."
윤재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미친 법꾸라지 새끼가 또 무슨 판을 짜는 거야? 이거 백설희 대표가 숨겨둔 차명 채권 금고잖아. 이걸 저 강성가 망나니 형제들한테 던져주겠다고?"
"쥐새끼들이 먹이를 찾으려고 제 뒤를 캐는데, 더 맛있는 고기를 던져줘야죠. 그들이 강태윤이라는 일개 변호사의 뒤를 밟는 것보다, 백설희가 숨겨놓은 수천억 대 차명 채권 금고를 먼저 터는 게 훨씬 이득이라고 판단하게 만드는 겁니다."
태윤의 제안은 명료했다. 강준찬과 강혜원이 태윤의 거래 정황을 조사하다가 '우연히' 백설희의 차명 비자금 루트를 발견하게 만든다. 탐욕에 눈이 먼 그들이 금고를 습격하거나 압박하는 순간, 한백의 백설희는 자신의 목숨줄을 건드린 강성그룹의 차남과 장녀를 향해 가차 없는 법적 보복을 가할 것이다.
"서로 물고 뜯게 만든다 이거지? 한백과 강성그룹 상속자들이 정면충돌하는 그림이라……."
윤재필이 이가 시린 듯한 표정으로 혀를 내둘렀다.
"강 변호사, 너 진짜 무서운 놈이다. 을의 가면을 쓰고 뒤에서 거미줄을 치는 꼬락서니가 아주 소름이 돋아."
"칭찬으로 듣죠. 내일 아침까지 작업 끝내세요. 오차는 용납 안 합니다."
태윤은 차 문을 열고 내렸다. 밤바람이 차가웠지만, 머릿속을 파고드는 두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
다음 날 오전, 법무법인 한백의 15층 기업소송본부.
태윤이 복도를 걸어가자 주변 어쏘 변호사들과 직원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시기심과 경멸, 그리고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뒤섞인 눈빛들이었다.
그때, 복도 끝에서 한백의 중견 파트너이자 기업소송 2팀을 이끄는 김성훈 부장 변호사가 앞을 가로막아 섰다. 그는 평소 태윤을 '개천에서 용 쓴 걸레짝'이라 부르며 부하 직원들 앞에서 대놓고 모욕을 주던 자였다.
"어이, 강태윤 변호사. 요즘 아주 기세가 등등하더군? 백 대표님 뒷배 믿고 강성그룹 상무 방을 드나든다면서?"
김성훈이 태윤의 가슴팍을 서류 봉투로 툭툭 치며 비아냥거렸다.
"근데 말이야. 법률사무소의 '을' 노릇도 정도껏 해야지. 소송 대리인이 의뢰인 뒤통수치면서 사설 브로커들이랑 어울린다는 소문이 파다해. 내가 한백 감찰팀에 정식으로 징계 청구서 제출했으니까, 조만간 짐 쌀 준비나 해라. 너 같은 쓰레기가 한백의 이름을 더럽히는 꼴은 못 보지."
주변의 어쏘 변호사들이 킥킥거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김성훈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이번 기회에 태윤을 완벽하게 매장하고 백설희 대표의 눈도장을 찍겠다는 계산이 뻔히 보였다.
태윤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 겉으로는 쩔쩔매는 신입 변호사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김 부장님, 오해이십니다. 저는 그저 대표님과 상무님이 지시하신 업무를 충실히 이행했을 뿐입니다. 제발 한 번만 너그러이 봐주십시오."
"너그러이? 하! 법조계가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 꿇어 엎드려 빌어도 모자랄 판에 변명은."
김성훈이 어깨를 으쓱하며 의기양양하게 돌아섰다.
태윤은 숙인 고개 아래로 차가운 조소를 머금었다.
'멍청한 새끼. 네 무덤을 네가 파는구나.'
태윤은 조용히 눈을 감고 머릿속의 '미래 법률 대장'을 기동했다.
웅-.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과 함께 붉은 경고등이 켜졌지만, 태윤은 뇌세포가 괴사하는 고통을 억누르며 '김성훈'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했다.
```txt [조회 완료: 김성훈 (법무법인 한백 파트너 변호사)] - 비리 내역: 1) 2014년 10월, '대성건설' 소송 대리 중 상대측으로부터 5억 원의 리베이트 수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수재 등). 2) 한백 소속 신입 여변호사 3명에 대한 지속적인 성희롱 및 준강제추행 (서초경찰서 고소장 접수 예정 건, 백설희가 덮어둔 상태). - 판결 확정 시기: 회귀 전 역사 기준, 2016년 3월 징역 5년 선고 및 변호사 등록 영구 제명. ```
태윤은 눈을 떴다. 눈앞이 일시적으로 뿌옇게 흐려졌지만, 입가에는 확신에 찬 미소가 걸려 있었다.
태윤은 곧장 총괄대표실로 향했다. 백설희는 책상에 앉아 명품 까르띠에 시계를 힐끗거리며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강 변호사. 바쁜 사람 시간 뺏지 말고 용건만 해."
백설희가 차갑게 말했다. 태윤은 품 안에서 USB 하나와 정밀하게 정리된 보고서를 백설희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대표님, 한백의 기강을 흔들고 대표님의 직속 라인을 음해하려는 내부의 배신자를 처단해야 합니다."
"배신자?"
백설희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태윤이 보고서를 한 장 넘기며 조용히 읊조렸다.
"김성훈 부장 변호사입니다. 대성건설 소송 과정에서 대표님 몰래 5억 원의 뒷돈을 챙긴 계좌 내역과, 현재 한백 내부에서 덮어두고 있던 신입 변호사 성추행 관련 피해자들의 자필 진술서 및 녹취록입니다. 특히 대성건설 건은 백 대표님의 결재 라인을 우회해 단독으로 처리한 명백한 업무상 배임입니다."
백설희의 눈빛이 순식간에 매섭게 변했다. 그녀는 서류를 빠르게 훑어내려 갔다.
한백 내부에서 횡령과 성추문은 흔한 일이지만, '백설희의 결재를 우회하여 뒷돈을 챙긴 행위'는 그녀가 가장 용납하지 못하는 역린이었다. 게다가 성추문이 대외적으로 터질 경우 한백의 이미지 타격은 물론, 백설희의 총괄대표 입지에도 치명적이었다.
"이걸…… 어떻게 입수했지?"
"을의 정보망은 생각보다 넓습니다, 대표님. 김 부장이 저를 음해하기 위해 감찰팀을 움직이려 하기에, 한백의 안정을 위해 먼저 쳐내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백설희는 시계를 한 번 더 보더니, 가차 없이 인터폰을 눌렀다.
"감찰팀장. 지금 즉시 기업소송 2팀 김성훈 변호사 방 압수수색해. 그리고 서초서 외사과에 횡령 및 성폭력 특별법 위반으로 정식 고발장 접수해라. 10분 안에 끝내."
***
정확히 한 시간 뒤.
한백 사옥 15층 로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검찰 수사관들과 한백 자체 감찰팀 요원들이 김성훈의 방으로 들이닥쳐 서류 상자들을 쏟아부었다.
"이봐! 이거 놔! 내가 누군지 알아? 백 대표님! 백 대표님을 만나게 해줘!"
김성훈이 양팔을 붙잡힌 채 비명을 질렀다. 그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해 있었고, 머리는 헝클어져 볼품없는 몰골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태윤의 가슴을 치며 거드름을 피우던 한백의 거물 파트너가, 하루아침에 포승줄에 묶인 죄수 신세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복도 한구석.
태윤은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담긴 유리잔을 들고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빨대로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자, 얼음이 부딪치며 짤랑거리는 맑은 소리가 났다.
"김 부장님, 가시는 길 조심히 가십시오."
태윤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엘리베이터로 끌려가던 김성훈이 태윤과 눈이 마주쳤다. 태윤의 입가에 걸린 차갑고 오만한 미소를 본 순간, 김성훈의 눈동자에 극도의 공포와 경악이 서렸다. 자신이 누구의 덫에 걸려 파멸했는지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강태윤……! 네놈이…… 네놈이 날 짜고 쳤구나! 이 악마 같은 새끼!"
김성훈의 절규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며 차단되었다. 주변의 어쏘 변호사들은 사시나무 떨듯 떨며 태윤의 눈치를 살폈다. 누구도 감히 태윤의 앞을 가로막거나 비웃을 수 없었다.
철저하게 을의 가면을 쓴 채, 자신을 음해하려던 갑을 단 한 수 만에 사회적으로 매장해 버린 완벽한 사이다 반격이었다.
***
오후 2시, 태윤의 개인 사무실.
"윽……!"
태윤은 책상을 짚으며 주저앉았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관자놀이의 혈관이 터질 것처럼 꿈틀거렸고, 눈앞이 완전히 암전되었다. 미래 법률 대장을 짧은 시간 내에 연이어 조회한 대가였다.
"강 변호사님!"
문을 열고 들어온 민세아가 비명을 지르며 태윤을 부축했다. 그녀는 익숙한 동작으로 태윤의 셔츠 소매를 걷어올리고, 미리 준비해 둔 주사기를 꺼냈다.
"또 대장을 쓴 거예요? 미쳤어 진짜! 이러다 정말 실명해요!"
그녀가 주사한 것은 한백의 로열패밀리들만 극비리에 사용한다는 뇌신경 차단제 '뉴로세타-D'였다.
과거 1화에서 태윤이 대장을 최초 조회했을 때 나타났던 특수한 실명 전조와 뇌신경 마비 증세. 그것을 일시적으로 극복하게 해주는 이 약물의 정체는, 다름 아닌 한백이 정재계 VIP들의 뇌질환 치료 및 극비 약물 관리를 위해 스위스 제약사로부터 불법 수입한 미승인 약물이었다. 태윤은 회귀 전 기억을 통해 이 약물의 존재와 보관 장소를 알고 있었고, 민세아를 통해 이를 지속적으로 확보해 두고 있었다.
약물이 정맥을 타고 흐르자, 차가운 기운과 함께 시야가 서서히 돌아왔다. 극심한 두통이 가라앉으며 이명이 잦아들었다.
"하아…… 하아……."
태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책상에 기댔다. 이마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고마워, 세아 씨."
"고마우면 제발 몸 좀 사려요. 복수고 뭐고 눈이 멀어버리면 끝이잖아."
민세아가 신경질적으로 주사기를 정리하며 툴툴거렸다. 가학적인 워커홀릭처럼 스스로를 파멸의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태윤을 보며, 그녀의 눈에는 걱정과 경계심이 교차했다.
태윤은 책상 서랍 속에 깊숙이 보관된 고장 난 군용 암호화 USB를 바라보았다. 민세아의 아버지가 자살하기 직전 품고 있던, 강성그룹의 핵심 기술 원천 특허와 비리 장부가 담긴 마지막 열쇠.
"세아 씨, 아버님 USB의 암호 해독은 어디까지 진행됐습니까?"
"거의 다 왔어요. 강성그룹의 메인 서버 보안 프로토콜과 연동되어 있어서 마지막 락을 해제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지만…… 주주총회 전에는 확실하게 열릴 거예요. 거기 담긴 내용이 터지면, 강한찬뿐만 아니라 강성그룹 전체가 흔들릴 거예요."
민세아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태윤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성그룹을 껍데기로 만들고, 한백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그날까지 멈출 생각은 없었다. 설령 이 육신이 먼저 타들어 가더라도 상관없었다.
그때였다.
서랍 속의 유선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태윤이 수화기를 들었다.
- 강태윤 변호사. 지금 즉시 20층 전무이사실로 올라오게. 백 대표님의 지시다.
송태수 비서실장의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수화기 너머로 평소와 다른 이질적인 침묵이 느껴졌다.
태윤의 촉이 경고 신호를 보냈다.
"알겠습니다. 즉시 가겠습니다."
송수신기를 내려놓은 태윤의 눈이 가늘어졌다.
***
한백 사옥 20층, 전무이사실 앞 복도.
평소라면 비서들만 지키고 있어야 할 복도에,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삼엄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들의 가슴팍에는 한백 자체 감찰팀의 정예 요원임을 나타내는 은색 배지가 빛나고 있었다.
태윤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널찍한 집무실 중앙, 가죽 소파에 백설희가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곁에는 감찰팀장과 한백의 핵심 카르텔 소속 파트너 변호사 3명이 차가운 표정으로 태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 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백설희가 천천히 손목시계를 흘깃 보더니, 태윤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녀의 눈빛은 평소의 오만함을 넘어, 사냥감을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놓으려는 포식자의 눈빛이었다.
"강태윤 변호사."
백설희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자네가 김성훈을 쳐낸 솜씨는 아주 훌륭했어. 하지만 말이야……."
그녀가 책상 위의 태블릿 PC를 톡톡 쳤다. 화면에는 태윤이 윤재필과 밀회하는 장면, 그리고 강한찬의 이복형제들 측 사설 탐정들과 접촉한 정황이 담긴 사진들이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사냥개가 너무 똑똑하고 유능해지면, 주인은 목줄을 더 세게 죄거나…… 아예 안락사를 시켜야 하는 법이지. 자네가 우리 한백의 머리 꼭대기 위에서 놀려던 정황이 너무 많이 포착되었어."
감찰팀 요원들이 태윤의 등 뒤로 다가와 퇴로를 문을 가로막았다.
"강 변호사. 자네의 그 대단한 '정보망'이, 한백 감찰팀의 정예 요원들 앞에서도 통할지 아주 궁금하군."
백설희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
동맹이었던 백설희가 태윤의 비대해진 능력을 경계하고, 마침내 그를 숙청하기 위해 완벽한 덫을 놓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방이 막힌 밀실. 태윤은 거대한 포위망 한가운데 우뚝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