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윤."
강한찬의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온 목소리는 짐승의 으르렁거림에 가까웠다.
화청의 정원을 수놓은 은은한 인조 석등 불빛 아래, 사설 경호원 다섯 명이 태윤의 도주로를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도망칠 구멍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닫힌 공간. 붉은 조명이 강한찬의 일그러진 얼굴을 기괴하게 비췄다. 그의 손에 쥔 크리스탈 재떨이가 밤공기 속에서 차갑게 번뜩였다.
삐이이이이-.
귓청을 찢는 듯한 이명이 뇌수를 헤집었다. 뉴로세타-D의 약효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눈앞의 시야가 카메라 렌즈에 붉은 잉크를 떨어뜨린 것처럼 흐릿하게 번져갔다. 초점이 맞지 않는 시야 속에서 강한찬의 실루엣이 두 개, 세 개로 겹쳐 보였다.
태윤은 가슴팍을 옥죄는 통증을 누르며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강한찬 상무님. 이 야심한 시각에 화청까지 직접 발걸음을 하시다니, 영광입니다."
"이 바퀴벌레 같은 새끼가 아직도 주둥이를 나불대네?"
강한찬이 한 걸음 다가왔다. 그의 몸에서 진한 알코올 냄새가 풍겼다. 이사회에서 사외이사들의 이탈로 후계 구도에 균열이 가자, 완전히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네놈이 이사회에서 혓바닥을 놀린 대가로 우리 아버지가 나한테 뭐라고 하셨는지 알아? 한백의 똥개 새끼 하나 통제 못 해서 판을 망쳤다고, 내 따귀를 때리셨어. 내가! 강한찬이가!"
강한찬이 재떨이를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태윤은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눈을 찌푸렸다. 뇌세포가 실시간으로 타들어 가는 듯한 극통이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과거, '미래 법률 대장'을 처음으로 뇌리에 불러들였을 때 느꼈던 그 지옥 같은 감각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당시 태윤은 머릿속이 통째로 끓는 기름에 절여지는 듯한 뇌신경 마비를 겪었다. 눈앞이 칠흑 같은 어둠으로 내려앉으며 영구적인 실명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그때 알아낸 것이 바로 한백의 로열패밀리와 최고위 파트너들만이 극비리에 공유하던 특수 처방 약물, '뉴로세타-D'였다.
뇌신경의 이상 흥분을 강제로 차단하고 시신경의 압력을 낮춰 일시적으로 시력을 개방해 주는 기적의 약물. 하지만 그 대가는 고스란히 신경계의 파괴와 이명이라는 부작용으로 되돌아왔다. 지금 태윤의 몸은 그 한계점에 도달해 있었다.
하지만 태윤은 멈추지 않았다. 머릿속의 대장을 강제로 구동했다.
'검색어. 화청, 정원 모퉁이, 감시 카메라.'
뇌가 비명을 질렀다. 코끝에서 툭, 하고 뜨거운 핏방울이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졌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대장의 텍스트가 홀로그램처럼 떠올랐다.
[화청(華淸) 내부 보안 및 감시 체계 기록] - 현 위치: 본관 서편 정원 모퉁이 (법무부 고위 공무원 밀회 구역) - 특이 사항: 도청 및 도촬 방지를 위해 공식 CCTV는 무력화되어 있으나, 백설희의 개인 보안 서버와 연동된 비공개 초고화질 무음 카메라는 24시간 작동 중. - 카메라 위치: 정원 소나무 분재 내부, 렌즈 직경 2mm 미세 핀홀 카메라.
태윤의 입꼬리가 더욱 짙게 올라갔다. 백설희는 이 화청에서 벌어지는 모든 정재계 인사들의 추태와 비밀을 녹화해 목줄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강한찬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 역시 백설희의 상시 감시망 아래 있었다.
"강 상무님. 여긴 보는 눈이 많습니다. 진정하시는 게 신상에 좋을 텐데요."
"보는 눈? 이 화청 안에서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밖으로 한 글자도 못 나간다는 걸 모르나 보지? 여기선 사람 하나 병신을 만들어도 흔적조차 안 남아!"
강한찬이 뒤편의 경호원들에게 턱짓을 했다.
"손가락 다 부러뜨려. 다시는 펜대 못 굴리게."
덩치 큰 경호원 둘이 태윤에게 달려들었다.
태윤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시력도 체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퍼억!
묵직한 주먹이 태윤의 턱을 그대로 후려쳤다. 고개가 꺾이며 타액과 피가 섞여 공중에 흩날렸다. 태윤의 몸이 차가운 자갈밭 위로 사정없이 굴렀다.
"커헉...!"
거친 기침과 함께 붉은 피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턱뼈가 으스러질 듯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태윤은 바닥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강한찬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하나."
태윤이 피 묻은 이를 드러내며 낮게 읊조렸다.
"뭐라 구걸하는 거냐, 이 새끼가?"
강한찬이 조소하며 다가왔다.
"형법 제257조 제1항 상해죄. 공동상해로 가중처벌 대상입니다. 전치 3주 기준으로 합의금 기본 산정액은 최소 5천만 원이지만, 대기업 후계자의 지위를 고려한 징벌적 손해배상과 영장 청구 가능성을 고려하면... 방금 그 한 대로 상무님의 가치는 꽤 깎여 나갔습니다."
태윤은 옷자락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억지로 버티고 섰다.
"이 미친 새끼가 아직도 사태 파악이 안 되나 보네? 야, 더 밟아!"
강한찬의 명령에 경호원들의 무자비한 구둣발이 태윤의 옆구리와 복부에 사정없이 꽂혔다. 둔탁한 타격음이 정원의 고요를 깨뜨렸다. 갈비뼈가 삐걱거리는 비명이 뇌리를 스쳤지만, 태윤은 입술을 깨물며 고통을 참아냈다.
그리고 매타작이 잠시 멈춘 틈을 타,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조용히 웃었다.
"둘... 셋... 넷... 총 6회 타격. 공동상해 및 특수폭행의 범죄사실이 성립합니다."
태윤은 비틀거리면서도 강한찬의 눈을 정면으로 쏘아보았다. 그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형사의 심문처럼 차갑고 정교했다.
"강 상무님. 지금 손가락 하나 대실 때마다, 강성그룹의 우호지분이 정확히 0.5%씩 날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뭐?"
강한찬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그의 눈동자에 서린 광기 위로 얇은 의구심의 막이 씌워졌다.
"개소리 마라. 네깟 놈 하나 묻어버리는 게 내 지분하고 무슨 상관이야?"
태윤은 턱 끝으로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거칠게 닦아냈다.
"상무님께서 저를 폭행하는 이 모든 장면은 지금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소지한 음성 파일과 증거 자료들이 법원에 제출되는 순간, 강성그룹의 주가는 법적 리스크로 인해 곤두박질치겠죠. 특히 상무님께서 추진하시던 강성바이오 해외 신탁 양도 계획은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불법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의 즉각적인 압수수색 대상이 될 겁니다."
태윤은 한 걸음 다가섰다. 오히려 가해자인 강한찬이 흠칫하며 뒤로 반 걸음 물러섰다.
"주가 하락으로 인한 소액주주들의 대표소송, 그리고 우호 지분 세력들의 이탈. 계산해 볼까요? 상무님이 오늘 밤 저를 때려 눕혀 얻는 쾌감의 대가는... 강성그룹 지분 가치로 환산 시 대략 1,200억 원입니다. 참 비싸고 사치스러운 주먹질이군요."
"이, 이 자식이... 증거? 네까짓 게 무슨 증거가 있어! 여긴 화청이야! 전파 차단기까지 돌리고 있는 곳이라고!"
강한찬이 소리쳤지만, 그의 음성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전파 차단기라면, 방금 전 제가 외부 백업망을 통해 우회 회선을 열어두었는데요. 강 상무님."
정원 그림자 깊숙한 곳에서 한 여자가 걸어 나왔다. 단정한 정장 차림에 냉소적인 눈빛을 한 여자, 민세아였다. 그녀의 손에는 군용 스펙의 고성능 녹음기와 태블릿 PC가 들려 있었다. 태블릿의 화면에는 실시간으로 음성 파형이 기록되고 있는 프로그램이 구동 중이었다.
"민세아...?"
강한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강성그룹 후계자 강한찬의 사설 폭력 배후 사주 및 특수 상해 현장. 음성 채록 완벽하게 끝났습니다. 속기사 자격증을 가진 제 명의로 증인 선서 및 공증 서류 작성도 이미 마친 상태고요."
민세아는 태윤의 피투성이가 된 모습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시선은 품에 소중히 안겨 있는 고장 난 군용 암호화 USB로 향했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강성그룹에게 비수를 꽂을 기회가 마침내 눈앞에 다가왔음을 직감한 눈빛이었다.
태윤은 민세아를 보며 얇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민세아 씨. 증거 보존은 완벽하군요."
강한찬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너, 너희들... 감히 나를 상대로 덫을 놔? 내가 누군지 몰라? 내가 강성그룹의 후계자야!"
"후계자?"
태윤이 비웃음을 흘렸다.
"윤재필 전 검사가 가지고 있던 화청의 간이 장부 조각과 비밀 명단. 상무님도 그 존재를 알고 계시겠죠?"
강한찬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 그걸 네가 어떻게...!"
"그 장부에는 강 상무님께서 사채 시장을 통해 강성그룹 비자금을 세탁하고, 한백의 상층부 인사들에게 로비를 시도한 구체적인 날짜와 금액이 적혀 있습니다. 윤 검사가 그걸 어디에 숨겨뒀을 것 같습니까?"
태윤은 강한찬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바로 제 손에 있습니다. 오늘 상무님이 저를 여기서 죽이지 못한다면, 내일 아침 그 장부와 지금의 폭행 녹취록이 서울중앙지검 최진엽 검사의 책상 위에 올라갈 겁니다. 최 검사가 지금 한백의 비밀 펀드를 물어뜯기 위해 얼마나 이빨을 갈고 있는지, 상무님도 잘 아실 텐데요?"
강한찬의 호흡이 가빠졌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크리스탈 재떨이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자갈밭 위로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강태윤... 너는 진짜 악마 같은 새끼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상무님."
태윤은 몸을 돌려 정원 밖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발걸음은 비틀거렸고, 옆구리를 움켜쥔 손 사이로 붉은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의 어깨는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하게 펴져 있었다.
"가자, 세아 씨."
민세아는 녹음기를 챙겨 태윤의 뒤를 따랐다.
강한찬의 경호원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그들의 시선은 완전히 얼어붙은 채 제자리에 서 있는 강한찬의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강한찬은 주먹을 꽉 쥔 채, 멀어져 가는 태윤의 등 뒤를 응시하며 이빨을 갈았다.
"으아아아악!"
정원 가득 강한찬의 패배적인 비명이 울려 퍼졌다.
***
화청의 외곽 도로에 주차된 검은색 세단 안.
시트에 몸을 깊숙이 묻은 태윤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부러진 갈비뼈 부근이 욱신거렸고, 턱은 감각이 없을 정도로 마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명석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병원으로 갈까요?"
운전석의 민세아가 백미러로 태윤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요. 한백의 대표실로 갑니다."
"이 몰골을 하고요?"
"이 몰골이어야만 합니다."
태윤은 피 묻은 손으로 스마트폰을 꺼냈다. 액정 위로 떨어지는 핏방울을 소매로 닦아내며, 그는 정교하게 작성해 둔 메일 한 통을 열었다. 수신인은 법무법인 한백의 총괄대표, 백설희였다.
메일의 첨부 파일에는 방금 전 강한찬이 태윤을 폭행하는 음성 파일과 함께, 화청 내부의 무음 카메라 위치,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사법적 기획안이 담겨 있었다.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강성그룹 강한찬 상무의 폭행 및 불법 감금 혐의를 활용한 강성그룹 경영권 한백 지배안>
태윤은 피 묻은 손가락으로 전송 버튼을 눌렀다.
법과 제도를 이용해 사냥개 노릇을 하던 을이, 자신을 물려던 주인들의 목줄을 쥐고 흔드는 순간이었다. 백설희가 이 메일을 확인하는 순간, 그녀는 강한찬이라는 통제 불능의 괴물을 제거하고 강성그룹을 완전히 손에 넣기 위해 태윤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마트폰 화면이 꺼지며 차 안에는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태윤은 눈을 감았다. 귓가의 이명은 여전했지만, 그의 가슴속에서는 차가운 승리의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그때, 태윤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인의 이름이 화면에 떠올랐다.
[백설희 대표]
태윤은 피 묻은 입술을 뒤틀며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댔다. 백설희의 날카롭고도 가라앉은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왔다.
"강태윤. 지금 당장 대표실로 올라와라. 네가 보낸 그 설계서... 대체 무슨 뜻이지?"
새로운 폭풍이 서초동의 밤하늘 위로 몰아치기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