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지중해의 파도는 더 이상 로마를 위협하지 못한다. 수평선 너머로 거대한 흑연이 솟구친다. 철갑선단이 노도와 같이 바다를 가른다. 석탄을 삼킨 증기선은 자비가 없다. 철과 증기의 결합은 역사적 대전환이다. 판도는 완전히 당신의 손아귀에 있다.

나무로 만든 전선들은 도태되었다. 무장한 흑철의 괴수들이 바다를 뒤덮는다. 함포의 일제사격은 적의 전의를 꺾었다. 이민족의 약탈선은 이미 궤멸되었다. 해로의 안정이 완전히 확보되었다.

제국 전역의 밀과 보리가 수송된다. 식량의 수급은 단 하루도 지체되지 않는다. 황궁이 위치한 수도는 마침내 안식한다. 폭동의 가능성은 영원히 소멸되었다. 기근의 공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반란을 꾀하던 원로원의 잔당도 같다. 그들의 사병 무리는 흔적도 없이 쓸려갔다. 당신의 성망은 이미 천장을 뚫었다. 로마의 국력은 건국 이래 최강에 달한다.

그러나 당신의 시선은 정체하지 않는다. 지중해는 이제 지극히 협소한 호수다. 거대한 선단을 수용하기엔 턱없이 좁다. 제국의 용광로는 더 많은 석탄을 원한다. 산업의 기계들은 자원의 고갈을 외친다. 신문명의 영역을 더욱 확장해야 한다. 세계의 판도는 무한히 펼쳐져 있다.

당신은 황실 해군의 총지휘소에 선다. 탁자 위에는 거대한 세계지도가 있다. 제국의 숙련된 제장들이 숨을 죽인다. 모두가 황태자인 당신의 구상을 기다린다. 당신의 시선이 지도의 두 갈래를 훑는다.

하나는 동방의 장벽을 뚫는 침로다. 이집트의 모래벌판을 가로지르는 대운하다. 지중해와 홍해를 마침내 연동시키는 공사다. 성공한다면 역사상 유래가 없는 대업이다. 그 너머에는 극동의 거대한 부가 있다. 중원의 비단과 인도양의 향료가 그것이다. 동서양 해상 무역의 패권을 쥐는 지름길이다.

다른 하나는 서방의 거대한 심연이다. 헤라클레스의 기둥 너머의 대서양이다. 그곳은 거친 노도와 폭풍의 영역이다. 한 번도 문명이 닿지 않은 미지의 바다다. 그러나 전설 속의 신대륙이 숨어 있다. 무한한 철광과 광물이 잠든 미개척지다. 수많은 기회가 어둠 속에서 기다린다.

두 개의 극단적인 이정표가 놓여 있다. 어느 쪽도 쉬운 추진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로마의 힘은 임계점에 이르렀다. 철조함선들은 검은 증기를 내뿜고 있다. 보일러의 열기가 함체 전체를 진동시킨다.

제국의 명운을 건 행선지를 짚어야 한다. 당신은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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