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끝처럼 날카롭게 갈린 만년필 촉이 궤적을 그리며 한서우의 목덜미를 향해 쇄도했다. 권도진의 눈에 서린 것은 단순한 분노를 넘어선, 파멸한 자의 광포한 살기였다. 공기를 찢는 비명과 함께 쇄도하는 그의 몸짓에는 오직 동귀어진의 의지뿐이었다.
서우는 피하려 했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방금 전 권도진의 숨은 차명 계좌들을 모조리 스캔하며 '인간 손익 계산안'을 한계까지 몰아붙인 대가였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가 칼날 같은 얼음 조각으로 변해 심장을 찌르는 듯한 극심한 저체온증.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빙결의 감옥 속에서, 그녀의 시야 끝자락에 퍼런 숫자들이 어지럽게 명멸했다.
‘움직여, 제발.’
머릿속으로 가상의 주판알을 필사적으로 튕겨 보았지만, 얼어붙은 손가락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만년필의 은색 촉이 그녀의 하얀 살갗에 닿기 직전이었다.
콰직!
둔탁하고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로비의 대리석 벽을 타고 울려 퍼졌다.
"끄아아아악!"
권도진의 입에서 찢어지는 듯한 단말마가 터져 나왔다. 서우의 목전에서 허공을 가르던 그의 손목이 기괴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권태준의 검은 실루엣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서 있었다. 태준은 한 손으로 권도진의 손목을 움켜쥔 채, 그대로 바닥을 향해 내리눌렀다. 단단한 구둣발이 권도진의 가슴팍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쿵, 하고 무거운 신음과 함께 권도진의 몸이 대리석 바닥 위로 나뒹굴었다. 만년필은 댕그랑 소리를 내며 저 멀리 굴러갔다.
"어디서 개가 짖나 했더니."
태준의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온도는 영하를 밑돌았다. 그는 짓밟은 권도진의 가슴을 구둣굽으로 지그시 뭉개며, 셔츠 소매를 천천히 걷어 올렸다.
"도원 실업의 차명 비자금 장부 오백억 원."
바닥에 처박힌 권도진의 귓가에 태준의 싸늘한 음성이 내리꽂혔다.
"네가 감춰둔 그 쓰레기 같은 돈줄이 한순간에 공중분해되니까 이성이 안 잡히나 봐? 형."
"권, 권태준……! 이 개자식이, 네년이랑 짜고 나를……!"
권도진이 피를 토하듯 울부짖으며 버둥거렸다. 하지만 태준의 발아래에서 그의 저항은 날갯짓하는 벌레의 몸짓에 불과했다. 태준의 수하들이 귀신같이 사방에서 나타나 권도진의 사지를 붙들고 바닥에 완벽히 밀착시켰다.
태준은 엎드려 신음하는 권도진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동정심도 없었다. 그저 거추장스러운 오물을 치우는 듯한 건조한 시선뿐이었다.
"네가 내 구역에서 뭘 훔쳐 가든, 누구 밑을 핥든 신경 안 써."
태준이 허리를 숙여 권도진의 흩어진 머리칼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억지로 고개가 꺾인 권도진의 눈에 태준의 잔인한 미소가 담겼다.
"하지만 내 물건에 손을 대는 건 얘기가 다르지. 그 손가락 하나라도 서우 몸에 닿았으면, 넌 오늘 이 건물 나갈 때 두 발로 못 걸어 나갔어."
"태, 태준아…… 사, 살려……."
"치워."
태준의 턱끝짓 한 번에 경호원들이 권도진의 입을 틀어막고 신속하게 로비 밖으로 끌고 나갔다. 질질 끌려 나가는 이복형의 비참한 뒷모습을 보며, 태준은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을 꼼꼼히 닦아냈다. 귀찮은 먼지를 털어내듯 미련 없는 동작이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기자들과 사교계 인사들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 서우를 향해 가십거리를 던지려던 이들의 입이 굳게 닫혔다.
서우는 그 서늘한 침묵 속에서 홀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몸 안의 온도가 급격히 하강하고 있었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하얀 입김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손가락 끝을 부딪쳐 숫자를 세려 해도, 감각이 마비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눈앞이 흐려지며 바닥이 울렁거렸다.
그때, 뜨거운 온기가 서우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태준이 다가와 그녀의 가늘게 떨리는 손을 덥석 쥐었다. 거칠고 단단한 그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서우의 얼어붙은 피부를 타고 찌릿하게 파고들었다.
"상태가 왜 이 모양이야."
태준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의 눈길이 서우의 창백한 이마에서부터 핏기 없는 입술로, 그리고 잘게 떨리는 어깨로 빠르게 이동했다. 서우는 그의 시선을 피하려 고개를 돌렸지만, 태준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서우의 손을 그대로 끌어당겨 자신의 코트 주머니 속으로 깊숙이 집어넣었다.
"……놓으세요."
서우가 모기만 한 목소리로 반발했다.
"놓으면 쓰러질 거면서 고집은."
태준의 주머니 안은 상상 이상으로 뜨거웠다. 그의 손가락이 주머니 속에서 서우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얽혀 들어왔다. 빈틈없이 맞물리는 손바닥을 통해 도는 열기가 몸속의 얼음을 빠르게 녹여내기 시작했다. 귀를 찢을 듯 울리던 이명이 서서히 가라앉고, 흐릿했던 시야가 선명해졌다.
살 것 같다.
머리로는 그를 밀쳐내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본능은 그의 온기를 갈구하며 손을 더 깊이 밀어 넣고 있었다. 서우는 자괴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뒤섞인 묘한 감정 속에서 태준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오롯이 자신만을 담고 있었다. 늘 오만하고 여유롭던 그의 눈빛 속에 일렁이는 낯선 열기. 그것은 단순한 비즈니스 파트너를 걱정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소유욕, 그리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집착이 진득하게 묻어나는 시선이었다.
가슴 한구석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오직 손익과 계산으로만 가득 차 있던 서우의 머릿속 장부에, 처음으로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기묘한 감정의 파동이 일었다. 이 남자가 단순히 쓸모 있는 '방열기'를 넘어, 자신의 내면을 뒤흔드는 위험한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손을 뿌리칠 수 없다는 사실이 서우를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다.
"정신이 좀 드나 보군."
태준이 낮게 속삭이며 서우를 자신 쪽으로 밀착시켰다.
그때, 저 멀리 인파 속에서 굳은 표정으로 이쪽을 응시하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서채율이었다.
채율의 눈빛은 불안과 질투로 잔뜩 뒤틀려 있었다. 권도진의 비참한 몰락을 목도한 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서우는 태준의 품에 기댄 채, 채율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
서우의 눈동자가 깊어지며, 채율의 머리 위에 푸른빛의 숫자들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서채율 / 명하 아트재단 이사장] [보유 약점: 위작 유통 및 비자금 횡령 내역] [장부 가치: 300,000,000,000 KRW (삼백억 원)]
권도진의 오백억 원짜리 계좌를 털어낸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 타깃은 명확했다. 서우는 채율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아주 느리게 끌어올렸다. 소리 없는 경고였다. 채율은 서우의 미소를 마주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급히 시선을 피했다.
"구경꾼들이 너무 많아. 일단 이동하지."
태준이 사늘한 어조로 말하며 서우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졌지만, 태준의 거대한 몸집이 서우를 완벽하게 가려주었다.
두 사람은 웅성거리는 로비를 지나, 전용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사방이 고요해지자, 서우는 참았던 숨을 길게 내뿜었다.
"이제 손 놓으시죠, 권태준 씨. 사람들의 눈은 피했으니까."
서우가 주머니 속의 손을 빼내려 힘을 주었다. 하지만 태준은 오히려 손가락을 더 굳게 얽어매며 그녀를 엘리베이터 벽면으로 부드럽게 밀어붙였다.
"아직 온기가 부족할 텐데. 심장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 부인."
"이건 그냥…… 갑작스러운 신체 반응일 뿐이에요. 계산에 넣을 가치도 없는 낙폭이죠."
서우는 지지 않고 쏘아붙였다. 손가락 끝이 닿은 태준의 손등에서 느껴지는 맥박이 맥동치고 있었다.
"계산이라."
태준이 피식 웃었다. 엘리베이터의 층수 표시기가 빠르게 올라갔다.
"내 가치를 네 그 잘난 계산기로 아무리 두드려봐야 답은 안 나올 거야. 난 매번 네 예상치를 초과하는 자산이니까."
"오만하시네요."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야."
띵- 하는 맑은 기계음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태산 파이낸셜의 최고층, 대표실이 위치한 층에 멈춰 섰다. 문이 열리자 길게 뻗은 복도가 나타났다. 주말이라 직원들이 모두 퇴근해 고요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었다.
태준은 서우의 손을 잡은 채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의 걸음걸이에는 거침이 없었다. 마치 자신의 영토를 걷는 포식자 같았다.
마침내 태산의 대표실 문 앞에 다다랐다. 태준은 문을 열고 서우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서우가 중심을 잡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태준이 안으로 들어오며 문을 닫았다.
철컥.
무거운 도어록이 잠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다. 넓은 대표실 안에는 오직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존재했다. 넓은 통창 너머로 서울의 야경이 붉게 일렁이고 있었고, 실내의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겹쳤다.
태준은 천천히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서우에게 다가왔다. 그의 눈빛은 굶주린 야수의 그것처럼 짙은 갈망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서우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지만, 이내 단단한 대리석 데스크에 등이 가로막혔다. 태준이 양손으로 데스크를 짚으며 서우를 자신의 품 안에 가두었다. 그의 뜨거운 체온이 숨결을 타고 서우의 얼굴을 적셨다.
태준이 서우의 턱단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쓸어 올렸다. 손가락 끝이 닿는 곳마다 찌릿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그는 잔인할 정도로 섹시한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그녀의 귀밑머리에 바짝 가져다 댔다.
"살려줬으니, 이제 제대로 대가를 치러야지, 부인?"
"대가는…… 이미 차고 넘치게 치렀을 텐데요."
서우는 가쁜 숨을 고르며 대꾸했다. 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가볍게 손을 얹었지만, 밀어내기 위함이라기보다는 무너지는 몸을 지탱하기 위한 버팀목에 가까웠다.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그의 심장박동이 손가락 끝의 세포 하나하나를 마비시킬 것처럼 뜨겁고 강렬하게 맥동했다.
"권도진의 비자금 오백억을 날려버림으로써 당신이 얻은 도원 가문 내의 입지. 그건 장부상으로 환산해도 최소 수백억 이상의 가치가 있는 반사이익이에요. 내가 당신에게 진 빚은 그걸로 상쇄되고도 남습니다."
"언제부터 내가 그런 종이 쪼가리 숫자에 연연했다고 생각하는 거지?"
태준의 뜨거운 숨결이 서우의 입술 위로 가볍게 흩어졌다.
"내가 원하는 페이백은 그런 시시한 자산이 아니야, 한서우."
서우의 시선이 먼저 아래로 뚝 떨어졌다. 허공에서 길을 잃은 눈길은 태준의 날렵한 턱선과 굳게 다문 입술을 지나, 그의 셔츠 깃 너머로 드러난 단단한 목줄기에 머물렀다. 강렬한 열기에 짓눌려 숨이 가빠오자, 그녀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서우는 도망치기를 포기한 채, 짙은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나는 태준의 검은 눈동자를 똑바로 쏘아보았다. 피할 수 없다면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그녀의 방식이었다.
"그럼 무엇을 원하는데요?"
"이거."
태준이 데스크를 짚고 있던 한 손을 떼어 서우의 가느다란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 그의 넓은 손바닥이 서우의 얇은 실크 블라우스 위로 밀착되자, 얼어붙어 가던 척추를 타고 짜릿한 온기가 수액처럼 번져나갔다.
대표실 안에는 비 내린 밤의 비릿한 흙내음과 태준의 몸에서 배어 나오는 묵직한 시더우드 향이 뒤섞여 묘한 공기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에어컨의 기계적인 소음마저 아득하게 들릴 정도로, 두 사람 사이의 밀도는 비정상적으로 높아져 있었다.
"으읏……."
서우의 입에서 미처 참지 못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로비에서 서채율을 스캔하느라 또다시 능력을 활성화했던 부작용이 뒤늦게 터진 탓이었다. 발끝에서부터 얼어붙는 잔혹한 빙결의 고통이 심장을 향해 옥죄어 들어왔다. 몸이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하자, 서우는 자신도 모르게 태준의 깃을 꽉 움켜쥐었다.
"거봐. 또 이 모양이면서 무슨 계산을 하겠다는 거야."
태준의 목소리에 짙은 안타까움과 거친 소유욕이 교차했다. 그는 서우의 가벼운 몸을 가볍게 들어 올려 데스크 가장자리에 걸터앉혔다. 두 사람의 눈높이가 같아지자, 밀착감은 한층 더 깊어졌다. 태준이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의 거친 숨결이 닿는 곳마다 차가운 얼음이 녹아내리며 붉은 낙인이 찍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 순간, 서우의 시야가 다시 한번 파랗게 번쩍였다. 의지와 무관하게 발동된 '인간 손익 계산안'이 태준의 머리 위로 장부를 띄웠다.
[권태준 / 도원그룹 후계자] [나를 향한 호감도: 측정 불가 (ERROR: 계산 한계치 초과)] [이용 가치: 무한대 (INF)]
'측정 불가……?'
서우의 심장이 세차게 요동쳤다. 지금까지 그 어떤 대상을 보아도 명확한 숫자로 떨어지던 장부였다. 심지어 수백억의 가치를 지닌 권도진도, 서채율도 완벽하게 계산해 냈던 그녀의 눈이 권태준 앞에서만은 무력하게 오류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 남자의 감정과 가치는 내 계산기로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 압도적인 사실이 서우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적셨다.
"왜 그런 눈으로 보지? 내 머리 뒤에 뭐가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태준이 서우의 젖은 앞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기며 속삭였다. 그의 손가락 끝은 따뜻했고, 그 다정함이 오히려 서우에게는 치명적인 독약처럼 느껴졌다.
"당신은…… 미쳤어요."
"알면 늦었어. 난 이미 네 그 차가운 가슴 안으로 들어갈 비싼 입장료를 냈으니까."
태준의 입술이 서우의 입술에 닿기 직전, 데스크 위에 놓여 있던 서우의 휴대전화가 요란한 진동음을 내며 어두운 방 안을 밝혔다.
징비리릭-! 징비리릭-!
두 사람의 숨결이 멈췄다. 화면에 뜬 발신인은 민주희 비서였다.
서우는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태준의 가슴을 밀어내고 전화를 손에 쥐었다. 태준은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내 그녀를 품에서 완전히 놓아주지는 않은 채 가만히 지켜보았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수화기 너머로 평소답지 않게 다급한 민 비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방금 명하 아트재단 내부 정보원에게 연락이 왔는데, 서채율이 오늘 밤 재단 지하 수장고에 보관 중이던 위작들을 제3의 장소로 긴급 반출하기 시작했답니다! 이미 대형 운송 차량 두 대가 출발했다는데, 아무래도 권도진의 파멸을 보고 겁을 먹고 증거 인멸을 시도하려는 것 같습니다!
서우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서채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300억 원 가치의 위작 횡령 내역을 털어낼 절호의 기회이자, 그녀를 완벽히 매장할 수 있는 유일한 타이밍이었다.
서우가 전화를 끊고 몸을 일으키려 하자, 태준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며 더 깊숙이 잡아끌었다.
"어디 가려고, 부인."
태준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푸르게 가라앉아 있었다.
"전화 들었잖아요. 서채율이 꼬리를 자르려고 움직이고 있어요. 지금 안 잡으면 기회가 없어요."
"그럼 나랑 하던 거래는 어떻게 하고?"
태준이 서우의 손가락을 제 입술에 가져다 대며 가볍게 깨물었다. 미약한 통증과 함께 밀려드는 뜨거운 자극에 서우의 어깨가 다시 한번 굳어졌다.
"서채율을 잡으러 가는 길에, 네 몸이 다시 얼어붙으면 어쩔 생각이지? 내 온기 없이 그 현장을 버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태준의 질문은 잔인하도록 정확했다. 서우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의 뜨거운 온기를 수급받지 못하면, 사교계 매장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저체온증으로 쓰러질 것이 분명했다.
서우는 입술을 깨물며 태준을 응시했다. 거래의 주도권은 여전히 이 오만한 남자에게 있었다.
태준은 서우의 흔들리는 눈빛을 즐기듯,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리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나를 데리고 가, 한서우. 그 대신, 오늘 밤이 지나면 넌 내게 아주 값비싼 진짜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감당할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