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귓가를 울리는 거친 심장 박동 속에 권태준의 입술이 닿을 거리에 서우를 가두고 묻는다.

"나를 필요로 하는 이유가 고작 이거였어?"

코끝을 스치는 그의 독한 시가 향과 살결에서 배어 나오는 맹렬한 열기가 서우의 뺨을 태울 듯이 밀려들었다. 귓가에는 방금 전까지 귀를 찢을 듯 울려 대던 이명이 잦아들고 있었지만, 심장 박동은 여전히 경보음처럼 요란했다. 서우는 제 어깨를 단단히 움켜쥔 그의 뜨거운 손가락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가죽 장갑을 벗어던진 태준의 맨살이 닿은 곳바닥부터 지독한 오한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서우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태준의 눈꺼풀 아래로 내리깔린 시선에서부터, 가늘게 떨리는 입술을 거쳐, 이내 그의 오만한 검은 눈동자를 똑바로 정면에서 꿰뚫어 볼 때까지 단 3단계의 시선 이동만으로 차갑게 정돈되었다.

"고작이라뇨."

서우가 입술을 열었다.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마치 기계가 인쇄해 낸 영수증처럼 건조하고 명확했다.

"내 생존율을 40%에서 99%까지 끌어올려 주는 열원인데, 그걸 고작이라고 폄하하시면 곤란합니다. 권태준 씨."

"열원?"

태준의 미간이 사납게 좁아졌다. 그의 손아귀에 힘이 더 들어갔다. 실크 침구 위로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엉겨 붙었다.

"네 목숨을 쥐고 흔드는 남편을 앞에 두고, 겨우 그따위 단어를 골라내다니. 여전히 그 잘난 머릿속에선 나를 난방기구 정도로 분류하고 있는 모양이지?"

"정확히는 고효율의 고정 자산이죠."

서우는 왼손 손가락 끝으로 침대 헤드의 목재 프레임을 띡, 띡, 가볍게 두드렸다. 머릿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주판알이 맹렬한 속도로 튕겨 나가고 있었다. 온기가 혈관을 타고 돌기 시작하자, 얼어붙었던 뇌세포가 제 기능을 찾으며 실시간으로 태준의 가치를 다시 매기기 시작했다.

*사용자: 한서우* *대상: 권태준* *현재 가치 평가: 측정 불가능(감정적 심연) -> 임의 조정: 연 6.5% 고정 금리를 보장하는 최우량 비즈니스 파트너.* *접촉 대가: 체온 1도당 부채 상환 가치 약 10억 원 상당의 리스크 헤징 효과.*

서우는 제 뺨을 스치는 태준의 거친 숨결을 느끼면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인정할 건 인정하죠. 당신의 존재는 제 계산법을 가끔 교란합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당신의 가치를 '계산 불가능' 영역에 두어야 하나 고민했으니까요. 하지만 방금 결론을 내렸습니다. 당신은 내게 연 6.5%의 고정 금리를 확실하게 보장해 주는 우량 파트너예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우량 파트너라."

태준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의 입술이 서우의 뺨을 쓸어내릴 듯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다. 피부와 피부가 맞닿는 경계면에서 자극적인 정전기가 일었다.

"한서우, 넌 참 사람 미치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 남들은 내 시선 한 번 받으려고 수십억 짜리 줄을 대는데, 넌 내 몸뚱이를 두고 이자율을 계산하고 있군."

"돈이 되는 계산이니까요. 가치 없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진 않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내 가치를 더 올려줘야겠네. 네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싸게."

태준의 눈빛이 포식자의 그것으로 완벽하게 탈바꿈했다. 그의 손이 서우의 허리를 감싸 안아 제 품으로 거칠게 끌어당겼다. 침묵의 서리가 내려앉아 있던 방 안의 공기가 두 사람의 밀착으로 인해 순식간에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서우의 가녀린 체구가 완전히 갇혔다. 태준은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붙인 채, 짐승 같은 저음을 읊조렸다.

"계약서 조항을 추가하지. 앞으로 내 온기가 필요할 때마다, 넌 내게 대가를 지불해야 해.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진짜 대가를."

"무슨……."

"네가 가장 주기 싫어하는 걸 받아내겠다는 소리야. 예를 들면, 네 그 잘난 이성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같은 거."

그의 뜨거운 손가락이 서우의 턱끝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쥐어 올렸다. 거부할 수 없는 지배력이 온몸을 지배하려 드는 찰나였다.

지이잉-.

다시 한 번 요란하게 진동하는 스마트폰이 두 사람 사이의 팽팽한 밀도를 강제로 찢어발겼다. 액정 화면 위로 '민주희 비서'의 이름이 붉은 경고등처럼 깜빡이고 있었다.

서우는 태준의 가슴을 밀어내며 상체를 일으켰다. 태준은 혀를 차며 손을 놓아주었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서우의 목덜미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서우가 수락 버튼을 누르자마자, 민 비서의 다급한 음성이 스피커폰을 찢고 흘러나왔다.

"서우 씨! 국세청 특별조사 4국입니다! 그들이 지금 테라피움 로비뿐만 아니라, 태산 파이낸셜 본사 정문까지 동시에 가로막았습니다! 권도진 대표가 손을 쓴 게 확실해요. 본사 서버실을 통째로 압수수색하겠다며 영장을 들이밀고 있습니다!"

"본사까지 동시에 움직였다고요?"

서우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수축했다. 권도진의 움직임이 예상보다 반 박자 더 빨랐다. 48시간의 유예를 주겠다던 국세청 내부의 첩보는 완전히 빗나갔다. 아니, 권도진이 특별세무서장에게 더 거대한 미끼를 던져 판을 뒤흔든 것이 분명했다.

서우의 손가락 끝이 다시 한 번 침대 시트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주희 씨, 본사 보안 팀에 연락해서 서버 접속 권한을 3단계로 격상하고 시간 벌어요. 내가 지금 바로 갑니다."

"하지만 서우 씨, 영장을 들고 온 조사관들을 무작정 막을 수는 없어요. 이미 로비에서 대치 중입니다. 서장인 남궁혁이 직접 지휘하고 있어요. 그 인간, 권도진의 오랜 사냥개입니다!"

남궁혁 세무서장.

그 이름이 나오자마자 서우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장부가 빠른 속도로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대상: 남궁혁 (서울지방국세청 특별조사 4국장)* *가치 평가: 권도진과의 유착 관계 자산 가치 약 120억 원.* *치명적 약점: 도원 실업 차명 비자금 계좌(장부 가치 500억 원) 중 일부를 뇌물로 수수. 계좌명 '명하-04'.*

서우의 입꼬리가 차갑게 올라갔다. 빙결 증상이 완전히 회복되자, 그녀의 두뇌는 그 어느 때보다 명석하고 잔인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권도진이 제 무덤을 스스로 파기 위해 사냥개를 보냈다면, 그 사냥개의 목줄을 통째로 끊어버리면 그만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주희 씨. 내가 가진 장부에는 그 사냥개의 목숨값도 적혀 있으니까."

전화를 끊은 서우가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딛으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손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억센 힘이 있었다.

권태준이었다. 그는 이미 셔츠 단추를 꿰어 채우며 침대 헤드에 기대어 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귀찮은 불청객들의 침입에도 그의 얼굴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오직 서우를 향한 집요한 흥미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도와줄까?"

태준이 나직하게 물었다.

"도원 그룹의 힘을 쓰면, 국세청 조사 4국 따위는 전화 한 통으로 철수시킬 수 있어. 네가 내게 고개만 숙인다면 말이지."

"거절하겠습니다."

서우는 태준의 손을 단호하게 뿌리쳤다. 그리고 흐트러진 옷가지를 단정하게 정리하며 거울 앞으로 걸어갔다.

"이건 태산 파이낸셜과 저의 전쟁입니다. 당신의 자산을 움직여 이 문제를 해결하면, 장부상 내 채무는 더 늘어나게 되니까요. 난 당신에게 더 이상 빚을 지고 싶지 않습니다."

"여전히 고집스럽군."

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우의 뒤로 다가왔다. 거울 속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한 번 얽혔다.

"하지만 기억해. 넌 내 아내야. 권도진이 널 건드린다는 건, 내 영역을 침범했다는 소리지. 내가 가만히 두고 볼 것 같아?"

"당신은 당신의 방식대로 권도진의 숨통을 조이세요. 난 내 방식대로 저 사냥개들의 이빨을 뽑아버릴 테니까."

서우는 거울 속 태준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긋 미소 지었다. 그것은 사랑스러운 아내의 미소가 아니었다. 전장에 나서는 냉혹한 총사령관의 얼굴이었다.

"테라피움 로비는 당신이 정리해 주시겠어요? 본사로 가는 길에 귀찮은 파리들이 꼬이는 건 사양하고 싶어서요."

"그 정도 협조쯤은 기꺼이 해주지. 내 우량 파트너를 위해서."

태준이 비스듬히 웃으며 서우의 어깨를 가볍게 쥐었다 놓았다. 그의 손길이 닿았던 자리에 여전히 뜨거운 온기가 남아 서우의 전신을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었다.

* * *

태산 파이낸셜 본사 로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파란색 압수수색 상자를 든 국세청 조사관 수십 명이 로비를 점령하고 있었고, 태산의 직원들은 그들의 진입을 막아서며 거칠게 항의하고 있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권도진이 미리 매수해 둔 기자들이 벌써 가이드라인 밖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남궁혁 국세청 조사 4국장은 오만한 태도로 시거를 입에 물고 있었다.

"비키세요. 우리는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집행하러 온 겁니다. 태산 파이낸셜이 도원 그룹과의 계약 과정에서 막대한 세금을 탈루하고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구체적인 제보가 접수되었습니다. 협조하지 않으면 공무집행방해로 전원 체포하겠습니다!"

"남궁 국장님! 아직 정식 조사 개시 통보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무단으로 들이닥치시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민주희 비서가 가로막아 섰지만, 남궁혁은 코방귀를 끼며 그녀를 거칠게 밀쳐내려 했다.

"비켜, 이 비서 나부랭이가 어디서 감히……."

그때였다.

쿠우웅-.

태산 파이낸셜의 거대한 회전문이 느티나무처럼 무겁게 돌아가며 열렸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로 구두 굽 소리가 맑고 단호하게 울려 퍼졌다. 소란스럽던 로비가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머리를 단정하게 묶어 올리고, 티끌 하나 없는 블랙 슬랙스 슈트 차림의 한서우가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한겨울의 칼바람보다 더 시렸고, 그녀의 손끝은 아주 미세하게 주판을 튕기듯 허공을 두드리고 있었다.

서우의 시선이 남궁혁에게 머물렀다.

그의 머리 위로, 500억 원짜리 붉은색 장부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권도진의 도원 실업 차명 비자금 계좌 정보, 그리고 그 계좌에서 남궁혁의 차명 계좌로 흘러 들어간 수십억 원의 뇌물 거래 내역이 소수점 아래까지 완벽하게 정렬되어 있었다.

서우는 로비 한가운데에 서서 남궁혁을 내려다보았다.

"남궁혁 국장님."

서우의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로비의 공기를 얼려버렸다.

"그 영장, 누구의 비자금으로 사 오신 겁니까?"

남궁혁의 얼굴에서 여유로운 미소가 순식간에 휘발되었다. 입에 물고 있던 시거 타는 냄새가 매캐하게 로비의 공기를 오염시켰다.

그는 서우의 당돌한 시선에 움찔하면서도, 이내 이빨을 드러내며 비열하게 웃었다.

"한 대표, 지금 제정신이 아니군. 가문이 망하더니 머리 회로 주판알이 통째로 으스러진 모양이야. 감히 누굴 상대로 협박질을 하는 거지?"

"협박이라니요. 정당한 자산 가치 평가입니다."

서우는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녀의 눈동자가 남궁혁의 굳어버린 입매를 스쳐, 떨리는 손가락 끝의 시거를 지나, 그의 셔츠 깃 너머로 붉게 달아오른 목덜미에 멈추었다. 철저하게 세분화된 세 단계의 시선 끝에 머문 것은 확신이었다.

"서울중앙지검에 계신 국장님의 매형 명의로 된 유령 회사, '에이치 앤 파트너스'. 그쪽으로 지난달 14일, 도원 실업의 차명 계좌 '명하-04'에서 정체불명의 투자금 30억 원이 입금되었더군요. 국세청 국장님쯤 되시는 분이 그 정도 거액의 자금 출처를 증빙하지 못하진 않으시겠죠?"

"너, 너……!"

"참고로 그 유령 회사의 실소유주 명의가 권도진 대표의 차명 주식과 얽혀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면, 국세청이 아니라 대검찰청 반부패부에서 먼저 움직여야 할 텐데요."

남궁혁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로비를 메우고 있던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한층 더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상황의 주도권이 완전히 서우에게 넘어간 순간이었다.

*삐이이이-*

바로 그 순간, 서우의 왼쪽 귀가 터질 듯한 이명에 휩싸였다.

머릿속에서 가상의 주판알을 너무 빠른 속도로 튕겨 낸 대가였다. 뼈마디를 타고 올라오는 지독한 냉기가 심장을 향해 뻗어왔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시야의 가장자리가 하얗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경고: 사용자 한서우의 체온이 34.5°C 이하로 급강하 중.* *빙결 증상 2단계 진행. 심박수 저하로 인한 의식 상실 위험 감지.*

서우는 이빨을 악물었다.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었다. 남궁혁은 먹잇감의 피 냄새를 기막히게 맡는 사냥개다.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 즉시 이빨을 들이밀고 달려들 것이 뻔했다.

"한서우 대표."

남궁혁이 서우의 창백해진 안색을 놓치지 않고 비스듬히 안면을 들이밀었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지독한 담배 냄새와 비열한 체취가 서우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것 같았다.

"확실히 영악하군. 하지만 기어 다니는 뱀이 아무리 독을 품어봤자, 하늘을 나는 매를 잡을 수는 없는 법이지. 네가 그 잘난 주둥이로 아무리 떠들어대도, 내 손에 들린 이 압수수색 영장은 진짜야. 그리고……."

남궁혁이 서우의 귀에 바짝 다가와 낮게 속삭였다.

"권 대표가 전해 달라더군. 네가 가진 그 장부, 오늘부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휴지 조각이 될 거라고 말이야. 태산 파이낸셜의 진짜 핵심 자산은 이미 어제 자로 다른 곳으로 저당 잡혔거든."

"뭐라고 요……?"

서우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태산의 핵심 자산이 저당 잡혔다니? 그럴 리가 없었다. 모든 자산 흐름은 그녀가 매일 밤 장부를 통해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었다.

*쿠르릉-.*

그 순간, 본사 정문 유리창 너머로 거대한 섀시를 가진 고급 리무진 한 대가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차에서 내린 인물은, 다름 아닌 권도진이었다. 그의 입가에는 승자의 잔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서류 봉투에는 태산 파이낸셜의 최종 파산 선고서가 붉은 직인과 함께 찍혀 있었다.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며 바닥으로 쓰러지려는 서우의 몸을 누군가 뒤에서 단단하게 받쳐 안았다.

지독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 그리고 코끝을 스치는 익숙한 시가 향.

"내가 말했잖아, 한서우."

귓가를 울리는 권태준의 나직하고 오만한 목소리가 차가운 로비의 공기를 찢고 들어왔다.

"내 온기가 없으면 넌 아무것도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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