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살과 뼈가 들러붙는 소리는 젖은 가죽을 짓이기는 불쾌한 마찰음과 닮아 있었다.

천도윤의 찢어진 가죽 틈새로 검붉은 진액이 꿀럭이며 뿜어져 나왔고, No.04의 기계적인 골격이 그 진액 속으로 사정없이 빨려 들어갔다. 두 존재의 비명은 이내 물리적 주파수를 잃고 기괴한 이중창으로 변해 예배당의 높은 천장을 때렸다. 기둥에 금이 가고, 바닥의 타일들이 들썩이며 미세한 돌가루를 뿜어냈다.

"우흐…… 아하하핫! 하나로…… 마침내 완벽한 수확의 때가……!"

천도윤의 나긋나긋하던 목소리는 쇳소리가 섞인 거대한 소음으로 변해 있었다. 그의 비틀린 골격 주위로 검은 연기가 소용돌이치며 사방의 벽을 긁어댔다. 공기 중에 지독한 탄내가 섞여 들었다.

진우는 등에 업힌 민아의 체온을 느꼈다. 깃털처럼 가벼운 무게였지만, 뺨에 닿는 그녀의 숨결은 얼어붙어 가던 진우의 가슴속을 거칠게 헤집어 놓았다. 타인의 고통 앞에 그토록 무감각했던 심장이 가늘게 떨렸다. 진우는 오른손으로 민아의 엉덩이를 더 단단히 받쳐 업으며 왼손으로 주머니를 뒤적였다.

손끝에 차가운 유리병이 걸렸다.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찌그러진 라일락 향수병이었다. 비화회의 말단 조직원이 떨어뜨렸던,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민아가 납치되던 날 밤 마지막으로 쥐고 있었던 그녀의 소지품. 유리병의 목 부분에 미세하게 묻어 있는 라일락 향이 예배당의 비린내와 뒤섞였다.

그 순간, 향수병에서 뿜어져 나온 미약한 영적 파동이 허공으로 뻗어 나갔다.

단순한 아로마 오일의 향이 아니었다. 그것은 민아의 영혼이 겪었던 궤적, 즉 비화회가 설계한 납치 경로와 이 대성당 내부의 가장 깊숙한 물리적 좌표를 실시간으로 가리키는 나침반이었다. 향수병의 노즐 끝에서 흘러나온 가느다란 보랏빛 연기가 예배당 제단 뒤편의 특정한 공간을 향해 화살표처럼 꺾였다. 탈출구의 위치가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크르르르르…….

바닥을 딛고 일어선 괴수의 크기는 이미 예배실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무수한 눈동자가 검은 진액 속에서 제각각 깜빡였고, 돋아난 이빨들은 톱니바퀴처럼 서로를 맞물며 으스러뜨리고 있었다. 괴수가 앞발을 내딛자, 물리적 공간 자체가 종이처럼 구겨지며 진우의 안면을 향해 차가운 폭풍이 몰아쳤다.

진우의 재킷 안쪽에서 강한 진동이 일었다.

지하철 물품보관함에서 회수했던 녹슨 구리 열쇠가 붉은 빛을 뿜어내며 요동치고 있었다. 그랜드 디스토피아 호텔의 숨겨진 13층, 즉 지금 그들이 발을 딛고 있는 이 왜곡된 물리 공간의 잠금장치와 열쇠가 완벽하게 동조하고 있었다. 열쇠의 표면에서 녹 가루가 바스러져 내리며, 13층의 차원 벽을 고정해 주던 보이지 않는 빗장이 삐걱이는 소리가 진우의 귓전을 때렸다.

"진우 씨! 저 괴물, 물리적인 한계를 완전히 넘어섰어요! 이대로 있다간 공간이랑 같이 으깨질 거라고요!"

구석에 쓰러져 있던 한채희가 머리를 감싸 쥐며 소리쳤다. 그녀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뺨을 타고 흘러내려 턱끝에서 뚝뚝 떨어졌다. 돈독이 오른 평소의 안색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생존을 향한 처절한 갈망만이 그녀의 눈동자에 일렁였다.

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스마트폰을 켜 화면을 응시했다.

화면에는 '도시괴담록'의 붉은 경고창이 쉴 새 없이 점멸하고 있었다. 괴담을 다루고 계약을 뒤흔든 대가로, 진우의 뇌리에서는 어린 시절 여동생과 함께 놀이터에서 모래성을 쌓던 기억이 모래알처럼 스러져 가고 있었다. 영혼의 마모율 98%. 숨을 쉴 때마다 허파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이대로 가다간 1분도 버티지 못하고 자아가 소멸할 판이었다.

진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화면의 가장 하단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약관의 가장 구석진 곳, 일반적인 인간의 시력으로는 인지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미세한 크기로 인쇄된 초소형 독소 조항이 그의 안광에 걸렸다.

[제3자의 귀속 소속 영혼은 양도 시 우선 면책권이 부여된다.]

진우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채희 씨."

"네? 이 상황에 무슨 한가한 소릴……!"

"판데모니움에 묶여 있는 영혼 담보물들, 지금 당장 내 어플 계정으로 양도 양수 계약 체결해."

"미쳤어요? 그게 어떤 가치를 지닌 자원인데……!"

"죽으면 그 자원도 휴지 조각이야."

진우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는 손소독제를 꺼내 들 여유조차 없었기에, 피가 묻은 액정을 거칠게 문질렀다.

"내 영혼이 마모되어 소멸하기 전에, 네가 가진 채권 영혼들을 내게 양도해라. 약관 제14조 2항의 우선 면책권을 발동한다. 계약 즉시 너에게는 판데모니움의 거래 수수료 면제권과 배심원 가산점을 양도하지."

한채희의 눈동자가 빠르게 굴러갔다. 손실과 이익을 계산하는 그녀의 머릿속 회로가 터질 듯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괴수의 거대한 손귀가 그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기 직전,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단말기를 두드렸다.

"아악, 몰라! 계약 승인! 승인했다고!"

징-.

진우의 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피로감과 자아 소멸의 공포가 순간적으로 씻겨 내려갔다. 양도된 타인의 영혼들이 진우의 영혼 방패막이가 되어 대신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마모율이 40%대로 급격히 떨어지며 머릿속의 안개가 걷혔다.

"큭…… 우후후…… 벌레 같은 짓을 하누나……."

융합 괴수의 가슴팍에서 거대한 아가리가 열리며 천도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아가리 바로 위에는 No.04가 차고 다니던 금색 회중시계가 박혀 있었다. 째깍, 째깍, 째깍……. 시계바늘은 정각보다 항상 4분 빠르게 움직이며 주변 괴담의 영역 전개 속도를 미친 듯이 가속하고 있었다.

진우는 그 시계를 가만히 응시했다.

"No.04."

진우의 목소리가 예배당의 소음을 뚫고 차갑게 울려 퍼졌다.

"너는 지옥의 감사관이자 계약의 대리인이다. 그렇지?"

괴수의 수많은 눈동자가 일제히 진우를 향해 고정되었다. 비릿한 침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대리석을 녹여 들어갔다.

"그런데 지금 네가 취한 형태는 무엇이지?"

"우리는…… 하나다…… 지옥의 심연이자, 이 땅의 지배자……."

"틀렸어."

진우는 스마트폰 화면을 괴수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화면에는 도시괴담록의 기업 장부 라이선스 규정이 띄워져 있었다.

"너희는 지금 법인 격인 비화회의 자산 '천도윤'과, 감사 기구인 'No.04'의 영적 주파수를 임의로 통합했다. 이건 지옥 상법 제32조에 명시된 '이해상충 방지 조항'과 '독과점 금지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행위다."

괴수의 움직임이 아주 미세하게 멈칫했다.

"감사관이 피감사 대상인 괴담 유포 집단의 수장과 결탁하여 하나의 개체로 합병하는 것……. 이건 지옥의 공정거래 질서를 완전히 파괴하는 불법 인수 합병(M&A)이다. 계약서상 명시된 독과점 규제 원칙에 따라, 너희의 합병은 원천 무효다."

"개소리……! 여기는 회색의 구역이다! 지옥의 법이……!"

"지옥의 법이 지배하기 때문에 더더욱 이 규칙을 벗어날 수 없지."

진우가 한채희를 바짝 노려보았다.

"채희 씨, 판데모니움 배심원 직권 위임 코드 보내."

한채희는 이미 진우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녀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

"아주 뼈를 발라버리시는군요, 진우 씨. 받아요! 최고 배심원 임시 권한 위임!"

진우의 스마트폰 화면에 푸른색 인증 마크가 박혔다. 판데모니움의 최상층 배심원 권한이 진우의 손으로 고스란히 넘어왔다. 진우는 망설임 없이 액정을 강하게 내리눌렀다.

"불법 합병에 대한 행정벌 처분을 직접 확정한다. 피고인 천도윤 및 No.04. 합병 무효화 및 강제 자산 분할 명령을 선포한다."

타아앙-!

예배당 내부의 허공에서 거대한 법정의 의사봉 소리가 환청처럼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괴수의 가슴팍에 박혀 있던 금색 회중시계가 미친 듯이 반대로 돌기 시작했다. 4분 빠르게 움직이며 인과율을 왜곡하던 시계의 태엽이 역방향으로 튕겨 나갔다. 시차의 맹점이 깨지자, 괴수의 거대한 신체를 구성하던 두 존재의 영적 주파수가 급격하게 어긋나기 시작했다.

"아, 아아악! 몸이…… 내 몸이 분리된다……!"

천도윤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괴수의 거대한 몸체 곳곳에 붉은색 'X'자 모양의 에러 마크가 선명하게 새겨졌다. 그것은 지옥의 시스템이 불법적인 데이터를 감지하고 강제 삭제를 개시했다는 절대적인 규율의 표식이었다.

퍼엉-! 퍼어억-!

괴수의 거대한 오른쪽 앞발이 스스로 폭발하며 검은 진액과 뼛가루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이어 왼쪽 어깨가 기괴하게 뒤틀리더니, 안쪽에서부터 솟구친 불꽃에 의해 통째로 뜯겨 나갔다. 융합되어 있던 두 존재의 골격이 서로를 밀쳐내며 찢어지는 소리가 예배실 전체를 뒤흔들었다.

"이…… 벌레 같은 놈이……!"

No.04의 기계적인 얼굴이 괴수의 허리춤에서 비어져 나오며 침을 뱉었다. 하지만 이미 집행된 행정벌은 멈추지 않았다. 에러 마크는 괴수의 목과 가슴, 척추를 따라 빠르게 번져 나가며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분쇄하고 있었다.

진우는 차가운 눈으로 그 파멸의 광경을 지켜보며 손소독제를 꺼내 손을 꼼꼼하게 씻었다. 알코올 향이 라일락 향과 섞이며 기묘한 괴리감을 자아냈다.

"자본주의의 룰을 우습게 보지 마라. 지옥도 결국은 거대한 계약의 시장일 뿐이니까."

진우의 조용한 읊조림 끝에, 괴수의 몸이 완전히 두 갈래로 갈라지며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천도윤의 육체는 검은 재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고, No.04의 유해는 고철 조각처럼 바닥을 뒹굴었다.

완벽한 승리였다. 비화회의 수장과 지옥의 감사관을 동시에 파산 상태로 몰고 간, 완벽한 역공학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안도감은 찰나에 불과했다.

"우흐…… 우후후후……."

재가 되어 사라져 가던 천도윤의 해골 같은 얼굴이 진우를 향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뼈만 남은 손가락이 제단 중앙에 깊숙이 박혀 있는, 이 13층 공간의 중심핵이자 물리적 잠금장치—구리 열쇠가 공명하고 있던 그 붉은 구체를 향해 뻗어 나갔다.

"나 혼자…… 지옥으로 돌아가진 않는다…… 강진우……."

콰아아앙-!

천도윤의 마지막 영혼의 불꽃이 중심핵을 정면으로 타격했다.

쩌적, 쩌저적!

구리 열쇠와 공명하며 빛나던 붉은 구체에 거대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예배당을 지탱하고 있던 사방의 벽들이 무너지며 그 너머의 허공이 칠흑 같은 암흑으로 변해 들어갔다. 공간을 유지하던 축이 완전히 박살 난 것이었다.

"벽이…… 벽이 사라지고 있어요! 차원이 닫히는 게 아니라, 아예 붕괴하고 있다고요!"

한채희의 비명이 들려왔다.

진우의 등 뒤에 업힌 민아가 다시금 가늘게 신음을 흘렸다. 사방에서 밀려드는 암흑의 해일이 그들의 발밑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물리학과 인과율이 완전히 소멸한 무(無)의 공간 속으로, 대성당 전체가 통째로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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