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을 짓이기는 듯한 쇳소리가 어둠 속에서 낮게 울렸다.
지하철 1호선 신설동역의 가장 깊은 곳, 일반 승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유령 승강장의 공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전동차가 다니지 않는 선로에는 수십 년 동안 묵은 먼지와 정체 모를 습기가 엉겨 붙어 썩은 내를 풍기고 있었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구두굽 아래에서 바스러지는 시멘트 가루 소리가 유난히 크게 고막을 자극했다.
강진우는 걸음을 멈추고 주머니에서 은색 소형 손소독제를 꺼냈다.
칙.
차가운 알코올 액체가 손바닥에 닿자마자 그는 신경질적으로 손가락 사이사이를 비벼 닦았다. 알코올의 기화열이 손끝의 온기를 빼앗아 갔지만, 이 지독한 불결함 속에서 유일하게 그를 버티게 만드는 것은 오직 이 소독 과정뿐이었다. 감각이 마비된 것처럼 차가운 그의 눈동자가 어둠이 내려앉은 선로 끝을 응시했다.
"민아를 데려간 놈들의 흔적이…… 분명 이 근처였는데……."
여동생 강민아가 실종된 지 정확히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경찰은 단순 가출로 사건을 종결하려 했지만, 진우는 알고 있었다. 동생의 방에서 풍기던 기이한 라일락 향기와 벽지에 핏빛으로 칠해져 있던 기괴한 문양들. 그것은 평범한 인간의 소행이 아니었다. 도심의 음지에 도사린 괴담을 인위적으로 경작한다는 광신도 집단, 비화회의 짓이었다.
뚝.
머리 위에서 차가운 물방울이 떨어졌다. 정수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액체는 물이 아니었다. 점성이 강하고 비린내가 진동하는, 정체불명의 진물이었다.
진우가 다시 손소독제를 꺼내려던 찰나, 사방의 소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멀리서 들려오던 지상의 미세한 진동도, 배수구를 흐르던 물소리도 한순간에 끊겼다. 마치 거대한 진공청소기 속으로 공간 전체가 빨려 들어간 듯한 지독한 정적. 오직 자신의 불규칙한 심장 박동 소리만이 이명처럼 귓가를 때려왔다.
회색의 구역…… 인간의 인지가 닿지 않는 물리적 고립 지대가 마침내 열린 것이다.
"꼭꼭 숨어라……."
어둠 속에서, 아주 가느다란 아이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타일 벽면의 미세한 균열 틈새에서 번져 나오는 듯한, 정체 모를 불쾌한 음색이었다.
"머리카락 보일라……."
목소리는 사방에서 동시에 들려왔다. 방향을 가늠할 수 없었다. 진우는 주머니 속에서 손소독제 통을 꽉 쥐었다. 손끝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결함이 있었음에도, 등 뒤에서 서서히 좁혀오는 물리적인 압박감은 본능적인 경계심을 깨웠다.
돌아가려고 발을 돌렸으나, 방금 걸어왔던 아치형 입구는 온데간데없고 거친 시멘트 벽만 가로막고 있었다. 조여오는 고립감 속에서, 진우의 바지 주머니가 진동했다.
징-.
조용한 공간을 찢는 진동음과 함께 스마트폰이 스스로 켜졌다. 화면에는 그가 설치한 적 없는 칠흑 같은 색상의 어플리케이션이 구동되고 있었다. 피처럼 붉은 글씨가 액정 위를 가득 채우며 깜빡였다.
[도시괴담록(都市怪談錄)이 소유자를 인식했습니다.] [현재 구역의 인과율 분석 중…….] [조우한 괴담: '숨바꼭질 귀신' (D등급)] [경고: 해당 괴담은 강제 살해 영역을 전개 중입니다. 생존을 위한 '규칙서'를 열람하시겠습니까?]
진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화면 속 글자들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처럼 꿈틀거렸다.
[※ 규칙서 열람 대가: 소유자의 소중한 기억 및 감정의 일부 영구 소멸] [주의: 대가는 잔액 정산 시 영구 차감됩니다. 동의하십니까?]
"……동의한다."
진우의 입술 사이로 건조한 낙엽 같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망설임은 없었다. 여동생을 찾을 수만 있다면, 자신의 뇌리에 박힌 기억 따위는 얼마든지 내던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순간, 관자놀이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몰려왔다.
하얗게 번지는 시야 너머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마모되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여동생 민아와 함께 가을산에 올라 단풍잎을 모으던 기억…… 그 작은 손이 전해오던 따스한 온기와 자신이 지었던 희미한 미소…… 그 소중했던 삶의 한 조각이 재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서늘해졌지만, 진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머릿속이 차갑게 식어 내리는 것과 동시에, 스마트폰 화면의 붉은 글씨가 해금되었다.
[숨바꼭질 귀신의 행동 수칙] 1. 귀신이 '찾았다'라고 선언하는 순간, 대상은 귀신과 '시선'을 공유하게 됩니다. 2. 귀신은 절대로 대상의 정면에서는 물리적 위해를 가할 수 없습니다. 오직 등 뒤에서만 접근합니다. 3. 귀신이 던지는 질문에 대답하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공포로 인해 눈을 감으면 즉시 심장 마비로 사망합니다. 4. 이 게임은 쌍방이 서로를 인지하고 '놀이'에 동의했을 때만 성립되는 인과적 계약입니다.
"찾았다……."
귓가 바로 옆에서 얼음 같은 숨결이 닿았다.
동시에 진우의 시야가 기괴하게 분할되었다. 한쪽 눈은 자신의 정면인 어두운 선로를 보고 있었지만, 다른 쪽 눈은 천장 높은 곳에서 거꾸로 매달려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목이 완전히 꺾인 채, 피로 물든 백색 소복을 입은 어린아이의 모습.
그것의 눈을 통해 진우 자신의 뒷모습이 실시간으로 보이고 있었다. 기이하고도 불길한 시선 공유였다. 귀신은 천천히 천장에서 내려와 진우의 등 뒤로 다가오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올 때마다 진우의 등 가죽이 얼어붙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너…… 거기 있지? 내 이름…… 알아?"
귓전을 때리는 목소리는 고막을 찢을 듯이 날카로웠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이 기괴한 시각적 동기화와 등 뒤의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뒤를 돌아보았을 터였다. 눈을 질끈 감고 달아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진우는 제자리에 굳건히 선 채, 천천히 손소독제를 손등에 떨어뜨렸다.
슥, 슥.
차가운 마찰음이 귀신의 기괴한 숨소리를 덮었다. 진우의 얼굴에는 공포의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의 눈동자에는 지극히 냉정하고 계산적인 빛이 감돌았다.
"구두계약의 효력 상실을 주장한다."
진우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비명도, 귀신의 질문에 대한 대답도 아니었다. 그것은 차갑고 명료한 법적 공세였다.
"……뭐?"
귀신의 시선을 공유하는 진우의 오른쪽 시야 속에서, 아이의 일그러진 얼굴이 황당함으로 굳어지는 것이 보였다. 귀신은 규칙에 얽매인 존재다. 인간이 공포에 질려 규칙을 어기기만을 기다리는 인과의 노예. 그러나 진우가 던진 단어는 그들의 상식 밖에 존재하는 영역이었다.
"민법 제527조에 의거, 계약의 청약은 철회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나, 애초에 당사자 간의 의사 합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계약은 성립 자체를 부정한다."
진우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귀신이 정면에 마주 서게 되었다. 시동 공유를 통해 보던 기괴한 각도가 깨어지고, 이제 진우의 두 눈은 정면에 서 있는 피투성이 아이 귀신을 똑바로 응시했다. 규칙 2번에 의해, 정면으로 마주한 귀신은 그에게 손끝 하나 댈 수 없었다. 귀신의 손가락이 진우의 코앞에서 허공을 긁으며 멈춰 섰다. 닿고 싶어도 인과의 벽이 가로막아 닿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너는 나에게 '숨바꼭질'이라는 게임의 청약을 주도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동의한 적이 없다. 상호 합의가 없는 일방적인 신체적, 정신적 강제 노동 요구는 근로기준법 및 형법상 협박죄에 해당한다."
"우으…… 으아아아!"
귀신이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진우의 얼굴을 향해 무언가 저주를 퍼부으려 했다. 그러나 진우의 목소리는 법관의 판결문처럼 단호하게 공간을 압도했다.
"또한, 너는 게임의 벌칙이 '사망'이라는 중대한 독소 조항을 계약 체결 전에 명시하지 않았다. 이는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3조, 설명 의무 위반이다. 따라서 이 계약은 원천 무효이며, 나는 네가 제시한 어떠한 질문에도 응할 법적 의무가 없다."
귀신의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기 시작했다. 절대적인 규칙으로 작동하던 인과의 그물이 진우의 논리적인 모순 제기에 의해 밑바닥부터 뒤틀리기 시작한 것이다. 시스템의 빈틈, 루프홀이 발생했다. 귀신의 존재를 지탱하던 기괴한 오컬트적 인과율이 스스로 붕괴하며 사방의 시멘트 벽에 미세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오히려 계약 체결 과정에서의 불법적인 감금 및 생명 위협 행위에 대해, 나는 가해자인 너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
진우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화면 속 '도시괴담록'의 인터페이스가 붉게 타오르며 새로운 명령어를 활성화했다.
[대상 괴담의 계약 구조가 완벽히 붕괴되었습니다.] [주도권이 소유자 '강진우'에게 이행됩니다.] [포획 및 자원화 기능을 작동합니까?]
"수확해라."
진우가 스마트폰 액정을 강하게 눌렀다.
스마트폰의 카메라 렌즈가 붉은빛을 뿜어내며 귀신의 몸을 비추었다. 귀신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 했으나, 이미 인과의 주도권을 잃어버린 존재에게 도망칠 곳 따위는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의 소용돌이가 귀신의 발끝부터 감싸 안으며 스마트폰 안으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싫어! 숨을…… 숨을 곳이……!"
원혼의 절규는 스마트폰 화면 너머로 빠르게 잦아들었다. 마침내 마지막 연기 한 자락까지 액정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자, 사방을 메우고 있던 회색의 구역이 유리창이 깨지듯 산산조각 나며 흩어졌다.
스산했던 유령 승강장에 다시 지상의 희미한 소음들이 찾아왔다. 깨진 타일 바닥과 먼지투성이 선로가 원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진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손소독제를 다시 꺼냈다. 귀신의 흔적이 묻은 공기를 털어내듯, 손가락을 꼼꼼히 닦아내는 그의 눈빛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다.
딩동-.
품 안의 스마트폰에서 경쾌한 알림음이 울렸다. 자산 정산서가 도착한 것이다.
[정산 완료] - 수확한 괴담: '숨바꼭질 귀신' (D등급 자원) - 획득 자원 포인트: 1,500 WP - 소유자 상태: 감정 '온정(溫情)' 7% 추가 마모.
가슴 한구석이 조금 더 가벼워진 동시에, 무언가 소중한 것이 영영 돌아오지 못할 심연으로 가라앉은 감각이 느껴졌다. 하지만 진우는 개의치 않았다. 동생을 찾을 수만 있다면 이까짓 영혼의 조각 따위는 상인에게 던져주는 푼돈에 불과했다.
그는 어플 화면을 아래로 내리려 했다. 그런데 화면 중앙에 갑자기 붉은색 해골 문양과 함께, 이전에 없던 긴급 메시지가 온 화면을 가득 채우며 점멸하기 시작했다.
[특이 사항 감지] [소유자의 등록 혈연자 '강민아'의 영혼 파동 분석 완료.] [현재 위치: '망각의 대성당' 지하 심부] [상태: 거대 도시전설 기동을 위한 핵심 동력원(제물)으로 영구 연결 및 소모 중…….]
화면을 바라보던 진우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손가락 끝에 묻은 알코올이 완전히 기화하여 차가운 한기만을 남겨두고 있었다.